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rnal Golden

김지희/ KIMJIHEE / 金智姬 / painting

 2023_0623 2023_0714 / ,월요일 휴관

김지희 _Sealed smile_ 한지에 채색 , 24K  금박 _116×91cm_2023

 

김지희 홈페이지_www.kimjihee.net

 

초대일시 / 2023_0623_금요일

후원 / PBG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가나포럼스페이스

GANA ART FORUM SPACE

서울 종로구 평창3028 옥션하우스 1

Tel. +82.(0)2.720.1020

www.ganaart.com

 

영원히 빛날 희망의 길을 향하여  "예술가에게 진실이란 가변적인 것으로, 그것은 그가 스스로 선택한, 바라보기의 어떤 특정한 방식이다. 예술가에게는 자신의 결정 이외에는 등을 기댈 곳이 없다. 예술의 이러한 임의적이고 개인적인 요소 때문에, 우리는 어떤 작품을 보며 예술가 본인의 계산을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지 혹은 그의 생각의 흐름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대부분의 예술품 앞에서 우리는, 마치 나무 한 그루를 앞에 놓고 섰을 때처럼, 전체의 일부분만 볼 수 있고 거기에만 다가갈 수 있다. 뿌리는 보이지 않는다."1) - 존 버거, 초상들, 열화당, 2019, 42 김지희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만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작가에게 그림이란 가변적인 진실을 전하기 위해 오랜 시간 연마한 그만의 표현 수단이며,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숙고하며 바라본 세상에 대한 그의 시선과 관점을 전하기 위한 하나의 실천 방식이다. 작가는 2008년 이후 현재까지 Sealed Smile연작을 중심으로 욕망을 과시하는 삶과 욕망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희망에 대해 언급해 왔다. 이번 전시를 통해 소개하는 Eternal Golden연작 역시 이전 작업과 같은 맥락에 위치해 있지만, 작가는 여기에 '영원'이라는 시간적 맥락을 더해 밝게 빛나는 희망의 영광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길 소망한다. 김지희가 작품을 구상하고 완성해 나가는 동안 침투한 수많은 임의적이고 개인적인 결정에 의해 작품의 회로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의미를 어느 정도까지 발견하고 공감할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건 온전히 관람자의 몫이다. 본고는 작업에서 발견한 주요한 맥락과 필자의 생각을 단편의 글로 제시하기보단, 관람자가 스스로 작가의 판단이 깃든 과정을 되짚으며 작품의 뿌리로 더 깊숙이 침투할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한다. 이 단서가 관람자에 따라 다르게 와닿을 의미의 초석이 되길, 또한 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작가의 깊숙한 곳까지 당신의 시선이 닿을 수 있길 바란다.

 

김지희_Sealed Smile_한지에 채색, 24K 금박_163×130cm_2023
김지희_Sealed smile_한지에 채색_72×60cm_2023

01. 기법과 장르: 동양화와 초상화 김지희는 전통 동양화 기법을 고수하며 초상화만을 그린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장인 정신이 깃든 동양화의 깊이와 재료가 가진 수공예적인 분위기에 이끌려 동양화에 매료되었던 작가는 자연스럽게 이를 전공으로 택했다. 이후 그는 꽤 오랜 시간 전통 동양화 기법을 연마했다. 그는 여러 기법 중 장지(壯紙) 위에 채색하는 방식을 주로 활용하는데, 얇은 한지를 여러 겹 덧대어 두껍게 만든 장지는 재료 특성상 물감이 빠르고 옅게 스며든다. 따라서 이러한 방식은 일반적으로 서양화 기법보다 더 많은 시간과 정교한 작업이 요구되며, 재료를 다루는 방식 또한 까다롭다. 완성된 작품만 놓고 보면 팝아트적인 분위기가 강하지만, 그의 정체성을 동양화로 유지하며 작업을 지속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작가는 유년 시절부터 삐에로나 울고 있는 아이 등 인물을 자주 그렸으며, 동양화를 전공하던 대학 시절에도 무엇을 그리든 결국 다시 초상을 그리게 되었다. 풍경이나 정물이 아닌 인물을 소재로 삼는 그는 그림을 통해 사람과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초상을 쫓는 그의 한결같은 취향은 작품 활동으로도 이어지며, 2008Sealed Smile연작을 발표한 이후 현재까지 인물의 얼굴과 동물의 초상을 변주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김지희_Sealed smile_한지에 채색_116×91cm_2023
김지희_Sealed smile_한지에 채색_163×130_2023

02. 중첩된 레이어: 배경 위에 얼굴, 얼굴 위에 안경, 안경 안의 또 다른 시선 김지희의 모든 작품은 배경과 얼굴, 안경이라는 세 겹의 레이어로 구성되어 있다. 얼굴의 윤곽을 잡은 후, 그 위에 안경을 더하면, 자연스럽게 배경이 남는다. 그는 이 세 가지 요소를 제외한 모든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해,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낸다. 따라서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때, 배경-얼굴-안경을 대조하며 입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세 가지 요소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듯하지만, 배경과 얼굴 위에 남겨진 안경과 그의 표정을 포개어 살펴보면 또 다른 방향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배경과 안경으로 화면 속에 또 다른 화면을 구성한 작가는 그 안에 이미 잘 알려진 대가의 작품이나 상징적인 이미지를 그려 넣는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자면, Sealed smile의 배경에는 겸재 정선의 여산초당도(廬山草堂圖)(18세기)의 일부가, 안경 왼쪽엔 산드로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Primavera)(1477-1482)의 부분이, 오른쪽엔 여러 명품 디자인에 자주 활용되는 하운즈투스 체크무늬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인물의 입 모양은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모호한 미소를 띠고 있는 듯하다. 작품 안에 밀집된 세 겹의 레이어는 언뜻 보면 모두 어긋나있다. 비너스와 에로스, ()의 여신 등이 등장하는 보티첼리의 그림과 사냥개의 날카로운 이빨 모양을 닮은 하운즈투스 문양을 바라보고 있는 오묘한 표정의 초상 속 여인 뒤엔 고요한 산에서 칩거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당나라 시인의 집과 풍경이 그려져 있다. 동서양이 혼재된 이미지 속에는 아름다움을 욕망하는 태도와 피어나는 사랑, 이 모든 것들을 욕망하는 시선이 여러 겹의 레이어로 담겨 있으며, 한없이 목가적인 풍경이 이 모든 것을 지탱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순은 욕망과 희망 사이의 간극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유기적인 관계를 생성한다. 욕망을 상징하는 도상과 모든 욕망을 배제하려는 상태의 대치, 보티첼리의 원작에는 등장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배제된 신들의 사자(使者) 헤르메스와 소녀의 왕관에 그려진 사자(獅子) 장식 등 그림 속에 등장하는 욕망과 희망을 둘러싼 관계에 대한 탐색을 마치 끝말잇기 하듯 이어가 보자. 뚜렷한 맥락이 없는 이어짐일지라도 연속된 발견과 그 사이를 이어가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김지희_The Fancy Spirit_한지에 채색, 24K 금박_130×193cm_2023
김지희_The Fancy Spirit_한지에 채색, 24K 금박_163×130cm_2023

