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의 산역사` 갤러리현대 45주년 `한국추상회화`展
18명 작품 60점 전시…동양적 세계관 돋보이는 명작들

 

 

"젊은 여자가 화랑을 차렸다고? 얼마나 빨리 망하는지 보자."

스물일곱의 나이였다.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72)이 1970년 4월 4일 서울 인사동 한복판에 2층짜리 건물을 빌려 '현대화랑'이라는 간판을 단 것은. 골동품과 고미술 상가만 즐비했던 인사동에 현대 작가들의 미술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화랑'이 들어선 것 자체가 낯선 풍경이었다. 이 때문에 곱지 않은 시선들이 적지 않았다. 당시 명동에 반도화랑이 존재하긴 했지만 6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고, 독립 건물도 아니었다. 더구나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반면 1975년 지금의 사간동으로 둥지를 옮겨 한국 화랑 사간동 시대를 열고, 1987년에는 이름을 갤러리현대로 바꾼 '현대화랑'은 이중섭 박수근 유영국 장욱진 등 거장들이 모두 거쳐갔다.

이 때문에 현대화랑 앞에는 '한국 화랑의 산역사'이자 '영원한 1번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한국 현대미술을 주도한 갤러리현대가 설립된 지 만 45주년을 맞았다. 그 독보적인 역사와 전통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전 '한국 추상회화'전을 연다. 기념비적인 해에 추상회화 특별전을 여는 것부터가 의미심장하다.

추상화 1세대인 김환기 남관 이응로 이성자 한묵부터 2세대로 분류되는 박서보 하종현 정상화 정창섭 이우환 등 총 18명의 작품 60여 점을 모았다. 1세대가 주로 1910년대생인 반면 2세대는 1930년대생이다. 18명 가운데 8명만 생존 작가다.

또한 60여 점 중 90%가 소장자와 작가로부터 작품을 빌려 왔으며 5점만 신작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 추상회화의 도저한 흐름을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박명자 회장은 "그간 이중섭 박수근 장욱진 등 타계한 작가들의 회고전을 열다 보니 현대화랑이 구상작가 작품만 전시한 걸로 잘못 알려진 것 같다"며 "이번에 선보이는 18명의 작가는 모두 현대화랑에서 꾸준히 전시를 했던 작가"라고 강조했다.

권영우'무제'(224x170cm)

 

글로벌 미술계 트렌드는 지금 한국의 단색화 열풍을 비롯해 구상회화에서 추상회화로 넘어가는 추세다. 화려한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되레 치유와 명상의 미술이 뜨고 있는 것이다. 단색화의 중심에는 현대화랑이 있다. 현대화랑은 남관(1972), 이성자·서세옥(1974), 김환기(1977), 이우환(1978), 유영국(1980), 박서보(1981), 곽인식(1982), 하종현(1984), 한묵(1986), 권영우·정상화(1986) 개인전을 열며 추상회화를 꾸준히 소개했다.

이번 전시 역시 김환기 유영국 김창열 이우환을 비롯해 문자추상의 대가인 남관과 이응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한묵과 이성자, 단색화의 주역인 박서보 정상화 윤형근 정창섭 김기린 하종현 권영우가 총출동한다.

미술사가 송미숙 씨는 "미술 애호가들로부터 소장품을 끌어내고 신작을 소개하는 이런 규모의 전시는 국내 어느 미술관도 할 수 없는 것"이라며 "50년 가까이 작가와 컬렉터들을 잘 알고 있는 박명자 회장만이 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이어 "서구 추상회화가 평면성과 색채와 선, 형태 등 회화 자체의 고유한 언어와 양식을 추구하는 데 기원을 두고 발전해 왔다면 한국의 추상미술가들에게 자연은 처음부터 인간이 도전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도 소재도 아니었다"며 "한국 추상화가에게 자연은 보이지 않는 우주의 생성원리와 리듬, 기의 세계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전시는 4월 22일까지. (02)2287-3585

[매일경제 /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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