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치규 조각전 "Resilience"

 

전시기간 : 5월9일 - 6월5일
전시장소 : 원서동 갤러리 아트스페이스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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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을 화두로 십 수 년 전부터 작업을 전개한 조각가 권치규(48)가 물질이 어떤 변형의 힘을 받을 때 다시 원래의 회복되려는 힘 '회복 탄력성(Resilience)'에 주목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라" 라는 말과 같이 보이지 않는 힘에 주목한 작품을 선보인다.

 
권 작가는 "밑바닥에 떨어져서도 우리는 다시 재기의 희망을 본다. 심지어 물도 자리를 내주었던 것이 떠나면 다시 그곳을 채운다. 부정과 해체, 억압의 힘은 꼭 그만큼의 반대급부의 힘, 즉 긍정, 생성, 자유의 힘을 만들어낸다. 일종의 리듬이죠."라고 작업에 대해 설명한다.


보이지 않는 힘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작가의 남다른 통찰력으로 찰나의 순간의 공존하는 힘을 극대화 해 작품 곳곳에 드러내고 있다.

 

권 작가는 2011년 개인전 이후 보이지 않는 힘을 드러내 보이는 데 힘을 써왔다고 한다. 힘은 상대적으로 절대적으로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힘이 보이고 느껴질 때는 언제나 상대적이라고 한다.


"어떤 사물에 가해질 수 있는 가장 극단의 힘, 그 사물이 허용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실험한다. 최고의 회복탄력성 그것이 그 사물이 갖는 힘의 크기이다. 우리는 더 무거운 것을 들어보기 전까지 우리의 힘을 잘 알지 못한다."며 "모든 운동에는 힘이 들지만, 힘을 애써 쓰기 전까지는 힘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함의 상대성, 이것이 힘을 가시화하는 데 있어 핵심이다. 나는 한 시대의 예술가로서 인간의 근원적 힘을 가시화하고, 이를 통해 발언한다."


권치규의 작업은 존재적 철학, 예술의 담론과 미학적 내용을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미술사적 흐름과 시대의 변화에도 불변하는 인간의 윤리를 담으며, 미술의 원초적 기능을 수행한다.


자연의 힘, 인간과 문명의 힘 등은 이미 항상 관계 속에서 서로의 힘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의 이번 작업과 전작들은 힘을 관계적으로 정의하고 작품으로 풀어낸다.

 

조각가 권치규에게 주름은 현상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들의 이면에 존재하면서, 그 현상세계의 존재들을 생성, 변화시키는 근원적 생성원리이고, 힘을 작업 속에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여기에 색을 담아 그 오브제에 형태가 잡히고 그것이 고된 연마를 견디어 색을 내보이는데, 색은 작품의 존재 방식이고 그들의 기분과 표정, 성격을 드러내는 하나의 요소로 조각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CNB뉴스 기사 발췌- 

 

전시장을 스케치해 올렸으나, 작품규격을 표기하지 못해 죄송할 뿐이다.

어찌 사진으로 실제 작품의 울림을 전할 수 있겠느냐마는 그냥 팜프렛 보듯 보시고,

 늦기 전에 전시장에 들려 그 감동을 맛보세요.

 

 

 

 

 

 

 

 

 

 

 

 

 

 

 

 

 

 

 

 

 

 

 

 

 

 

 

 

 

 

 

 

 

 

 

 

 

 

 

 

 

 

 


양지운 도자 展

양지운 도자전이 지난 5월27일부터 6월 3일 까지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 전통의 연리문기법과 상감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응용하여, 다양한 패턴으로 색의 흐름을 표현하고 자연스럽게 생기는 흙의 결에 금을 채워 깎아내는 금 상감을 한다. 또한 표면을 연마 하여 부드러운 감촉과 은은한 빛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다채롭고 아름다운 색감이주는 시각적 즐거움, 식기 위에 놓일 음식의 다양한 맛과 향을 상상하는 미각과 후각의 즐거움, 부드러운 표면에서 느낄 수 있는 촉각의 즐거움, 고온에서 자화된 맑은 도자기의 소리에서 느낄 수 있는 청각의 즐거움까지. 리빙 오브제와 식기에 입혀진 오감(五感)을 느낄 수 있는 전시다."라고 초대의 글에 적고 있다. 