03. 그림의 소재: 우리가 염원하는 것, 욕망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제한 없는 끝말잇기를 하염없이 이어가도 길을 잃고 방황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작업을 관통하는 보이지 않는 뿌리 자체는 변함없이 그 작업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두에 밝혔듯 김지희는 욕망하는 태도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욕망하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희망에 대해 생각한다. 작가의 초상은 그 자체로 장식적이고 화려하며, 탐하는 것을 감추지 않고 과시한다. 욕망은 염원을 향한 열정적인 마음이기에 욕망하지 않는 삶은 오히려 지루하다. 그림을 사이에 두고 욕망의 대상을 양방향에서 바라보고 있는 그림 속 피사체와 당신을 서로에게 투과해 보며, 욕망 속에서 빛나고 있는 희망의 불빛을 따라가 보자. 결국 모든 희망은 그 불빛을 자각할 수 있는 당신에게서 시작되며, 욕망하는 삶은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맹나현

* 각주1) 존 버거, 톰 오버턴 엮, 김현우 번역, 초상들, 열화당, 2019, 42.

 

 

일렁이는 직선 Swaying Straight Line

홍세진/ HONGSEJIN / 洪世辰 / painting

2023_0706 2023_0730 / 월요일 휴관

홍세진_이어가다 움푹_캔버스에 유채_194×260cm_2023

홍세진 인스타그램_@sejinnhong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하는

2023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

선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주최,주관,후원/ 서울시립미술관

그래픽 디자인 / 양도연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서울혁신파크 SeMA 창고

SEOUL INNOVATION PARK_SeMA Storage

서울 은평구 통일로 684 1~3 전시실

Tel. +82.(0)2.2124.8800

sema.seoul.go.kr

 

일렁이는 직선: 좁고 긴 틈을 지나, 아이러니 1. 홍세진의 '일렁이는 직선'은 명징한 파동이자 아이러니이다. 홍세진은 자신의 청각적 공백을 통해 감각과 인식의 어긋남을 확대함으로써 좁고 긴 틈(slit)을 포착한다. 그리고 이 틈을 통과하는 물질세계를 파동의 상태로 시각화한다. 이 틈은 뒤섞인 앎과 존재에 대한 틈이자 일련의 이항대립으로 구성된 단단한 세계에 대한 어긋남이다. 홍세진은 자신의 손상된 청신경 세포의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전기적 장치인 인공와우를 착용한다. 그는 왼쪽의 인공와우, 오른쪽 귀의 보청기와 연합하며 선재적 상태들이라고 가정할 수 있는 감각과 인식의 유비들을 표현한다. 홍세진은 도나 해러웨이(Donna J. Haraway)사이보그 선언과 연계되어 기술적으로 보철되는 포스트휴먼적 주체로 소개되어 왔다. 1) 그리고 일렁이는 직선에서 홍세진은 감각, , 지식, 존재가 뒤섞인 가운데 이항대립을 통한 인식으로도 그리고 유비적 추론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규정적인 의도의 상태들에 대한 재사유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이는 홍세진이 듣는 소리는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인식론적 질문, 그리고 실제 소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홍세진_매끄러운 네모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23

우리는 감각과 인식을 통해 구성된 지식의 본성에 대한 질문, 즉 인식론적 질문만으로 존재에 도달할 수 있는가? 이를테면 '소리를 듣다.'를 통해 '소리'에 도달할 수 있는가? 그리고 도달한 소리란 무엇인가? 홍세진은 대상에 대한 참된 인식을 보장하는 감각적 경험의 결핍과 존재론을 함축할 수 있는 인식론에 대한 핍진함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적 견지를 더하여 소리를 향해 간다. 물리학적 정의로 소리란 공기라는 매질을 통해 전달되는 진동, 즉 파동이다. 많은 경우 소리에 대한 시각화 또한 파동으로 그려진다. 파동을 표명하기 위해서는 직선이 필요한데, 바로 좌표계의 축들이다. 두 개의 직선은 X 축과 Y 축으로 평면을 이루고 Z축을 더한 세 개의 직선은 공간 좌표계를 소환한다. 그리고 각각의 직선은 파장과 진폭, 방향으로 규정된 축들로 파동의 성질과 상태를 나타낸다. 홍세진의 평면 작업을 들여다보면 의도적으로 읽히는 수직 수평의 직선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자신의 몸에서 온전하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소리에 대한 앎을 추동하기 위해, 그리고 특별한 소리 경험을 통해 통렬히 포착한 감각과 인식의 틈을 빛의 세계에서 표현하기 위해 그에게 소리를 명징한 파동으로 만들어 줄 직선들을 소환한다. 그에게 직선은 보편적인 감각 경험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보편성이 담보된 지시체들의 기입이다. 따라서 그의 평면에 드러나는 그대로 '일렁이는 직선''직선(좌표계) 위 일렁이는 파동(소리)'으로 읽어도 무방하겠다.

