뮤지엄한미 삼청, 개관 기념전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
1929년 첫 개인 사진전~예술매체 인정받은 1982년 미술관 전시까지 다뤄
사진·자료 총 300여점 대거 나와···1880년대 ‘역사적 사진’들도 선뵈
“한국사진사 정립위해 ‘한미사진미술관’의 지난 20년 역량 총동원”

한국사진사 정립을 위한 뮤지엄한미 삼청(옛 한미사진미술관)의 개관 기념 기획전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개인 사진전을 연 최초의 사진가 정해창의 작품들(1920~1930년대,Gelatinsilverprint). 뮤지엄한미 소장, ⓒ정형식. 뮤지엄한미 제공

사진은 등장 200년이 된 현재 독자적 예술매체로,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기계조작의 결과물”로 치부하던 예술계의 무시, 비아냥을 극복한 것이다. ‘바늘구멍 사진기’인 ‘카메라 옵스큐라’를 거쳐 1820~30년대 니엡스, 다게르 등 선구자들이 사진 역사를 열어젖힌 이후 세계 사진가들이 치열하게 작업하고 사진 미학을 구축한 덕분이다.

조선인이 사진을 접한 것은 기록상 1860년대다. 1880년대에는 서화가이던 김용원·지운영·황철 등이 사진관을 세웠다. 1900년대 초반에는 김규진의 천연당사진관 등이 신문광고를 할 정도에 이르렀다.

최초의 개인 사진전이 1929년 3월 이 땅에서 개최됐다. 정해창(1907~1968)이 서울 광화문빌딩 2층에서 연 ‘예술사진 개인전람회’다. 사진가·평론가인 최봉림(뮤지엄한미 부관장)은 “정해창은 사진을 예술매체로, 자신의 미학적 역량을 개인전이라는 근현대미술의 사회적 형식으로 선보인 한국 최초의 사진가”라며 “한국 사진사에서 본격적인 예술은 이 전시와 더불어 비로소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전에도 전시 등은 있었지만 정해창과 달리 작품 프린트가 남아 있지 않고 작가 이력도 온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 사진은 50여년 후인 1982년 변곡점을 맞는다. 당시 덕수궁 석조전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원로작가 초대전으로 사진가 임응식(1912~2001)의 ‘임응식 회고전’이 열린 것이다. 최 부관장은 “사진이 독자적인 예술매체로, 순수미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은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이 전시와 함께 사진이 미술관의 전시·소장의 대상이 된 것이다.

한국 사진은 1982년 6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임응식 회고전이 열리면서 마침내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고 미술관 전시와 소장의 대상이 됐다. 사진은 당시 전시 팸플릿. 뮤지엄한미 제공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 사진가들은 국내외의 주목 속에 여느 때보다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사진계가 이룩한 갖가지 성취의 뿌리, 역사적 토대와 흐름을 살피고 짚어보는 일은 중요하다. 사진사 정립을 위한 치열한 연구·노력은 곧은 성장을 담보하는 대나무의 마디처럼 한국 사진의 튼실한 발전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뮤지엄한미 삼청’(서울 삼청동)에서 열리는 기획전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는 주목할 만하다. 1929년 정해창 개인전부터 1982년 임응식 회고전까지 50여년 동안 한국 사진이 어떤 조건·환경 속에서 발전했는지 새롭게 고찰해 의미가 크다. 사진 200여점, 자료 100여점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기획전으로, 쉽게 마련하기 힘든 보기 드문 사진전이다.

사실 한국사진사를 다루는 대규모 기획전은 여러 이유로 쉽지 않다. 사진사가 명확히 정립되지 않은 데다 격동의 역사 속에서 소장·관리·자료의 부실, 빈티지 프린트의 한계는 물론 아직도 소유권·저작권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가 여전해서다. 그런 점에서 미술관 소장품에 개인·기관 소장품들까지 모은 전시는 그 의미를 더한다.

