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독립은 통일이다

 

2020, 새로운 독립운동의 원년展

2020_1118 ▶ 2020_1124

 

두시영_안중근 아리랑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7×91cm_2020

 

 

초대일시 / 2020_1118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강기욱_강충모_고재춘_김선동_김수영_김영중

김윤기_김은숙_나선우_두시영_류충렬_박건재

박신영_박은태_박장근_박재동_박흥순_전진현

정세학-주재환_최병수_최연택_탁영호_황의선

 

주최  (사_(사)민족미술인협회 서울지회후원 / 경기문화재단_경기도기획 / 이종희

 

 

관람시간 / 10:00am~06:30pm

 

갤러리 아리수

GALLERY ARISOO

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13 2층 2전시장

Tel. +82.(0)2.2212.5653 / 070.8848.5653

galleryarisoo.com

 

 

평화와 비폭력의 3·1운동 정신을 통해 통일 조국으로 ● (사)공공예술 들로화 집단과 (사)민족미술인협회 서울지회는 2019년 5월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천로에 위치한 '갤러리 와부'에서 『남양주 독립운동 100주년 기념전』을 개최하였다. 2019년은 3·1운동이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로서 대한민국 전국에서 관련된 문화 예술 행사가 다양하게 진행되었었다. (사)공공예술 들로화 집단과 (사)민족미술인협회 서울지회는 3·1운동 당시 독립 만세 시위의 불을 당겼던 미금면 평내리(현 남양주)의 독립 운동을 재조명하고, 독립운동에 대한 예술가들의 다양한 연구와 참여를 독려하여 남양주 독립운동의 100년 역사를 되돌아보는 전시를 진행하였다. 물론 지역적 문화 인프라의 부족으로 협소한 갤러리와 관람객 확보 및 시민들과의 소통, 문화 행정의 부재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악조건 속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로 많은 숙제를 남긴 것은 사실로 보인다. 다만 현재를 살고 있는 예술인 집단이 역사의 범주안에서 공통된 고민을 하였고 계속하여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큰 소득이라 할 수 있겠다. ● 2019년『남양주 독립운동 100주년 기념전』이 남양주 지역이라는 국한된 장소성에 머물렀다면 이번에 기획되어진 전시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 준비되었다. 일제에 항거하던 독립 운동의 시작부터 현재와 미래에 대한 거시적 통일 담론을 내포하는 이번 전시에서 기획자는 '지난 100년의 기간 동안 우리는 진정한 독립을 하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김은숙_하늘이 바다이고 바다가 땅이듯_천에 아크릴채색_162.2×112.1cm_2020

 

 

1부; 1919, 대한민국 원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3·1운동(1919-1945) / 2부; 2019, 독립운동 100주년(1946-2019) / 3부; 2020 새로운 독립운동 (2020-미래) 총 3부로 기획된 이번 전시에는 40명의 다양한 작가들이 참여하여 3·1운동 100년을 넘어가고 있는 이 시기의 진정한 독립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작품으로 보여 줄 것이다. 또한 2020년을 대한민국의 완벽한 독립이 시작되는 원년으로 선포함으로서 과거의 부끄러움을 씻고 나아가서는 분단의 벽을 허물어 자주통일의 원대한 꿈을 실현시키는 것에 전시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40여점의 그림과 조각, 설치, 만화, 글씨 등이 '갤러리 와부(남양주시)'와 '갤러리 아리수(서울시)'에서 연속하여 전시가 열린다. ● 주지하다시피 역사라는 테마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명하는 기획 전시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작가의 주제의식 등 많은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역사적 문맥 속에 작품을 놓고 본다는 것이 설사 가능하다고 쳐도, 결국 그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시대의 물질 내지는 정신적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기획자의 역할은 얼마나 작가들로 하여금 주제의 틀로 접근시킬 수 있느냐가 전시의 성패를 가름할 것이다.

