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와 연계한 전국 탐방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정영신씨가 그 첫 취재지를 담양으로 정했다.

제20회 담양대나무축제가 시작되는 지난 2일 새벽 일찍 출발하였는데,

일기예보에도 없던 비가 내려, 모처럼의 담양 나들이를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정영신씨 혼자 떠날 생각을 한 모양이나 장터와 축제장만 가는 것이 아니라 소쇄원과 삼지천 마을 돌담길 등

명소까지 두루 다니려면 자동차 없이는 힘들 것 같아, 운전기사를 자청하여 따라 나선 것이다.

속담에 ‘남이 장에 가니 거름지고 따라간다.’는 말도 있지만, 난 거름은 커녕 늘 메고 다니던 카메라가방까지 잊고 간 것이다.





정영신씨의 보조카메라를 빌려 쓰기로 하고 갔는데, 담양이 가까워오니 비도 서서히 그쳤다.

담양 관방천 뚝방 위로 늘어 선 장터부터 돌아보았다.

푸른 녹음을 배경으로 들어 선 난장도 좋았지만, 장꾼들의 구수한 사투리에 옛 장터의 향수가 스물스물 묻어났다.

대나무 고장답게 곳곳에 죽순을 팔고 있었다.






장터가 마트와 다른 점은 카드로 찍찍 긋는 것이 아니라 현찰이 오 가는 맛에 있다.

물건 팔아 돈 받아 챙기는 장사꾼의 얼굴엔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첫 마수라고 침을 뱉거나 머리에 대는 풍정도 머지않아 하나의 전설이 될 것이다.





담양하면 새벽에 서는 죽물시장부터 떠오른다.

30여 년 전 죽물시장 촬영하러 두 차례 간 적이 있는데, 갈 때마다 눈이 내린 것도 특이한 경험이었다.

눈 내리는 담양죽물시장의 서정적인 풍경은 이제 사진에서 밖에 볼 수 없게 되었다.

중국산에 밀려 난 죽물이라 요즘은 장터에도 없었다.

간신히 볼 수 있었던 것은 담양대나무축제에서 마련한 ‘추억의 죽물시장 체험’이란 부스뿐이었다.






올해로 20회나 되는 담양대나무축제장으로 발길을 옮겼는데, 유명세를 떨치는 축제지만 사람은 별로 없었다.

볼거리도 축제마다 대개 비슷비슷한데, 이젠 지역축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다.

지방마다 별의 별 축제로 넘쳐나는데, 축제에 소요되는 예산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대나무 숲인 '죽녹원'과 영산강 상류의 '관방천'을 무대로 열리는 담양대나무축제는

'대숲 향기 천년을 품다'라는 선비정신을 주테마로 진행되고 있었다.

행사장 입구에는 웅장한 대나무로 만든 조형물이 하나 있었는데, 어울리지도 않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더라.

차라리 담양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큰 대나무 광주리나 하나 만들어 놓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담양에 왔으니 대통나무 밥으로 아침 겸 점심식사를 했는데, 밥보다 죽순무침이 더 맛있었다.





울창한 죽림으로 이어진 녹죽원을 산책하는 맛도 일품이었다

난, 다리가 아파 정영신씨 혼자 돌게 하고 대나무로 만든 흔들침대에 한 20분 정도 누워 있었는데,

청량한 대나무 숲 공기에 답답한 가슴이 뚫리는 듯 시원했다.


그 곳에 ‘이이남 아트센터’가 자리잡아, 담양 작가 이이남의 작품세계를 볼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오후에는 '가사문학관'을 비롯하여 조선중기 민간정원의 원형을 간직한 ‘소쇄원’도 돌아 보았고,

고풍스러운 삼지천 마을 돌담길도 거닐었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정영신씨 덕에 담양 구경 한 번 잘했다.