 

홍세진_무제_캔버스에 유채_130×194cm_2023

홍세진은 파동의 지시체로서 직선을 자신이 포착한 물질세계에 기입함에도 불구하고 소리의 전체에 관계되는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한다. 이제 질문이 또 생겨난다. 우주나 존재의 전체에 관계되는 보편성은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것인가? 이항대립적 인식, 유비적 추론, 물리학적 견지 모두를 통해서도 해결될 수 없었던 규정적인 의도의 상태들에 대한 재사유의 필요성에 홍세진은 '아이러니'를 그 방법론으로 답한다. 홍세진이 포착한 좁고 긴 틈에는 모순된 개념의 전경화로서 나타난 비-자기-동일성(non-self-identity) 2), 즉 아이러니가 있다. 아이러니는 감각과 인식과 존재가 얽혀있기에 추론할 수 없는 세상의 일부를 절단하여 읽어내는 것으로, 다시 말해 그 무엇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의 일부만을 절단하여 바라봄에서 발견된다. 일렁이는 직선은 그 이름에서부터 아이러니이다. 홍세진은 아이러니를 통해 소리와 빛, 자연과 인공, 물질과 비물질, 과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간의 유비를 지우며 이원론에 도전함과 동시에 감각-인식-존재에 대한 개인 간의 차이와 보편성을 반추하게 한다.

 

홍세진_덩그러니 반원형_캔버스에 유채_62×62cm_2023

2. 일렁이는 직선은 자연 속 유기체들과 공장에 위치한 사물들이 뒤섞인 풍경으로 주도된다. 이는 홍세진이 인공와우를 통해 자연의 소리와 기계의 소리를 겹쳐 듣는 경험과 연계된다. 인공와우는 하루 2회 충전된 배터리의 교체를 필요로 하며, 착용자는 잠을 청하기 위해 인공와우를 탈착해야 한다. 인공와우의 전력 상태와 착용자의 상황에 따라 불연속적인 홍세진의 청감각은 기능을 다하고 멈춰있는 주유소와 기계 장치를 회화 안으로 포섭한다. 홍세진은 간헐적이고 산발적인 감각을 조각모음 하여 실제 세계로 포착한 풍경을 절단하여 읽는다. 이때 그 세계는 홍세진에 의해 도형의 형태로 변환되며, 홍세진은 물감을 통해 대상을 흐리게 하거나, 덮고 긁는 방식으로 회화 표면의 질감을 드러낸다. 그가 자신의 세계로 포섭한 대상들은 표면의 질감, 흐릿함, 투명성, 긁힘을 통해 중첩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과정은 평면으로부터 입체 공간의 조형물로 확장되며 대상의 반영보다 차이의 중첩으로 표현된다. 한편, 전시 공간 한편에서는 익숙하지 않게 편집된 정체 모를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소리는 홍세진이 2019년 처음 들었던 새소리를 인위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홍세진은 처음 인공와우를 착용했을 때 시끄러운 공기 소리, 새소리와 조우했다. 다른 이들은 듣지 못하는 공기 소리에 혼란스러워하던 그는 시간에 의탁하며 감각이 인식으로 향하는 길을 조율해왔다. 홍세진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처음 2채널에서 48채널까지 늘어난 채널로 소리를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도 일 년에 한 번이면 주기적으로 병원에 방문하여 인공와우의 전기적 신호와 감각과 인식을 일치시키는 매핑(Mapping)을 진행한다. 홍세진이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외부세계와 그에 대한 수용과 조율은 계속해서 자신만의 좁고 긴 틈을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이렇게 기술의 발전은 홍세진이 늘어난 채널로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해왔듯, 시각의 영역에서는 우리를 극한의 현실성(Ultra Reality)으로 소개되는 디스플레이 환경으로 견인해 왔다. 홍세진의 새소리 곁으로 향하면 만나게 되는 프락시노스코프(praxinoscope)의 형태의 작품은 초당 5 프레임(Frame/sec)의 속도로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 프락시노스코프는 1876년 에밀 레노(Emile Reynaud)에 의해 고안된 광학장치이다. 홍세진은 먼 과거로부터 초당 5 프레임 속도의 광학장치를 꺼내 초당 30 프레임의 속도로 송출되는 영상에 익숙한 우리에게 내놓는다. 그리고 우리는 새라는 물()을 향한 홍세진의 특수한 청각적 경험과 함께 시각적 공백의 영역으로 초대된다.

 

홍세진_도는 선_캔버스에 유채_45×45cm_2023

3. 파동은 회절과 간섭이라는 특유의 성질을 지닌다. 회절은 반사와는 다르게 같은 상을 만들지 않고 간섭 현상, 즉 차이에 기반한 패턴을 만들어 낸다. 도나 해러웨이는 회절을 세계 안에 차이를 만들어 내기 위한 노고에 부여된 광학적 은유로 설명했다. 그리고 차이에 집중하여 두 개의 상반되고 다른 개념들의 만남을 통해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 이항대립의 경계를 붕괴시키는 회절적 방법론을 명명했다. 3) 일렁이는 직선은 회절을 통해 홍세진의 비가시적 소리 경험이 가시적 성질의 빛과 얽히는 과정을 표명한다. 그 안에서 자연과 인공의 병치, 채움과 비움, 평면과 입체, 물질과 비물질의 얽힘은 불확실하게 겹쳐진 상태로, 분리된 입자들 사이의 만남을 추동하며 회절적 아이러니로 드러난다. 이는 빠른 제자리, 그림자가 도는 선, 1n분의 1, 오려내는 동그라미를 비롯하여 평면과 설치를 횡단하는 가운데 작품 전반에 걸쳐 드러나며 설치 작품으로 확장된다.