 

박장근_영원한 약속_합성수지, 화강석_87×45×23cm_2019

 

 

1. 1919, 대한민국 원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3·1운동(1919-1945) ● 1919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한 해이다. 3·1운동을 시작으로 1919년 한해에만 1500회가 넘는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이 정신으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후 1945년 해방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암흑과의 사투와도 같은 기나긴 시간이었다. 우리는 때로 역사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행복의 정원에서 소일하는 나태한 자가 필요로 하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필요로 한다. 역사적 인식의 주체는 억압받는 계급 자신이기 때문이다. ● 1부의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강충모, 고재춘, 김선동, 김영중, 김윤기, 두시영, 박은태, 박재동, 이석숙, 이영학, 탁영호, 황의선)의 역사 인식은 몇 가지로 분류되어 지는데, 절망적인 시대에 직면하여 아직도 책임질 수 있는 예술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역사를 구원의 관점에서 관찰하려는 태도가 그 중 하나다. 또 다른 유형은 직접적이며 분노하는 형태와 희망의 빛을 찾아나서는 표현방법을 구현해내는 작가들이다. 김선동 작가는 「나는 독립운동가다」라는 테라코타 작업에서 비현실적인 거대한 꽃나무 아래 외로이 서 있는 여성을 통하여 독립에 대한 희망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작가 박재동은 「어머니.... 분이야...대한독립만...」, 「들어 가세요 어머니」, 「귀향」의 연작에서 외롭게 지켜내야만 하는 조국의 현실을 어머니라는 모티브를 등장시켜 구원자 내지는 피안의 안식처로서 묘사해 내고 있다. 다소 정돈되지 않은 붓질의 질감은 비현실적이며 꿈꾸는 듯한 상황을 재현해 내고 있다. 두시영의 「안중근 아리랑」은 대동여지도 위에 안중근의 초상화를 그려 넣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아픈 안중근의 형상은 그가 죽기 전에 남긴 글들로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즉 텍스트로 구성된 텍스트화인데 한반도의 지형과 안중근의 강인한 이미지가 오버랩 되며 역설적이게도 한반도의 불안한 미래를 암시하는 듯 보인다. 이영학과 박은태는 「칼의 나라」, 「우남의 초상」에서 각각 날카로운 분노와 역사의 죄인을 희화하여 단죄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박재동_1.어머니..... 분이야......대한독립만.._유채_72.7×91cm_2019

 

 

2. 2019, 독립운동 100주년(1946-2019) ● 광복 후 73년은 포스트 일제의 시기였다. 기득권으로 세습된 친일잔재가 권력과 언론, 관료, 기업, 교육, 문화, 군, 경찰 등 곳곳에 흘러 국민들에게도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이시기는 외세가 아닌 동족에 의해서 수난을 당하고 육체와 정신을 혹사당한 시기이다. 성장제일주의라는 미명하에 철저하게 숨겨진 일제의 잔당들이 국토를 유린하며 득세하여 온 아픈 역사의 기록이다. 과거를 역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것이 원래 어떠했는가를 인식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역사의 순간을 기억으로서 붙잡는다는 것을 뜻한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현대 예술론의 중요한 과제는 기억과 경험으로서 역사적 사실들에게 예기치 않게 나타나는 과거의 이미지를 붙드는 일이다.

 

박흥순_남북동색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1×117cm_2019

 

 