사진, 글 / 조문호




















































SBS 공진구 기자


두 명의 고흐가 마주보고 있다. 그런데 이 쌍둥이 고흐가 숨을 쉬며 움직인다. 게다가 둘 사이에는 스카프가 걸려 있는데, 고흐의 후 하고 내 쉬는 입바람에 날려 올라가기 까지 한다. 그림 속의 고흐 자화상은 움직이고, 그림 밖의 스카프는 그 고흐의 입김에 움직이는 장면! 여태껏 어디에서 들었던 고흐 얘기보다도 더 흥미를 돋운다. 공진구 시각예술 자전시장 한 쪽에는 세기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의 포스터가 있다. 마릴린 앞에는 바람개비가 놓여 있다. 작품 설명에는 관객에게 후 하고 바람을 불어보라고 써있다. 시키는대로 하자 입김에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그 바람개비가 일으킨 바람은 사진 속 마릴린 먼로의 치마를 올라가게 했다.


 

 


이 장면은! 그렇다. 마릴린 먼로의 그 유명한 영화 ‘7년만의 외출’에서 나온 바로 그 장면이다. 지하철 환풍구 위에 서서 바람에 들려 올라가는 치마를 붙잡는 그 섹시한 장면이 전시장으로 옮겨와 내가 불어낸 입 바람에 다시 한번 재연되었다.

고흐와 마릴린이 전시된 이 곳은 딱딱한 곳이 아니다. ‘미술은 어려워’라고 외치는 사람도 맘놓고 놀러 올 수 있는 컨셉인 것 같다.(물론 공짜는 아니다)

명화들도 패러디로 표현되어 있어 저작권 걱정 없이 사진 찍으며 노는 공간이다.



영상토크_500(다른 사람들의 초상권은 조심하자) 그 안에 고흐 아저씨도, 마릴린 누나도 동참하고 있다. 홍보 담당자에게 작가가 누구인지 물어 봤더니 특정할 수 는 없다는 답이 왔다. 직원들이 전시장을 꾸밀 때 아이디어를 모아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기왕 고흐의 입바람을 목격하고 마릴린의 치마를 들어 올렸으니 움직이는 그림 얘기를 더 해보자. 움직이는 그림 하면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명화에 디지털 작업을 가하는 방식으로 살아 움직이는 작품을 만드는 이이남 작가다. 그의 작품 중에 고흐의 해바라기와 자화상이 있어서 먼저 떠올랐다.

고흐를 살아 숨쉬는 인물로 재탄생 시킨 첫번째 작가일 것이다. 먼저 본 고흐의 입바람은 이이남의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 그림 밖의 스카프를 더해 차별을 꾀한 정도랄까. 뭐 자신의 독창적인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일반인들에게 흥미를 더하는 목적으로 설치된 작품이라고 하니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이남의 작품은 애플 아이튠즈 스토어에도 등록되어 있다. 애플 스마트 디바이스 배경화면으로 쓰기 좋은 움직이는 풍경들이다.

영상토크_500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다운 받아 보시기 바란다.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화랑에 전시하고, 관람하고, 구매해서 집에 걸어 놓는 과정이 현대식으로 간단히 구현 되었다.

온라인 스토어에서 작품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 작품을 화면 안에서 움직이게 하려면 디지털 작업이 필수인데 덕분에 이런 판매 방식으로 쉽게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물론 실제 커다란 설치작품은 비싸게 팔린다.

고흐의 입 바람이 스카프를 움직인다는 생각은 어디서 온 걸까? 미술 작품의 ‘안’과 ‘밖’이라는 구분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면 그 답이 나온다. 일단 고흐의 그림이 움직이는 것은 디지털 작업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림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한 광경은 디지털 작업만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영상토크_500그림이라는 이차원 공간을 ‘나’와 별개로 생각하는 습관 때문이다. ‘그림의 떡’이란 표현도 그래서 생겼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조각 작품 같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작품 안과 밖의 경계가 정해져 있지 않다. 작품이 어느 공간에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심지어 관람하고 있는 사람도 작품의 일부가 되기 일쑤. 유영호 작가의 ‘그리팅 맨’은 인사하는 사람의 모습을 조각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과 마주 인사하는 관람객들의 행동은 작품과 현실의 경계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림 이라고 다르지 않다. 예를 들면 눈속임을 유발할 만큼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그림이 현실과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일반인들에게 트릭아트 또는 트롱프뢰유 미술(Trompo-l’oeil는 어원이 프랑스어 인데, 실제의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된 그림을 가리킨다. 일명 속임수 그림)로 알려진 그림들이 그런 기법을 활용했다. 사람들은 착시효과로 현실과 구분이 모호한 그림들을 오래 전부터 감상해 왔다.영상토크_500에드가 뮐러의 그림은 착시효과를 제대로 활용한 작품이 사람들을 얼마나 즐겁게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관람객들은 작품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그의 작품을 즐긴다. 에드가 뮐러는 입체적이고 거대한 규모로 공공장소에 이런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실과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또 하나의 전략은 움직이는 것이다. 아이들이 인형극을 좋아하는 이유는 인형들이 움직이며 살아있는 것 같이 말을 걸고 연기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움직이는 인형이 진짜 살아있는 것처럼 몰입한다. 만화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애니메이션 안에서 움직이는 캐릭터는 생명을 부여 받는다. 게임의 장면은 현실에 없는 모습이지만 움직이고 반응하게 때문에 빠져든다. 마치 그 안에 또 다른 세계가 만들어지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림도 마찬가지.

