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지대 武裝地帶

MILITARIZED ZONE in KOREA展 

2023_0206 ▶ 2023_0226 / 월요일 휴관

1부 / 2023_0206 ▶ 2023_0216

2부 / 2023_0217 ▶ 2023_0226

 

참여작가

1부 / 강재구_김진하_송창_이태호_임종업_정기현

2부 / 김억_류연복_손기환_이동환_이명복_이인철

 

관람시간 / 11:00am~05:00pm / 월요일 휴관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1953년 유엔사와 북한의 휴전 협정에 의해 한반도 허리를 가로지르는 군사 분계선과, 그 선을 기준으로 남북 2km의 남방한계선/북방한계선에 의한 비무장지대(DMZ)가 설정되었다. ● 비무장지대. 말 그대로 무장이 해제되어야만 하는 곳. 그러나 현재 동서 256Km, 남북 4Km인 이곳엔 수백 만 개의 지뢰가 설치되어 있을 거라고 전해진다. 게다가 북한 G.P는 북방한계선 남쪽 1.6Km, 남한의 G.P는 남방한계선 북쪽 1.2Km까지 진입된 곳도 있다. 그러니까 양 G.P간 실 거리는 기껏 1Km의 거리. 모두 중화기로 무장한 긴장된 상태다. 일촉즉발 상태인 이곳이 어찌 비무장지대라고 할 수 있겠는가. 더불어 『비무장지대』라는 네이밍에 근거하자면, 폭 4Km의 이 공간을 제외한 북과 남쪽 국토 전체는 역설적으로 『무장지대』란 뜻이 아닌가.

 

강재구_private#1~3_젤라틴 실버 프린트_각 70×55cm_2002
김진하_망각의 한 방법-소원에 대하여_사진몽타_61×182cm_2023
송창_大兄-바라보기_스팽글, 필름출력_설치, 232×546cm_2020
이태호_분단풍경_여러가지 재료_100×85×168cm_2021
임종업_대성동-DMZ의 숨겨진 마을_르뽀_도서출판 소통_2021
정기현_topos_도라전망대 설치전경_2021
김억_DMZ-백령도에서 고성까지_목판화_2020
손기환_DMZ풍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0×200cm_2015~21
이명복_사라진 꿈_장지에 아크릴채색_153×208cm_2023
이동환_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같은 풍경_장지에 목탄, 먹, 안료_60×134cm_2023
이인철_파주2_디지털 회화_2023
류연복_꽃 한송이_소멸다색목판화_97×72cm_2018

지난 70년 간 우리는 분단 현장 남측 『무장지대』에서 분단 정치, 분단 문화, 여타 분단 이데올로기에 의한 온갖 부조리한 현실을 온 몸으로 겪으며 살아왔다. 국토 어디를 가더라도 만날 수 있는 벙커, 참호, 철조망, 그리고 우리들 일상에 존재하는 군사 시설들... 뿐인가, 과거 교련을 위시한 반공과 군사 교육, 관제 행사 동원, 여타 학술과 문화 예술과 대중문화에까지 드리웠던 검열과 블랙리스트의 기억까지 소환된다. ● 그 레드 컴플렉스의 작동은 최근에도 남북 관계를 더 경색 시키고, 한발 더 나가 전쟁 위기까지 부추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사회적 의제에서 한반도 분단 극복과 무장지대 탈출을 위한 지성적 담론과 사회 문화 운동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 이런 현실에서, 평소 사회 역사적 주제로 작업을 하던 작가들이 정체된 분단 논의에 파문을 일으키려 함께 이 전시에 참여했다. 이 작가들이 직접 체험한 『무장지대』에 대한 예술적 발언이, 지금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는 분단 논의에 던져 지는 짱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김진하

 

Vol.20230205b | 무장지대 武裝地帶 MILITARIZED ZONE in KOREA展

갤러리 브레송’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두 번째 기획전

징병제에 의한 의무복무, 박제화, 사육과 무기력, 몰인간성

 

 

강재구 사진전이 지난 9월 19일부터 28일까지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가 강재구는 입영 전의 민간인에서부터 머리를 깎은 군인에 이르기까지, 징병제에 따른 군인 시리즈를 20여 년 동안 기록해 왔다. 이등병이라는 전형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휴머니즘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한구의 ‘군용’ 사진이 군에 갓 입대해 체험적 병영생활을 어렵사리 기록한 사진이라면, 강재구 사진은 군인으로서의 문제점을 다 각도로 형상화해 왔다는 점이 다르다.