 

 

 

 

 

 

 

 

 

 

 

 






2014 OCI YOUNG CREATIVES

빈우혁_애나한展 

2014_0508 ▶ 2014_0604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4_0508_목요일_05:00pm

 

빈우혁展 /『Stirring Still』

애나한展 /『Da Capo』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수송동 46-15번지Tel. +82.2.734.0440

www.ocimuseum.org

 

상실의 풍경: 불가능한 친밀함에 가려진 치유본능-빈우혁 ● 캔바스 위에는 나무가 빼곡히 들어찬 울창한 숲이 펼쳐진다. 나무 사이로는 넓은 호수가 있고, 그 위로 숲과 하늘이 비친다. 가끔 표지판이나 철망, 사람의 흔적이나 건물의 일부 등이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숲은 이런 기호들과 함께이든 아니든, 왠지 낯선 풍경이 된다. 우리 주변에 존재할 것 같지만, 이전에 보아온 숲의 느낌과는 거리가 있는, 그래서 현실 속 존재가 의심스러운 숲, 그것이 작가 빈우혁이 그려내는 숲이다. 이번 전시에서 빈우혁은 그가 자주 방문하는 숲들을 그렸고, 구체적인 장소가 제목으로 쓰이기도 했다. 작가는 주로 캔바스나 종이위에 목탄으로 그림을 그렸다. 간간이 아크릴로 부분을 칠하기도 했지만, 색의 사용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의 숲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마치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퍼 다비스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장엄하고 아름답지만 인간을 압도하는 힘이 느껴지는 화면처럼, 그의 작품은 인적이 없고 고립된 원초적 자연의 모습처럼 보인다. ● 그 낯설음의 첫 번째 요인은 서사적 시간의 부재이다. 우리가 경험한 실제 시간과 거리가 먼, 그것 밖에 존재하는 이곳에는 바람이 지나는 소리, 동물의 움직임, 바스락대는 어떠한 소리나 실재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공기의 흐름이 단절된 듯 보이는 자연은 그래서 더욱 낯설다. 빈우혁은 작품 제목에 때때로, 더러운, 자살, 경계 등의 단어를 삽입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림의 구체적인 감성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그림들을 그의 감정에 의존해서 그렸다. 우울한 날, 외로운 날, 슬프거나 기쁜 날 등, 어떤 감정이 그를 자극할 때, 그는 숲을 방문했다. 그 숲은 빈우혁의 감정을 촉발시킨 원인 제공 처는 아니지만, 그의 감정과 연관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작가의 작법은 매우 특이하다.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고, 그것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림으로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빈우혁의 작품은 결국 작가의 심리적 상황, 내면적 복합성, 기억 등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빈우혁_Arnsberger Wald 2_캔버스에 목탄, 과슈_53×45cm_2013

빈우혁_우울한 날_캔버스에 목탄_148×180cm_2013
 

상처의 감정과 치유의 기원 ● 빈우혁은 작업노트에 자신의 기억 속 삶에 대해 담담히 적어 내려간다. 유복하거나 따뜻하거나 편안하지 않았던 삶의 여정이 지나치게 솔직하게 기술된 그의 작업노트를 보고 있으면, 작품 뒤에 가려진 그의 감정 상태를 느낄 수 있다. 유년기이후 계속된 크고 작은 상처들이 작가의 중요한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상처는 현재가 과거를 자극하거나 과거가 현재를 자극하는, 탈-단선적 시간 안에서 복합적인 관계를 통해 억압되거나 은폐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외상들은 매우 은밀하고 끈질기게 반복해서 우리를 정신적 고통 속에 몰아넣는다. ● 원래 밖에서 들어온 자극에 의한 상처를 의미하는 트라우마(외상)는 신경계의 보호방패가 균열되면서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적절하게 묶어주지 못하는 병리적 상태를 의미한다. 트라우마, 외상은 실재 일어났던 사건이 주체의 억압된 욕망을 자극하면서 형성되는 심리적 작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외부의 구체적 사건보다는 내재된 복잡한 심리적 관계 안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주로 유아기의 좌절되고 억압된 욕망에 기인한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단계의 서사적 시간 밖에, 의식의 범주 밖에, 기호로 치환되는 현실 밖에 존재하는 트라우마는 제대로 언어화되지 못한다. ● 주체가 트라우마 장면을 회상할 때 언캐니(uncanny)가 발생한다. 익숙함이 억압된 심리적 거리를 프로이트는「언캐니」라고 규정했다. 언캐니는 보편적이고 평범한 장면이지만, 억압된 심리적 상황에 의해 왜곡되거나 이상하게 보이는 것을 말한다. 무언가 낯익지만 낯선, 평이한 사물 뒤에 숨겨진 생경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불가능한 두 가지 감정의 동시 발생이 언캐니의 현상인데, 트라우마가 회귀하면 언캐니한 구조를 갖고, 지연된 작동을 통해 반복되는 이미지로 재구성 된다. 친밀함이 가려지거나 은폐된 상황, 그래서 익숙한 풍경안의 낯설음이나, 무언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대상의 모습을 언캐니의 표현으로 본다. 이 기묘한 친밀함과 거리감을 동시에 주는 풍경이 바로 빈우혁 작품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빈우혁_Grunewald 13_종이에 목탄_197×100cm_2014
 

