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강민영 선임기자]

 

우정 정응균(54) 작가의 전시가 오는 14일부터 20일까지 ‘버림받은 남자의 거시기-그 빛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인사동 라메르갤러리에서 열린다.

우정은 기질상 문인화의 엄격하고 정갈한 성향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전위적 화가로서의 기질이 더욱 두드러진 편이다. 그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파격적인 시도나 거친 붓놀림과 틀을 깨는 형상들은 문인화의 정형화된 한계를 뛰어넘는다.

이번 개인전의 타이틀을 다소 거칠고 선정적으로 정한 것도 이러한 그의 성향과 맞물려 있다. 우정은 성적자극을 겨냥하기보다 성적 이미지의 관능성을 미로서 승화시키고자 하며 동시에 감상자에게는 사랑의 본질에 대한 이성적 사유로 인도하고자 한다.

정응균 작가는 현재 한국미술협회 초대작가, 동아미술제 동우회 및 초대작가로 활동중이며 롯데백화점 문인화 강사로서 문인화 저변확대에 힘쓰고 있다. 김상철 동덕여대 교수의 평론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자.

 

 

 

변화의 수용과 불변의 확인-생명의 자연으로부터 

『작가 정응균의 작업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고 해설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업은 소제와 표현에 있어 전형적인 문인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호방한 수묵으로 펼쳐지는 대나무나 연, 소나무 등의 표현과 이에 더해지는 화제 등은 그의 작업이 이미 일정한 연륜을 통해 이루어진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문인화로서는 보기 힘든 대형 화면을 통해 발산되는 수묵의 장쾌함과 호방한 공간 구성의 묘는 그의 의지가 단순히 문인화의 형식적 내용의 수용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러한 대작들을 통해 문인화가 지니고 있는 조형성을 극대화하여 그것을 심화시킴과 동시에 공간의 확장을 통하여 또 다른 심미적 가치에 육박하고자 함이 역력하다. 이는 그가 마주하고 있는 전통과 현대에 대한 의욕적인 접근이며, 구체적인 실천인 셈이다.

물리적으로 확대된 대형 화면은 일단 호방하고 장쾌하다. 거침없는 운필로 이루어진 수묵의 속도감과 이를 통해 발현되는 수묵의 변화들은 대단히 풍부하다. 그의 화면에서 느껴지는 시각적 통쾌함은 단순히 큰 화면에서 비롯되는 현상적인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내재된 풍부하고 변화무쌍한 수묵의 효과적인 운용에서 비롯되는 심미적 가치일 것이다.

화면의 크기는 당연히 그것에 걸 맞는 표현을 필요로 한다. 단지 대상의 확대만으로는 결코 대작 특유의 웅혼한 힘과 기상을 표출해 낼 수 없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대작을 통한 문인화 경계의 확장을 이미 실행해 보인바 있다. 근작의 대작들에서 전해지는 안정된 화면의 임리한 수묵 표현과 장쾌한 공간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확보된 조형 경험의 발현인 셈이다. 

 

 

 

자연은 신비로운 것이었으며, 이에 대응하는 인체 역시 신비였다. 이러한 인체를 소우주에 비유하여 대우주와의 대응관계로 보는 사고방식은 동·서의 원시적 인체관에서 공히 나타나고 있다. 즉 인체를 자연의 신비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소우주로 인식하는 것이다. 특히 동양은 애초부터 자연과 인체를 구분하지 않았다. 인체는 자연과 합일된 존재로, 인체는 줄곧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사유되었다. 인간은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조화를 이루며 사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작가는 자연물을 통해 인체를 수용해 내고 있다. 그것은 유려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여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 자연은 생명의 그릇으로 이해된 것을 염두에 둔다면, 그의 여체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물 형상의 유사성에서 비롯된 표현에서부터 음과 양의 대비로 표출되는 생명 근원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유는 마치 흥미로운 숨은 그림 찾기처럼 화면 곳곳에 내밀하게 담겨 있다.

그것은 농밀하나 음탕하지 않고, 흥미로우나 경박하지 않다. 이는 작가의 수묵 등 전통회화에 대한 이해와 자연과 우주, 그리고 생명 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해 걸러지고 다듬어진 결과일 것이다. 이른바 품격, 혹은 격조는 바로 이를 통해 발현되는 심미적 가치인 것이다.』▶평론=김상철 동덕여대 교수  

mykang@sportsworldi.com 

<작품설명> 

우정 정응균 작가. 