광복 후 분단의 아픔을 표현해 낸 작품들(박신영, 박흥순, 류충열, 손장섭, 이동주, 이승곤, 정세학)과 평범한 현대 회화의 재현방법으로 7.80년대의 고속성장 시대를 살아온 모습들을 표현한 (변대섭, 서수경, 손금식, 양형규, 최연택)작품들은 대부분 아픈 과거와 현실이 교차되어 묘사되어 있다. 다음 유형은 시대를 향한 분노와 저항, 슬픔 (나선우, 박건재, 변사무엘, 송효섭, 엄순미, 주재환)등을 표현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박신영의「선과 선을 넘어서」는 분단의 3·8선을 넘나드는 잠자리가 연상되는 서정적 슬픔이 느껴진다. 박흥순은 「남북 동색」에서 철조망에서 피어난 엉겅퀴를 통하여 분단국가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는듯하여 다소 아프면서도 화면 뒤쪽 섬 주변에 배치 되어 있는 군함 같은 형상들은 전면의 꽃과 예리한 각을 이루어 긴장을 극대화 시키고 있다. 손장섭의 「DMZ」 연필 드로잉은 비무장지대의 풍경을 한 폭의 풍경화처럼 재구성함으로서 전혀 새로운 이미지의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작가의 전혀 진지하지 않은 작업 태도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들의 태도와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여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붉은색으로 강하게 써놓은 글자 위로 잘 자란 소나무를 그려놓은 송효섭의「문자도-혈-민주주의 나무」는 "The tree of liberty must be refreshed from time to time with the blood of patriots and tyrants"-Thomas Jefferson의 무서운 말이 생각나는 그림이다. 전체적인 구조는 분재의 분위에 놓인 잘생긴 분재처럼 보이나 그 보색의 대비에서 전달되는 힘은 그림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역할을 넘어 일견 사회주의식 포스터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이승곤의 「어머니」는 한 화면에 여러 가지 상황을 배치하여 다큐멘터리 효과를 준 그림이다. 어머니의 사실적 묘사를 화면의 중심에 배치한 후 전쟁의 참혹한 상황들을 흑백으로 배열함으로서 과거와 현재를 구분 짓고 있다. 역사는 야누스와 비슷하여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과거를 바라보건 현재를 바라보건 우리는 늘 하나의 역사를 선택하여 바라보는 습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이 진실이건 거짓이건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 다만 자기가 정한 것만 보려고 한다는 것에서부터 늘 비극은 시작되어 진다. 「비무장새」를 그린 정세학은 다소 아름다운 그림으로 분단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블루와 그린으로 병치된 화면의 구성과 만리장성이 연상되는 철책의 구조는 너무나 장대함으로 다가와 도저히 파괴할 수 없는 물질로 느껴져 좌절감을 안기는 듯하다. 주재환의 「어머니 영웅」은 베트남전에서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베트남 금성홍기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줄거리와 함께 배치한 작품이다. 한 어머니의 슬픔은 그 시대의 아픔을 대변한다. 텍스트 말미에 쓰여진 '역사는 윤리와 만나야 한다'라는 진실에 가까운 글이 뼈를 때린다. 우린 너무 안 좋은 시절을 지나온 것 같다.

 

정세학_비무장새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1×75cm_2019

 

 

3. 2020 새로운 독립운동 (2020-미래) ● 잃어버린 100년의 시간을 되찾는 방법은 그 시대를 지켜온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2020년 대한민국은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고 적폐를 청산하는 원년으로 삼았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민족의 대 부흥기를 맞이할 준비를 하여야 한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독립은 분단으로부터의 독립, 즉 통일이다. 외세의 도움 없이 스스로 만드는 완벽한 통일만이 이 암울한 시절을 끝장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백두산 호랑이의 기백을 전통적 민화의 기법으로 형상화하여 독립적인 통일의 염원을 묘사한 강기욱의 「독립! 통일」, 화면을 흑과 백으로 분할하여 전쟁의 흔적을 희망의 언어로 승화시킨 김수영의 「안식의 언덕」, 인상주의풍의 서정적인 풍경에 한반도 지형의 여백을 만들어 새로운 역사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김은숙의 「하늘이 바다이고 바다가 땅이듯」, 신현경은 흙으로 만든 종이 위에 찢긴 풍선을 매단「우리의 통일」을 통하여 불안하고 힘겨운 미래, 통일 등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이동주는 「종전고지」라고 명명된 작품에서 만개한 꽃들을 전장에서 피어나게 하는 긍정적 화법을 선보인다. 이종희와 박장근은 각각 「휘영청 뜬 보름달처럼 통일이여 아침 빛으로 찬란히 오라」, 「영원한 약속」에서 통일에 대한 염원을 숨기지 않고 직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종희의 8광 화투에 보름달처럼 환하게 뜬 달빛은 희망의 횃불처럼 찬란하다. 이영선의 「통일의 실을 잣다」는 한올 한올 실을 자아 통일을 기원하는 진정이 묻어난다. 임진택의 「아리랑애국가」는 새롭게 제작되어야 할 애국가를 제시하고 있다. 전진현의 「하나되어」, 「숨쉬다」는 옻칠재료기법이라는 독특한 제작방식으로 영토와 국가라는 인식에 한발 다가서고 있는 듯 보인다. 최병수의 금속작업인 「평화통일」은 완전한 형태의 완성체로서의 한반도를 표현해 내었다고 본다.

