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질퍽한 술자리가 인사동 곳곳에서 벌어졌다.

지난 수요일은 나무화랑에서 이명복의 어멍전이 시작되었고,

인사아트프라자에서는 박옥수의 시간여행이 열리는 날이었다.

 

코로나 규제까지 풀려 모처럼의 해방감에 많은 분과 어울려 바쁜 잔치 판을 오갔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란 말처럼 항상 많이 마셔 탈이다.

 

술 취해 사진은 얼마나 찍었는지, 메모리카드가 찼더라.

요즘 몸도 비실거리지만, 하던 일도 귀찮아 게으름을 피운다.

미루고 미루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뒷북치는 것이다.

 

전시가 열리던 날, 안국역에서 가까운나무화랑부터 갔더니

작가 이명복씨를 비롯하여 김진하관장, 박흥순, 이재민, 김구, 홍성미, 김양훈, 양상철, 김성명씨 등

여러 명이 전시를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주 사는 이명복씨는 4.3의 한 맺힌 응어리를 형상화하는 작가다.

전시된 어멍전에는 어머니의 초상과 일하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록 한 사람의 인물을 그렸지만, 그 속에 우리 민중의 한이 서려 있었다.

 

어머니의 주름진 눈빛에서 지난한 세월의 아픔도 읽을 수 있었다.

잠시도 쉬지 않는 부지런하고 강인한 제주 어멍의 모습이었다,

어버이날을 며칠 앞둔지라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웠다

 

같은 시간에 개막된 박옥수씨의 시간여행‘ 사진전도 보러 갔다.

전시를 기획한 지승룡씨가 개막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반가운 분도 여럿 보였다. 박옥수씨 내외를 비롯하여

사진가 김문호, 김녕만, 곽명우, 정영신, 가수 장사익,

연출가 김혜련씨 등 많은 분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사익씨가 축가를 구성지게 불러 분위기를 띄웠다.

 

사진들을 돌아보니, 아파트가 즐비한 배경으로 쓰러질 듯

자리를 지킨 청계천 판자촌에서 부터 물지게를 지고 가는 어린 소녀들,

창경원에서 휴대 전축을 틀어놓고 춤추는 젊은이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연이 세월을 거슬러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사진가 박옥수씨는 나보다 나이는 두 살 아래지만, 사진은 한참 선배다.

고등학생 때부터 사진 활동을 해, 전시하는 사진들도 65년부터 80년까지의 시대상이다.

사진으로서의 가치는 물론 근현대 사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

 

그날 박옥수씨 부인도 처음 뵈었는데, 이토록 아름다운 미녀를 숨겨 둔지 미처 몰랐다.

더구나 연출가 김혜련씨와 절친이라는데, 세상은 넓고도 참 좁았다.

 

뒤풀이가 있는 사동집에도 반가운 분들이 있었다.

전시장에서 뵌 분 외에도 사진가 정장식, 심보겸, 성유나, 조명환씨를 비롯하여

김구, 김이하, 이만주, 노광래씨 등 많은 분이 어울린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사동집 주인 송점순씨가 보이지 않아 찾아보았더니, 주방에서 열심히 전을 부치고 있었다.

손님이 없어 일손을 줄여 쉴 틈도 없다며 바쁘시다.

 

안쪽 자리에는 미술평론가 유근오씨 일행이 마시고 있었다.

 

이 얼마 만에 맛보는 떼거리 술판이던가?

반가운 자리지만 다른 뒤풀이가 궁금해 급하게 마셨더니, 금세 술기운이 올랐다.

 

담배 피우러 나왔다가, 간다는 말도 없이 이명복씨 뒤풀이를 찾아갔다.

 

유목민으로 가다 보니, 길목 사랑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길가에 이명복, 장경호, 이재민, 박흥순씨가 나와 있었고,

안에는 손기환, 김진하, 김재홍, 고옥룡, 나종희, 송 창, 류연복씨 등 민중미술가들 판이었다.

 

장경호씨와 유목민‘으로 가보니, 그곳도 북적였다.

 

박성남씨를 비롯하여 임헌갑, 임동은, 이경희, 주홍수, 유준 씨 등 성함이 오락가락하는 많은 분들이 있었다.

 

뒤따라 사동집에 있던 김문호, 정장식, 정영신, 노광래, 김이하씨가 차례로 나타났고,

사랑채에 있던 이재민, 김 구, 김재홍씨도 합류했다

 

김명성, 김상현, 이상훈, 안원규씨 등 줄줄이 사탕이다.

 

! 이 얼마만의 이산가족 만남인데,

그냥 넘어갈 수 있겠냐 마는 다들 시간이 늦어 몸 사린다.