상반된 두 가지 느낌과 내용이 공존하는 상태 ● 트라우마에 맞서, 주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엄밀히 말해서, 기호화 될 수 없는 외상에 대한 방출은 무의식적 행위로 나타난다. 의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무의식적 반응은 언어적으로 명료하게 구체화 시킬 수 없다. 그가 그리는 숲은 단순히 인간이 마주한 원초적 자연을 넘어선다. 그를 구성하는 복잡한 내면 속에 억눌리거나 불안의 요소로 다가왔던 사건과 기억으로 돌아가서 언캐니의 현상처럼 부조리한 결합과 모순된 연결을 품고 가시화된다. ● 기억 안에서 이미 왜곡되고 변형된 과거에 대한 가장 긍정적인 반응은 반복을 통한 익숙함의 도입이라 할 수 있다. 그저 반복함으로써 고통의 원인에 대한 충격의 완화, 거리감의 와해가 이루어진다. 반복은 기억을 대신한다. 반복되지 않고는 기입될 수 없는 심리적 상황에 대한 표현으로 빈우혁의 숲은 번진 듯 희미하게도, 둔탁한 선으로 담백하게도, 충격처럼 예리하게도 그려진다. 회화의 맛을 낸 듯 보이는 선의 효과는 화면과 현실의 거리감을 더욱 강조해준다. 언뜻 자연의 한 부분처럼 보이는 이곳은 작가의 심리적 장소이자 복잡한 내면이 선택한 방출의 공간일 것이다. 여러 번, 반복적으로 숲을 그리면서 작가는 무의식적으로 치유를 향한 열망을 드러내고 있다.

빈우혁_Triestpark 3_캔버스에 목탄_53×45cm_2013

빈우혁_Naturschutzgebiet 8_캔버스에 목탄_46×46cm_2013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작가의 숲은 재현 되지 못하는 개인의 정신적 상황과도 적절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림을 통해 관객들은 각자의 트라우마의 순간을 간접적으로 대면하게 된다. 다양한 상처와 이야기를 가진 여러 모양새의 관객들에게 빈우혁의 언캐니한 숲은 소통을 확보해 줄 뿐 아니라, 관객 각자의 외상의 기억들을 자극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확대된 의미의 공공성을 갖는다. ● 은밀하고도 치밀하게 가려지고 변형된 기억 안의 상처들, 그러나 그것을 치유하려는 욕구는 끊임없이 무의식적 발현과 기호화 사이에서 긴장감을 발생시킨다. 숲이라는 전통적 소재의 형상보다는 그것을 자신의 복잡한 심리적 상황에 대한 대응체로 만들어가는 작가의 표현은, 불가능한 언어화의 대상인 내면적 상흔에 대해 가려져있지만, 순간적으로 번뜩이듯 드러내는 균열된 기호화의 흔적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 숲은 상실을 담은, 그러나 동시에 치유를 숨겨놓은 바로 그런 이중성의 장소이기에 우리를 강력하게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숲의 불가사이 한 공간으로 걸어 들어가 그 은밀한 상처와 치유의 경험을 다시 느끼고 싶다. ■ 진휘연