 

최병수_평화통일_철_35×20×0.5cm_2014

 

 

새로운 독립운동의 원년인 2020년 가을, 그 어느 때보다도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한반도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것도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청산해야 할 적폐는 산적해 있고 예술가로서 이 시대를 양심적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숙명도 함께 안고 가야 한다. 또한 통일을 이루기 위한 예술인으로서의 지분을 감내해야 하며, 희망의 메시지도 제시할 의무가 있다. 어려운 문화 인프라 여건에서도 지속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사)공공예술 들로화 집단과 (사)민족미술인협회 서울지회의 이번 전시가 의미 있는 영감의 원천으로 작동되기를 기대해 본다. ■ 이종호

 

 

Vol.20201111h | 진정한 독립은 통일이다-2020, 새로운 독립운동의 원년展



세월 참 빠르다.

문영태화백이 세상을 떠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째란다.

 

지난 19일 문영태화백의 3주기를 맞아

김포 월곶면 보구곶리에 위치한 민예사랑에서 문영태 유작전이 열렸다.

두 권의 추모집, “심상석-문영태누가 몰가부를 내놓겠는가출판기념회를 겸하여...


 

그의 작품들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전시된 유작들을 둘러보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문영태화백이 옆에서 싱긋이 웃고 있는 듯 착각이 들었다.

그 전시공간은 문화백이 많은 시간을 보낸 집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 그곳에서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작품 보여 달라니까, 약 올리듯 전시나 한 번 해볼까라는 아리숭한 말을 했던 것이다.


 

전시된 작품들도 사진 촬영할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전시를 준비한 미망인 장재순여사의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었다.

소품의 배치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절제미를 보여주며 작품을 돋보이게 하였다.

이 전시를 위해 전시장 구조를 바꾸는 대대적인 공사를 벌여 재개관했다는데,

작품 배열에 얼마나 신경 썼는지, 문영태 화백의 체취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의 대표작이나 마찬가지인 상처 난 두개골을 보면, 바로 시대정신이 생각난다.

제일 먼저 문영태씨 그림을 본 것이 시대정신표지에 실린 작품이기도 하지만,

우리민족의 아픔에 앞서, 분노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김진하씨도 이야기했지만,

나 역시 두개골의 상처를 광주항쟁에서 피 흘린 민중의 상처로 보았다.

판화가 오 윤씨의 그림이 동적이라면

그의 그림은 정적이면서도 더 충동질 하는 매력이 있다.



 

민초들의 질긴 생명력과 한()의 정서가 묻어나는 심상석'시리즈는

우리나라 민중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내 세우기 싫어하는 선비적 성격으로,

그 작품들이 부각되지 못한 채, 덜 평가되었다는 견해들도 생각해 볼 문제다.


 

신학철선생 말처럼, 그는 지사(志士)의 기질을 가진 사람으로 화가이기 전에 문화운동가였다.

전시와 출판기획은 물론 문화운동가로서, 저술가로서, 더 많은 활동을 펼쳐왔다.

1980년대 초반 서울미술공동체를 시작으로 시대정신’, ‘삶의 미술전’,

해방40년 역사전등 중요한 전시와 출판을 주도했다,

민족미술협회를 창립하고 그림마당 민을 운영하며

민중미술을 확장시키며 현장을 지켜 온 장본인이다.


 

90년대, 지금의 김포 문수산방에 정착한 이후에는

민속학적 문화에 바탕을 둔 저술 활동에 몰두했다.

진보월간지 사회평론'문영태의 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성()'을 연재하였는데,

그의 깔끔한 문체와 독보적인 비평의 글들은 독자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무렵에는 사진가 이지누씨를 비롯한 16명의 작가들로

'경의선모임'을 결성한 후 사진 작업도 했다.

다들, 그림이나 문학, 사진 등이 예술이기 전에 사회를 변화시키는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한 작가적 문제의식은 사진집 분단풍경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그 뒤 시인 김정환씨가 대본을 쓰고 자신이 사진을 찍어 두 사람을 출판하는 등

사진작업도 열심히 한 팔방미인이다.