솟구치는 욕망, 삶의 흔적(삶의 질주) 213×150㎝×3, 장지+수묵
준엄한 심판의 흐름이여 213×150㎝×2, 장지+수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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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이 만난사람]

무뚝뚝하던 바위에 따뜻함이”… 지친 마음에 예술이 건네는 위로

‘치유’라는 단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떠오른 요즘이다. 세로토닌은 몸에 행복감을 주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어느 날 한 정신과 의사는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 사회에 대해 “이제 세로토닌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세로토닌 문화원’을 설립해 그저 바쁘게만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정신적 폐단을 지적하고 ‘이젠 다르게 살아야 할 때’라는 메시지를 화두로 던졌다. 현재는 ‘병원이 필요 없는 사람’을 만드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에 ‘힐링아트’라는 또 하나의 단어를 꺼내들었다. 바로 ‘문인화’다. 문인화를 통해 생명과 사물의 본질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마음의 깨끗한 기운과 여백을 찾아 스스로 치유하자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세로토닌 문화원에서 이 시대의 대표적 정신과 의사로 통하는 이시형(80) 박사를 만났다. 문화원 앞마당에서 인사를 나눴다. 아담한 잔디밭 가장자리에는 푸름이 짙은 나무들이 빙둘러 서 있었다.

“지금 꽃은 다 졌지만 때가 되면 이곳에는 목련도 피고, 튤립도 있고, 작약도 있어요. 밤에는 별들도 볼 수 있지요. 주택들이 밀집돼 있지만 아주 조용해요. 회원들도 오고 변호사, 화가 등 여러 지인들이 자주 찾아와 자연과 밤하늘을 함께 노래하기도 하지요.”

친숙하게 오랫동안 사귄 벗을 소개하는 듯했다. 그는 4일부터 일주일 동안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첫 문인화 전시회를 연다. ‘치유적 예술로서의 문인화’라는 제목으로 강연 시간도 가진다. 나이 80인 정신과 의사가 문인화 50여점을 내걸었다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는 전시에 앞서 직접 그리고 쓴 그림과 글을 모아 ‘나이 여든 소년 산이 되다’라는 문인화첩을 냈다. 삶에 대한 깊은 사색, 진정한 치유와 행복을 담고 있다. 책을 펴냄과 거의 동시에 전시회를 갖는 셈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들이 이어졌을까.

“사태(책을 내고 전시하는 일)가 이렇게 심각한 상황으로 빠지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어떤 치기에서 시작됐지요. 작년 말쯤 나이 80이 된다고 생각하고 보니 그동안 해 왔던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모든 것들이 쉽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다 이루어졌지요. 그러면서 이제 가장 못하는 일을 한번 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교실 뒤편 게시판에 제 그림이 한번도 걸려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 이시형 박사

 

그는 즉시 주변 사람들을 꼬드겼다. ‘초등학교 때 교실 뒷벽에 한번도 그림이 걸려보지 못한 사람 모여라’고 했더니 20명쯤 됐다. 평소 존경하는 김양수 화백을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그림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허락을 받아낸 그는 일주일에 한번 지인들과 함께 김 화백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대나무, 매화 등 사군자부터 시작했다. 배울수록 그림이 어려워졌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대로 잘 그려나가는데 자신은 영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공부를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실컷 바람을 잡아놓고 도중하차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시 붓을 들었다. 이번에는 사군자가 아닌 산과 나무, 바위를 그렸다. 초가집과 산골, 홍천의 선마을 풍경을 생각나는 대로 그렸다. 조금은 쉬어졌다. 또 생각날 때마다 글귀를 써 넣었다. 차츰 문인화의 구상에 빠졌고 마음이 편해지면서 잡념이 사라졌다. 저절로 치유가 된다는 것을 느꼈다. ‘힐링아트’라는 말도 떠올랐다.

그림을 시작한 지 5개월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김 화백이 같이 그림을 배운 동료들을 모아놓고 “문인화는 담백하고 순수해야 하는데 이 박사의 그림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으뜸이다. 잘 그린 그림도 있고 좋은 그림도 있다”면서 “세로토닌 문화 후원회원을 상대로 경매에 내놓기로 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또한 화첩을 만들고 개인전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며칠 뒤 김 화백과 인사동 갤러리 골목에 갔더니 갤러리 주인들이 다들 서로 전시하겠다고 나섰다. 아니 이게 웬일이람? 뿐만 아니다. 출판사와 갤러리 전시 계약까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이 계속 벌어졌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이희수 교수가 책 제목을 ‘여든, 산이 되다’라고 정했다. 이를 본 서울대 김병종 교수가 ‘여든 소년의 작품’이라는 말과 함께 ‘소년’을 추가하게 되면서 ‘여든 소년 산이 되다’라는 제목으로 출간과 전시를 하게 됐던 것. 그림 여백에 그가 직접 쓴 글귀를 잠시 들여다본다.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흘러오는 세월도 넘칩니다’ ‘맨손의 새는 자유로이 난다’ ‘네가 오는 길 달 지고 마중 나가마’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그런 밤입니다’ ‘사랑은 아프다 하지만 그 아픔이 그립다’ ‘한겨울의 파란 이끼를 피워내는 늙은 바위의 힘’ 등이다. 선시(禪詩) 같은 느낌이 든다고 그에게 말했다.