이번 전시는 한미약품을 모기업으로 한 가현문화재단 한미사진미술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서울 삼청동에 미술관을 신축하고 ‘뮤지엄한미 삼청’으로 재탄생한 개관 기념전이다. 국내 최초이자 한국 대표의 사진 전문 미술관인 뮤지엄한미 삼청(관장 송영숙·사진가)의 내공, 자부심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전시는 정해창의 작품으로 시작해 먼저 1920~1930년대 사진들을 살펴본다. 회화주의 사진(살롱사진)이 중심이었지만 ‘신흥사진’으로 불린 모더니즘 사진에 대한 사진가들의 관심도 엿볼 수있다. 1930~1940년대는 공모전의 시대라 할 만하다. 사진가들에게 공모전 입상은 사회적 인정, 예술적 승인을 받는 일이었다. 이형록·임응식·김정래·최계복·정도선·구왕삼·정인성 등 당시 각종 공모전 수상작들을 만난다.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임응식의 포토그램 습작1 부양(1933, ⓒ임응식사진아카이브), 이형록의 전원(1934, ⓒ이명민), 임석제의 반출(1948, ⓒ청암아카이브). 뮤지엄한미 소장

해방과 남북 분단, 한국전쟁은 여느 분야처럼 사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극단적 이념 대결과 전쟁 전후의 혼란 속에서 사진계는 기존 회화주의를 비판하며 현실의 객관적 기록성을 강조하는 리얼리즘이 대세를 이룬다. 르포르타주(르포)도 부상했다. 사회의 부조리, 전쟁, 노동현장, 농업에서 산업사회로의 전환 조짐 등 있는 그대로의 현실·현장을 담아내는 것이다. ‘여수·순천사건’(여순사건)을 다룬 이경모, 전쟁터나 전쟁에 따른 고단한 삶을 기록한 임응식·이명동·구왕삼·임석제·임인식 등의 작품은 당시 사진계를 잘 보여준다.

구왕삼의 작품(1950년대, 동강사진박물관 소장, ⓒ구경훈, 위 사진)과 임인식의 6.25전쟁-군번없는 학도병(1950, 청암아카이브 소장, ⓒ청암아카이브). 뮤지엄한미 제공
이해선의 명암 (1950년대, 개인소장, ⓒ이길주, 위 사진)과 이해문의 제일보(1957, 개인소장, ⓒ이성주). 뮤지엄한미 제공

1950~1960년대 해외 공모전들도 사진사에 영향을 준 제도적 조건의 하나다. 사진가들은 일본은 물론 미국·프랑스·영국 등의 해외 공모전에 적극 참여했다. 국내 공모전 심사의 불신, 문화 선진국에 대한 선망 등에 따른 것이다. 전시장에는 국내 사진가의 최초 해외 공모전 입상(1952년 제1회 도쿄국제사진살롱)으로 알려진 임응식의 ‘병아리’를 비롯해 김한용·박영달·이해문·한영수·배상하·최민식 등의 작품과 관련 출판물 자료가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이어 ‘인간가족’전(1957년)과 긍정·부정적 평가가 공존하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등의 영향을 살핀다. 신한국·김종헌·김테레사·한정식·홍순태·정진필·배동준·육명심·차용부 등의 작품을 만날 수있다. 여기에 리얼리즘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의 작업방식을 고민·시도한 ‘싸롱아루스’와 ‘현대사진연구회’의 이상규·김형오·황규태 등의 작품들도 선보인다. ‘인간가족’은 뉴욕 현대미술관의 에드워드 스타이컨이 기획한 세계 순회전의 하나로 한국을 찾아 42만명의 관람객을 모은 것으로 유명하다.

 

황규태의 빅 브라더(1968, 몽타주, 작가소장, ⓒ황규태, 왼쪽 사진)와 김종헌의 격정(1965, 개인소장, ⓒ김선미). 뮤지엄한미 제공
강운구의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면 수분리(1973, 뮤지엄한미소장, ⓒ강운구, 왼쪽 사진)와 홍순태의 갈치 (1971, 개인소장, ⓒ홍성희). 뮤지엄한미 제공
육명심의 사별(1974, 작가소장 ⓒ육명심, 왼쪽 사진)과 차용부의 빙점에서 만난 아이들(연작)(1978, 작가소장, ⓒ차용부). 뮤지엄한미 제공


1960~1970년대가 되면 사진가들은 공모전을 넘어 개인전, 출판 작업에 활발하게 나선다. 주명덕의 ‘홀트씨 고아원’, 차용부의 ‘빙점에서 만난 아이들’ 등을 비롯해 서순삼·이해선·전몽각·강운구 등의 작품이 관람객을 맞는다. 전통문화에 대한 민족주의적 인식을 잘 보여주는 고건축물·유적·명소를 촬영한 작품들이 쏟아진 것도 이 시기다.