 

이번 유작전은 연필화 심상석’(心象石) 연작부터 사진작업인 분단 풍경까지

고인의 대표작들을 선보이는 전시인데,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석기를 연상시키는 돌의 형상으로 민중 신앙을 표현했던 심상석

광주항쟁을 겪으며 폭력에 의한 상처와 정신적 상흔을 상징하는

상처투성이의 형상으로 변해가는 과정도 볼 수 있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을 둘러보며 남다르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생전에 벽에다 쓰 놓은 古風이란 붓글도 그렇지만,

그가 사용한 서재에서 문영태 화백을 증언하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책이나 집기는 물론 그 어느 것 하나 그의 손 때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리고 문영태화백의 작품과 활동 자료가 담긴 심상석-문영태

그가 집필한 문집 누가 몰가부를 내놓겠는가도 출판되었는데,

뒤늦게 심상석을 펼쳐보며, 도록을 만들고 전시를 추진한

나무아트김진하씨의 안목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정확하게 분석하고 짚어 낸 그의 통찰력도 대단하지만,

찾아 낸 자료를 꼼꼼하게 정리하여

문영태화백의 전모를 제대로 살펴 볼 수 있도록 편집해 놓았다


   

 

그 날 개막식은 문영태화백 미망인 장재순여사와 아들 문지함, 김윤지 내외,

그리고 딸 문지민 등의 가족을 비롯하여 많은 선후배 화가와 학교동문,

문화예술인 1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가 박진하씨 사회로 진행되었다.



    

축사에 나선 민중미술가 신학철선생은 정갈한 선비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본 작품하나하나에 그의 인격이 들어 있다고 했다.

그가 그린 상처 난 뒤통수는 분단의 아픔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통일과 민주화에 열정을 쏟던 그 때 모습이 그립다고도 했다.


    

이재권동문은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영태는 함석헌선생의 장자관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심취해있었다고 한다.

그림을 보는 관점이나 칼라를 보는 관점도 장자처럼

천하를 너그럽게 놓아두기에 있었다고도 추억했다.


 

그 외에도 성기훈 마을이장과 김정환시인, 김진하, 이인철, 홍선웅씨 등

많은 분들이 그의 업적을 기리며 추모의 인사말을 했고,

자리를 마련한 장재순여사의 감사 인사도 따랐다.

집안 곳곳에 그이의 손길이 남아 더 마음이 아프다

사무친 그리움을 달래기도 했다.


 

그 외 참석한 분으로는 류충렬, 김명희, 박불똥, 안창홍, 장경호,

이재민, 손기환, 김영중, 박정현, 양정애, 정재숙, 정동용, 김 구,

한상진, 김재홍, 최경태, 김종길, 양상용, 노광래, 편근희, 정영신,

나종희, 김영진, 송용민씨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그 전에는 유흥준씨가 다녀갔다는 이야기도 했고,

밤늦게는 유연복씨와 김준권씨가 왔다는 소식도 들었다.


 

문영태화백의 유작전은 오는 62일까지 김포 보구곶리에 위치한

겔러리 민예사랑’(010-5357-5256)에서 열린다.

여행하듯 훌쩍 떠나시어최북단 마을의 정취에 빠져 좋은 전시 한 번 관람하기 바란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글 : 조문호
























































































































































그날 찍은 사진들이 하나같이 한변의 촛점이 선명하지 않아 카메라가 고장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렌즈를 살펴보니, 막걸리 자욱이 선명하네.

난, 소주를 마셨는데, 그기 왜 막걸리가 들어갔을까?

아마 카메라는 막걸리가 마시고 싶었던 모양이지.

나만 취하면 그만이지, 너까지 취해 버리면 난 어떻해!

사진 물어 내놔~













 

 

 


 

 

 

지난 26일 열린 박근혜퇴진 5차 촛불집회는 눈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190만에 이르는 인파가 전국을 메워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동자동에 사는 빈민들도 쪽방 촌에 집결해, 인사동 ‘남인사마당’으로 이동했다.
처음 내린 눈발이 빗방울로 바뀌기 시작했으나,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인사동 거리를 휩쓸며 “박근혜 방 빼~”를 외쳤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냇물이 강물로 바뀌고, 강물이 바닷물로 변해 서울 도심은 인파로 넘쳐났다.