 

홍세진_지저지저_캔버스에 유채_45×45cm_2023

아이러니가 표명하는 비-자기-동일성(non-self-identity)은 불확정성이다.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Werner K. Heisenberg)는 불확정성의 원리(uncertainty principle)를 통해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측정할 수 없음을 밝혀냈다. 입자의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 설계되었던 하이젠베르크의 연구는 입자가 파동성을 지닌다는 아이러니를 밝힘으로써 양자 물리학의 발전을 태동시켰다. 고전역학에서 불가능했던 물()에서의 입자성과 파동성이 양립이 드러난 것이다. 홍세진의 일렁이는 직선은 파동, 회절, 좁고 긴 틈, 아이러니를 관류하며 양자 물리학의 개념으로 연결된다. 홍세진의 '좁고 긴 틈'은 뒤섞인 앎과 존재에 대한 틈이자 일련의 이항대립이 구성한 단단한 세계에 대한 어긋남으로 양자 물리학에서의 '슬릿'과 공명한다. 입자와 파동이 양립한다는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이중 슬릿 실험(double-slit experiment)은 물()의 기본 단위인 전자가 소리, 빛과 같은 비물질 파동과 동일하게 슬릿을 통과하며 회절 무늬를 남김을 확인했다. 이를 본 닐스 보어(Niels Bohr)는 양자 물리학의 철학적인 기둥이 되는 상보성 원리(complementarity principle)를 발표하며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이다."고 했다. 4) 이중 슬릿 실험에서와 같이 홍세진의 좁고 긴 틈은 대립적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아이러니적으로 통합되는 통로이다.

 

전자의 이중 슬릿 실험에서 발견된 아이러니는 또 다른 아이러니를 야기하는데, 아이러니를 파악하기 위한 관측은 아이러니의 상황을 숨긴다는 것이다. 5) 양자 물리학의 철학적 함의를 논한 캐런 버라드(Karen Barad)에게 관측의 아이러니는 세계에 대한 인간 관찰자의 개입이 존재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따라서 인식과 존재가 경계 없는 상태로 얽혀있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6) 홍세진이 자신의 '좁고 긴 틈'을 통해 물질세계를 포착하는 것은 특정한 얽힘 가 운데 하나의 관찰자로서 절단한 세계를 보이는 것이다. 관측의 아이러니는 우주나 존재의 전체에 관계되는 보편성을 단편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각-존재-인식을 하나로 통합하는 인간 내부의 아이러니이다. 홍세진은 자신의 노트를 통해 "감각을 지각하는 신체 언어에 대해서, 그리고 세계 속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닌 내가 감각하여 세계가 드러나는 것을 표현하고 싶다"라고 전한다. 홍세진이 감각한 대상과 풍경은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 일부가 현상으로 홍세진에 의해 인식의 형태로 잘려 물질화되어 드러날 뿐이다. 홍세진의 직선은 좌표계의 축이며 슬릿이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다수의 좁고 긴 틈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세계를 관측하기 위해 홍세진은 지금도 수 없이 캔버스를 가 로지른다. 임휘재

 

* 각주

1) 대표적인 홍세진의 비평으로는 천미림, 찰나의 순간들을 붙잡는, PUBLIC ART Issue 195, Dec 2022. 정현,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의 경계에서, 2020. 김정현, 차갑게 와 닿는 사물, 2021. 이 있다.

2) 해러웨이는 "아이러니는 변증법을 통하더라도 더 큰 전체로 통합할 수 없는 모순에 관한 것이며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모두 필연적이고 참되기 때문에 그대로 감당할 때 발생하는 긴장과 관계가 깊다. 아이러니는 유머이며 진지한 놀이이다."며 비-자기-동일성(non-self-identity)으로 설명한다. 도나 해러웨이, 해러웨이 선언문, 황희선 옮김, 책세상, 2019.

3) 도나 해러웨이, 겸손한_목격자@2_천년.여성인간_앙코마우스_만나다: 페미니즘과 기술과학, 민경숙 옮김, 갈무리, 2007.

4) 닐스 보어는 1947년 물리학 공로로 덴마크에서 귀족 작위를 받게 되는데 예복에 태극문양을 새기고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이다'(Contrariasunt Complementa)라는 라틴어 문구를 넣었다 한다. 김상욱, 떨림과 울림, 동아시아, 2018.

5) 전자의 이중 슬릿 실험에서 슬릿에 통과하는 전자에 대한 관측이 개입되면 전자는 입자성만을 보이며 회절무늬를 만들지 않는다. 반면 관측하지 않으면 파동성을 보이며 회절무늬를 만들게 된다. 이후 탄소원자 60개로 이루어진 풀러렌(C60)의 이중 슬릿 실험이 성공하였고 유기물, 바이러스, 단세포 생물 등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이중 슬릿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양자 물리학은 미시세계에서 거시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6) 캐런 버라드, Meeting the Universe Halfway,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7.

 

 

이응 ieung

이종미/ BELL LEE / 李鐘美 / painting.installation

2023_0706 2023_0716 / 월요일 휴관

 

이종미_37°39.5810'N 126°46.2830' E 작업실_ 캔버스에 먼지, 유화용 오일, 연필_100×100cm_2023

 

이종미 블로그_blog.naver.com/jongmeelee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30pm /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삼청로 18(사간동 78번지) 1

Tel. +82.(0)2.720.5114

www.kumhomuseum.com

@kumhomuseumofart

 

이응; ''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을 발음 그대로 표기한 것 ieung; It writes as it is that Korean '' ieung sound meaning of yes,(informal) yeah, uh huh) '없다'는 없음을 모른다. 이미지가 물질인 지점은 무엇 아래 있다. 만약 작업들에서 정형성이 보여진다면 그것이 감정에 대한 객관적 진실이길 바란다.