전시장 한쪽에는 기획전과 별개로 역사적 사진들이 나와 있어 관심을 가질 만하다. 수장고와 접해 마련된 전시공간에서는 황철의 1880년대 사진, 고종·흥선대원군 초상사진, 최초의 여성사진가로 알려진 이홍경의 작품 등이 선보이고 있다.

관람객은 이번 기획전을 통해 한국 사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은 물론 1920년대 이후 근현대의 다양한 장면들을 생생하게 접할 수있다. 사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송영숙 관장은 “한국 사진사 정립을 위한 소중한 기회라는 책임감으로 이번 전시에 지난 20년의 역량을 총동원했다”며 “전시 성과를 사진계, 문화계가 공유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시와 연계한 세미나도 마련돼 2월 11일에는 ‘미술관·박물관의 사진 컬렉션과 사진의 진본성’을 주제로 제2차 세미나가 열린다.

뮤지엄한미 삼청은 소장품(2만여점) 보존을 위해 국내 처음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저온·냉장 수장고도 갖췄다. 또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진은 물론 설치와 영상·사운드 전시도 수용가능하며, 관람객 편의시설도 마련했다. ‘비움의 구축’이란 건축철학으로 유명한 원로건축가 민현식 대표(기오헌 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미술관은 개관과 더불어 건축적으로도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시는 4월16일까지.

한국 최초이자 대표 사진전문 미술관인 한미사진미술관이 뮤지엄한미 삼청으로 거듭났다. 사진 왼쪽은 신축 개관한 뮤지엄한미 삼청전경(ⓒ김재경)이다. 오른쪽은 개관기념 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 일부 모습. 도재기기자
개관기념 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뮤지엄한미 삼청의 전시장 일부 모습. 도재기기자

경향신문 / 도재기 기자 jaekee@kyunghyang.com


내가 우리나라 사진가에서 최고로 치는 분이 육명심선생이다.

육명심 하면 떠오르는 건, ‘백민’과 ‘장승’시리즈다.
우리민족의 정체성이 담긴 사진들이기 때문이다.
그 뒤 '문인의 초상', ‘검은 모살뜸’, ‘티벳’등을 찍은 작품도 있으나,
처음의, 그 강한 느낌을 앞지를 수 없었다.

그런데 의외의 사진으로, 또 한 번 놀라게 한 것이다.
1966년와 70년 사이에 찍었던 “인상(印象)사진”이 바로 그 것이다.
‘영상사진’이란 이름으로 펴낸, 일련의 사진에서 또 다른 선구자적 기질을 보인 것이다.
당시는 리얼리즘사진과 살롱사진이 양분되어 있을 때라, 다들 거기에 메 달려 있을 때다.
선생은 그걸 극복하기 위해 세계사진사에 파고들어 대상을 다르게 보는 방법을 연구한 것이다.
동양적 세계관에 비롯한 조형적 사진미학을 찾은 것이다.

사실, 선생의 부친께서 스님이셨지만, 내가 볼 땐 선생도 중 팔자를 타고 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생의 몸에 베인 불교사상이 노장사상으로 이어졌을 게다.
그 사상의 중심이 바로 비움(空) 아니던가? 바로 ‘마음의 여백’에 기초해 작업한 것이다.
빈 공간과 배경 여백의 공간에 대한 관조적 태도는 동양적 감수성이 물씬 묻어나게 했다.
사진에 여러가지 표현형식이 있지만, 선생의 카메라아이는 독보적이었다.

선생께서 오는 11일부터 6개월에 걸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0여점이 전시된다고 했으나, 아직 어떤 사진들이 걸릴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선생의 전 사진세계가 골고루 조명될 것으로 생각된다.
개막식에 찾아뵙고 축하드리려 했으나, 아쉽게도 그 날은 중요한 약속이 겹쳤다.
‘작가와의 대화’가 있을 때나 찾아뵙고, 선생의 사진세계에 푹 빠지련다.


글 / 조문호

사진들은 육명심 ‘영상사진’ 작품집에서 옮겼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