함께 이동하던 동자동 주민들도 어디로 휩쓸렸는지, 사람에 밀려다녔으나 힘은 솟구쳤다.

그 날 '청계광장'에서 열린 ‘물러나라 쇼’에서는 가수 안치환이 나와 자신의 히트곡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로 바꾸어 부르기도 했고, 광화문에서는 가수 양희은이 참석해 ‘상록수’를 불러

노랫말의 의미에 시민들을 울리기도 했다. "근혜는 아니다~ 근혜는 아니다~"란 노랫소리가 북한산에 울려 퍼졌고,

 “박근혜 방 빼, 박근혜 방 빼”란 구호를 리듬에 맞추어 외치기도 했다.

 

이날 거리에서 ‘집에 가소’ ‘하야 하소’ 등의 글을 써 붙인 소도 눈길을 끌었지만, 하유스님이 보여 준 광란의 춤도 열기를 북돋았다.

경찰차벽을 꽃모양 스티커로 도배한 꽃 벽도 아름다웠고, 딱딱한 구호대신 재치와 해학이 담긴 깃발도 곳곳에 등장했다.

비아그라를 풍자한 “비우그라‘,”하야그라’가 등장했고, 청와대가 고산병 예방약으로 샀다는 해명에서 따온

‘한국고산지 발기부전 연구회’라는 단체 이름도 있었다.

요즘은 프로포폴 의혹에 이어 비아그라를 구입했다는 등 입에 담기도 창피한 이야기까지 나온다.

약물의 등장은 국정을 뒤흔들어버린 ‘박근혜 게이트’를 순식간에 ‘관음증’ 수준으로 바꾸어 놓았다.

청와대를 200미터 남긴 청운 효자동 주민센터까지 진입해 경촬과 대치했으나,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 

길거리를 지나치다 무예가 하태웅씨를 만나기도 했고, 김낙영시인을 만나기도 했다. 

 

늦은 시간, 광화문광장으로 다시 빠져 나왔다.

블랙리스트 예술인 캠핑 촌의 구석자리는 너무 어두워 번번히 사진을 망치지만, 아는 분들을 찾아보았다.

어두워도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류충렬화백과 성기준씨의 모습이 보였다.

그 이틑 날 오후,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그 년 낮 짝을 보며 또 한 번 열 받아버렸다.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보톡스 맞은 쌍판대기에 음흉한 꼼수만 이글거렸다.

나야 텔레비젼이 없어 그 년 볼 일이 많지 않지만, 매일 같이 티비를 보는 국민들은 얼마나 열 받을까?

주둥이가 개 밑구멍 같이 생긴, 변호하는 놈의 낮 짝도 보게되면 밥맛이 떨어진다. 

대국민 담화문에서 지껄인 내용은 하나같이 국민들의 분노를 부채질하는 변명으로 가득했다.

밤을 지새우며 고민 했다는 내용이 또다시 국민들을 기만하는데 그쳤다.

결국, 국회에 공을 넘기며 시간을 벌겠다는 꼼수였다.

마치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처럼 얘기했지만, 담화문은 시간끌기 위한 기만술책일 뿐이었다.

박근혜가 시간을 벌면서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증거인멸과 은폐, 그리고 퇴진 후 입지를 보장해줄

정권창출인 것이다. 범죄자 박근혜는 이제 시간을 끌것이 아니라 즉각 퇴진하여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

진정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틀 끝 만치 라도 있다면, 이 것 저 것 계산하지 말고 당장 하야해라.