 

강재구 작업은 직업군인보다 의무적 복무를 수행하는 이등병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이등병은 막 입영했다는 이유만으로 기본적인 욕구조차 자신의 의지 대로 행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통제당하며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때부터 사람이 아닌, 군바리 취급을 받는 안쓰러운 존재가 되어, 군대가 만들어 낸 틀 안에서 이등병이란 자아 상실을 경험하며 나약해 진다. 카메라 앞에선 긴장된 모습이 마치 박제화된 인간처럼, 모순된 상황을 재현한다

 

그가 징집병을 대상으로 삼은 것은 군인의 정체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군인으로 끌려가 삶을 저당 잡혀 살아야 하는 청년 문화를 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청년 문화 안에 서식하는 집단성과 몰 개체성이나 비인간적으로 사육되는 무기력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군 복무 시절과는 전혀 다른 제대 후의 예비역 모습도 보여준다. 예비군복은 입었지만, 머리카락이 자라 군모를 쓴 것조차 어색하고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빨간색 나이키 운동화를 신거나 팔찌나 목걸이로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군기 빠진 또 다른 군인 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2009년에는 기존 시리즈와는 성격이 약간 다른 군대 사진관에서 찍은 증명사진 식의 ‘사병증명’도 있다. 필름을 아끼려고 두세 명을 나란히 세워놓고 촬영한 후 필요한 사진의 얼굴만 도려내 사용하면, 사진에는 얼굴은 없고 몸만 남는 것이다. 그 대상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게 된 이름만 남은 증명사진 프레임은 군대라는 몰인간성을 은유하는 작업으로 볼 수 있다.

 

2019년 작업한 ‘12mm’는 획일적 군대의 시작점이며, 비인간적인 군대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이등병은 입대 전 머리카락 길이를 12mm로 잘라야 하는데, 군 훈육이 남긴 일종의 정신적 충격을 기념사진 형식으로 드러낸 사회적 초상이다. 입대를 전후해 삭발한 인물을 릴레이로 촬영한 ‘12mm’는 ‘이등병’, ‘예비역’, ‘사병증명’ 등 지금까지의 군인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 작업이다.

 

작가는 일반 기념사진과는 달리 모델에게 그 무엇을 요구하거나 통제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포즈를 연출하도록 한다. 다만 적절한 배경이나 인물의 수만 결정할 뿐이다. 배경은 훈련소 막사 앞일 수도 혹은 그 주변 시설일 수도 있다. 그리고 주인공은 담배를 피우던지 애인을 감싸 안을 수도 있어, ‘이등병’에 비해 훨씬 자유롭고 인간적이다.

 

이번에 새로이 보여 준 ‘입영전야’는 입영을 앞둔 청년들의 알몸사진을 찍었다.

지난 달 그 작품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다가, 이 페이지가 삭제되고 일주일 동안 운영정지된 바도 있다.

성기가 노출되지도 않은 청년의 알몸 사진을 유해물로 판단한 관리자의 의식전환이 시급한 실정이다.

제외된 '입영전야' 작품사진은 '아트뉴스'나 네이브 블로그 '인사동이야기'에서 강재구를 검색하면 볼 수 있다.

 

스튜디오에서 조명을 받으며 알몸으로 카메라를 마주하는 청년의 모습에는

그가 지나온 시간과 그가 속해있던 환경,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한 사진을 통해 군인으로서의 강인함이 아닌, 아직은 여리고 앳된 소년임을 말하려는 것이다.

아래 글은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의 강재구론, ‘전형’을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에서 발췌했다.

강재구 다큐멘터리 재현의 가장 중요한 방편은 순간 동작이 아닌 연출로 만들어진 행위를 촬영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사진가가 미리 대상을 섭외하고, 기획하여 짠 각본에 따라 촬영한다. 그러니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동작과 사실의 관계에 대한 담론이 생긴다.

 

스튜디오 포트레이트의 동작은 포즈다. 포즈란, 피사체가 사진가의 카메라를 통해 대중에게 말하는 그만의 언어인데, 그 언어를 사진가가 통제하고 강제해버린다. 피사체는 사진 바깥의 세계에서 그가 처한 군인이라는 위치에서 똑같이 철저하게 강제당함으로써 행위자 피사체로서는 죽은 존재와 다름없이 전락해버린다. 강재구 사진의 탁월성이 여기에서 나온다.

 

사진가는 강제로 연출 당하면서 모든 언로를 차단당한 채 무기력하게 존재하는 그 박제된 이등병과 그 주변인들을 통해 몰개성과 획일성을 비판한다. 독을 제거하려면 깨끗한 물이 아닌 또 다른 독으로 해야 한다는 힌두교 밀교의 세계관이다.