애나한_A Place Where You and The Light Rest_341×555×950cm_2013

애나한_A Way To The Third Room_페인트, 프린트, 천, 카펫, 조명 기구_330×900cm_2013
 

개인들이 부여하는 가치들의 안식처-애나 한의 생물학적 공간과 관계미학 ● 애나 한의「agent Orange」(Cheongju Art Studio, 2012.2.1.~2.12)는 작품해석의 좋은 단서를 제공한다. 가령 그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오렌지색은 치유와 힘, 창의성, 격려, 참을성 등 색이 가지고 있는 뜻이 많다. 우리가 어떤 것에 더욱 몰두하고 싶을 때나, 어떤 심각함을 덜고 싶을 때 오렌지색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번 추운 겨울에 갖는 청주창작스튜디오에서의 릴레이 개인전은 2012년 새해의 시작을 호기심과 새로운 것에 대한 표현으로 사용되는 따뜻한 오렌지색을 주(main)로 설정하였다. 오렌지색이 우리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주는 영향은 활동성, 입맛, 사회성 등의 증가, 뇌의 산소 운반 증가, 격려의 효과 등이 있다고 한다. 사회적, 계절적 한파 속에서 관객에게도 치유와 격려, 따스함을 공유 할 수 있는 장이 되었으면 한다. 갤러리 바닥의 부드러운 펠트, 조형적 요소를 부각 시키는 끈과 구성요소들과 함께, 공간 속에 오렌지색이 점유함으로서 느껴지는 인식적 느낌을 기대한다." ● 그의 증언은 우리가 그의 작품 앞에/안에/밖에 섰을 때 느낄 수밖에 없는 선험적 체험으로서의 '공간디자인 연출'이 해석결정론에 이르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를 하고 있다. 시각현상으로서의 그의 작품은 공간 디자인적이거나 무대 디자인적이어서 공간/무대연출 작업이라는 선입견을 떨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의 홈페이지를 클릭했을 때 전면적으로 부각되는 현상 또한 수많은 색과 빛과 공간/장소들에서 펼쳐진 '연출론'의 증좌들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그의 작품들이 내포하는 공간/장소들에서의 첫 인식, 그러니까 공간/장소와 만났던 애나 한의 첫 사유를 밝히지 않고서는 해석의 깊은 우물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 '첫 사유'에 이르는 단서를 세 개의 알고리즘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공간/장소라는 말의 개념이 함의하고 있는 매우 본질적인 입장이다. 두 번째는 그 공간/장소의 개념이 다른 알고리즘의 개념과 만나기 위해 뻗어가는 라인(線)과, 결국 그 라인의 끝에서 만나는 두 번째 개념으로서의 색과 빛이다. 세 번째는 무엇일까? 자칫 이 알고리즘의 평면성은 단순한 다이어그램에 따라 피라미드처럼 삼각형 구조로 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선 나는 입체 피라미드의 그림을 떠올린 뒤 그 내부에 두근거리며 빛을 발하는 붉은 심장을 넣어두라고 말한다.