움직이는 것을 살아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림을 움직이게 하면 실재감이 생긴다. 뤼미에르 형제가 1895년 만든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은 단순히 기차가 달려오는 영상이다. 이 장면을 처음 극장에서 상영했을 때 사람들은 열차가 화면에서 튀어나올 것 같아 달아나기도 했다. 움직이는 그림, 영상의 힘이 처음 사람들에게 선보인 역사적인 순간일 것이다.

움직이고, 현실에 개입하고, 현실 속 자극에 반응하는 ‘똑똑한’ 그림은 우리에게 재미있는 착각을 준다. 앞에서 본 눈속임 미술과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림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디지털 작업을 거쳤을 뿐이다. 현실을 확장시키는 방법이 조금 다를 뿐이다. 시각적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실제의 공간과 시간을 모방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현실 안에 새로운 즐거운 현실을 창조하기 위해 실재감을 더했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최대한 실제처럼 느끼게 하려고 아주 세밀하거나(입체적으로) 움직이는(!) 전략을 취했다.

움직이는 그림, 그러니까 영상이 미술작품이 되리라고 옛날 사람들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영상은 새로운 기술에 속한 것이고, 고정된 그림은 과거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작가들은 모니터를 캔버스 삼아 작업하는 일을 전혀 어색해 하지 않는다. 크고 작은 모니터가 여러가지 설치물들과 결합되거나 독립적으로 꾸며진 작품들은 이미 미술관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 단골이다. 작가의 이야기를 담기 위한 재료가 물감으로 한정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기 위해 움직이는 그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술작품이 된 영상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백남준은 정말 위대한 예술가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영상과 그림, 평면과 입체 조각 같은 구분을 무너뜨린 장본인이다. 눈속임이라는 미술의 한 속성부터 미디어 아트라는 현대미술의 장르까지 ‘경계 무너뜨리기’ 가 바탕에 깔려있다. 화면으로 담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미디어가 작품의 소재가 된 것은 백남준 같은 예술가의 공이 아닐까. (백남준 선생님은 진정 ‘짱’인듯)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울고 웃고 즐거워하는 몰입감도 영상의 효과다. 화면 안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배우들은 살아있는 것 같다. 오히려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법한 신데렐라 스토리에 빠져들기도 한다. 재미있는 건 TV 시청자들이 때로는 강하게 영향력을 행사해 프로그램 내용을 바꾸기도 한다는 점이다. 화면 밖으로 또 화면 안으로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것이다. 현대 미술을 설명하는 어려운 철학에 거부감이 들면 이런 방법도 있다. 드라마를 보듯 작품을 편하게 보는 것이다. 드라마 주인공 들과 시청자가 같이 호흡하는 듯한 몰입, 그리고 미술 작품이 경계를 무너뜨려가며 관람객에게 다가가는 것, 두 가지 상황 모두 작동원리는 비슷하다. 그림 속의 인물, 영화 속의 인물이 그 밖으로 뛰쳐나와 현실 속의 ‘나’와 노는 만화 같은 상상이 바로 경계를 넘나드는 현대미술 작품이다. ‘그림의 떡’이 움직이면서 ‘만화 같은’ 상상으로 바뀐 것이다.