 

이종미_꽃_유화용 오일, 미생물 처리된 음식물찌꺼기, 글라스, 변색 은수저_13.5×7.5×7.5cm_2023
이종미_37°12.9210' N 128°58.4090' E 2023_0614_16:03 태백 바람의 언덕_캔버스에 흙먼지, 유화용 오일_140×270cm_2023
이종미_살다_변형 캔버스(×무한/각 주역 64괘 중 하나)에 먼지,유화용 오일, 안료_가변크기_2023
이종미_풍경-먼지로부터_캔버스에 먼지, 유화용 오일, 수채_60×60cm_2023

표현을 위한 태도는 나로부터 떨어져 있어 갖출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다만 깊은 골, 어둡지만 무겁지 않고 무섭지 않아 미소 짓고 투영되는 듯하나 짚어지지 않는 곳을 마음으로 지시하면서 스스로는 필수불가결한 짓을 하고 있다. 마치 밥 짓는 일처럼, 밥솥과 쌀의 선택 그리고 손맛 같은 기능과 감각의 문제가 생존과 미각의 필요조건과 같다면 나는 '밥 짓는 일'이란 내용의 중대함을 괄호치고 '마치''처럼'을 바라본다. 괄호는 짐짓 자유롭다. 와 무한無限을 포괄한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삶과 죽음을 오간다. 밥 짓는 일은 사라졌으므로 중요해진다. 이종미

 

한국화, 천천히 스며들다

제4회 한국화진흥회 정기展 

2023_0705 ▶ 2023_0710 / 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23_0705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화요일 휴관

 

참여작가

강구철_강종래_곽석손_구숙희_구여혜_구정선

권의철_권희연_김강순_김경이_김률희_김명옥

김미정_김선일_김성희_김옥숙_김윤순_김정란

김정연_김지연_김지현_김춘옥_김현숙_김형집

남빛_남현주_류승애_문영정_민선식_민유리

박미영_박민희_박빛나_박성식_박소영_박소영

소은영_손희옥_송근영_신지원_신하순_심선영

양정무_양태석_오경미_우재연_원은희_유영미

유희승_윤순원_이미연_이민주_이범헌_이상욱

이숙진_이숙희_이애리_이유기_이윤선_이윤정

이윤진_이은경_이은숙_이태근_이혜경_인석헌

정경식_정문경_정선진_정선희_정준교_정현희

지명주_차대영_채성숙_천서영_최병국

탁양지_하미혜_하연수_하정민_하철경

한명욱_한수민_허금숙_허진_홍미림_홍순주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 1

Tel. +82.(0)2.736.1020

www.insaartcenter.com  

 

()한국화진흥회가 75()부터 11()까지 인사동에 위치한 인사아트센터에서 네 번째 정기전을 진행한다. 2017년 출범한 ()한국화진흥회는 한국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그간 다수의 국내 순회전, 해외 전시 등을 통하여 한국화 작가들의 역량과 열정적인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지난 3년간 초유의 코로나19 어려움 속에서도 뜻을 모아 난관을 극복하고 한국화를 알리는 전시회를 활발하게 기획하고 개최한 것은 우리 미술계에 매우 뜻깊은 일이다.

 

김춘옥_무위자연_62×73cm_2022
곽석손_축제 20_한지에 분채_60×72cm_2021
하철경_산행 山行_한지에 수묵담채_22×63cm_2020
차대영_Mt. Inwang-on the road_캔버스에 유채_53×72.7cm_2022
이범헌_꽃춤 花舞-Flower Dance_캔버스에 혼합재료_91×117cm_2023
신하순_탑과 물_장지에 수묵채색_94×63cm_2023
강종래_생+잉태_요철지에 혼합재료_39×53cm_2020
권희연_낮은곳-광야_캔버스에 석채_2023
하미혜_Butterfly Image_요철한지에 먹, 분채_59×58cm_2022
홍순주_결_한지에 먹, 석채_109×66cm_2019
김윤순_A Lovely Da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72.7cm
하정민
이숙진_days-blue_한지에 먹, 석채_130×162cm_2020
송근영_푸른바람_한지에 사이노타입_72×75cm 2023
유희승_내 마음의 꽃-희망_한지에 먹, 금니_27.5×41cm_2023
최병국_백령 dream_수묵담채_53×45cm_2023 김성희_별 난 이야기1910
양정무_情景交融_만월, 도움의 장소_장지에 수묵_81×40cm_2022 이은숙_기암_한지에 금색안료_94×63cm_2017
김현숙_그 집_장지에 수묵채색_46×54cm_2012 박민희_별유화원-friends_한지에 혼합재료_53×51cm_2022
김지연_바람이 들려준 이야기_혼합재료_45×45cm_2023 허진_유목동물+인간-문명2022-14_ 한지에 수묵채색, 아크릴채색_100×80cm_2022
이애리_Good Luck in 꽈리23-70_ 장지에 수묵, 피그먼트 잉크, 과슈_60.6×60.6cm_2023 탁양지_해향_화선지에 먹, 채색_46×56cm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김춘옥 이사장은 "이제 회복되는 일상 가운데 한국의 전통미술인 한국화를 알리고 부흥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할 것이며, 그 노력은 비단 한국화진흥회 회원들뿐만 아니라 작품 활동을 하는 국내외 모든 한국화가들의 공동노력이기도 하다. ()한국화진흥회는 이제 초창기의 어려움을 넘어 앞으로 많은 국내외 전시들을 기획하고 한국화를 알리면서 한국화의 르네상스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그 일들을 위해 많은 작가분들의 협력과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한국화진흥회의 네 번째 정기전 한국화, 천천히 스며들다에서 참여 작가들의 치열한 열정과 저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나아가 한국화의 진흥을 위한 방향을 새롭게 모색할 수 있는 전시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화진흥회

 

matters

김소정展 / KIMSOJEONG / 金昭廷 / painting

2023_0615 2023_0715 / ,,공휴일 휴관

김소정_IYKYK_한지에 먹, 3단화_75×146.5cm_2023

                                                           

