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유엔사와 북한의 휴전 협정에 의해 한반도 허리를 가로지르는 군사 분계선과, 그 선을 기준으로 남북 2km의 남방한계선/북방한계선에 의한 비무장지대(DMZ)가 설정되었다. ● 비무장지대. 말 그대로 무장이 해제되어야만 하는 곳. 그러나 현재 동서 256Km, 남북 4Km인 이곳엔 수백 만 개의 지뢰가 설치되어 있을 거라고 전해진다. 게다가 북한 G.P는 북방한계선 남쪽 1.6Km, 남한의 G.P는 남방한계선 북쪽 1.2Km까지 진입된 곳도 있다. 그러니까 양 G.P간 실 거리는 기껏 1Km의 거리. 모두 중화기로 무장한 긴장된 상태다. 일촉즉발 상태인 이곳이 어찌 비무장지대라고 할 수 있겠는가. 더불어 『비무장지대』라는 네이밍에 근거하자면, 폭 4Km의 이 공간을 제외한 북과 남쪽 국토 전체는 역설적으로 『무장지대』란 뜻이 아닌가.
강재구_private#1~3_젤라틴 실버 프린트_각 70×55cm_2002김진하_망각의 한 방법-소원에 대하여_사진몽타_61×182cm_2023송창_大兄-바라보기_스팽글, 필름출력_설치, 232×546cm_2020이태호_분단풍경_여러가지 재료_100×85×168cm_2021임종업_대성동-DMZ의 숨겨진 마을_르뽀_도서출판 소통_2021정기현_topos_도라전망대 설치전경_2021김억_DMZ-백령도에서 고성까지_목판화_2020손기환_DMZ풍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0×200cm_2015~21이명복_사라진 꿈_장지에 아크릴채색_153×208cm_2023이동환_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같은 풍경_장지에 목탄, 먹, 안료_60×134cm_2023이인철_파주2_디지털 회화_2023류연복_꽃 한송이_소멸다색목판화_97×72cm_2018
지난 70년 간 우리는 분단 현장 남측 『무장지대』에서 분단 정치, 분단 문화, 여타 분단 이데올로기에 의한 온갖 부조리한 현실을 온 몸으로 겪으며 살아왔다. 국토 어디를 가더라도 만날 수 있는 벙커, 참호, 철조망, 그리고 우리들 일상에 존재하는 군사 시설들... 뿐인가, 과거 교련을 위시한 반공과 군사 교육, 관제 행사 동원, 여타 학술과 문화 예술과 대중문화에까지 드리웠던 검열과 블랙리스트의 기억까지 소환된다. ● 그 레드 컴플렉스의 작동은 최근에도 남북 관계를 더 경색 시키고, 한발 더 나가 전쟁 위기까지 부추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사회적 의제에서 한반도 분단 극복과 무장지대 탈출을 위한 지성적 담론과 사회 문화 운동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 이런 현실에서, 평소 사회 역사적 주제로 작업을 하던 작가들이 정체된 분단 논의에 파문을 일으키려 함께 이 전시에 참여했다. 이 작가들이 직접 체험한 『무장지대』에 대한 예술적 발언이, 지금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는 분단 논의에 던져 지는 짱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진하
Vol.20230205b|무장지대 武裝地帶 MILITARIZED ZONE in KOREA展
사진가 강재구는 입영 전의 민간인에서부터 머리를 깎은 군인에 이르기까지, 징병제에 따른 군인 시리즈를 20여 년 동안 기록해 왔다. 이등병이라는 전형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휴머니즘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한구의 ‘군용’ 사진이 군에 갓 입대해 체험적 병영생활을 어렵사리 기록한 사진이라면, 강재구 사진은 군인으로서의 문제점을 다 각도로 형상화해 왔다는 점이 다르다.
강재구 작업은 직업군인보다 의무적 복무를 수행하는 이등병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이등병은 막 입영했다는 이유만으로 기본적인 욕구조차 자신의 의지 대로 행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통제당하며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때부터 사람이 아닌, 군바리 취급을 받는 안쓰러운 존재가 되어, 군대가 만들어 낸 틀 안에서 이등병이란 자아 상실을 경험하며 나약해 진다. 카메라 앞에선 긴장된 모습이 마치 박제화된 인간처럼, 모순된 상황을 재현한다
그가 징집병을 대상으로 삼은 것은 군인의 정체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군인으로 끌려가 삶을 저당 잡혀 살아야 하는 청년 문화를 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청년 문화 안에 서식하는 집단성과 몰 개체성이나 비인간적으로 사육되는 무기력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군 복무 시절과는 전혀 다른 제대 후의 예비역 모습도 보여준다. 예비군복은 입었지만, 머리카락이 자라 군모를 쓴 것조차 어색하고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빨간색 나이키 운동화를 신거나 팔찌나 목걸이로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군기 빠진 또 다른 군인 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2009년에는 기존 시리즈와는 성격이 약간 다른 군대 사진관에서 찍은 증명사진 식의 ‘사병증명’도 있다. 필름을 아끼려고 두세 명을 나란히 세워놓고 촬영한 후 필요한 사진의 얼굴만 도려내 사용하면, 사진에는 얼굴은 없고 몸만 남는 것이다. 그 대상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게 된 이름만 남은 증명사진 프레임은 군대라는 몰인간성을 은유하는 작업으로 볼 수 있다.
