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비오다햇볕나는 등, 날씨가 지랄 같았다.

달세 보증금 50만원을 다 까먹어 쫓겨난 친구가 얼마 전 쓰레기장 옆에 거처를 마련했는데,

비 때문에 이불이 젖게 되어, 응급조치로 천막을 치게 된 것이다.

그 것도 이사라고 집들이 한다며 막걸리 4병과 꽈배기 한 봉지를 사들고 갔다.



 

주인은 보이지 않고, 서울역 노숙거사 이덕영을 비롯하여 이경환, 김동진, 정용성 등

몇 사람이 딸막딸막한 술병을 놓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먼저 본 놈이 임자라고, 그들이 집들이 술을 다 빨아 버렸다.



이덕영을 알게 된지는 제법 오래 되었다.

2016년 가을에 처음 만나 찍은 사진이 바로 카메라는 칼이다사진집 표지에 실린 것이다.

일 년 전, 그에게 사진을 뽑아 주었으나, 노숙자 신세라 보관할 곳이 없었던 모양이다.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도 몰라, ! 그 사진 한 장 더 뽑아줘라고 다그치길래

사진 대신 책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동갑내기인 김동진씨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동사무소 복지과에 가서 이빨부터 하란다.

자기도 이빨이 없어 동사무소 도움으로 말짱해졌다며 자랑했지만, 난 구제 받을 급수가 아니다.

이빨이 없으니, 키스를 해도 걸리는 게 없어 좋더라고 했더니, 배꼽을 잡는다.

"지들이 게 맛을 알기나 하려나."


 

이덕영과 이경환은 천원 짜리 지폐한 장 놓고 가위 바위 보로 신경전을 벌였다.

결국, 그 돈으로 막걸리 사서 같이 마시겠지만, 술을 쏘는 갑이 되고 싶은 거다.



그런데, 결핵검진 받은 사람은 라면을 다섯개 추가로 준다는 벽보가 붙어 있었다.

얼마 전, 안 해도 될 결핵검사 받아 탄 라면을 원용희씨에게 준 일이 있었다.

그게 불법이라면 천 번이라도 법을 어기겠다는 글을 올린적도 있는데, 고맙기 그지없었다.


 

이경환이 이천원만 달라고 하도 졸라대어 돈 가지러 갔다 오며, 쪽방상담소에 라면 타러 갔더니,

여러명이 서예연습 하느라 한창이었다

 노숙자는 라면 끓일 불판도 없어, 청소하는 할매에게 받은 라면을 드렸다.



김용만는 고물하나 주워, 모터 빼내기 위해 드라이브로 나사구멍을 열심히 쑤셔댔다.

자기 일처럼 눈이 빠져라 지켜보는 홍홍임 아짐의 모습이 정겹더라.


 

돈 만진 김에 어버이날  성금 내러 동자동 사랑방에 들렸다가. 그 앞에서 노닥거리는 유한수, 강명국씨를 만났다.

행사는 며칠 남지않았는데, 뽑을 사진도 골라놓지 않고, 사진 주겠다는 생색만 내고 다닌다.

빌어 붙을 데라고는 마음 약한 정영신씨 뿐이니, 하해와 같은 선처를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이번 빨래줄 전시와 관련해 양해구할 일이 하나 있다.

몇일 전 혼자 이야기로, 주민들에게 돌려 줘야 할 빨래줄 사진 걱정을 했는데,

도와주겠다는 분들 전화나 댓글이 여럿 있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사연은, 결코 떠벌일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이 빨래줄 전시지 사진을 전해주기 위한 방법인데,

자칫 일이 부풀려지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로 오해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행사는 동네 주민들 잔치로, 오로지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



또 한가지 해명해야 할 것이 있다.

인사동 사람들블로그는 나의 사진 일기장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메주알 고주알 사적인 생각들을 올리는데, 이걸 페북에 연결하다보니,

때로는 오해를 빚거나 말썽을 일으킨 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

어떤 이는 사진작가란 양반이 무슨 사진을 그리 많이 올려?”

좋은 사진 한두 장만 올리라고 충고하는 이들도 많으나, 그건 내 뜻을 몰라 하는 소리다.



 

그 사진들은 나의 사진이 아니라, 찍힌 분들의 사진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보다, 찍힌 분들이 좋아하는 사진이 더 우선인 것이다.

그들의 취향을 일일이 알 수가 없어, 모든 사진을 올릴 뿐이다.

또한 내가 찍은 사진을 정리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빨래줄 사진도, 내가 좋아하는 사진보다 그들이 좋아 할 사진이나 영정사진을 뽑는다.


 

사진의 작품성 운운하는 웃기는 소리 제발하지마라.

내 사진은 예술이나 작품이길 단연 거부한다. 충실하게 기록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길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 순간순간을 기록할 뿐이니, 오해 없기 바란다.