영상토크_500만화 같은 상상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혹시 디즈니 영화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를 기억하시는지. 이 영화에서는 만화 속 주인공들이 현실 속의 영화 배우와 같이 연기한다. 만화 같은 상상을 바로 보여준다.

영화 ‘아바타 Avatar’도 마찬가지다. 현실과 그림의 경계를 넘어서는 장면을 ‘화면’안에서 보여준다.
영화 ‘아바타’가 3D영화로 제작된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상 밖으로 튀어 나온 아바타의 ‘그림’이 확장되는 효과를 극대화 시켰다. 사실 미디어아트를 포함한 현대 미술과, 아바타 같은 영화의 상상력은 다르지 않다. 모든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 다 가능해진 것은 미술이나 영화나 마찬가지이다. 스크린과 화폭 안의 그림은 ‘움직이면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즐거운 착각을 선사한다.

영상토크_500영화와 미술이 같은 원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예술가들도 잘 알고 있다. 영상작업을 하는 미술작가들도 굉장히 많다. 아예 영화를 찍어 미술관 전시장에 틀어놓기도 한다. 문경원 전준호 작가가 만든 “세상의 저편”이라는 영화도 미술관에서 상영될 수 있도록 ‘설치’된 작품이다. 미술관에서는 영화를 틀었다고 하기 보다는 영상예술 작품을 설치했다라고 쓰지만 결국 같은 말을 고상하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전시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고흐’와 ‘마릴린’
멀리 멀리 돌아 왔지만, 얘기의 시작점으로 돌아가자. 이 작품들은 살아있는 고흐와 마릴린을 창조하기 위해 움직이는 그림을 이용했다. 그리고 ‘후’하고 내뱉는 숨소리를 스피커를 통해 내보낸다. 거기에 바람이 나오는 장치를 달았다. 디지털 영상으로 구현된 고흐의 입 바람에 이런 장치들이 생명력을 더했다. 그림 밖의 스카프는 그 생명력의 증거다. 움직이는 그림은 살아있다고 강하게 아우성치는 것 같다. ‘마릴린’은 관람객의 입 바람을 통해서 다시 살아난다. 내가 불어준 입김이 바람개비를 움직이고 마릴린의 치마를 들어올리고 그녀의 표정을 되살린다. ‘그림의 떡’이 먹을 수 있는 떡으로 바뀌었다. 2D영화가 3D영화로 진화하고 거기에 더해서 4D영화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기존의 평면 영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즐길 ‘거리’가 늘어났다.

그림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외부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완성되어 가는 작품을 하나 더 소개하고 마칠까 한다. 그림이 그림 안에 갇혀 있지 않으려는 또 다른 시도이다. 방현우 허윤실 작가가 만든 크로우드로우(2012)라는 작품을 보자. 커다란 캔버스가 있고 그 앞에는 페인트 건과 카메라가 놓여있다. 뭔가 했더니 스마트 폰에서 앱을 다운받으면 이 페인트건을 쏠 수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상의 세계에서 함께 점을 찍어 그림을 완성시킨다. 전시장에서는 이 작품을 뉴미디어 아트라고 포장했다. 구경이나 사진 찍기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제작에 직접 참여하는데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없어진 형태이다. 보통 상호작용이라는 표현을 넣어 인터렉티브 아트라고 부르는 미술이다.

재미로 지나칠 수도 있지만 ‘경계 무너뜨리기’라는 키워드 속에 이런 저런 얘기가 숨어있다. 말하자면 미술 작품이 안과 밖이라는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어떤 시도들을 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 이다. 그림을 움직이게 하고, 그림 밖을 변화시키고, 삶의 일부분이 되어 우리를 즐겁게 하는 예술!
예술가들의 ‘꽤 괜찮은’ 시도들은 확산되고 수용되고 우리 주변에 자리잡는다. 등장했을 무렵엔 엄청난 파격이었던 추상 미술도 이제는 인테리어 디자인 패턴으로 바뀌어 집안 곳곳에 있다. 경계를 무너뜨려서 영역을 확장시키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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