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은 고 노회찬의원의 영결식이 있던 날이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려던 당초의 계획은 엉뚱한 일로 무산되고 말았다.

용산경찰서사이버수사대에 출두하여 조사받는 날과 겹쳐진 것이다.


 

3년 전 수난 당하는 동강할미꽃, 최초 발견한 사진가는 이석필씨다.”란 글을

인사동 사람들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는데,

뒤늦게 야생화 사진작가 김정명씨가 명예혜손으로 고소장을 접수시킨 것이다.

고소장이 접수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지가 숱한 시일이 지나도록 감감소식이었는데,

뒤늦게 주소지인 용산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그가 찍어 발표한 동강할미꽃 사진이 야생화의 생태를 헤치는 잘못된 방법이라는 점과

알려 진 내용이 사실과 다른 점을 바로잡기 위해 블로그에 올렸는데, 그 내용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사실과 달리 동강할미꽃 최초촬영자로 나서며 정선군의 명예군민증까지 받지 않았던가?

동강할미꽃 사진은 그가 촬영하기 10년 전 태백의 야생화사진가 이석필씨가 먼저 찍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1999년 동강환경사진집에 실린 이석필씨의 동강할미꽃 사진만 하더라도 김정명씨가 만든 야생화 달력보다 앞서고 있다.

    

 


문제는 누가 먼저 찍었냐보다 동강할미꽃에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거나 꽃에 붙어있는 마른 풀을 뜯어내는 등

생태환경을 파괴하여 내 놓은 그의 사진에 있는 것이다.

야생화사진을 심사할 위치에 있는 중견사진가의 꽃 사진이 그러할진데,

어찌 사진 배우는 아마추어 사진인들이 그의 사진을 따르지 않겠는가?

그 글을 올린 것도 따라하는 아마추어 사진인들의 만행을 근절하기 위한 자구책이기도 했다.


 

야생화사진이란 생태를 파괴하는 것 보다, 자연환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좋은 사진이라는 것이지,

김정명씨 개인에 대한 감정이 있거나 명예를 혜손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변명으로 일관된 고소장을 읽어보며, 부끄러움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몇 가지 챙겨간 증거자료를 제출하며, 수사관의 질문에 답변하다 보니 조사시간이 세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살다보니 별일도 다 있다며 동자동으로 돌아왔으나, 곧 바로 인사동 유목민으로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조준영 시인으로 부터 모처럼 인사동에서 술 한잔하자는 사발통문을 받은 것이다. 

반가운 인사동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야 마다할 수 없지만,

노회찬의원의 영결식이 있는 27일까지는 술을 마시지 않기로 한 스스로의 약속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그동안 술자리가 여러차례 있었지만 이가 아프다는 핑계로 술을 사양해 왔고,

그제 밤에는 어머니 제사를 지내면서도 음복 한 잔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약속장소에는 조준영시인을 비롯하여 조해인, 장경호, 공윤희, 전활철, 박혜영, 김상현씨가 먼저 와 있었고,

뒤늦게는 유진오, 정영신, 이인섭, 이 현, 황예숙, 박상하씨도 나타났다.



모임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인사동 사람들블로그에 올라오는 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내용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때로는 당사자의 반감으로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들을 했으나,

잘 못을 지적하고 바로 잡는데 어찌 친분을 따질 수 있겠는가



오는 8월25일 아들 햇님이 장가 갈 걱정에서 부터, 속도위반으로 손자를 얻어 일타 쌍피를 쳤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는데,

하필이면 사돈 될 두 내외가 16년 전 영월 천포문학회에서 거시기 퍼포먼서로 난리 친, 그 집 주인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더니,

조준영교수는 한 수 더 떠 내가 찍은 그 때 사진을 핸드폰에서 보여 주었다.



조준영교수는 쪽 팔린다며, 부인의 투정을 털어 놓기도 했다.

화가 이청운을 검색해보니, 죄다 조준영씨와 술 마시는 사진만 나오더라는다.

"이젠 같이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는 처지가 되었으니, 너무 탓하지 마시라요."



사실 사진판이나 문화예술계는 물론 즐겨 찍는 인사동이나 동자동 사람들 대개가

가깝거나 잘 아는 분들이다.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 이야기를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부터라도 정신차려야 하는 것은, 나이 들어가며 더 이상 쪽팔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나중엔 왕따가 되어 외로워지더라도 내가 할 마지막 일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노회찬의원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피할 수 없는 관심이었다.

문대통령이 문상은 가지 않으면서 장례기간 중에 광화문 호프집에서 젊은이들을 만나 맥주 쇼를 벌였다는 이야기다.

정치 자체가 쇼를 필요로 하는 것이겠지만, 정치적 동지로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기야 박원순 시장까지 옥탑방에서 쇼를 벌이고 있지 않는가?

문제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런 쇼에 넘어가는 순진함에 있다는 것이다.


 

장경호씨는 인사동 모임을 묵사모로 하자고도 했다.

민초연대로 하면 참여할 사람이 많겠지만, ‘묵사모가 더 좋다는 것이다.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한다는 默思의 뜻은 좋으나 단번에 묵사발이란 말부터 떠올라 좀 그랬다.