                                                                                                                                       2023 OCI YOUNG CREATIVES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월,공휴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수송동 46-15번지)

Tel. +82.(0)2.734.0440

www.ocimuseum.org

김소정은 사물의 온전한 형태만을 그릴 뿐, 그것의 본질은 설명하지 않는다. 집결한 군중을 그리지만 표정은 그리지 않고, 그들이 쥐고 있는 깃발과 현수막은 그리되 외침과 주장은 비운다. 그의 헌신적인 먹 선은 구체적인 현실로 향하지 않는다. ● 아무도 기억에 남기지 않을 것들, 없었던 것처럼 사라질 일들을 이러한 방법으로 되짚어보는 이유는 내가 목도한 것들이 어딘가 어긋나 보이고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로잡는 것은 작가의 몫이 아니기에 그저 형태를 분해하고 다시 배치하고 가려보며 이 흥미로운 불편함을 작품이라는 창을 통해 내보일 뿐이다. ● 강한 전달은 이해와 해석의 범위를 좁힐 수 있다. 때로는 은유적인 것이 더 예리하게 새겨지고 오래 기억되곤 한다. 없어도 그만인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무엇'이라 기록하는 행위는 이 시대에 대한 김소정의 나지막한 발언이다. ■ 이영지

 

김소정_Cien Asuntos_한지에 먹, 채색_100×410cm_2023_부분

김소정의 군상 ● 참사와 재난, 전쟁과 분쟁, 긴장과 무장, 범죄와 비리, 차별과 착취, 고독과 중독, 빈곤과 격차. 우리 삶의 망가진 곳은 늘어만 가는데, 고치는 사람보다 망가뜨리는 사람이 많다. 내버려 두면 영영 망가지기에 고치는 사람들은 거리로 나서 군중을 이룬다. 마음속에 의지를 품고, 머릿속에 문제를 채우며, 귓속에 목소리를 담고, 손안에 해법을 쥔 채, 입으로 해결을 말하며, 몸으로 실천을 행한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말과 우리 사회는 몸과 마음이 무너진 사람들이 발전시킨다는 말에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군중은 곧 우리 조국과 사회를 사랑하여 발전시키는 사람들인 것이다. 1894년 동학 농민과 1919년 조선 민족 그리고 1948년 제주 도민과 1980년 광주 시민은 모두 그런 군중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반란이나 소요를 일으키는 세력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서로 다른 때와 다른 곳에 살았지만,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시선은 한결같았다. 이 한결같은 시선은 지금도 여전하다. 여전하며 강력하다. 강력하게 외면하고 왜곡한다. 법률로 죄를 씌우고 벌금으로 짐을 지운다. 배척하고 고립시킨다. 그래서 김소정의 군상 속 인물은 얼굴을 가렸다. 자칫하면 고치기는커녕 죄와 짐만 얻은 채, 배척과 고립 속에 쉬이 놓이고 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군중은 계속 거리로 나선다. 그리고 김소정은 그런 군중을 바라본다. 바라보는 일은 슬픔과 노여움을 가진 이유를 살피는 일이자, 몸과 마음이 무너진 이유를 살피는 일이며, 망가진 곳을 고치기 위해 내딛는 첫걸음이다. 김소정은 바라보았기에 첫걸음을 내디뎠고, 그림으로 옮겼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계속 나아간다면 틀어진 시선을 바로 잡을 것이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과 경청해야 할 소리를 짚어줄 것이다.

 

김소정_Cien Asuntos_한지에 먹, 채색_100×410cm_2023_부분

이러한 태도는 정조와 닮았다. 정조는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떨어져 지냈다. 어른일 때는 아이를 잃고 연인도 잃었다. 자신의 즉위를 반대하거나 변화를 반대하는 세력. 심지어 자신을 죽이려는 세력 한 가운데서 오랜 시간 살아남았다. 배척과 고립 속에 살았을 것이다. 슬픔도 알고 분노도 알았을 것이며, 몸도 마음도 무너진 적 있을 것이다. 그에게 세상은 망가진 세상이었을 것이다. 나라의 주인인 양 행세하지만, 제 도리는 못하는 수많은 관료를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정조는 나의 나라를 뜻하는 아국이 아닌 백성의 나라를 뜻하는 민국이란 말을 썼다. 나라의 주인을 고쳐 잡는 말이었다. 재위 기간 대비 가장 많은 능행을 하며 어떤 임금보다 백성을 자주 만났다. 과거와 달리 행차를 모두가 볼 수 있게 했고, 억울한 일이 있다면 길을 막고 호소할 수 있게 했다. 군주로서 정조는 자신과 같은 군중을 보았다. 그렇기에 망가진 곳을 발견할 수 있었고 또 고칠 수 있었다. 국가가 아이를 돌보게 했고 노비와 차별을 없앴다. 상권을 독점하지 못하게 했고 누구나 장사를 할 수 있게 했다. 학문만큼 무예를 중시하여 방어에 능한 성을 짓고 전투에 능한 군을 키웠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많고 다양한 백성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김소정_Korean Church Christmas_한지에 먹_75.5×60.6cm_2023

