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spicious Snow

엄효용/ UMHYOYONG / 嚴孝鎔 / photography

2023_0907 2023_0924 / ,화요일 휴관

 

엄효용_20160301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초대일시 / 2023_0907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화요일 휴관

 

고공갤러리

서울 종로구 삼청로 82 3

Tel. +0507.1358.3076

 

상서로운 눈과 그 눈에 덮인 세상 엄효용은 수직에 가까운 방향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내려오는 눈을 찍었다. 사진 속에서 눈이 내려오고 있다. 아니, 작품을 벽에 세워 걸었으니 눈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까마득한 어둠으로부터 솟아 나온 빛의 입자들처럼 명멸하며 다가오는 눈송이들. 스스로 빛을 발하는 듯한 눈송이들은 캄캄한 삶에도 간혹 찾아오는 기쁨의 순간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둠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내어 보는 반짝이는 용기 같기도 하다. 때로 화면을 가득 메운 함박눈의 형상은 모든 애틋한 것들을 향한 그리움의 함성이다. 많은 이야기를 걸어오다가도 문득 고요하게 잦아드는 눈 이미지들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아름다움으로 조용하게 소란스럽다.

 

엄효용_20171124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엄효용_20171218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엄효용_20210107#1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엄효용_20210107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엄효용_20210302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엄효용이 밤하늘을 배경으로 기록한 눈송이들의 궤적은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나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연상시킨다. 불규칙적이고 무계획적이며 우연적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하얀 궤적들은 바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작가는 조리개가 열려 있는 동안 스트로브strobe를 여러 번 터트려 눈송이의 움직임을 잡아냈다. 엄효용은 현대 기술을 활용해 사진에 대한 통제권을 지닌 채 여러 장의 사진을 중첩시키던 기존의 방식을 탈피하여, 사진기가 지닌 기본 기능만으로 피사체를 받아들이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회귀했다. 작가의 이런 행보는 본디 사진이 갖고 있던 고전적인 장점들을 작품 속에 되살려냈다. 대상을 선택하고 연속하는 시간에서 한 순간을 포착하여 화면 위에 붙들어 매는 사진은, 역설적이게도 사진 안에 포착되지 못한 사진 밖의 수많은 대상들과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사진 안에 고정된 한 순간 앞뒤로 늘어서 있는 고정되지 않는 마음들, 사람들, 사건들에 대한 그리움과 낭만을 배가시킨다. 찰나에 머물러 있는 이미지는 내용상으로 제약 받을 수록 의미적으로는 더욱 확장된다. 관람자들은 상상 속에서 사진의 물리적 테두리를 벗어나 끝없이 이어지는, 눈 내리는 밤의 시공간 안에 자신만의 기억과 이야기를 무한히 대입할 수 있다. 작가가 전통적인 사진술로 회귀하며 사진 속에 되살려 낸 것은 의미의 역설적 확장만이 아니다. 작가가 통제권을 사진에 양도함으로써 작품 안에 증대된 우연성은 그의 사진을 전보다 자연스럽고 창발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사진기는 태생적으로 받아들이고 기록한다. 사진기가 피사체를 수용하기에 앞서, 대상을 선별하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을 결정하는 작가의 선택이 있지만, 그것은 허락된 상황 안에서 이루어지는 수동적 선택이다. 사진은 작가가 수세적일 수록, 사진에 대한 작가의 권력이 약해질 수록 그 힘이 강해진다.

 

엄효용_삼방로 느티나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60×105cm_2018
엄효용_소양로버즘나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45×60cm_2018
엄효용_원미산 독일가문비나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20