애나한_Da Capo_설치_2014_부분
 

사람/사물이 점하고 있는 장소 또는 인간 활동이 행해지는 장이나 물체운동이 전개되는 넓이 ● 애나 한이 작업하는/연출하는 공간들의 개념을 정의할 수 있다면, 먼저 그 공간들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위의 밑줄 친 공간 개념과 어떻게 만나는 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점하고 있는가? 사물이 점하고 있는가? 인간 활동이 행해지는 장인가? 아닌가? 인간 활동과 물체운동의 넓이가 확보되어 있는가? 아니, 실제로 그곳은 공간인가 장소인가. 공간이라면 왜 그곳은 낯설고 추상적인가? 장소라면 어떻게 낯설고 추상적이었던 것이 구체적인 곳으로 바뀌게 되었는가? ● 중국계 미국 지리학자 이-푸 투안(Yi-Fu Tuan)은 공간은 움직임이고 개인들이 부여하는 가치들의 안식처이며 안전과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고요한 중심이라고 했으나, '토포필리아(Topophilia:장소애)' 개념에서는 우리 경험이 쌓아져 만들어진 장소, 그래서 기억으로 애잔하게 떠올라 사랑이 깃든 곳에 대해서 말한 바 있다. 공간과 장소는 다르지 않은 하나이지만 체험하는 주체에 따라 의미상징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애나 한의 공간들은 무엇인가? 과연 그곳은 공간인가? 토포필리아인가? ● 애나 한은 나와의 만남에서 그가 작업했던 공간들에 대해 설명한 바 있는데, 내가 주의를 기울였던 것은 그가 새로운 공간들과 만나면서 서로, 그러니까 그와 공간이 만남의 구체성을 어떻게 획득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섬세하게 말하는 부분이었다. 그에게 공간은 추상이 아니라 늘 구체적 현실이었으며 경험의 장소들이었다는 것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질문들이 그 자체로 애나 한의 작품을 해석하는 미학적 개념일 수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 그는 그에게 주어졌던 공간들과 그가 만날 수밖에 없었던 공간들, 그리고 그가 스스로 선택해서 만났던 공간들에서 작업을 전개했는데, 대체로 그 공간들의 속성은 완전히 점유된 적이 없었던 공간이기도 했고(Skowhegan Simon Studio), 또는 누군가에 의해서 늘 점유 당했던 공간들이었으며(그가 작업했던 많은 전시공간들이 그렇다), 인간의 활동과는 다소 무관하거나 아주 친밀하거나(고양창작스튜디오에서 선보인 공공적 성격의 인터렉티브 설치공간을 떠올려 보자), 심지어는 기억할 수조차 없는 무명의 공간들도 존재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애나 한의 공간 작업들이 단순히 개념적 공간이라는 물적 토대가 아니라 이-푸 투안이 주시했던 세 개의 주제 첫째, 경험의 생물학적 토대, 둘째, 공간과 장소의 관계, 셋째, 인간 경험의 범위와 매우 유사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예컨대 투안은 미술관(또는 갤러리)이 자연발생적인 마을들과 달리 인위적 문화공간이라는 점에서 삶의 실존적 토대가 없다고 했었다. 애나 한은 역설적으로 그런 공간들을 경험의 생물학적 공간들로 바꾸어 냄으로써 그가 사유하는 공간개념을 펼쳐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그의 작업들은 공간디자인이나 무대연출로서의 시각적 객관현실과 무관하게 '감응의 판타지'이라는 주관체험의 장으로 나아가게 된다.

애나한_12000145_천, 거울, 형광등_370×84cm, 370×120cm_2012

애나한_에이전트오렌지_프로젝터, 할로겐, 줄, 페인트, 펠트, 형광등, 거울_738×816×1814cm_2012
 

바깥 사물과 나, 객관과 주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한 몸으로 이루어진 그것 ● 작품으로 완성된 공간이 '장소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자동적으로 생성된 두 번째 알고리즘이 색과 빛이다. 색/빛은 공간/장소의 대칭점에 고정적으로 배치된 개념이 아니다. 그의 작품은 회화적 평면작업에서 출발했고 바로 그 평면작업의 확장선이 공간과 만난 것이며, 지금 그는 회화니 장소니 공간이니 하는 생각보다는 공간 그 자체에 대한 '인간 경험의 범위'에 대해 사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그가 매우 중요한 공간설치의 테제로 개입시키는 것이 색/빛인 것이다. 앞서 인용했듯이 오렌지색이 치유, 힘, 창의성, 격려, 참을성의 뜻이 있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활동성, 입맛, 사회성 증가, 뇌의 산소 운반 증가, 격려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매우 중요한 색 선택의 이유였듯이. ● 그가 선택한 색과 빛 그리고 그 색의 공간배치와 빛의 조화, 그뿐만 아니라 장소체험을 유도하도록 구성하는 공간디자인의 핵심은 결과적으로 시각적 관상이나 관람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조형적 추상설치로 읽는 것이 작품해석의 본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가 목적하는 바는 여타의 예술작품들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그의 작품들 또한 관객들과 어떻게 영적 감흥이 일어나는가에 있다. 그것은 정신의 동요일수 있고 영혼의 치유일 수 있으며, 주체와 공간이 합일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감응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 작업한 많은 작품들은 입체적인 공간설치로서 관객의 자율적 체험을 강조하는 인터렉티브 개념이 보다 더 확장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그 지점이 알고리즘의 중심에 위치한 두근거리는 심장(영혼)이다. ● 애나 한은 이러한 작업의 출발이 그가 어려서부터 고민했던 삶의 방향성, 불확정적 위치, 우울증, 유학의 여정들과 귀국 후 지금 여기의 한국적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작품의 생태론적 원형이 작가의 사유에서 비롯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그의 작품들이 그 스스로 우리에게 던지는 미학적 은유는 명상적이며 관계적이다. 그는 이번 OCI미술관에서『다카포 Da Capo(처음부터)』를 주제로 공간설치를 보여준다. 삶과 예술의 알고리즘이 형성했던 최초의 순간으로 돌아가 다시 그 알고리즘의 수레바퀴를 사유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그에겐 다시 처음이겠으나 우리에게는 이런 그의 작업들이 늘 새롭다. ■ 김종길

