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상주장 가는 길에 ‘옥동서원’을 들렸다.

‘옥동서원’은 영동과 경계를 이루는 백화산 물줄기 아래 자리잡은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에 있다.

백화산 자락에 고즈넉하게 수줍은 듯 웅크린 ‘옥동서원’에서 선조들의 여유와 멋을 체감했다.

 

옥동서원은 명재상 황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는 서원이다.

황희는 조선 초 유학의 기반을 마련하고 유교 숭상 정책을 주도한 인물로

태종과 세종 대에 걸쳐 육조 판서 등을 두루 지냈고

20여 년 동안 의정부 최고 관직인 영의정 부사로 왕을 보좌했다.

학문이 깊고 성품이 어질며 청렴하기 까지 했다.

 

이 서원은 1518년 창건하여, 1580년 영당 지어 향사를 지내면서 지금의 모습을 지켜왔다고 한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전국 47개 서원 가운데 한 곳이다.

경내는 사당인 경덕사와 강당인 온휘당이 있다.

그리고 청월루의 진밀료와 윤택료가 작게나마 동재와 서재 역할을 한다.

 

그동안 이곳저곳 서원을 다녀보았지만, 옥동서원 외삼문은 좀 특이한 구조다.

누각을 지탱해 주는 기둥과 벽 사이에 일정한 공간을 두었는데,

이는 동재와 서재 역할 하는 방에 군불 지필 때 아궁이의 열기를 피하기 위한 것 같았다.

아궁이 또한 쪼그리고 앉아서 불을 지피는 형태가 아니라 서서 장작을 집어넣도록 만들어 놓았다.

 

신발을 벗고 누각에 올라 가 보았다.

대청마루의 삐걱대는 소리조차 정겹더라. 누각 가운데에는 ‘청월루’ 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

문제는 어느 서원이나 책을 보관하는 문고가 없다는 점이다.

 

 

서원 중 도산서원과 옥산서원, 병산서원의 문고보존이 그나마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열람이나 이용은 거의 불가능하고,

종손이나 서원관계 후손 집에 분산되어 있다고 한다.

서원의 서적보존과 체계적인 관리가 절실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답답한 즈음, 서원의 고고한 자태에 둘러싸여

선인들의 선비 정신을 되세기며, 여유로운 풍류에 젖어 보심이 어떨지...

 

사진, 글 / 조문호

 

그리고 2일 7일에 맞추어 간다면 상주장에 들리는 것도 좋다.

따뜻한 햇살받은 할머니들 봄나물 다듬는 모습들이 정겹다

봄 향내 속에 무뚝뚝한 보리문둥이들의 인정 맛보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재미

 

아래는 2일 7일 같은 날 장이 서는 선산장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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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모(인사동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1박2일 일정의 여행을 경상북도 상주로 떠났다. 

이번 나들이는 상주시 은척면 출신인 이상배, 김동주씨 주선으로 가게 되었는데, 지난 16일 오전 8시에 출발하여 상주옹기, 명주박물관, 곤충박물관, '은자골탁배기'공장, '고려왕검연구소', '동학교당', '묵심도예', 상주5일장 등을 돌아본 후, 이틀날 오후5시경 서울로 돌아왔다. 함께하신 분으로는 고위공직자인 이상배씨를 위시하여 녹색성장위원장 김형국씨 내외, 서화가 김양동씨, 통인그룹 대표 김완규씨, 동원건설 대표 송재엽씨, 서양화가 이목을씨, 건축가 김동주씨, 필자 등 모두 아홉 명이 함께해 즐겁고 보람된 시간을 가졌다.

 

이 번 상주 나들이는 원님 덕에 나팔 분 격이었다.

이상배씨 덕분에 가는 곳마다 칙사 대접을 받았는데, 상주의 재발견이라 할 만큼 보고 느낀 것들도 많았다.

명장들의 공방인 정대희씨의 '상주옹기', 칼을 만드는 이상선씨의 '고려왕검', 도자기 만드는 이학천씨의 '묵심도예' 등 이 지역 명장들의 작업현장을 골고루 둘러볼 수 있었고, 상주시에서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귀촌, 귀농에 대한 세미나도 들었다.

그리고 잠사곤충사업소에 들려 명주박물관과 곤충박물관은 물론 누에에서 명주로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둘러보았는데, 인근의 가로수마저 개량된 뽕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특히 3선 국회의원에 경북지사, 서울특별시장, 내무부장관, 정부공직자 윤리위원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이상배씨가 누에를 보며 던진 한마디가 인상적이었다.

"누에가 실을 다 풀어내고 생을 마감하듯, 자신도 누에처럼 모든 것을 다 바쳐 공직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고향에 잘못된 점을 알고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이틀 동안 노심초사하는 모습에서 잘못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그의 성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하나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상주시 은척면에 동학본부가 있었다는 것이다. 최제우선생의 동학이념을 계승한 김주희선생께서 상주동학교당을 창건하여 동학경전과 동학가사 등 대대적인 간행사업으로 이념 위주의 교세화장을 꾀했다는데, 이곳에 동학의 유물들이 전부 모여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교당본부 건물5채를 비롯하여 유물 177종 1,084점이 전시되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김주희선생이 타던 가마까지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숙소로 정한 상주시 은척면에 소재한 성주봉 휴양림의 풍광도 일품이었다. 울울창창한 산림과 계곡 요소요소에 팬션을 지어 환경친화적인 숙소를 조성해 놓은 것이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김동주씨 생가에 가서 또 한 번 놀랐다. "세계적인 건축가의 자택은 어떻게 지었을까?"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궁금했었는데, 옛 가옥을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해 놓았던 것이다. “툇마루나 문짝 하나하나에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있는데, 어찌 다시 지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역시 손 안대고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최고의 건축이었다.

 

상주 은자골 터가 명당은 명당인 모양이다. 오래 전에 동학교당을 세운 것도 그렇지만,

이 깡촌에 이상배씨와 김동주씨 같은 훌륭하신 양반이 두 분이나 태어났으니 말이다.

잔치 집처럼 마당에 자리를 본 만찬장 또한 최고였다. 논에서 우는 개구리소리를 들으며 먹고 마신 여러 가지 음식들은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었던, 그 곳 만의 진미였다.

 

손님들을 위해 정성껏 장만한 나물들을 보내 주신 이웃을 비롯해, 좋은 자리를 만들어 주신 이상배, 김동주님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혼자 고기 굽느라 고생하신 이목을님, 먼 길을 도맡아 운전해 주신 송재엽님, 식욕을 주체 못한 김완규님 등 함께하고 반겨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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