엄효용의 개인전 Auspicious Snow는 한밤에 눈 내리는 소리와 겨울 숲의 정적으로 가득하다. 이번 전시는 눈을 주제로 한 신작들과 기존 작업 중에서 겨울나무 이미지들만 모아서 엮었다. 밤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눈밭 위에 서 있거나 눈으로 덮인 겨울나무들을 한 자리에서 보고 있으면, 밤 사이 내린 눈이 그렇게 나무들과 만난 듯하다. 작가의 겨울나무들은 기존 작업 중에서도 그 숨결이 유독 부드럽고 정적이다. 스스로 부차적인 것들을 다 털어 버리고 본질만을 남긴 나무의 메마른 형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무너진 마음을 바로 세우게 하는 힘이 있다. 혹한 속에 홀로 서서 의연히 살아가는 겨울나무의 이미지는 뜻밖에도 관람자들의 마음에 추위가 아니라 따듯함을 건내준다. 겨울나무 이미지의 이러한 맥락은 신작 눈 연작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힘과 맞닿아 있다. 거대한 어둠을 이기는 눈송이들의 여린 목소리와 겨울나무의 낮고 평화로운 숨소리는 작품 앞에 선 이들의 와해된 마음을 넉넉히 일으켜 줄 수 있을 것이다. 훈기를 지닌 엄효용의 겨울 사진들은 외로움과 결핍이 아니라 삶의 소박한 기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황현승

 

엄효용_장성천길 소나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90×120cm_2023
엄효용_종합 휴양지로 메타세쿼이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18
엄효용_휴양지로 메타세쿼이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20
겨울이 오면눈이 내리길 기다린다.겨울 하늘에 어둠이 내리고눈, 바람, 빛이 만나면한 편의 교향곡에 맞추어눈의 춤사위가 펼쳐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중력을 가지는 모든 것은신비함을 품고 있으며그것을 숭배하는 마음으로오늘 하루를 채워간다. 엄효용

 

 

BLUR

 

엄효용展 / UMHYOYONG / 嚴孝鎔 / photography 

2022_0330 ▶ 2022_0419 / 월요일 휴관

 

엄효용_coin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1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아트비프로젝트

art B project

서울 종로구 삼청로 82 3층

Tel. +82.0507.1358.3076

www.artbproject.com

 

엄효용 작가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쏟아지는 비도 보슬비가 되고 존재감 없는 나무도 어느새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의 렌즈안에서는 어떠한 대상도 느리게 관찰된다. 작가가 관찰한 대상의 순간들은 우리로 하여금 시간을 느끼게 하고, 흐릿했던 대상들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시간을 느리게 쓰는 작가의 세상은 우리에게 어떤 새로움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엄효용_grapefruit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80×60cm_2010
엄효용_inside and outside #1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00×75cm_2011
엄효용_inside and outside #4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00×75cm_2011

이번 전시는 시간을 천천히 쓰는 작가 엄효용이 보는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관람객들은 엄효용의 눈을 통해 일상의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고 일상에 묻혀서 안보이는 것들을 찾게 되거나 평범한 순간들이 다르게 보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진 전시이다.

 

엄효용_무심서로 벚나무 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48×36cm_2020
엄효용_문지리 535 아레카 야자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45×60cm_2022
엄효용_벽초지 수목원 스카이 로켓 향나무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45×60cm_2022
엄효용_봉강가술로 메타세쿼이어 가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48×36cm_2020

나는 엄효용작가의 개인전 BLUR를 통해 작가의 관찰 방식을 관람객들에게 전달하고자 전시 제목부터 전시가이드를 제시하였다. 작가의 프레임 안에 일상은 반복적인 관찰을 통해 나온 중첩된 이미지이다. 그리하여 중첩은 시간을 표현하고 반복적인 이미지들은 시간을 포함한 하나의 대상이 되었다. 관람객들의 반복된 일상의 흐릿함을 엄효용 작가의 사진에서 또렷한 일상으로 찾을 수 있다.

 

엄효용_양재대로 은행나무 여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20
엄효용_여주 프리미엄 아울렛 에메랄드 그린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45×60cm_2022
엄효용_잠원고수부지 느릅나무 여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18
엄효용_포레스트 아웃팅스 아레카 야자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45×60cm_2022

관람객은 작가의 중첩된 이미지를 통해 시간을 느끼고 흐릿한 이미지가 우리의 시선을 머물게 하여 더 자세히 보게 하는 작가의 의도를 통해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천천히 감상해보자. 우리의 흐릿함을 작가의 또렷한 관찰로, 작가의 흐릿함을 우리의 또렷한 관찰로 작가와 소통하기를 바란다. ■ 강설아

 

 

Vol.20220330e | 엄효용展 / UMHYOYONG / 嚴孝鎔 / photography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엄효용展 / UMHYOYONG / 嚴孝鎔 / photography