 

글 / 조문호

 

 

모처럼 인사동에 전시 보러 나갈 일이 생겼다.

몸이 아파 더 이상 일을 만들지 않기로 작정했건만, 살아 있는 동안은 하던 일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눈감고 모른 척한다는 게 더 큰 고통이었다.

보고 싶은 작품을 못 보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꼭 가보아야 할 전시도 여럿 있었다.

마치 속세와 인연을 끊을 듯 매몰차게 밀어붙였으나, 몸이 좀 나아지니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제 버릇 개 주지 못한다.’는 옛말이 딱 맞다.

 

그동안 핸드폰은 네비게이션 전용으로 사용했으니, 전화도 못 받은 것이 아니라 안 받은 것이다.

유일한 소통 공간이라고는 페이스북 뿐인데, 그마저 가끔 들리니 세상 돌아가는 소식마저 어두웠다.

 

모든 게 사진에서 비롯되는데, 사진을 찍지 않으니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카메라에 찍힌 순서대로 지난 시간도 기억하는데,

찍힌 사진이 없으니, 할 말은 물론 치매 환자처럼 어제 일도 기억나지 않았다.

 

마침, 인사동 마루아트에서 열리는 함께 맞는 비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얼마 전 주흥수감독의 부탁을 받아들였는데, 정영신씨도 유준 화백으로 부터 연락받아 사진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액자를 옮기려면 차를 끌고 갈 수밖에 없는데, 나가는 김에 전시도 몇 군데 돌아보기로 했다.

 

먼저 삼청동 있는 아트비프로젝트부터 들렸다.

우연히 네오록에서 본 허유진 사진전 제목이 순간은 밤하늘의 별과 같다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된 허유진의 세차장 구정물에서 별 찾기는 7-8년쯤 되었다고 한다.

 

전시된 이미지들은 이미 별이 된 강용대 화백의 별 그림 같기도 하고,

별 그림의 대부로 부상한 강찬모화백의 작품이 떠오르기도 했다.

강찬모 화백이야 히말라야 산맥의 정기를 받아 찬란한 별빛을 쏟아냈지만,

허유진양은 세차장에서 흘러내리는 구정물에서 찾아냈다는 점이 독특하다.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에 보낸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이 가상했다.

 

세차장 구정물은 빛이나 날씨 조건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나지만,

대부분의 전시작은 아름다운 우주 풍경을 연출했다.

찬란한 우주도 버려지는 오물에 다름아니다는 또 다른 깨달음을 남기며...

 

아래 글은 이선영씨가 쓴 전시 서문의 한 부분이다.

우주 깊숙한 곳의 풍경 같다. 검은 융단에 보석 가루를 뿌려놓은 듯 아름답다관객은 이 찬란한 풍경이 어떻게 비누 거품일 수 있냐고 묻겠지만, 우주의 모양에 대한 유력한 가설 중의 하나가 거품 우주론이라는 사실이다. 비누 구정물로부터 출발한 것일지라도 같은 거품이기에 비슷한 형상이 나온 것이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가설 중 우주가 양자 거품에서 시작되었다는 이론은 허유진의 작품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석을 제공한다."

 

이 전시는 925일까지 이어진다.

 : https://blog.daum.net/mun6144/6489

 

인사동으로 자리를 옮겨 마루아트센터부터 들려야 했다.

전시장에는 이미 많은 작품이 반입되어, 설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난, 90년대 불교상징'전에 내걸었던, ’환성사수미단을 준비해 갔고,

정영신씨는 작년에 전시한 어머니의 땅‘에서 고른 작품을 전달했는데.

인사동 도로에 세워둔 차 때문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921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장애학생돕기자선전 함께 맞는 비인사동 마루아트센터 3층 그랜드관에서 열린다.

이 자선전은 장애 학생들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게 아니라 같이 비를 맞으며 그들의 삶과 함께하려는 뜻이다.

그래서 작품가격도 기존 가격에서 대폭 낮추어 판매한다.

 

유명작가의 작품을 저렴하게 소장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니, 다 같이 자선전에 동참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다음에는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리는 칡뫼 김구의 바라보다전을 보러 갔다.

전시장에는 작가 외에도 화가 장경호씨와 사진가 조명환씨도 있었다.

 

전시작품은 분단의 현실을 형상화한 살풍경이었다.

