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는 무료전시들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들이 가득한 요즘. 그 상처 위에 덧발라주는 약 같은 따뜻한 느낌의 전시들이 인사동 여러 곳에서 열리고 있다. 모두 무료 관람이다. 3시간 정도의 시간 여유를 가지고 인사동 거리를 걸어 다니며, 갤러리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가 감상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질 것이다.

▲ 선 갤러리-진달래-축복-김정수 아마포 위에 그린 진달래 2015 작품

 

▲ 김정수 진달래-축복-부분그림 분홍색의 진달래꽃. 그림이 아니라 진짜를 담아 놓은 것 같다. 그림의 일부분을 확대하여 찍었다.
ⓒ 김정수

 


5호선 종로3가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낙원상가가 나온다. 낙원상가를 가로질러 직진해서 걸어가면 선 갤러리가 나오는데, 4월 14일까지 김정수의 진달래-축복이 열리고 있다. 봄이 오면 가장 보고 싶은 그림 중 하나가 김정수의 진달래다.

우리 식구들은 주로 양재에 위치한 갤러리 작에 가서 보곤 했는데, 올핸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갈 수 없어 아쉬웠다. 그런데 마침 선 샐러리에서 하고 있어 기쁜 마음으로 들어갔다. 작품들의 크기가 162cm가 되는 것이 많고 2층까지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 신혜식-건봉사 소나무 '2015 한국 펜화전' 신혜식 작가

 

 

쌈지길 근처에 경인미술관이 있다. 일주일 단위로 전시내용이 달라진다. 여러 내용을 동시에 볼 수 있어 좋다. 제2전시실에서 4월 7일까지 '2015 한국 펜화전'을 하고 있는데, 65세에 데뷔한 올해 73세의 서호 신혜식의 작품은 감탄이 나온다. 건봉사 소나무를 그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여 일이라고 한다. 사진처럼 보이지만, 펜으로 그린 그림이다. 당당하게 서서 오랜 시간을 보낸 소나무의 기상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 벚꽃 엔딩-170cm*196cm-최지현 퀼트 작품-벚꽃 엔딩
ⓒ 최지현

 

 


 

 

 

펜화와 함께 7일까지 퀼트전도 열리고 있다. 세심함이 부족하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작품들. 바느질로 표현한 벚꽃에선 입이 벌어진다. 솜씨들이 무척 부러워서 한참을 구경하고 왔다.

 

▲ 갤러리_나우_박대조 개인전 조각과 회화 사진이 결합된 인물화 작업. 박대조.
ⓒ 박대조

 

 


 

 

온누리 약국 맞은 편 쪽에 있는 갤러리 나우는 사진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는 곳이다. 박대조 개인전이 4월 14일까지 열리고 있는데, 독특한 재료들로 완성한 작가의 작품들은 굉장히 세련돼 보인다. 그림과 사진이 혼용되어 있는 작품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 여러 번 다시 보게 된다.

 

 

▲ 조성제-천년의 전설 우포 우포 늪에서 찍은 조성제의 작품
ⓒ 조성제

 

 


쌈지길 맞은편에는 '도채비도 반한 찻집' 위에 갤러리 인덱스가 있다. 조성제의 개인전이 4월 13일까지 열리고 있다. '천년의 전설 우포' 우포늪의 갈대와 새와 안개가 가득한 사진들.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사진을 보면 새의 날개 짓이 들리는 것 같다. 동양화 같은 사진들엔 아주 미세한 깃털의 움직임까지 포착되어있다. 우리가 늪을 살리고 자연환경을 왜 보호해야 하는지 사진을 보면 저절로 느껴진다. 의자에 앉아 마음에 드는 사진을 오래 보고 왔다.


 

▲ 하늘나라 우체통 아라아트 센터 4층에서 4월 7일까지 전시 중인 하늘나라 우체통과 편지들과 작품들
ⓒ 정민숙

 

 

▲ 허다윤에게 아직도 세월호에 승선 중인 다윤이에게 보내는 언니의 편지
ⓒ 정민숙

 


인사동에서 가장 넓은 공간인 아라아트 센터. 4층에서 4월 7일까지 '빛과 생명으로'라는 제목으로 팽목항의 편지들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노란 리본을 한 시도 떼지 않고 달고 다닌다. 안내하시는 분이 유가족이냐고 물어서, 단원고 아이들과 동갑인 아이를 키우는 서울시민이라고 했다.

전시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하늘나라 우체통에 넣은 사람들의 편지는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인사동에 가면 잠시 들러 아직 배에서 내리지 못한 9명의 사람들과 295명의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했으면 좋겠다.

모든 갤러리에서는 전시 내용을 엽서 크기로 안내하고 있다. 나오는 길에 잊지 말고 챙겨 집에서 그 작품들을 생각하며 다시 보는 것도 좋다. 도록을 사거나 다른 작품들을 구입하는 것도 좋지만, 역시 작품은 원작을 눈으로 봐야만 그 감동이 온전하게 전해 온다.

3시간의 외출이었지만, 내 마음의 상처에 약을 바른 후 밴드를 붙인 느낌이다. 사월. 이 작품들을 권한다. 감상하면서 한숨 돌리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작은 힘이라도 얻을 테니까.

 

[오마이뉴스 / 정민숙기자]

 

신혜식의 수락산 소나무

동양의 농익은 먹물과 서양의 금속성 펜이 만나 순백의 화폭위에서 섬세하게 피어난다. 펜으로 그린 그림 펜화. 멀리서 보면 흑백사진을 보는 듯하지만 가까이 가면 수많은 가느다란 선들이 살아 움직이며 하나의 그림언어를 들려준다. 그만큼 펜화는 감상하는 이들에게 작가의 예리한 눈길과 정성이 백지 위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경험을 안겨준다.

펜화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화가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펜화의 매력에 빠진 이들이 함께 모여 결성한 한국펜화가협회(회장 김영택)가 새 봄을 맞아 정기전을 연다. 2011년 6월 창립전을 가진 후 매년 꾸준히 개최해온 정기전이 올해 5회째를 맞는다. 4월1일부터 7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인 미술관(02-733-4448) 제2전시실에서 열린다.

25명의 작가가 충절과 지조를 상징하는 소나무를 비롯해 전통 건축물의 속살과 주변의 익숙한 풍경, 얼굴 등 한국적 소재를 0.1mm의 선으로 풀어냈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빈 틈새 없이 꼼꼼하게 빚어내는 작가의 섬세한 눈길과 손길을 따라가다 보면 입체적 형상 속에 담긴 작가의 의도까지 알게 되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한민족의 정체성을 대변하면서 고고한 자태에 반해 소나무를 고집스럽게 그리고 있는 신혜식 작가는 “장소나 환경에 따라 다르게 자라는 소나무의 생명력을 애정 어린 눈길과 섬세한 손을 통해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담아냈다”면서 펜화의 매력에 대해 “검은 먹선으로 하얀 종이 위를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작품 속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무아지경에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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