하기야 모임의 진정성이 더 중요하지 그까짓 이름이야 무슨 소용이랴!

단지, 술 마시고 노는 모임에서 인사동을 위해 뭔가 보탬이 되는 모임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나도 모르게 술을 마시고 말았다.

고인도 그 시간엔 편히 영면에 들었겠지만, 숱한 시름을 술잔에 풀어놓고 말았다.


 

부디 이 땅에 진보정치가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하늘나라에서나마 잘 지켜주소서!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노회찬 의원 죽음으로 몇 일동안 슬픔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자괴감에 다음 세상이 있는가의 고민도 따랐다
저 세상에서라도 못 다한 진보정치의 뿌리를 내려, 다 잘사는 평등의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진보정치의 롤 모델이었던 그가 없는 세상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지난 26일 오후 무렵, 연세대학교 대강당에 마련된 고 노회찬 의원 추모식장을 찾았다.

추모 나흘째이자 발인을 하루 앞둔 이날까지 빈소가 마련된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는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 긴 조문 행열에는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의 차별도 없었고, 노동자이건 국회의원이건 다 같이 순서를 기다리며 추모했다.

노 의원에 대한 추모 글이 적힌 노란 포스트잇은 현수막을 넘어 빈소 앞 까지 빼곡했다.

  

추모문화제가 열린 1600석의 대강당 1·2층은 일찌감치 꽉 들어찼다.

강당에 들어오지 못한 많은 분들은 야외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추모제를 지켜봐야 했는데,

여러분 함께 가시겠습니까?” 라는 노회찬 의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차마 카메라를 들 수 없어, 한 쪽 구석자리에 앉아 추모식을 지켜보았다.

사진을 찍으려면 여기 저기 돌아다녀야 하지만그 날만은 조용히 추모하고 싫었다.



 


유시민씨는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우리에게 다음 생이란 없다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렇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만나는 세상이 더 정의롭고 더 평화로운 곳이면 좋겠습니다.”


추모문화제 사회를 맡은 김미화씨는 제가 의원님께 장미꽃을 받았지만 고맙다는 인사도 못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장미꽃 대신 국화꽃 한 송이를 놓게 됐습니다 울먹였다.

객석에서도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영화배우 박중훈씨는 평소 의원님이 해주신 말씀이

"말 잘하는 사람보다 행동 잘하는 사람을 더 존경하고, 말 잘하는 사람보다는 글 잘 쓰는 사람을 인정한다며,

그중에서도 우위에 있는 사람은 단연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가르쳐주셨다. 제가 노회찬 의원님을 따르고 형님으로 존경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성향이나 생각을 떠나 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고 일생을 던진 그런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대형 스크린에 고 노회찬의원이 나와 말했다.

아들·딸 같은 수많은 직장인이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이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

청소되고 정비되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쳐왔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 손이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다.” 

몸은 죽었지만 정신은 살아 있는 듯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추도사에서 사시사철 낡은 구두를 신고 다닌 대표님이 생각난다며,

살아계실 때 구두 한 켤레 못 사드린 게 마음에 걸린다"며 아쉬워했.


KTX 해고승무원으로 최근 복직이 결정된 김승하씨는 님은 우리를 지키려고 평생 살아오셨으나 우리는 님을 지켜드리지 못했다.

죄송하고 죄송하다. 이제 노회찬 의원님이 남기신 뜻을 세상의 모든 약자들이 모여 펼쳐나가겠다. 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 옆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모습 기억하고 그 뜻을 이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친구들은 노회찬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슴 속에 고이 묻어 영원히 간직하였습니다.

노회찬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며 고인의 중학교 친구 김봉룡씨가 추도사를 읽었다.


그리고 고인의 큰 조카인 노선덕씨가 유가족을 대표해 추모객들에게 인사 드렸다.

한 때 노씨는 고민이 생겨 큰아버지께 조언을 구하러 간 적이 있단다.

"어떤 선택이 최선의 선택인지 알 수 없을 때는 가장 어려운 길을 걸으라고,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하셨다면서 이젠 삶의 이정표가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 추모사에 나선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한 동안 마이크 잡은 손이 떨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저는 노회찬 없는 정치,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노회찬의 꿈이 제 꿈이고 우리 정의당의 꿈이고,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라고 저는 믿습니다.

끝까지 우리 대표님하고 함께 가겠습니다.”


울먹이는 심상정 의원의 모습에 참았던 울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그만 일어서야 했다.

추모석을 향해 카메라를 겨누었으나, 눈물에 가려 파인더가 보이지 않았다.



 


다들 눈물 흘리며 인간 노회찬을 그리워했고,

초지일관 신념을 지켜온 정치인 노회찬과의 이별을 슬퍼했다.

 

노회찬 의원의 자결은 결코 헛된 죽음이 아니었다.

살신성인의 그 정신은 약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는 토양을 만들었다.

진보정치가 추구하는 정의로운 사회건설에 기름을 부었다.