휴지 조각이 굴러다니는 황폐한 땅에 철조망이 솟아나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어떤 그림에서는 거대한 화석이 공중을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이 모든 풍경은 작가가 태어나고 살아온 경기도 김포 북단에 대한 한 맺힌 풍경이다.

 

그는 미술을 전공한 화가처럼 현대미술의 형식론이나 흐름의 한 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의 체험적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

긴 세월 동안 지켜보며 각인시켜 온 역사화나 다름없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시공간에 나를 드러내는 것이고 또한 나를 들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분단을 그리는 작업이 분단을 극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묻는 작가 노트가 그의 작업 배경을 잘 말해 준다.

 

칡뫼 김구의 바라보다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오늘의 분단 현실을 까발린다.

긴장과 불안감을 동반한 김구의 바라보다전은 927일까지다.

 : https://blog.daum.net/mun6144/6493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두 번째 기획전 강재구 사진전도 보러 가야 하지만, 시간이 늦어버렸다.

오는 928일까지라 다른 날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대신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가 쓴 강재구론 부분을 소개한다.

 

강재구의 군인 연작은 사진사적으로 바로 이 흐름 위에서 위치한, 충실한 다큐멘터리 작업이다. 사진가 강재구는 20년 동안 군인, 그것도 의무 복무를 수행하는 대한민국 징병제 군인 이등병을 중심으로 작업해왔다. 그가 간부 후보생이나 장교 혹은 여군과 같이 스스로 직업인의 길을 택한 군인을 대상으로 삼지 않고, 국민의 의무로 복무해야 하는 군인을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그의 작업이 군인이 무엇이고 어떠한가, 즉 그 정체성과 문화를 기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징병제하에서 군인으로 강제로 끌려가야 하는 대한민국의 청년문화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임을 알게 해준다. 그러니, 당연히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그 청년문화 안에 서식하는 집단성과 몰개체성 그리고 반휴머니즘에 사육된 무기력함이다.

 

사진가 강재구의 20년 군인 포트레이트 작업은 군대로 끌려가는 입영 전야의 민간인에서 12mm로 머리카락을 깎은 이등병 군바리가 된 이들을 촬영하는 것을, 중심에 두고, 그 주변의 여러 에피소드를 엮어 하나의 메시지를 무겁게 오랫동안 끌고 온 작업이다. 여기에서 이등병이란 의무 복무를 마친 후에도 흉터처럼 남아 있는 예비역이라는 민간인이 되지 못한 여전한 군바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20년의 그 시리즈 작업 가운데 약간은 성격이 다른 것도 있다. 군대 사진관 사진의 사병 증명사진으로 작품을 만든 2009년의 사병증명도 있다. 군의 실용적 필요에 따라 사진의 얼굴을 도려내 버리고 남은 그러면서 그 대상이 누구인지도 기억할 수 없게 되어버린 어떤 군대 내 증명사진들을 통해 군대라는 몰()인간성의 의미를 은유로 다룬 작품이다.“

 

장경호씨와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반가운 사람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노박사를 비롯하여 최유진, 정영신씨가 먼저 자리 잡았는데, 뒤늦게는 최석태, 이인섭씨도 등장했다.

 

이 날은 차를 끌고 나와 자리만 지키기로 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술자리다.

 노현덕씨가 주차비와 대리 운전비를 내라며 신사임당을 한 장 내놓는데, 어찌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일도 마실 일이 있는데, 이러다 다시 드러눕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 / 조문호

 

 

 




태국에서 자리 잡은 고영준씨가 모처럼 서울에 나타났다.

죽도록 식구들 고생만 시키던 사진을 접고 사업에 몰입한지 15년째다.

사진을 그만두길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사진도 하고 돈도 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사진과 돈은 멀어도 너무 먼 것 같다.

그러나 다시 시작한다 해도 돈은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





지나 온 세월을 돌이켜 보니, 온갖 회한이 다 밀려온다.

잘 나가던 가게 내팽개치고 사진하지 40여년, 과연 얻은 게 무엇인가?

살기가 힘들어 몇 차례 직장을 전전하기도 했으나, 사진에 미쳐 오래가지도 못했다.



83년 인사동 포장마차에서..(좌로부터 고영준, 조문호, 윤재성, 유성준)



평생 저축 한 번 하지 않고, 만원 생기면 만원 쓰고, 십 만원 생기면 십 만원 썼다.

그렇지만 돈 없어 굶어 본 적 없고, 돈 없어 병원 못간 적도 없다.

한 평생 잘 놀며 잘 살았으니 여한은 없다. 죽고나면 말짱 도루묵 아니던가?

