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약칭: 인사모)이 결성 된지도 10여년이 넘었다.

 

통인가게김완규회장이 주축이 되고, 원로변호사 민건식씨가 회장을 맡은 이 모임은

대법관을 지낸 박일환 변호사, 지검장에서 이화여대로 말을 갈아 탄 조균석 교수, 선우영변호사,

외환은행 박상균 지점장, 공직자윤리위원장 지낸 이상배씨, 해병대장성으로 퇴역한 윤경원씨,

계명대석좌교수 김양동화백, 이목을화백, 김근중화백, 건축가 김동주씨, 도예가 이흥복씨,

사업가 송재엽, 강윤구, 박원식, 강봉섭, 전국찬씨 등 각계에 내 노라 하는 인사들이 20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문제는 해가 갈수록 참여율도 저조하고, 인사동을 사랑하는 진정성이 없다는 것이다.

최소한 유능한 신진작가를 발굴하여 지원한다거나 인사동을 위해 기여하는 일들을 해야 하는데,

여느 모임과 같이 한 달에 한 번씩 지인들을 만나 회포나 푸는 정도였다.

그럴 거라면 무리하게 바쁜 시간에 쫓길 필요 없다 싶어 몇 달 빠지다,

지난 27일 오후6시에 있었던, 11월 정기모임에는 어렵사리 참석하게 되었다.

오랜 인연이라 근황들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인사동 툇마루에서 열렸던 이번 모임에는 민건식 회장을 비롯하여 열 분이 참석했다.

박일환, 김완규, 선우영, 박상균, 송재엽, 강윤구, 박원식씨와 함께 가나문화재단이사장

김형국 교수가 처음으로 나오셨다. 김선생은 오래전 상주여행 때 함께했었는데,

모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한 가닥 기대도 되었다

 

이 날 만찬에서 나온 이야기로는 대개의 신문사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된다는 것이다.

모두들 적자운영으로 어렵사리 유지한다는데, 하기야! 나도 신문 한 부 보지 않으니 무슨 말을 하랴.

아무래도 신문의 시대는 끝난 것 같은데, 그러면 그 곳에서 종사하는 수많은 근로자의 생계는 어쩌나?

그 것 또한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박일환 변호사는 돈벌이가 너무 살벌하다며, 특허출원에 따른 한 예를 들었다.

특허를 내려면, 없는 것들을 설명해내는 글들이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야 하기에,

여지 것 변호사들이 전문가를 고용해 그 일을 전담해 왔단다그런데 이제는 미국에서

그 일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설립되어, 대부분의 일거리를 뺏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디 그런 일 뿐이겠는가?

사람의 생각들이 바뀌고 삶의 환경이 바뀌는데, 그 흐름을 어찌 막을소냐!

돈 벌기가 치열할수록 죽어나는 자는 가난한 서민들뿐이다.

이제 건설이나 국방에 대한 예산을 대폭 줄이고, 서민들의 민생에 집중해야 할 때다.

정치인들이여! 정신 바짝 차려라.


사진,글 / 조문호

 


 


인사모(인사동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1박2일 일정의 여행을 경상북도 상주로 떠났다. 

이번 나들이는 상주시 은척면 출신인 이상배, 김동주씨 주선으로 가게 되었는데, 지난 16일 오전 8시에 출발하여 상주옹기, 명주박물관, 곤충박물관, '은자골탁배기'공장, '고려왕검연구소', '동학교당', '묵심도예', 상주5일장 등을 돌아본 후, 이틀날 오후5시경 서울로 돌아왔다. 함께하신 분으로는 고위공직자인 이상배씨를 위시하여 녹색성장위원장 김형국씨 내외, 서화가 김양동씨, 통인그룹 대표 김완규씨, 동원건설 대표 송재엽씨, 서양화가 이목을씨, 건축가 김동주씨, 필자 등 모두 아홉 명이 함께해 즐겁고 보람된 시간을 가졌다.

 

이 번 상주 나들이는 원님 덕에 나팔 분 격이었다.

이상배씨 덕분에 가는 곳마다 칙사 대접을 받았는데, 상주의 재발견이라 할 만큼 보고 느낀 것들도 많았다.

명장들의 공방인 정대희씨의 '상주옹기', 칼을 만드는 이상선씨의 '고려왕검', 도자기 만드는 이학천씨의 '묵심도예' 등 이 지역 명장들의 작업현장을 골고루 둘러볼 수 있었고, 상주시에서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귀촌, 귀농에 대한 세미나도 들었다.

그리고 잠사곤충사업소에 들려 명주박물관과 곤충박물관은 물론 누에에서 명주로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둘러보았는데, 인근의 가로수마저 개량된 뽕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특히 3선 국회의원에 경북지사, 서울특별시장, 내무부장관, 정부공직자 윤리위원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이상배씨가 누에를 보며 던진 한마디가 인상적이었다.

"누에가 실을 다 풀어내고 생을 마감하듯, 자신도 누에처럼 모든 것을 다 바쳐 공직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고향에 잘못된 점을 알고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이틀 동안 노심초사하는 모습에서 잘못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그의 성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하나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상주시 은척면에 동학본부가 있었다는 것이다. 최제우선생의 동학이념을 계승한 김주희선생께서 상주동학교당을 창건하여 동학경전과 동학가사 등 대대적인 간행사업으로 이념 위주의 교세화장을 꾀했다는데, 이곳에 동학의 유물들이 전부 모여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교당본부 건물5채를 비롯하여 유물 177종 1,084점이 전시되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김주희선생이 타던 가마까지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숙소로 정한 상주시 은척면에 소재한 성주봉 휴양림의 풍광도 일품이었다. 울울창창한 산림과 계곡 요소요소에 팬션을 지어 환경친화적인 숙소를 조성해 놓은 것이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김동주씨 생가에 가서 또 한 번 놀랐다. "세계적인 건축가의 자택은 어떻게 지었을까?"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궁금했었는데, 옛 가옥을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해 놓았던 것이다. “툇마루나 문짝 하나하나에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있는데, 어찌 다시 지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역시 손 안대고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최고의 건축이었다.

 

상주 은자골 터가 명당은 명당인 모양이다. 오래 전에 동학교당을 세운 것도 그렇지만,

이 깡촌에 이상배씨와 김동주씨 같은 훌륭하신 양반이 두 분이나 태어났으니 말이다.

잔치 집처럼 마당에 자리를 본 만찬장 또한 최고였다. 논에서 우는 개구리소리를 들으며 먹고 마신 여러 가지 음식들은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었던, 그 곳 만의 진미였다.

 

손님들을 위해 정성껏 장만한 나물들을 보내 주신 이웃을 비롯해, 좋은 자리를 만들어 주신 이상배, 김동주님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혼자 고기 굽느라 고생하신 이목을님, 먼 길을 도맡아 운전해 주신 송재엽님, 식욕을 주체 못한 김완규님 등 함께하고 반겨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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