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음유시인으로 통하는 송상욱선생께서 홀아비 신세를 면했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지난 10월11일, 오랫만에 송상욱선생을 만나 '여자만'에서 술 한잔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술자리가 파하여 술집 문을 나서는데 송선생께서 먼저 말씀을 하셨지요.
"조형! 나가 고백할께 하나 있다께이"라기에 "고백은 므슨 고백입니꺼?"했더니 청춘고백이랍디다.
맞은편에 있는'인사동 사람들'로 자리를 옮겨 송선생의 러브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지요.

2년전인가? 작은 '여자만'에서 술 한 잔 하고 나오다 송선생 따라 술집 맞은편 2층에 있던
'아라가야'라는 이름의 전통의상 가게에 들려 차 한 잔 얻어 마셨던 기억이 났는데,
송선생께서 그 때부터 가게주인이었던 김내옥(50세)씨에게 연정을 품은 것을 몰랐지요.
아내가 집을 나가 홀아비 된지 어언 40여년이 넘어, 평생을 독신으로 지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가족이나 여자관계에 대해 말씀이 없어 나름으로 혹시'고잔가?'하는 엉뚱한 생각도 했고,
말씀도 없으신 송선생께서 프로포즈는 어떻게 하였을까? 하는 궁금증도 발동했습니다.
"눈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서로간의 은밀한 소통이 한마디의 프로포즈보다
여운이 길어 서로를 신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송선생님! 한 달에 거시기는 몇 번이나 합니꺼?"라는 당돌한 질문을 던졌더니,
마누라 생리 핑게, 술 핑게를 대시며 한 두번 밖에 못 한다는 것입니다.
혼자 생각으로 오래동안 사용치 않아 녹슨 줄 알았는데,
"아직도 마음만 동하면 일어서는 노익장을 몰라뵈서 정말 죄송합니다."

송선생께서는 새로운 배필을 만나 깨가 쏟아지는 신혼의 즐거움을 비밀리에 즐긴 것에 마음에 걸려서인지,
그동안 신혼 살림에 바빠 인사동 술자리에 자주 얼굴을 내비치지 못해 마음이 캥겼는지는
모르지만 뒤늦게 사랑고백을 하고 나선 것입니다.
2년 동안의 은근한 구애작전 끝에 안방마님으로 모셨다는 반가운 고백에,
인사동 거리에 나가 쌍나팔이라도 불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나이가 들 수록 혼자 살기 힘들어요. 외롭기도 하지만 마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상대가 절실하니까요.
아무튼 새로운 배필을 만나 가정을 꾸민 송상욱선생님께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남은 여생동안 행복하시길 빕니다.

송상욱선생은 전라도 고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중학교 다닐 때 친구가 건달한테 매맞는다는 전갈을 받아 구출하러 갔다 오히려 두들겨 맞아
오랜기간 집에서 치료를 받은적이 있었는데, 무료함을 달래려 만진 기타가 지금의 음유시인을 탄생시킨 계기였답니다.
한 때는 기타를 잘 다루는 친구가 기타 연주법을 가려쳐 주었지만, 시키는데로 해보니 느낌이나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자신만의 기타연주법을 개발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자작곡의 신곡이 들어간 두번째 음반이 곧 나온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부산으로 이사하여 동아대학교 공대 토목과에 입학했으나,
관심없는 공대보다는 문리대 국문과를 기웃거리다 국문과 교수의 도움으로 전과를 해, 국어교사와 시인의 길을 걷게되었고요.

10여년전 갈현동 '선정고등학교'에서 정년퇴임하며 본격적인 시작할동을 위해 인사동에 작업실을 마련하였답니다.
이곳은 '멧돌' 송상욱 시지(통권 31호 발행) 편집과 자신의 시작을 위한 공간입니다.
작업실에는 텔레비젼과 오디오는 물론 컴퓨터도 없었습니다.
오직 시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무료할 때 연주하는 기타와 징 하나가 비좁은 모퉁이를 지키고 있었지요.
다락방 계단에 올려진 연탄재를 보니 안도현의 시가 생각납디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웠느냐?"

그런데 송선생께서 구산동 자택에서 인사동 작업실로 출근하는 시간도 점차 늦어지고,
작업실에 나와도 집에 두고 온 아내 생각에 일손이 잡힐까요?
아무튼 인사동에 봄사건 나부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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