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친구를 인사동에서 만난지도 벌써 30년이 되었다.

한 때 해인사에서 스님생활을 한 적도 있다는데, 무슨 사연인지 절집을 뒤로하고 인사동에 진출하였다.

이미 별이된 서양화가 강용대씨가 특히 좋아했던 친구였는데, 여지껏 안 죽고 살아 남은게 용하다 싶다.

가끔 몇 개월 혹은 일년 남짓 종적을 감출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행여 얼어죽지 않았나 걱정을하지만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의 각설이타령처럼 때가되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거지 주제에 사치스럽게 밥보다도 녹차를 더 좋아한다. 아마 절집에 있을 때 녹차에 중독된 것으로 안다.

옛날에는 거지행색의 그를 맞아주는 찻집도 있었고, 따뜻한 물을 끓여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 방법으로 해결책을 찿았는지, 찻집도 온수도 필요가 없다.

별명은 항상 머리를 까딱거려 까딱이라 부르는데, 아무리 없어도 면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손을 벌리지 않는다.

주 고객은 조계사 스님들과 인사동을 오 가는 단골 예술가들이다.

천상병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는 노잣돈 명목으로 갈취 했지만, 까딱이가 받는 명목은 인사동 통행료다.

 

몇일 전 인사동에서 촬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돈내놔'하면서 팔목을 잡는 것이다.

너무 깜짝 놀라 그에게 처음으로 화를 벌컥 냈다. 돈 달라는 성화에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인사동 거리에서 만나도 아는 척도 하지않고 딴청만 부리는 것이다.

'혼자 잘 묵고 잘 살아라'라고 빈정댄다면 차라리 나을텐데,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있는 그는 스스로 자진납부하기를 바랄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리면 습관적으로 호주머니 확인부터 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마치 탈세한 것처럼 인사동을 지나치기가 왠지 불편하다.

 

201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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