무능한 네가 그 자리에 있는 시간만큼 나라가 더 위태로워진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9일에 열린 박근혜 퇴진 4차 촛불집회 사진이다.
요즘은 여러 가지 할 일이 많아 일주일이 지나도록 사진정리를 못하고, 이제 사 올린다,

그날 광화문에서 류충렬 화백을 위시하여 여태명, 이도윤, 정고암, 정동용, 류연복, 장순향, 김준권,

박불똥씨 등 많은 작가들을 만났다,

그 날도 많은 국민들이 박근혜 하야를 외쳐댔지만, 단 한 건의 탈도 없이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정의가 살아 있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시민들의 성숙한 문화시위였다.
그렇지만 국민을 그토록 분노하게 만든 당사자는 아직까지 막가파처럼 청와대에 버티고 앉은 것이다.
국정을 농단한 죄가 명명백백한데도 검찰수사까지 거부한 채, 나라를 막장으로 끌어가고 있다.

늑대 같은 전두환은 결단력과 깡패처럼 의리 하나라도 있었고, 여우같은 이명박은 눈치라도 볼 줄 알았다.
그런데 무능한 박근혜는 결단력은커녕 눈치코치도 없는 것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 같다.
아니 인간이 아닌 것 같다. 왜 이렇게 우리나라는 대통령 복이 없는지 모르겠다.
뛰는 국민에 기는 대통령인 꼴인데, 오늘 따라 노무현 같은 국민을 위한 진정한 지도자가 그립다.

아무튼 국민들을 이토록 똘똘 뭉치게 만든 공로는 인정하지만, 이 추운 날씨에 더 이상 국민들을 힘들게 하지마라.
하루빨리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하야하라. 더 이상 지체하면 나라 망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1일, 북한을 눈앞에 둔 서해안 최북단에 자리한 김포 월곶면 보구곶리의 고 문영태화백의 자택을 찾았다.

짱짱한 나이에 세상을 떠나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던, 그의 추모전을 위한 자료와 작품들을 촬영하기 위해서다.

지난 달 미망인 장재순여사의 제안으로 평소 가까운 지인 아홉 명이 문영태화백 추모전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추진위원장을 맡은 민미협 회장 이인철씨로 부터 연락 받은 것이다.

약속대로 금능역에서 이인철씨를 만나 함께 떠났는데, 꼬불꼬불 낮 익은 길 따라가니,

미망인 장재순여사는 정원을 가꾸고 계셨고, 류충렬화백이 먼저 와 계셨다.
붉은 단풍잎들이 곳곳에 흩어 진 고인의 저택은 처연했다.

문형의 손길이 느껴지는 곳곳에서 삶의 무상함을 본 것이다. 도대체 사는 게 무엇인지...

점심 식사 후, 시작한 촬영 작업은 이웃 사는 판화가 홍선웅씨도 도와주었다.

장재순여사가 꺼내주는 자료 상자를 이인철, 류충렬씨가 분류하여 나에게 넘겨주었는데,

얼마나 자료를 꼼꼼히 챙겨두었는지 초등학교 때 받은 상장까지 다 모아두었더라.

스케치 북에서부터 일기와 작업노트, 판화와 메모지 등 자료의 분량이 너무 많아 한나절이 후딱 가버렸다.

자료들에서 평소 문형의 치밀함을 엿 볼 수 있었는데, 몇 자 적어 놓은 낙서조각에도 삶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작품들은 꺼내 보지도 못하고 만찬장으로 갔는데, 회에다 고급와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 얼마 만에 만나는 호화 만찬이던가?

술 한 잔의 가격을 안다면 도저히 목에 넘길 수가 없는 와인을 쭉쭉 들이키는 호사를 떨었는데, 기분 좋게 취했다.

고인의 영정사진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으니, 마치 문형과 마시는 듯, 옛 생각이 새록새록 했다. 

뒤늦게 나타난 화가 박건씨의 코믹한 제스처에 한 바탕 웃기도 했다.

술도 취했지만 자정이 넘어, 살아생전 문형이 사용하던 방에서 하룻 밤 지냈다.
평소 술이 깨야 자는 습관 때문에 잠을 못 이뤄, 이 생각 저 생각 빠져든 것이다. 

문형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는데. 내일 서울에서 벌어질 촛불시위를 물어보았다,


“내일 쯤, 그 년이 하야 할까?”

“택도 없는 소리, 그 뻔뻔스러운 상판대기 한 번 보소! 쉽게 물러 날 년인가...”
“그렇다면 강제로 끌어내려야지, 촛불을 햇불로 바꿔 청와대까지 쳐 들어가야지”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