2020_0520 ▶︎ 2020_0602

 

엄효용_양재대로 은행나무 여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2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90711c | 엄효용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희수갤러리

HEESU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11-3 2,3층

Tel. +82.(0)2.737.8868

www.heesugallery.co.kr

 

 

성숙한 시선 ● 작가 엄효용의 사진은 수채화 같은 회화적 질감으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금새 사로잡는다. 아름다운 화면에 대한 경탄은 쉽게 기법에 대한 관심으로 흐르고, 그의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감상은 주로 사진의 표면이나 기술적인 측면을 맴돌았다. 그동안 그의 사진은 그 외면에 비해 내면이 주목 받지 못했다. 사실 작품이란 표면보다는 이면의 철학을, 철학보다는 작가의 마음을 들여다 볼 때 더 잘 이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엄효용_올림픽공원 상수리나무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48×36cm_2020

 

엄효용_여의천 벚나무 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20

 

지난날 작가는 인공의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그는 늘 진실에 대해 목말랐다. 그는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위치시키고 세계의 실체를 이성적으로 파악하고 싶어 했다. 세계의 실체를 파악하고 싶었으나 세계는 너무 넓었다. 그는 이해 가능한 세계의 일부를 파헤쳐 들어갔고, 부분적인 세계를 통해 세계의 전체를 더듬어 보려 애썼다. 그는 기하학적이고 균일한 수치가 존재하는 사물을 분석해서 안과 밖, 앞과 뒤, 겉과 속으로 구분 지었다. 그렇게 해체시킨 사물의 면면을 이미지로 포착하고 각각의 이미지에서 발생한 상반되는 개념들을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데페이즈망dépaysement 기법을 사용했다. 다시 한데 모아 중첩시킨 이미지들 위로 사물의 진실한 얼굴이 떠오르길 기대하면서. 그러나 부분적이고 모순되는 진실을 켜켜이 쌓는다고 해서 세계의 실체가 더 분명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부분적인 진실을 중첩시킬수록 세계의 실체는 더욱 모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작가는 머리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춘다. 아마도 그는 칼 야스퍼스Karl Jaspers가 한계 상황이라 부른 지점에 부딪혔을 것이다. 그리고 한 점으로 수렴되는 협소한 사물에서 광활한 자연으로 눈을 돌린다.

엄효용_위례성길 은행나무 가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20

 

엄효용_원미산 독일가문비나무 겨울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20

 

언젠가부터 그는 모순되는 개념들을 한자리에 모으려 하지 않는다. 근자에 작가는 동일한 개념을 지닌 동질의 이미지들을 담백하게 여러 번 겹쳐 올린다. 과거엔 상반되는 개념들을 한자리에서 대립시키기 위해 이미지들을 겹쳤다면 최근엔 시간 안에 분열된 대상을 한자리에서 화해시키기 위해 이미지들을 겹친다. 여전히 이미지들을 중첩시킨다는 점에서 그의 사진은 예전이나 요즘이나 같은 맥락 안에 있는 듯하지만 기법에 내재된 의미가 확연히 변했다. 이것은 그의 삶이 변화했다는 증거다. 이제 그는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자신이 단지 세계의 일부이며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는 자신이 긴밀하게 관계하고 있는 이 세계를 소중히 여기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을 아껴 주고 싶어 한다. 우리가 그의 사진 표면에서 느끼는 포근함은 바로 작가의 마음으로부터 번져 오는 것이다. 비로소 그는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면서 편안히 존재하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 언제나 새로운 얼굴을 하고 나타나는 자연을 불가해한 신비로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에게 더 이상 분석의 대상이 아닌 세계는 모호한 가운데 있는 그대로 분명하다.