 

인사동에서 좋은 전시 있으면 작품보러 나오는 길에 자주 만나자.

 

 다시 뭉쳐 인사동에 봄바람 날리자.

 

사진, / 조문호

 

이명복 '어멍'전시장 사진 / 나무화랑

 

박옥수 '시간여행' 개막식 사진 / 인사아트프라자2층

 

박옥수 '시간여행' 뒤풀이 사진 / 사동집

 

  이명복 '어멍'전 뒤풀이 사진/ 사랑채

 

'유목민'에서 만난 사진 

 

시간여행 1965-1980

 

박옥수 사진집

눈빛 / 228쪽 / 값50,000원

ISBN 978-89-7409-431-7

 

이 사진집은 사진가 박옥수의 사진입문 초중반기인 1965년부터 1980년까지 촬영한 사진을 수록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기인 제3공화국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산업사회로의 진입, 전통의 퇴조 내지는 소멸, 일상을 지배했던 집단주의 등이 박옥수의 사진에서 보인다. 뉴스 현장보다 일상의 순간이며, 1960-70년대의 산업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이다.

 

박옥수는 1967년 현대사진연구회에 가입해 활동한 한국사진의 전통을 이어온 마지막 주자다. 한국사진사에서 1950년대에서 70년대 초반까지 신선회, 살롱 아루스, 현대사진연구회로 이어지는 사진가 그룹의 활동은 리얼리즘 사진에 대한 자각과 자생적 사진이념이 묻어 있는 한국사진의 소중한 준령이다. 이때 이 그룹을 중심으로 활동한 사진가들로는 이형록, 정범태, 이해문, 한영수, 이창환, 백남식, 전몽각, 황규태, 박영숙 등을 꼽을 수 있다.

 

사진가가 거리에 나가 관찰하고 오래 기다렸다 찍은 사진은 그 시기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보여준다. 사진에서 “‘리얼한 사진’이라는 말은 현실 그대로의 사진이라는 뜻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재창조되어 보다 현실감 있게 표현된 사진을 가리키는 말이다.”(한정식) 그러니 이 사진집이 보여주는 1960-70년대의 현실은 사진가 박옥수에 의해 ‘재창조되어’ 그 시절이 보다 ‘현실감 있게 표현된 것’이다. 박옥수 사진의 시간여행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1960-70년대 사람들이 어떤 시대를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가 애써 지우거나 잊으려 했던 전통이라는 이름의 잔재가 있고, 누군가는 희망 속에서, 또 누군가는 절망 속에서 살아간 삶의 흔적이 있다. 장충단공원에서의 김대중 대통령후보의 유세장에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 ‘서울의 봄’의 그 유명한 학생들의 서울역 회군, 창경원에서 휴대전축을 틀어놓고 춤추는 젊은 남녀들, 산업화에서 소외된 군상들, 집단체조에 동원된 무표정한 여학생들, 하나둘 주검으로 돌아와 묻히는 파월용사 묘역에서 울부짖는 여인들…. 현재를 구성하는 퍼즐의 하나인 과거가 속절없이 지나가버린 것이 아니라 사진으로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2022년 1월  / 눈빛출판사

 

박옥수 약력

 

박옥수는 1967년 현대사진연구회에 가입해 활동한 한국사진의 맥을 이어온 마지막 주자다. 한국사진사에서 1950년대에서 70년대 초반까지 신선회, 살롱 아루스, 현대사진연구회로 이어지는 사진가 그룹의 활동은 리얼리즘 사진에 대한 자각과 자생적 사진이념이 묻어 있는 준령이다.

박옥수는 1964년(광주일고 1학년)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 미술부 활동을 한 그는 고교에 진학하자마자 큰형님의 카메라(니콘 S-2)를 들고 다니며 일본 카메라 잡지에서 본 사진들을 흉내 내 찍는다. 그는 고교생 신분으로 전국사진촬영대회에서 수차례 입선하는 등 광주의 ‘학생 사진가’로 전국에 이름을 날렸다. 대학 진학(한양대)과 동시에 서울로 상경한 그는 이형록이 이끌던 현대사진연구회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사진가로서 일취월장한다.

군제대 후에는 문선호사진연구소에 근무(1974-1976)하면서 광고사진에 입문하고 이후 현대자동차 홍보실(1976-1979)에서 사진담당으로 일하며, 1978년 1월에는 유럽을 배경으로 포니 자동차 홍보사진을 촬영했다. 1983년 충무로에 광고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토탈스튜디오를 운영하다 2017년에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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