2019년 작업한 ‘12mm’는 획일적 군대의 시작점이며, 비인간적인 군대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이등병은 입대 전 머리카락 길이를 12mm로 잘라야 하는데, 군 훈육이 남긴 일종의 정신적 충격을 기념사진 형식으로 드러낸 사회적 초상이다. 입대를 전후해 삭발한 인물을 릴레이로 촬영한 ‘12mm’는 ‘이등병’, ‘예비역’, ‘사병증명’ 등 지금까지의 군인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 작업이다.
작가는 일반 기념사진과는 달리 모델에게 그 무엇을 요구하거나 통제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포즈를 연출하도록 한다. 다만 적절한 배경이나 인물의 수만 결정할 뿐이다. 배경은 훈련소 막사 앞일 수도 혹은 그 주변 시설일 수도 있다. 그리고 주인공은 담배를 피우던지 애인을 감싸 안을 수도 있어, ‘이등병’에 비해 훨씬 자유롭고 인간적이다.
이번에 새로이 보여 준 ‘입영전야’는 입영을 앞둔 청년들의 알몸사진을 찍었다.
지난 달 그 작품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다가, 이 페이지가 삭제되고 일주일 동안 운영정지된 바도 있다.
성기가 노출되지도 않은 청년의 알몸 사진을 유해물로 판단한 관리자의 의식전환이 시급한 실정이다.
제외된 '입영전야' 작품사진은 '아트뉴스'나 네이브 블로그 '인사동이야기'에서 강재구를 검색하면 볼 수 있다.
스튜디오에서 조명을 받으며 알몸으로 카메라를 마주하는 청년의 모습에는
그가 지나온 시간과 그가 속해있던 환경,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한 사진을 통해 군인으로서의 강인함이 아닌, 아직은 여리고 앳된 소년임을 말하려는 것이다.
아래 글은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의 강재구론, ‘전형’을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에서 발췌했다.
강재구 다큐멘터리 재현의 가장 중요한 방편은 순간 동작이 아닌 연출로 만들어진 행위를 촬영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사진가가 미리 대상을 섭외하고, 기획하여 짠 각본에 따라 촬영한다. 그러니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동작과 사실의 관계에 대한 담론이 생긴다.
스튜디오 포트레이트의 동작은 포즈다. 포즈란, 피사체가 사진가의 카메라를 통해 대중에게 말하는 그만의 언어인데, 그 언어를 사진가가 통제하고 강제해버린다. 피사체는 사진 바깥의 세계에서 그가 처한 군인이라는 위치에서 똑같이 철저하게 강제당함으로써 행위자 피사체로서는 죽은 존재와 다름없이 전락해버린다. 강재구 사진의 탁월성이 여기에서 나온다.
사진가는 강제로 연출 당하면서 모든 언로를 차단당한 채 무기력하게 존재하는 그 박제된 이등병과 그 주변인들을 통해 몰개성과 획일성을 비판한다. 독을 제거하려면 깨끗한 물이 아닌 또 다른 독으로 해야 한다는 힌두교 밀교의 세계관이다.
몸이 아파 더 이상 일을 만들지 않기로 작정했건만, 살아 있는 동안은 하던 일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눈감고 모른 척한다는 게 더 큰 고통이었다.
보고 싶은 작품을 못 보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꼭 가보아야 할 전시도 여럿 있었다.
마치 속세와 인연을 끊을 듯 매몰차게 밀어붙였으나,몸이 좀 나아지니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제 버릇 개 주지 못한다.’는 옛말이 딱 맞다.
그동안 핸드폰은 네비게이션 전용으로 사용했으니,전화도 못 받은 것이 아니라 안 받은 것이다.
유일한 소통 공간이라고는‘페이스북’뿐인데,그마저 가끔 들리니 세상 돌아가는 소식마저 어두웠다.
모든 게 사진에서 비롯되는데,사진을 찍지 않으니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카메라에 찍힌 순서대로 지난 시간도 기억하는데,
찍힌 사진이 없으니,할 말은 물론 치매 환자처럼 어제 일도 기억나지 않았다.
