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저녁, 오랫만에 옛 사우들을 충무로에서 만났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인사동에 있었던 흑백현상소 "꽃나라"에서 만난 친구들인데,
그 뒤 '진우회'란 이름의 사진모임을 만들어 함께 다니기도 했다.
모두 허물없이 지낸 사이였으나 세월이 흘러 각자 바쁜 삶을 살다보니 잘 만나지지 않아

이혜순씨가 나서서, 한 달에 한 번씩 소주 한 잔하는 시간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매번 연락 올 때마다 촬영 스케줄과 겹쳐 일 년에 한 두 번 밖에 나가지 못했다.
이번엔 태국에서 나온 고영준씨 때문에 모임을 좀 빨리 갖는다는 메시지를 받았는데,
다행히 전라도에서 사진 찍고 돌아 온 날이라 일정이 비어 있었다.
안 나온다고 투덜대는 벗들의 욕지거리에 귀가 간지러웠던 터라 만사를 제켜 놓고 나섰다.
약속장소에는 고영준, 정용선, 유성준, 하상일, 김종신, 이혜순, 정철균, 조규선, 선우인영,

목길순씨 등 열 한명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지글거리는 삼겹살에다 먹는 소주 맛은 반가움이 더해져서인지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이런 저런 지난 이야기들을 주고받던 중, 한 사우가 걱정스런 어투로 말문을 열었다.
"조형! 이젠 마누라 매니저 노릇 그만 하고 조형 사진 좀 찍어소"
얼마 전에도 가까운 친구들로 부터 충고 아닌 충고를 들은 적이 있어 대꾸하고 싶지 않았지만,

잘 못된 생각임을 여러사람들에게 인식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마누라 메니저 노릇이면 어때? 그래도 내가 사진 해 온 35년 동안, 이처럼 앞 뒤 안가리고

치열하게 사진을 해 본 적은 없었네. 마누라따라 다니는 게 아니라 내 사진 찍으러 다닌다"고 

어눌한 말투로 변명했다.

그랬더니 "장에 가서 같이 찍으면 그 사진이 그 사진 아니요."란 답이 나와 기가 막혔다.
사진가의 목적의식에 따라 대상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는 것을 정말 모르고 하는 말일까?
아내가 찍은 장터사진들에는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아 장터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이 담겨있고,
내가 찍은 사진들에는 부정적인 시선에 의해 암울한 그림자가 깔려 있다는 것을 말했지만 수긍치 않는 눈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듯, 올 해 중에 사진집으로 보여주겠다며 말을 끝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여 노래방에 가서 한 잔 더하자며 모두들 일어섰다.
이차는 강남에서 패션 스튜디오 하는 정용선씨가 쏜다기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
다들 개털들만 모였는데, 그가 유일하게 사진으로 돈 번 친구이기 때문이다.
황송스럽게도 도우미양까지 불러 주었는데, 늙은 놈 마른 가슴에 불을 지펴 마음 깊숙이 숨어있던 잡끼가 슬슬 발동하였다.

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여색에  허우적거리다, 결국 지갑 깊숙이 숨겨놓은 신사임당 한 장을

꺼내 주고 말았는데, 택시비가 없어 걱정이었다.
쪽 팔리는 일이지만, 쪽 팔리는 자체가 내 인생이라며 위안했다.

 

 

 

 

 

 

 

 

 

 

 

 

 

 


 

 


진우회는 인사동에 있었던 흑백현상소"꽃나라"에 드나들던 사진인들의 모임이었다.
82년 경 결성하였으나 회원들이 술을 너무 좋아해 진로회라고 부르기도 했다.
90년도 부터 대부분의 회원들이 '한국환경사진가회'를 결성, 활동 했으나 일보다
명예를 따르는 사진계의 정치꾼들 농간으로 2009년 경 단체를 아마추어사진인들에게
넘기고 말았다.
그 이후 꽃나라를 운영하던 신희순씨는 세상을 떠났고, 고영준씨도 태국으로 이주
하는 등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지난 22일 오후7시 망년회 핑게로 가까이 있는
몇 명이 충무로에서 만나 오랫만에 소주 잔을 기울였다.

-참석한 사우들-
유성준, 하상일, 조문호, 선우인영, 정영신, 정철균, 정동석, 윤봉수, 이혜순, 배창완,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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