 

엄효용_대나무 숲 여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48×36cm_2020

 

엄효용_휴양지로 메타세쿼이어 겨울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20

 

오늘날 그는 자연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는 나무 아래 서서 물결무늬로 일렁이는 햇살과 그림자의 춤사위에 시선을 던지며 조용히 바람의 말을 들을 줄 안다. 그는 마른 풀들이 서로 몸을 부비는 소리를 듣고 키 작은 들꽃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 자주 지나는 길을 따라 늘어선 가로수들이 그의 눈에는 비범해 보인다. 그도 때론 놀랍고 눈부신 풍경 앞에 서기 위해 멀리 떠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일상에 머물며 그 평범함을 가치 있게 여긴다. 그는 세계의 실체를 끝내 알 수 없을 것이다. 계속해서 손을 뻗어 진실을 추구할 수 있을 뿐 마지막까지 진실을 손으로 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그는 깨달음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사랑으로 세계를 짐작하고 있다. 사랑으로 만나는 매일의 세계를 그는 기적이라고 말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며 그는 지금 여기서 행복하다. ■ 황현승

 

엄효용_우면산 메타세쿼이어 가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36×48cm_2020

 

엄효용_축령산 편백나무 여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90×120cm_2020

 

엄효용_하례학림로 귤나무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90×120cm_2020

 

조용히 머무르며 한줄기의 미풍, 햇살이 부딪히는 찬란함, 마른갈대의 울부짖음, 새의 살랑거리는 소리, 무성한풀 사이에 흩뿌리듯 펼쳐진 작은 꽃... 작은 것들이 최고의 행복을 이루고 있다.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어떤 일이 진행 중인지를 살피는 것, 관찰을 통해 평범한 일상이 어느 순간 기적으로 다가옵니다. ■ 엄효용

 

 

Vol.20200520g | 엄효용展 / UMHYOYONG / 嚴孝鎔 / photography

리틀 포레스트 2

엄효용展 / UMHYOYONG / 嚴孝鎔 / photography
2019_0711 ▶︎ 2019_0723 / 일요일 휴관


엄효용_광나루 한강공원 미류나무 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1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90102a | 엄효용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9_0711_목요일_05:3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요일_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반도 카메라 갤러리

BANDO CAMERA Gallery

서울 중구 삼일대로4길 16 반도빌딩 2층

Tel. +82.(0)2.2263.0405

www.bandocamera.co.kr



중첩된 이미지 숲을 탐문하는 이유 ● 한 사람의 몸에는 몇 개의 자아가 존재할까? 공적인, 개인적인, 사적인 혹은 규정할 수 없는 또 다른 것일 수 있다. 여러 개의 자아는 중첩과 분할을 거듭하면서 마치 칼집의 칼을 꺼내들 듯 상황에 대처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 대해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모호함으로 궁색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상대는 둔갑술로 우리들을 속이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하나로만 설명이 안되는, 팍팍한 삶의 조건과 대처법이 몇 개의 자신으로 내밀어 보여줄 뿐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하나가 아닌 것에 하나로만 인식하려는 타자의 안이한 욕망과 편리함이 다양한 정체성, 자아를 구속하는 게 아닐까. ●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대전제는 동서고금의 화두다. 진짜를 밝히려는 인간의 부단함은 지칠 줄 모른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대신할 때 우리는 '실존(實存)'이라 말하기도 한다. 본질, 진짜, 실존을 정의하고자 하는 이 지속성은 결국 사진가 엄효용 에게까지 이르렀다. 무던히 차창 밖으로 흐르는 나무의 형상이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 들이 닥 친 것이다. 작은 화분을 모으는 취미 생활에 그치지 못한 그는,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나무의 이면적 이미지네이션을 규명하게 된 것이다.


엄효용_노을해안로 가이즈향나무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80×142cm_2016

엄효용_담순로 메타세쿼이어 가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80×142cm_2016