마침, 인사동 ‘마루아트’에서 열리는 ‘함께 맞는 비’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얼마 전 주흥수감독의 부탁을 받아들였는데, 정영신씨도 유준 화백으로 부터 연락받아 사진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액자를 옮기려면 차를 끌고 갈 수밖에 없는데, 나가는 김에 전시도 몇 군데 돌아보기로 했다.
먼저 삼청동 있는 ’아트비프로젝트‘부터 들렸다.
우연히 ’네오록‘에서 본 허유진 사진전 제목이 ‘순간은 밤하늘의 별과 같다’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된 허유진의 세차장 구정물에서 별 찾기는 7-8년쯤 되었다고 한다.
전시된 이미지들은 이미 별이 된 강용대 화백의 별 그림 같기도 하고,
별 그림의 대부로 부상한 강찬모화백의 작품이 떠오르기도 했다.
강찬모 화백이야 히말라야 산맥의 정기를 받아 찬란한 별빛을 쏟아냈지만,
허유진양은 세차장에서 흘러내리는 구정물에서 찾아냈다는 점이 독특하다.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에 보낸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이 가상했다.
세차장 구정물은 빛이나 날씨 조건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나지만,
대부분의 전시작은 아름다운 우주 풍경을 연출했다.
‘찬란한 우주도 버려지는 오물에 다름아니다‘는 또 다른 깨달음을 남기며...
아래 글은 이선영씨가 쓴 전시 서문의 한 부분이다.
“우주 깊숙한 곳의 풍경 같다. 검은 융단에 보석 가루를 뿌려놓은 듯 아름답다. 관객은 이 찬란한 풍경이 어떻게 비누 거품일 수 있냐고 묻겠지만, 우주의 모양에 대한 유력한 가설 중의 하나가 거품 우주론이라는 사실이다. 비누 구정물로부터 출발한 것일지라도 같은 거품이기에 비슷한 형상이 나온 것이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가설 중 우주가 양자 거품에서 시작되었다는 이론은 허유진의 작품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석을 제공한다."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두 번째 기획전 강재구 사진전도 보러 가야 하지만, 시간이 늦어버렸다.
오는 9월 28일까지라 다른 날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대신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가 쓴 강재구론 부분을 소개한다.
”강재구의 군인 연작은 사진사적으로 바로 이 흐름 위에서 위치한, 충실한 다큐멘터리 작업이다. 사진가 강재구는 20년 동안 군인, 그것도 의무 복무를 수행하는 대한민국 징병제 군인 이등병을 중심으로 작업해왔다. 그가 간부 후보생이나 장교 혹은 여군과 같이 스스로 직업인의 길을 택한 군인을 대상으로 삼지 않고, 국민의 의무로 복무해야 하는 군인을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그의 작업이 군인이 무엇이고 어떠한가, 즉 그 정체성과 문화를 기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징병제하에서 군인으로 강제로 끌려가야 하는 대한민국의 청년문화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임을 알게 해준다. 그러니, 당연히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그 청년문화 안에 서식하는 집단성과 몰개체성 그리고 반휴머니즘에 사육된 무기력함이다.
사진가 강재구의 20년 군인 포트레이트 작업은 군대로 끌려가는 입영 전야의 ‘민간인’에서 12mm로 머리카락을 깎은 이등병 ‘군바리’가 된 이들을 촬영하는 것을, 중심에 두고, 그 주변의 여러 에피소드를 엮어 하나의 메시지를 무겁게 오랫동안 끌고 온 작업이다. 여기에서 ‘이등병’이란 의무 복무를 마친 후에도 흉터처럼 남아 있는 ‘예비역’이라는 민간인이 되지 못한 여전한 ‘군바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20년의 그 시리즈 작업 가운데 약간은 성격이 다른 것도 있다. 군대 사진관 사진의 사병 증명사진으로 작품을 만든 2009년의 ‘사병증명’도 있다. 군의 실용적 필요에 따라 사진의 얼굴을 도려내 버리고 남은 그러면서 그 대상이 누구인지도 기억할 수 없게 되어버린 어떤 군대 내 증명사진들을 통해 군대라는 몰(沒)인간성의 의미를 은유로 다룬 작품이다.“
장경호씨와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반가운 사람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노박사를 비롯하여최유진, 정영신씨가 먼저 자리 잡았는데, 뒤늦게는 최석태, 이인섭씨도 등장했다.
이 날은 차를 끌고 나와 자리만 지키기로 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술자리다.
노현덕씨가 주차비와 대리 운전비를 내라며 신사임당을 한 장 내놓는데, 어찌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