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무렵, 인사동서 하재은씨를 만났다.

세계글로벌 시장사진전을 협의하기 위해서다.

 

그는 시장경영 전문가다.

이미 정선아리랑시장으로 인정받았지만,

지금도 골목형 시장 활성화를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 바쁜 와중에 세계의 명품시장들을 찾아다니며,

시장의 특성과 성공요인을 찾아내어, 사진을 찍어왔다.

사진가의 시각보다 경영인의 시각이 더 사실적이었다.

다음 달 열릴 전시를 위해 마무리 하는 중이란다.

의미 있는 사진전이라 최선을 다해 돕기로 했다.

 

툇마루에서 비빔밥 먹고, ‘귀천에서 차도 마셨다.

낙동강공동체대빵인 김상화씨로 부터 전화가 왔다.

어제부터 연락했는데, 왜 이제 받느냐는 것이다.

, 바쁜 일 있으면 전화부터 끊어버린다고 변명했다.

청진동 술집엔 환경영향평가사 동덕수씨와 김자운씨도 있었다.

처음 인사 나누었지만, 아는 사람처럼 편했다.

소주 잔에 실없는 소리 퍼 나르며 낄낄거렸다.

인사동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다.

 

역시 술집 분위기는 인사동이 짱이었다.

16길 골목 초입에 들어서니, 노래 소리가 흘러나왔다.

좁은 골목길은 주객들로 왁자지껄했다.

담배를 피워도, 노래를 불러도, 탓하는 이 없다.

소주에 사이다를 섞어 마시다보니, 좀 오버했다.

쉰 목소리로 비 나리는 호남선까지 불러재꼈다.

이곳이 인사동 낭만의 마지막 보루다.

자정이 넘어서야 택시에 실려 왔다.

 

사진, / 조문호









































 


'낙동강공동체' 대표인 김상화씨가 '제19회 환경의 날'을 맞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70년대 ‘낙동강문화연구소’로 환경운동을 시작한 이래  낙동강 보존에 앞장섰으며, 상하류 유역간 이해충돌에 대한 갈등해소와 낙동강유역관리 정책에 기여한 공로가 높이 평가되어 훈장을 받게 되었다.


 그는 40여 년 동안 1400여회 이상의 낙동강 답사로, 강의 변화를 기록하는 한편 무분별한 개발을 온 몸으로 막아 온 국내 환경운동의 개척자다. 저서로는 "낙동강생명찾기 백서' 1,2,3 , "거꾸로 흐르는 강", "엇갈리는 대화", 그리고 36년간의 낙동강현장 탐사기록을 담은 보고서 ‘강은 흘러야 한다’를 펴내기도 했으며, 1999년 ‘제4회 풀뿌리 환경상’, 2010년 교보생명환경문화대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상화씨의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한다.

 

몇일 전, 세종시에 있는 환경청 강당에서 훈장을 받고, 5일 오후7시경 인사동 ‘칠갑산’에서 축하연을 갖는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진작에  받아 마땅한 수상 소식이었으나 사사건건 정부 환경정책을 반대해 온 미운털 박힌 그에게 이제라도 준다니,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축하연 날자가 하필이면 울 아부지 제삿날이라 난처했으나 '아라아트' 최인선씨 전시 오프닝과도 겹쳐, 정선에서 아예 제사상을 싸 들고 와 얼굴은 내밀 수 있었다.

 

그는 70년대 부산 살 때 만난 오래된 친구다. '한국환경사진가회'에서 낙동강환경사진집 제작에 나섰을 때 도움 받기도 했지만, 만나면 그냥 술이나 마시고 히히덕거리는 것이 마음 편하다.

 

그 날 축하연에 참석한 분으로는 김상화씨 내외를 비롯하여 딸 솔이, 중앙대 김진홍교수, 공학박사 심무경씨, 양평그린스타트네트워크 이광우사무국장, 한국강살리기네트워크 사무처장 최대현씨 등 대개 환경운동에 종사하는 가난한 분들이었다. 당장 '칠갑산’에서 ‘무교동 낙지집’으로 옮겨가며 마신 축하연 비용이 걱정스러웠다. 긴 세월 고집스럽게 낙동강을 지켜낸 보람은 있겠지만, 가난한 그에게 훈장이란 한낱 고철에 불과했다. 행여 전당포라도 가면 잡혀줄까? 

 

한창 술판이 무르익을 무렵, 제사지낼 시간이 되었다는 아내의 전화가 빗발쳤다.

술값은 외상으로 달아놓으라는 흰소리를 날리며 자리를 빠져나왔으나,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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