엄효용_소월로 은행나무 여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14

엄효용_잠실 한강공원 이팝나무 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19

엄효용_잠원고수부지느릅나무 가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15


그의 사진은 의도했건 안 했건, 분명히 나무 그 이상의 나무 혹은 숲을 이뤘다. 100장에서부터 200장에 이르는 사진을 한 프레임에 중첩함으로써 나무의 생물학적 속성을 넘어 고도의 회화성으로 치환 시켰다. 도로 가장자리에서 단상으로 존재하던 나무는 너무 평범하고 익숙한 모습이어서 우리의 관심에서 쉬 멀어질 수밖에 없을 텐데 수십, 수백 그루를 한 그루에 묶어두니 '저건 뭐지'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 작가는 이 사진들을 작업하면서 논리적 의도보다는 정교한 촬영과 후속 컴퓨터 작업을 통해 자신의 작은 숲(리틀 포레스트)을 만들고자 했다. 그 숲은 도시를 중심축으로 자신만의 정원을만드는 과정이었다. 집 안의 작은 화분으로는 감정이입이 어려웠을 것이다. 진짜 숲보다 더 완고한 숲의 정원을 마음에 심고자 했다. 어쩌면 사진가로서 표현의 갈증을 넘어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고자 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예술이 자신을 깨우치는 결과물의 흔적인 것처럼, 다중의 자아가 아닌 궁극의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의 안내판처럼 엄효용의 사진은 단단하게 서 있다.


엄효용_조정경기장 은행나무 가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40×30cm_2015

엄효용_종합휴양지로 메타세쿼이어 여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60×45cm_2015


현재 그를 찾아 온 도시의 숲 이미지는 불안한 실존의 종착지가 될 수 없다. 예술은 문제점 을 제시할 수는 있어도 영혼을 치유하지는 못한다. 사진가로 살아가는 엄효용에게 오늘의 사진은 완성한 자아도 실존도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만약 그렇다면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계속될 것이고 여러 개의 자아처럼 그만큼의 숲을 만드는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 언젠가 그의 손에서 카메라가 사라지고 자신의 눈과 마음이 하나 되어 그리는 숲이야말로 진정 그가 이루려는 숲이다. 그 숲에 가기 전에 그가 가꾼 형형색색의 숲을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 육상수


엄효용_죽향대로 메타세쿼이어가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60×45cm_2015

엄효용_허만석로 벚나무 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60×45cm_2018


여러해 전 강남역 근처를 지나갈 때 부서지는 햇살 아래 찬란한 하얀 꽃을 품은 가로수들... 그 아름다움도 잠시... ● 나의 뒤통수는 무엇인가에 맞은 충격으로 묵직했다. 왜 그 동안 보지 못했을까? 그 동안 내가 이 길로 다니지 않은 걸까? 이 가로수들은 올해 심어진 걸까? 이렇게 크고 많은 나무들을 보지 못한 걸까? ● 그렇다. 생산적인 행동만이 내 지각의 중심부에 있었고 하얀 꽃이 피어나면 쌀밥을 담아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이팝나무는 배경으로 흘려보냈기에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 이전에도 여여하게 우리 곁에 존재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보려하지 않았을 뿐이다. ●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하는 자연... 나무, 하늘, 공기... 등을 내 지각의 중심부에 가져올 때 삶의 황홀경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 무한반복 되는 평범한 일상에조금 더 민감하게 깨어있을 수 있다면 ● 햇살아래 부서지는 찬란한 꽃을발견할 것이다. ■ 엄효용



Vol.20190711c | 엄효용展 / UMHYOYONG / 嚴孝鎔 / photography


리틀 포레스트
엄효용展 / UMHYOYONG / 嚴孝鎔 / photography
2019_0102 ▶︎ 2019_0115


엄효용_미호천길 벚나무 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80×142cm_201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0628d | 엄효용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9_0102_수요일_05:3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희수갤러리

HEESU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11-3 2,3층

Tel. +82.(0)2.737.8868

www.heesugallery.co.kr



각막을 간질거리는 시간의 자유유영 이미지 ● 낯설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본다는 실존적 감각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현전(現前)하는 실체보다 스마트폰이나 차량의 GPS처럼 외부기기에 의존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기억 또한 마찬가지다. 습관적 제스처 같은 무의지적 기억과는 별개로 시각적 이미지에 기반한 의지적 기억은 더 이상 신체가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셀피(selfie)나 제도화된 디지털아카이브 같은 탈-신체화된 정보 내러티브의 전자 신호적 신경망 속에 위치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포스트휴먼의 조건 속에서 무엇인가를 보고 기억한다. 점차 비물질적인 정보의 패턴만을 보고 기억하는 문화적 조건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엄효용_과수원길 아카시아 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60×45cm_2018