 

단한번의 사랑 - 아카시아

이창희展 / LEECHANGHEE / 李昌熙 / painting 

2014_0528 ▶ 2014_0602

이창희_Acacia dresswave

 

이창희 카페_www.cafe.daum.net/mozet

 

 

초대일시 / 2014_0528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관훈동 188번지)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감정적인것에 대해서... 매년 5월이 되면 '단 한번의 사랑' 아카시아 꽃이 핀다. 추억속의 첫사랑의 설렘은 아카시아 향기로 시작된다...순수한 느낌의 감정적 풍경속으로 아름다운 둘만의 여행을 떠난다...아련히 떠오르는 모습 ...손을 뻗으면 닿을 것같은 드레스웨이브...'아카 **' 지금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이창희_Acacia dresswave

이창희_Acacia dress wave

이창희_Acacia dresswave-기다림
 

첫사랑의 감정을 "아카시아 드레스웨이브"에 담아서... ● 감정적인것에 대해서.. 우리는 지난날의 첫사랑에 대한 순수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지난추억에 대해 회상하는 장소가 필요 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아카시아 동산은 필자에게 생각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자연을 바라보면서 과거의 회상으로 둘만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 일년 중 단 한번만 꽃을 피우기까지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하는 아카시아나무를 바라볼 때면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단 한번만 사랑하기를 바랬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원했던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려본다. 자연을 멍하니 바라보며 과거의 영상을 떠올리기까지 현실풍경과 회상적인 것의 이중적인 영상이미지가 교차하게 된다. 현실의 풍경과 과거의 영상이 겹쳐지는 현상을 자주경험하면서 그 둘 중 어느 것이나 중요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카시아나무와 드레스웨이브는 현실과 과거의 感情的이고 物性的리얼리티의 함축된 테마인 것이다.

이창희_Acacia dresswave

이창희_Acacia skin dresswave

이창희_가로수아카시아 dresswave

이창희_아카시아 dresswave
 

 

액자 테두리형식은 그림과 가장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고전적인 형식을 그대로 그림으로 적용시킨 드레스 웨이브 외곽틀과 틴트색 마트는 필자의 감정적 풍경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모티브 다. 외곽틀의 dresswave를 통해서 끊임없이 인간의 그리움과 체취를 전하고 있다. ● 필자가 정립한 物性彩法은 自然의 섬세한 관찰을 기반으로 한다. '表破光의 잎사귀'와 '透光의 잎사귀' 그리고 '불투명의 잎사귀'를 物性터치에 각각 함축시켜서 표현 하고 있다. 파스텔색채를 수성과 유성재료 작업으로도 표현하고 있는데, 주로 物性米點터치가 사용된다. 촉촉이 젖은 느낌의 색채와 건조한 파스텔색 토운의 포근함과 함께 物性的 感情을 이끌고 있다.

                                                                                       이창희_아카시아향기 dress wave

이창희_아카시아향기 dresswave

 

 

物性米點터치의 色물들이기 기법의 보석 같은 아름다움은 자연의 透光된 잎사귀에서 발견 할 수 있었고, 그것이 상큼한 사랑의 감정의 공통된 美感이며 촉매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White 위주의 '發化' 하는 중첩 프로타쥬 덧칠 기법으로 순수한 감정과 파스텔 색채가 하나가 되어 우리 앞으로 꾸미지 않는

미성숙의 아름다움으로 와 닿을 수 있었으면 한다. 필자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순수한 感情的 풍경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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