이제 부디 세상사 모두 잊으시고, 편안하게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사진, / 조문호










김동진, 문진우, 정남준의 다른 시선, 28일까지 ‘갤러리브레송’에서 열려  


2018년 07월 25일 (수) 17:32:16 조문호 사진가 press@sctoday.co.kr



이 무슨 날벼락인가? 전시리뷰를 작성하려 컴퓨터를 열어보니, 노희찬 의원 자살 소식이 떴다. 눈을 의심했으나,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현실이었다.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의 한사람으로 우리나라에 그만한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있더냐?

지난 일요일은 여야 원내대표 다섯 명을 싸잡아 욕하기도 했다.

미국을 방문한 원내대표들이 워싱턴DC 의사당 앞에서 연예인들처럼 뜀박질하는 사진을 보았기 때문이다.

연출시킨 사진기자 탓으로, 여기며 잘 다녀오기만 바랬는데, 어찌 이런 일이 생겼더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온 종일 밖에 나가 공원을 싸돌아다녔으나, 도저히 슬픔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어찌 좋은 사람은 먼저 데려가고, 나쁜 놈들이 잘살게 할 수 있는가? 세상을 원망하며 분노했으나, 아무 소용없었다.

난 노무현 전대통령이나 노회찬씨를 정치인으로 보지 않고 지도자로 본다.

정치하는 장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하기에, 인간적으로 가슴이 따뜻한 그들은 그러질 못한다.

이제 그 분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이 기회에 정치자금법의 대수술과 함께 정치개혁을 이루어 내야 한다.

슬픔은 뒤로하고 우리 모두 냉정을 찾자.


당신이 추구해온 가치가 꼭 실현되길 바라며,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 <부산사견록> 전시장에서 왼쪽부터 정남준, 문진우, 김동준 (사진=조문호)



‘부산 사(思)견록’전이 지난 20일 충무로 ‘갤러리브레송’에서 개막되었다.

부산의 중견 사진가 김동준, 문진우, 정남준씨 등 세 사람이 각기 다른 생각의 시선으로 바라 본 부산이다.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범5동 매축지의 골목풍경을 찍은 문진우의 ‘매축지’는 마치 죽음의 그림자처럼 짙은 어둠이 깔려 있다.

정남준의 ‘영도 수리조선소’는 조선소 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노동의 의미을 일깨운다.

삶의 본질을 비틀지 않고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김동진의 ‘해운대’는 소외, 외면, 박탈, 욕망, 갈등 등 사회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자기만의 목소리로 기록했다.

각기 다른 삼색의 ‘부산사견록“은‘갤러리 브레송’ 3-3시리즈 두 번째 기획전이다.



    


▲ 사진-정남준



‘부산사견록’이란 제목 차체가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추진한 '부산참견錄을 떠올리게 한다.

'부산참견錄'은 매년 중견사진가 한 명을 선정해 부산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개인적 친분에 의한 작가선정으로 결과가 들죽 날 죽 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서 태어나고 자란 부산의 사진가가 철저히 배제되어 왔다는 사실은 지역작가들의 소외감을 살 수도 있지만,

자칫 뿌리 없는 사진이 될 수도 있다.



    

▲ 사진-김동진



때로는 외지인의 낯선 시선이 필요할지 모르나 바닥에 뿌리내린 자의 익숙한 눈빛에 따르지 못한다.

문진우의 ,매축지의 소시민들과 해변에서 잡아 낸 김동진의 부조리한 장면,

정남준이 찍은 조선소 노동자의 정면 사진은 또 다른 부산의 모습이다.

각기 사진들이 갖는 의미나 우열은 풀이하는 바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일단은 ‘부산참견록’을 의식한 전시라는 느낌도 든다.

전시 기획자는 사견록의 ‘사’자가 생각 사(思)자라 했다.

생각하고 보고 기록한다는 의미로 세 사람의 작품 성격을 한 마디로 나타내고 있다.



    

▲ 사진-문진우



“문진우의 사진은 부산의 아주 오래된 마을, 아직도 그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매축지라는 장소를 기록한 것이다. 문진우가 기록한 그 장소성은 사람이 이 땅에서 추방되어야 하는 슬픔을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그림자 안에 있거나 온전치 않은 형태로 나타난다. 사진가의 슬픔이 배어 있으니 슬픔으로 읽어내지 않을 도리가 없지만 그 읽기는 과학적 읽기가 아닌 문학적 읽기다. 정남준은 노동자의 삶을 담았다. 인간은 일 하는 기계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임을 말하는 전형적인 사회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노동이 정당하게 인정되지 않은 이 세상에서 사는 노동자의 모습을 어둡게 그리지 않은 것은 역설적이거나 그들이 세계의 주체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 것이다. 김동진의 사진은 역사 인식이 강한 사진이다. 세상은 일반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게 아니고 개별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보편이란 과학성을 숭모하다 보니 사람이 소외되고 세계가 비정상이 되어 감을 말하고자 한다. 그래서 다른 이들은 세계를 그렇게 보지만 나는 세계를 이렇게 본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의 사진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진의 문법으로부터 벗어나 있음은 바로 그런 그의 역사 인식 때문이다.”고 사진비평가 아광수교수가 서문에 적고 있다.

이 전시는 28일까지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02-2269-2613)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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