과거의 전승과 시대의 변주 ● 김소정은 정조 때 그림을 참고한다. 바라보는 대상이 같기 때문이다. 이때 묘사나 장황 방법은 참고하기 쉽다. 바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족자, 책자, 병풍'으로 나누어 장황한 '초상, 도상, 군상'이 가지는 구성의 이점은 집중하지 않으면 참고하기 어렵다. 이 점에 집중해 보자. 정조 때 그림은 화성 능행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어진, 의궤, 계병'이라는 세 가지 방식으로 나누어 그렸다. 어진으로 군주의 의지를 나타내고, 의궤로 행차의 방식을 전달하며, 계병으로 행사를 기념한다. 목적이 다르기에 방식도 달랐다. 덕분에 우리는 화성 능행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여러 관점으로 살필 수 있다. 어진으로 중심 인물을 깊고 섬세하게 살필 수 있고, 의궤로 주변 인물과 여러 사물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살필 수 있으며, 계병으로 모든 '인물, 동물, 사물, 건물, 지형, 산세'를 다양하고 실감 나게 살필 수 있다. 하나의 주제와 그림 간 수직적 연결이 긴밀하고, 세 가지 다른 방식 간 수평적 연결도 긴밀하다. 김소정은 현재 대주제가 넓고 소주제가 약하다. 그래서 낱장과 병풍으로 나눈 그림 간 연결이 비교적 긴밀하지 않다. 어진 속 임금은 의궤와 계병에 나타나고, 의궤 속 행렬은 계병에 나타난다. 세 가지 그림은 공통으로 등장하는 인물 덕에 서로 연결된다. 이 점을 참고한다면 구성이 조화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며, 양식의 전승뿐 아니라 구성의 이점까지 취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소정_똑바로만 앉으세요 Sit Straight Only_한지에 먹_76×60cm_2023

이어 다른 선례와 비교해 보자. 조선시대 채색 안료의 수는 26색이다. 정조 때 〈화성능행도〉는 이 중 12색을 썼다. 인물의 형태는 80종류다. 당대 최고의 화원이 7명 이상 붙어 1년 넘게 그렸기에 다채롭고 다양하다. 하지만 관료만 그렇다. 백성은 겨우 넷으로 추릴 만큼 단일하다. 이응노의 군상 〈3·1 만세운동〉은 1945년의 그림인데, 150년이 지나도 백성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들에게 다채로움과 다양함을 안긴 화가는 서세옥이다. 1986년에 그린 〈3·1 만세운동〉으로 14가지 색채와 57종류의 형태를 주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군상은 점차 하나의 색채로 동종의 형태를 반복해 그리는 방식으로 변한다. 일본의 침략과 미소의 냉전이 민족을 말살하고 분열시킨 때를 겪었기 때문이다. 하얀 바탕에 검은 묵색으로 엮은 수많은 인물. 이는 사라지고 갈라진 민족을 되살리고 엮어내는 표현이었다. 이러한 단일성은 정권을 찬탈한 군인에 의해 획일성으로 바뀌었다. 이에 하성흡은 〈화성능행도〉를 참고하여 박승희 열사의 장례 행렬을 그렸다. 이는 단색으로 그린 수묵화가 아닌 여러 형태와 다색으로 그린 채색화였고, 획일화에 시달리는 군중에게 다채로움과 다양함을 주는 회화적 시도였다. 이러한 선례는 후대에 좋은 참고이자 기준이다. 하지만 이르지 못하면 그에 준하는 평이 뒤따른다. 김소정은 서세옥이나 하성흡과 달리 군중에게 색을 입히지 않았다. 군상 속 인물이 얼굴을 가린 이유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칠해야 한다. 단일성을 강조할 시대가 아니며, 선례에 비해 묘사 수준이 낮아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현재 안료의 수는 최소 60종이다. 이러한 이점을 살려 색채를 늘려야 한다. 그러면 두 가지 변별력을 얻을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속한 사회 구성원은 저마다 각양각색의 지향을 가졌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군중으로 뭉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결국 뭉친다. 뭉쳐야만 풀 수 있는 중대하고 시급한 문제 때문이다. 형태의 다양함에 색채의 다채로움을 얹힌다면 선례에 준하는 표현력을 지닐 것이고, 나아가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로 뭉칠 만큼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전달력을 지닐 것이다. 추가로 보존력이 필요하다. 어렵게 얻은 표현력과 전달력을 지키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낱장은 책이나 첩으로 장황해야 하고 병풍은 더욱 튼튼해야 한다.

 

김소정_환영한다니까요 Guys, I Do Welcome You fr_한지에 먹_75.5×60.6cm_2023

탕탕평평 평평탕탕 ● 이쪽 아니면 저쪽, 민생이 아닌 정권, 승자 독식과 패자 절멸. 우리는 탕평을 잃은 조선시대 붕당 정치가 세도 정치로 변하여 백성의 삶을 영영 망가뜨렸음을 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정당은 거대 양당으로 나뉘고 정책은 사람보다 자리를 우선하며 정권은 승자의 목에 화환을 걸고 패자의 손에 수갑을 채운다. 김소정의 눈은 어느 한쪽 군중만 바라보지 않는다. 둘이면 둘을 보고 셋이면 셋을 바라본다. 지금 우리나라는 김소정처럼 눈이 귀한 사람과 균형 잡힌 발언이 필요하다. 작가의 발언은 작품이다. 작품의 표현력과 전달력은 곧 발언의 힘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선례의 온전한 전승과 이점을 취한 시대적 변주를 바랐다. 두 가지 색채와 형태만 남은 우리에게 작가의 작품이 다시금 다채로움과 다양함을 안겨주길 기대하며. 이상으로 김소정의 군상 비평을 마친다. ■ 김준혁

-이달에 볼만한 전시-

 

영원한 여정: 상형토기와 토우장식토기/ 2022.5.26.-2023.10.9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관

한국실험미술 1960-1970/ 2022.5.26.-2023.7,16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한양 여성, 문밖을 나서다-일하는 여성들전 / 2023.5.5.-2023.10.3 / 서울역사박물관

에드워드 호퍼전/ 2023.4.20-2023.8.20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권하윤전 / 2023.5.16-2023.9.10 / 리움미술관