“문인화 수업은 제게 참으로 많은 걸 깨우치게 했습니다. 저는 시인도, 화가도 아닙니다. 그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던 생각과 작업의 과정을 통해 또 다른 창조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연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무뚝뚝하던 바위에 그렇게 따뜻한 마음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사물의 본질을 보면서 80년 동안 살아온 내공이 자연발생적으로 부려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인화는 치유의 예술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번에 같이 문인화를 배운 동료 중에 성질이 급하고 격한 사람이 있는데 최근 그 성질이 다 없어졌다. 앞으로 일반인들에게 힐링아트를 보급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요즘 탈산업사회로 넘어가는 추세인 만큼 기업 CEO들도 감성과 부드러움으로 경영하는 ‘세로토닌 기업문화’로 눈을 돌릴 때가 됐다고 강조한다.

화제를 세월호 얘기로 잠시 돌렸다.
“역사적으로 이런 일은 처음일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애도가 아니라 분노입니다. 누구 하나 원칙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선현의 말씀 중에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지요. 선현이 교훈을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설마’가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예방에 대한 개념이 없어졌어요.”

세월호로 생긴 집단 우울증을 어떻게 치유하는 것이 좋으냐고 물었다.

“사고가 단발로 끝난 것이 아니라 한 달 이상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충격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정서에는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슬플 때는 슬퍼하고 아플 때는 충분히 아파해야 합니다. 그것을 막으면 안 되지요. 그러나 이제는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유가족들도 기운을 내야 합니다.”

그러면서 세로토닌을 얘기한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후 슬프고 힘든 뉴스를 접하면서 세로토닌 균형이 깨지게 됐으며, 자연과 함께 움직이면서 힐링을 하게 되면 세로토닌 분비가 다시 되살아난다고 말한다. 우울증 등을 치료하는 좋은 약도 많지만 세로토닌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 아침에 태양을 보면서 30분 동안 걷는 것이 가장 좋다고 귀띔한다.

그는 성장하는 중학생들에게 세로토닌 분비와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지금까지 160여개의 북을 제작해 각 학교에 보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원래는 고등학교에는 보내주지 않았는데 단원고만큼은 예외로 하고 그들을 위한 북 제작을 이미 마쳤다. 학교 측이 북을 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대로 보낼 예정이다. 힘든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기 위해서다.

건강관리에 대해 물었더니 “아들이나 딸, 손주뻘 되는 사람들과 늘 기분좋게 만난다. 주말에는 강원도 홍천 선마을에 가서 산에도 가보고 사물도 천천히 관찰하고 그러니 병이 생길 일이 없다”면서 겨울부터 본격적인 문인화 교실을 열어 또 하나의 힐링아트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면 더욱 건강해지지 않겠느냐며 웃는다.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 인생이 더 길고 복잡해졌지요. 따라서 후반전을 위해서는 전반전에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나이 들면 모든 것이 나약해지거든요. 베이비붐 세대들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300년을 해 온 일들을 우리나라는 40년 만에 이루어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들입니다. 후반전을 위해 개인의 노력도 우선 중요하겠지만 기업과 정부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어릴 적 꿈에 대해서는 “중학교 때 주로 유럽 쪽을 무대로 한 세계문학전집을 읽었는데 나중에 커서 혼자 유럽의 낯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을 상상했다. 나이 70이 거의 다 돼 혼자 유럽 그 상상의 무대에서 직접 꿈을 펼쳐봤다”며 웃는다. 나이 80에 새로운 것, 더구나 제일 못하는 그림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의 인생사에도 새로운 용기를 주지 않을까.

■이시형 박사는

193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정신과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스턴 주립병원 청소년 과장, 경북대·서울대 외래, 성균관 의대 교수, 강북삼성병원장,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HWA-BYUNG)을 세계 정신의학 용어로 만든 정신의학계의 권위자로 대한민국에 뇌과학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또한 베스트셀러 작가로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세로토닌하라!’ ‘배짱으로 삽시다’ ‘우뇌가 희망이다’ ‘이젠 다르게 살아야 한다’ 등 76권의 책을 펴냈다. 2007년 자연치유센터 힐리언스 선마을, 2009년에는 세로토닌 문화원을 건립했다. 현재 세로토닌 문화원 이사장,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 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 서울사이버대 석좌교수, ㈔한국산림치유포럼 회장,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이사장, 한국청소년희망재단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김 문 / 서울신문 선임기자 k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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