그렇다면 결혼을 하지말고 혼자 살아야하는데, 가족들 고생시킨 죄는 크다.

다들 뿔뿔이 흩어져 이산가족처럼 살지만, 흉악한 돈에 물들지는 않았다.




같이 춤춘 이런 때도 있었네, 옆 여인은 누구지? ㅎㅎ



지난 11일 오후 고영준씨가 귀국했다는 전갈에 충무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모처럼 케케묵은 이야기로 지난 시간을 떠올리는 한가한 시간을 가진 것이다.

고영준은 40년 지기의 사우로 ‘사협’ 내막을 일찍부터 지켜 본 산증인이다.

인사동에 '예총'사무실이 있던 70년대 하반기부터 사진협회 총무로 일했으니,

원로사진가들의 이야기는 물론, 단체에 대한 내막을 훤히 깨고 있다.



85년 '동아미술제'에서 큰 상을 받았을 때 축하하러 온 사우들

(오른쪽부터 고영준, 신희순, 양은환, 홍순태, 조문호, 한 분 건너뛰어 정동석, 유성준씨)



김광덕이사장에서 시작하여 이정강, 이명복이사장을 두루 거쳤으나,

천성이 못된 짓을 못해, 못된 패거리들과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 때 그만두었기에 망정이지 더 있었다면, 똥바가지 뒤집어 쓸 수도 있었을 게다.

갈수록 조직 규모가 커지면서 비리의 규모도 비례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달에는 400여명의 아마추어 사진인들이 한꺼번에 회원으로 입회하였다니,

가히 사진작가를 생산하는 공장이나 마찬가지다.






고영준씨는 '한국환경사가회'를 비롯한 여러 모임에서 함께 일했는데,

사람 좋은 덕에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꼬인다.

그런데, 독한 구석도 있다는 것은 뒤늦게 알았다.

그 좋아하던 사진을 접고 사업에 매진한 것은 차지하고라도

'알중'에 가까울 정도도 좋아한 술과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어버렸다는 점이다.

건강에 문제가 있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난 담당의사가 끊지 않으면 죽는다 해도 끊지를 못하니, 어찌 존경스럽지 않겠는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브레송 갤러리’에서 전시되는 강재구씨의 ‘12mm’사진전을 보러갔다.

전시 작가는 잘 모르지만, ‘눈빛출판사’에서 발행한 ‘12mm' 사진집 광고에 관심을 가져서다.

전시장에 아는 분이라고는 고정남씨 뿐이었으나, 군 입대를 앞둔 장정들의 긴장된 표정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번에 전시된 ‘12mm’는 군 입대 전에 머리카락을 12mm로 자르는 행위를 통해 통제되고 집단화되어 가는 과정을 말했다.

전형적인 기념사진풍의 방식이었으나, 긴장된 표정을 강조하기 위해 인공조명을 사용한 점이 특이했다.

입대를 앞둔 장정의 긴장된 표정과 경직된 자세가 핵심인데, 사진에는 애인 같은 여성이 옆자리를 지켰다.

그것은 개인의 정체성이 규율화되고 통제되는 것을 보여주면서, 여성을 통한 사회적 관계도 함께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젊은이의 표정과 자세를 통제하여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이끌어 내었는데,

남성이라면 한 번은 거쳐야 할 군대라는 공룡집단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었다.

입영을 앞둔 두려움과 이질감은 가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강재구씨는 이전에도 군인을 소재로 한 작업을 두 차례나 가진 바 있었는데, 그 작업들이 궁금해 졌다.

병영의 기록은 이한구씨의 작업 '군용'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다녀와 고정남씨가 올린 페북 사진을 보니, 강재구씨도 나의 페친이란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평소 ‘오빠랑 놀고 싶다’는 젊은 애들만 아니면 무조건 페친으로 받아 주다보니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

가끔 인사동이나 전시장에서 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하면 난감할 때가 많다.




강재구 사진집 ‘12mm’ / 눈빛사진가선 60
2019년 4월 ‘눈빛출판사’ 발행 / 가격12,000원



전시장을 나왔으나, 고영준씨가 술을 마시지 않으니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마침 정영신씨와 연락이 되어 충무로 복국집에서 이른 저녁식사를 했다.

제기랄! 혼자 소주 한 병을 깠더니,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이제 소주 한 병도 무리인 것 같은데, 술과 인연을 끊어야 할지 모르겠다.

고영준씨와 언제 만날지 기약은 없지만, 헤어지는 수밖에 없었다.

살아 있다면, 볼 날이 있겠지...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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