엄효용의 사진은 이러한 기술적·문화적 환경 속에서 보는 이에게 정보 내러티브의 심연으로부터 실존적인 감각을 환기시키는 경험을 제공한다. 작업은 모호하게 보일 듯 사라지는 이미지의 배경공간으로부터 나무의 흐릿한 형상이 두드러지게 돌출되는 형상적 특징을 지니는데, 이는 백여 컷 이상의 사진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중첩된 결과로서, 각각의 사진에 부가된 도로·나무·계절의 명칭이 가리키듯이 어떠한 길 위의 풍경을 단일하지 않은 시간과 시점(視點)으로부터 촬영한 결과들을 하나의 사진적 공간 속에 퇴적시킨 것이다. 이를테면 일련의 사진은 특정한 시공간적 위상을 정의하는 단일한 소실점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의 자유유영이미지라고 일컬을 만한 것이다.



엄효용_양재천 물푸레나무 여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60×105cm_2018


엄효용_잠원고수부지 느릅나무 가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18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본다는 시각적 확실성의 측면에서 그 어떤 것도 엄효용의 사진으로부터 포착할 수 없다. 무수하게 퇴적된 과다한 시각적 정보들은 마치 보는 이의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모호하게 상기되는 이미지-기억처럼 한 마디로 단정할 수 없는 무정형의 어렴풋한 잔상만을 불러일으킨다. 사진을 보는 이는 일련의 작업을 낱장의 사진으로 일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일한 순간과 구체적 장소로 정의할 수 없는 이미지 공간의 특성으로 인해 그/그녀에게 사진 각각은 자연발생적이고 비자발적인 기억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환영의 공간으로 맴돌게 된다. 마치 주름진 피부의 표면으로부터 감지되는 시간의 내면처럼, 사진 위의 보일 듯 사라지는 형상의 흔적들은 우리의 각막을 간질거리면서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시간의 파장을 감지케 하고, 지속하는 시간의 내면으로부터 떠오르는 무엇인가를 사진을 통해서 바라보게 한다. 말하자면 엄효용의 사진적 공간은 바라보는 이에게 실존하는 자신의 기억을 찾아가는 자의식의 거울로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 정훈



엄효용_종합 휴양지로 메타세쿼이어 겨울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18


1. 언제부터 나무에게 시선을 주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강원도 계곡에서 옮겨온 이름 모를 작은 나무, 초등학교 한쪽 켠, 딸아이와 앵두나무 아래에서 캐온 어린나무, 제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싹튼 후박나무, 집근처 나무시장에서 인연을 맺은 이런저런 나무, 그렇게 베란다가 나무 화분으로 가득할 무렵 화분 속에 갇혀있는 나무들이 애처롭게 다가온다.



엄효용_언남로 은행나무 가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60×45cm_2018


2. 어느 날 목천IC를 지나는 길 유난히 동그란 형태를 가진 가로수에 시선이 간다. 거대한 츄파춥스를 땅에 꽂아둔 듯한 은행나무, 각설탕처럼 모양내어진 대학로의 버즘나무, 관광지로 변모시킨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신도시가 생기면서 이식된 가로수, 추운겨울 전지 작업된 버즘나무가 나에게 몸짓한다.



엄효용_한기대느티나무 가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60×45cm_2018


3. 강남의 어느 길을 지나 작업실을 향하는 출근길. 사고가 났는지 평소보다 체증이 심하다. 그렇게 한참동안을 움직이지 않더니 조금씩 속도를 낸다. 수많은 각양각색의 가게와 건물들... 그리고 가로수로 심겨진 은행나무... 작업실에 가까워질수록 가게와 건물은 희미하게 사라지고 은행나무의 잔상만이 머릿속에 맴돈다.



엄효용_삼방로 느티나무 겨울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60×105cm_2018


엄효용_소양로버즘나무 겨울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40×30cm_2018


4. 평범한 매일의 일상이 어느 순간 신비로 다가온다. ● 이 나무들을 기억하고 싶다. 수많은 나무들의 형상을 나의 기억대로 내 방식으로. ● 나는 베란다에 화분을 들이고 사람들은 도심에 가로수를 심는다. ● 그렇게 닮아있다. 베란다 화분속나무와 거리에 심겨진 가로수. ■ 엄효용



Vol.20190102a | 엄효용展 / UMHYOYONG / 嚴孝鎔 /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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