William Klein 사진전 / 2023.5.24.-2023.9.17 / 뮤지엄 한미삼청

조선백자 다기의 미와 현대미술의 만남 / 2023,6,7-7.16 / 현대화랑

김옥선 사진전 / 2023,6,9-8.13 / 성곡미술관

김주환 설치전 / 2023,7,4-7.23 / 김세중미술관

이상욱전 / 2023.6.28-2023.7.29 / 학고재

이민선전 / 2023,6,22-7.29 / 씨알콜렉티브

정해광전 / 2023,7,7-7.19 / 혜화아트센터

최인호전 / 2023,6,16-7.15 / 스페이스 사직

김병주 조각전 / 2023,6,23-7.23 / 아트스페이스 호화

최소리전 / 2023.7,1-2023.7.30 / 아트인동산 은하갤러리

김주희 판화전 / 2023,7,5-7.20 / 충무로갤러리

장은우 페인팅전 / 2023,6,17-7.15 / 오재미동갤러리

남여주전 / 2023,6.28-7.17 / 돈화문갤러리

차영규 한지 아트전 / 2023,7,11-7.24 / 한벽원미술관

이서윤전 / 2023,7.5-8.3 / 갤러리조선

정상화전 / 2023,6.1-7.16 / 갤러리현대

전광수 ‘자연이 품은 마음을 찾아주는’전 / 2023,6.28-7.11 / 가온갤러리

표영실전 / 2023,6.29-7.15 / 갤러리담

최상룡사진전 ‘일상을 꿈꾸며’/ 2023,7.1-7.10 / 갤러리브레송

오독 '뮤지엄'전 / 2023, 7, 6- 7, 19 / KP Gallery

 

​-인사동-

리정 전 / 2023,7.19-7.24 / 인사아트프라자1층

김영미 '동물농장'전 / 2023.6.28.-7.10 / 갤러리인덱스

김철우 ‘길 위에서 그리다’전 / 2023,7.12-7.18 / 인사동 갤러리H

이재권 ‘여우섬, 그 섬에 가고 싶다’전 / 2023,7.5-7.18 / 갤러리쌈지안

김용문도자전 / 2023,7.19-7,25 / 경인미술관 아틀리에

이진이전 / 2023,7.19-8.8 / 갤러리인사1010

백두대간전 ‘다시 길을 가다’ / 2023,7,5-7,11 / 나무화랑

전병삼 설치-회화전 / 2023,6.28-7.17 / 갤러리그림손

김소정전 / 2023,6.15-7.15 / OCI갤러리

복진오 조각전 / 2023,6.28-7.15 / 장은선갤러리

이계원전 / 2023,7.12-8.6 / 통인화랑5층

김재학전 / 2023,6.21-7.22 / 선화랑

정정엽전 ’모욕을 당한 자이며 위대한‘ / 2023,6.21-8.18 / 갤러리밈

 

[스크랩 : 서울아트가이드 20237월호]

 

한국 최초의 독립영화 감독, 동아일보 신춘문예 입상, 음악 잡지 기자, 뉴욕주 클라리마이너 화랑 국제공모전 대상, 전위 해프닝 그룹 '제4집단' 멤버. 이익태 작가의 독특한 이력이다. 존재와 미학의 탐닉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전방위 예술가 이익태의 전시 'Everyone Pierrot'가 갤러리위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위트와 페이소스의 상징 '피에로(Pierrot)'를 주제로 한다. 빨노파 밝은 원색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지만, 전해지는 정서의 무게는 묵직하다. 파격과 도전으로 향하던 시선을 조금 더 안으로 돌려 모두의 내면에 가장 가까운 이야기를 완성했다. 진정한 정체성의 모호함, 폭소 뒤에 숨긴 고뇌와 슬픔. 삶을 살아내는 우리의 '웃픈' 현실을 거울처럼 비춘다.

 

이익태 작가는 '세상이라는 무대에 등장한 우리는 모두 광대다. 사회적 지위, 빈부의 격차, 성별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각자의 희비극을 살아간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다.'라고 말한다.

한지에 칠한 아크릴과 오일파스텔 등의 재료는 '피에로'가 가진 희비극의 다층적 의미와 감각을 잘 표현한다. 뭉근히 섞인 색과 문질리고 으깨진 질감이 독특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화면과 색의 구성에서 작가의 노련함도 드러난다.

 

이익태 초대전 'Everyone Pierrot'를 통해 그 누구도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살아가지 않는다는 공감. 그 공감 안에서 고단한 삶을 견디는 안도와 위로를 전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갤러리 위-

 

반투명한 시간들

The Translucid Moment

2023.6.7-6.30 / 연우갤러리

Rain

비(Rain), 좋아하는 것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생각난다. 비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비가 내리는 세상은 평소보다 아름답게 보인다. 자연은 더 생생해지고, 도시는 한 톤 가라앉은 모습으로 얌전해진다. 우산을 쓴 이들의 종종거리는 발걸음은 작은 새들의 몸짓 같다.

 

비 오는 거리에 서면 다른 세상이 우연히 열린다. 불균일하게 떨어지는 빗소리, 색을 내려놓은 희색 빛 하늘, 골목 사이사이 숨어 있는 빗방울의 모습들을 바라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창이 조용히 열리고 다른 세계를 비춰준다.

 

언제부터인가 비가 오면 밖으로 나가 카메라를 들고 풍경을 담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만이 가지고 있던, 숨겨놓았던 장면들을 이번 전시를 통해 공유하려고 한다. 보는 이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지 궁금하다. 경계와 경계 사이 존재하는, 비 오는 풍경들에 숨겨진 소중한 장면들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현경

 

Votre

카메라를 들고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것은 한때 가장 좋아하던 일이었다. 낯선 곳에 가서 익숙하지 않은 공기를 마시면서 새로운 것들을 지켜보는 것.

 

처음에는 그곳의 공기가, 다음에는 그곳의 소리가,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곳의 냄새가 익숙해진다.

 

그 시간 안에서 그 공간을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카메라에 담기는 것은 한순간의 장면뿐이다. 그러나 이미지로 옮겨진 기억들은 하나의 프레음으로 남아 과거와 미래를 잊고 현재로 남는다.

 

나는 ‘당신들의(Votre)’ 순간을 훔쳐 내 기억으로 만든다.

 

L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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