 

그리고 어버이날 행사나 빨래줄 전시에 관심 있는 분은 그냥 편하게 오시면 된다

카네이션 한 송이라도 가져와, 자식 없는 불쌍한 어르신들에게 전해드려라.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고 싶은 분이라면 대환영이다.

 

57일 오전 열시부터 오후 두시까지 동자동 새꿈어린이공원에서 진행된다.

 

사진, / 조문호
























ㆍ사진상 부정 심사 등 권력놀음에 빠진 사진계 보란 듯…
ㆍ12인의 작가론 담은 책 출간

 

일본 최대 환락가인 신주쿠의 가부키초를 기록한 ‘가부키초’. 알렙 제공 ⓒ권철



이광수(부산외국어대 인도학부 교수)는 2015년 갤러리 브레송 관장 김남진에게 의뢰를 받는다. “사진을 한 지 30년 가까이 되는 50대 이상의 사진가로 장르를 불문하고, 아무런 연줄도 없이 홀로 고독하게 작업하지만 수준이 높은 사진가를 찾아내자”는 것이다. 김남진은 자신은 갤러리 공간을 내어줄 테니, 이광수에게는 작가론을 쓰라고 했다. 이광수는 2016년 1월부터 매달 200자 원고지 50장짜리 작가론을 써 ‘사진인을 찾아서’라는 제목을 달아 내보냈다. 그 결과물을 <카메라는 칼이다>(알렙)에 실었다.

‘사진인을 찾아서’라는 프로젝트는 2015년 제2회 최민식상 심사 부정 사건과도 이어진다. 이광수는 부정 심사 의혹을 앞장서 제기한 인물이다. 이광수는 “작품이라는 것을 만들어 출품하고, 그것을 심사하고, 상을 주고받고 하는 따위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임을 넘어 예술을 해치고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일이다. 그것은 다만 권력을 만드는 일일 뿐, 예술의 속성과 하등 관계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꼭 그것을 전쟁 치르듯 생산해 내야 하고, 평가받아야 하고, 라벨을 붙여야 하고, 등급을 매겨야 하는가”라고도 했다.

 

노숙자103-1_1’ 알렙 제공 ⓒ조문호

 

 

이광수가 보기에 한국 사진계는 “한 줌도 안되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남을 재단하고, 군림하고 나눠 주고 나눠 먹는 꼴”을 보이는 곳이다. ‘사진인을 찾아서’는 사진계에 대한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려는 취지였다. 라벨과 등급을 뛰어넘으려는 이 프로젝트는 “장르도 초월하고 경계도 허물고, 패거리도 없애고, 갑과 을의 관계도 없는 대동의 사진 세계에서 멋지게 놀고 있는 이 땅의 고수를 찾는 놀이”라고 이광수는 말한다.

이런 취지와 정의에 따라 뽑은 사진작가는 12명이다. 이광수는 기록성을 중시하는 작가로 권철·신동필·최영진·강정효를, 예술성을 중시하는 작가로 고정남·이수철을 꼽는다. 그 사이, 즉 기록하되 예술적 표현력을 상당히 고려하는 작가로 조문호·김보섭·문진우·이재갑·이영욱을 들었다.

 
 


권철은 프로젝트 취지에 걸맞은 작가다. 일본 도쿄 최대 환락가인 신주쿠의 가부키초를 18년 동안 기록한 <가부키초>로 명성을 얻은 그는 느닷없이 귀국한 뒤 제주에 정착했다. “세상을 겪고, 기록하고, 전시하고, 행위하는” 사진가다. 권철은 트럭으로 풀빵 장사를 한다. 거리가 전시장이다. 이호테우 해변과 해녀를 담은 ‘이호테우’전을 해녀 탈의장에서 열었다. 일본에서 촬영한 야스쿠니 사진들은 길거리 전시를 한 후 모두 불태웠다.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항거다. 이광수는 “그는 이제 있는 사건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있는 사건을 이미지화한 후 그것을 퍼포먼스를 통해 새로운 사건으로 만들어 가는 사진가”라고 말한다.

두메산골 사람, 노숙인, 성매매 종사자 등 여러 인물 사진을 찍은 조문호는 “오로지 사진과 대상과 소통하는 행위 자체에 만족”하는 작가이고, 그의 작업은 “사람에 대한 존중 차원에서의 실존적 행위”라고 평한다. 이수철은 “사실의 재현이든, 허구의 표현이든 예술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하여 전할 것인가”를 잣대로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다.

이광수는 ‘카메라는 칼이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칼은 조폭의 칼이기도, 조각가의 칼이기도 하다. 칼은 실재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이광수는 카메라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어떤 사진가는 세상을 바꾸고 싶은 꿈을 품기도 하고, 어떤 사진가는 예술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정진한다.”

한국 최초의 사진 작가론을 표방하는 책은 사진가가 자신의 칼을 어떤 예술 철학으로, 어떻게 쓰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경향신문 2018.3.5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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