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식의 수락산 소나무

동양의 농익은 먹물과 서양의 금속성 펜이 만나 순백의 화폭위에서 섬세하게 피어난다. 펜으로 그린 그림 펜화. 멀리서 보면 흑백사진을 보는 듯하지만 가까이 가면 수많은 가느다란 선들이 살아 움직이며 하나의 그림언어를 들려준다. 그만큼 펜화는 감상하는 이들에게 작가의 예리한 눈길과 정성이 백지 위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경험을 안겨준다.

펜화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화가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펜화의 매력에 빠진 이들이 함께 모여 결성한 한국펜화가협회(회장 김영택)가 새 봄을 맞아 정기전을 연다. 2011년 6월 창립전을 가진 후 매년 꾸준히 개최해온 정기전이 올해 5회째를 맞는다. 4월1일부터 7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인 미술관(02-733-4448) 제2전시실에서 열린다.

25명의 작가가 충절과 지조를 상징하는 소나무를 비롯해 전통 건축물의 속살과 주변의 익숙한 풍경, 얼굴 등 한국적 소재를 0.1mm의 선으로 풀어냈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빈 틈새 없이 꼼꼼하게 빚어내는 작가의 섬세한 눈길과 손길을 따라가다 보면 입체적 형상 속에 담긴 작가의 의도까지 알게 되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한민족의 정체성을 대변하면서 고고한 자태에 반해 소나무를 고집스럽게 그리고 있는 신혜식 작가는 “장소나 환경에 따라 다르게 자라는 소나무의 생명력을 애정 어린 눈길과 섬세한 손을 통해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담아냈다”면서 펜화의 매력에 대해 “검은 먹선으로 하얀 종이 위를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작품 속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무아지경에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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