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정선 만지산으로 가을걷이 하러 떠났다.
해마다 이맘 때만 되면 월동 준비 겸 가을걷이에 나서지만, 이번엔 별로 거둘 것이 없었다.
그러나 추워지면 잘 가지 못하니, 밖에 내놓은 정수기도 들여 놓고, 텃밭의 고추대도 뽑아야 했다.
무엇보다 산소에 들려 어머니께 추운 겨울 잘 견디시라는 인사드리는 것도 가야할 명분 중 하나다.






새벽 녘 정선으로 떠나면, 가끔 눈요기 거리가 펼쳐진다.
매번 양평을 거치는 국도로 가는데, 일교차로 피어나는 양수리 물안개가 너무 멋지다.
온천처럼 물 위로 김이 오르기도 하고, 물위로 구름이 몰려다니기도 한다.
그런 장면이야 사진에서 많이 볼 수 있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감회에 비길 수가 없다.
풍경사진은 좋아하지 않으면서 나도 모르게 길가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들이댄다.





몸에 베인 습관이라 죽기 전에는 고쳐기 어려울 것 같다.
자연이나 사물은 찍던 말든 탓하는 이가 없으나, 사람이라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반가운 사람 만나면 인사도 하지 않고 카메라부터 들이대니, 기분 더러울 것이다.
오래된 지인들은 의례 저 인간은 저러려니 하겠지만, 친하지 않은 분들은 의아해 한다.
모르는 분이라면 쓴 소리가 나오거나, 잘못하면 경찰서까지 가야 한다.






꼭 그래서만 아니지만, 난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 찍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대상 자체를 모르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거리스냅 사진은 어쩔 수 없이 행인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그 땐 처신을 잘해야 한다.
찍을 때는 항상 웃고, 눈이 마주치면 손을 들거나, 멋지다는 엄지를 치켜세워 주었다.





그래도 문제 삼으면 찍은 이미지 보여주며, 상대의 결정에 따라 지우거나 양해 받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별에 별 사람이 다 있는지라, 트집 잡는 사람은 어쩔 수가 없다.
간이 뒤집혀도 웃어야 한다. 자칫 같이 화를 냈다간 싸움되기 십상이다.
마음의 문을 닫아, 불신만 가득 찬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이다.






만지산에 도착하면 산소부터 올라간다.
지난 겨울엔 산 길이 얼어붙어 차를 쳐 박은 일도 있었지만, 늦가을의 산길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무덤에 술 한 잔 올리고는 귀신과 이야기 나누는 재미도 쏠쏠하다.
누가 그 걸 보면 미친 놈이라 여겨도 상관없다. 
아무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하면, 속이 후련해진다.


그 날은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은 배신감을 메주알 고주알 풀어 놓았더니, 보나마나한 답이 돌아온다.

“친구 좋아하더니, 꼴 좋다. 내가 뭐라 카더노? 
돌아서면 남보다 못하니, 대강 어울려 다니라 안 카더나.”





집으로 내려와 가을걷이를 시작했으나, 거둘 것이 별로 없었다.
따고 남은 꽈리고추 한 광주리, 호박 열 개, 부추 한 단이 전부였다.
기특한 것은 올 봄에 도망친 토끼가 먹어 치운 대마초 한포기가 살아 남아 씨를 잔뜩 안고 있었다.
씨만 없었더라면 한 철은 잘 지내련만, 영양가 없는 씨 때문에 조져버렸다.





지천에 늘린 산초열매나 땡감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매번 힘들여 따지만 버리기 일수다.
제 작년엔 산초를 잔뜩 따서 기름 짜려고 방앗간에 가져갔더니, 냄새가 독해 다른 기름을 못 짠다며 짜주지 않았다. 
담아 둔 산초 장아찌도 일년은 더 먹을 양이 남아 있다.






내버려 두고 일을 줄이니 하루 만에 가을걷이가 끝나버렸다.
정선에서 하루도 자지 않고, 오후 여섯 시경 서울로 돌아왔다.
그것도 명색이 가을걷이라고 정영신씨는 술상을 차려놓고 기다렸다.
복분자술이 세우와 전어 몇 마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정영신씨는 고추 다듬느라 정신없었으나, 난 대마초를 술병에 옮겨 담았다.
정영신씨가 서인형씨로부터 선물 받아 둔 연태 고랑주를 거기다 쏟아 넣었다.
아끼던 좋은 술이건만, 더 멋진 술을 맛 보고 싶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다.


혹시 알 수 있나?
그 술이 약술되어 봄이 돌아올지...

사진, 글 / 조문호

































여지껏 정선 작업실을 갈 때마다 양평으로 가는 국도를 이용했습니다.
시간은 한 시간 쯤 더 걸리지만, 고속도로 통행료도 없는데다 연료도 많이 절감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런 저런 풍경들을 만나 촬영할 수 있어 좋지요.

이 양수리풍경은 지난 주, 정선가는 길에서 만났습니다.
이른 새벽, 양수리를 지나치다 보면 물안개 자욱한 풍경들을 종종 만나지요. 

그러나 지나 갈 때마다 갓길이 협소해 차를 못 세워 아쉬웠지만
이 날은 작정하고 양수리 방향으로 차를 몰고 내려갔습니다.
풀숲에 발이 빠져 젖기도했지만, 몽환적인 풍경에 빠질 수 있어 더 좋았습니다.

이렇게 불필요한 요소들을 가려주는 눈이나 안개는 그 시각적 묘미로 사진인들이 즐겨 찿지만,
사실적인 기록, 그것도 사람을 최고로 아는 저로서는, 그렇게 관심 끄는 소재는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아름다운 감상에 빠져 한 폭의 동양화같은 이미지를 주워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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