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의 역사를 보면 갑오개혁 때만해도 서울의 행정구역은 동서남북 중 5개부(部)와 47개 방
(坊), 775개 동(洞)으로 되어있었다. 그 중 중부 관인방에 속해있던 큰절이 있던 마을을 대사동(大
寺洞)또는 큰 절골이라 불렀는데, 행정구역에서 방(坊)을 없애면서 관인방의 인(仁)과 대사동의 사
(寺)를 합쳐 인사동의 동명을 만든 것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사동, 이문동, 향정동, 수전동, 승동, 원동 등의 각 일부가 통합
되어 인사동이 되었다. 그해 9월 출장소 제도 신설로 경성부 북부 출장소 인사동이 되었다가
1915년 6월 경성부 인사동이 되었다. 1936년 4월에는 동명이 일본식 지명으로 변경됨에 따라 인
사정이 되었고, 1943년 4월 구제 실리로 종로구 인사정이 되었다가 다시 1946년 일제가 물러나면
서 인사동이 된 것이라고 한다.
인사동거리는 근대 한국 세도정치의 핵심거리이기도 했다. 지금도 경운동 16번지에 이 세도가들
의 옛집들이 더러 남아 있는데, 순조부터 3대에 걸쳐 위세를 떨쳤던 안동김씨 세도의 김좌근, 김
병국, 김병학의 교사동 대감댁 고대광실의 잔해들이다. 관훈동 197번지는 율곡 이이가 남의 집 신
세를 지다 돌아가신 대사동 우거터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중국인들이 살았던 지역이었고, 조
선 초기 이래 미술활동의 중심지로서 조선의 모든 화가들의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 1924년 처음
으로 통인가게가 생기면서 주변에 서적 및 고미술 관련 상가가 들어서기 시작해 골동품거리가 조
성되었는데, 그 통인가게는 지금도 2대째 운영되고 있다.
6.25 전쟁이후에는 지금의 낙원상가 아파트 자리에 낙원시장이 생기면서 평양떡집이 생겼고,
그 이후로 지금의 떡집 골목도 형성되었다.
인사동이 갤러리 타운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다. 현대적인 상업화랑인 현대화랑(대
표; 박명자)이 관훈동 7번지에 문을 연 것을 기점으로 1974년 문헌화랑, 1976년 경미화랑이 들어
서면서 상설 전시 판매장 형식의 화랑들이 모여들어 미술문화의 거리가 새로이 형성되어갔다. 그
리고 한국화 작가들을 발굴해 전시해 온 박주환씨가 1976년 동산방을 열었으며, 1977년에는 김창
실씨가 선화랑을 열었고, 1983년 이호재씨의 가나화랑, 그리고 경인미술관 개관으로 인사동이 명
실상부한 화랑가로 그 면모를 다졌다.
1980년부터 다시 골동품, 고미술, 화랑, 고가구점, 표구점, 민속공예품등의 점포들이 생겨나면서
전통문화예술 활동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87년부터는 이러한 전통문화를 지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인사전통문화축제가 열리기 시작했
다.
많은 예술인들이 찾는 이 지역은 골동품은 기본이고 이름도 낙관도 없는 그림에서 민화, 수공예품
들이 가게마다 널려있다. 특히 표구사나 액자집도 3분의 1이 이곳에 모일 정도로 문화적인 벨트
가 엮여 있다. 그 외에도 부채나 붓 벼루, 한지 같은 전례 생활용품과 민예품, 장신구들이 관광객
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인사동 총 면적은 53,255평, 이 속에 문화예술 업종이 462개, 식당 및 일반 업종이 523개나 되어
전체 면적에 도로 면적이 가장 적은 곳이고, 세계 어느 나라 도시보다 골목길이 가장 많은 곳이기
도 하다. 특히 인사동 화랑가는 보통 일주일 기준으로 전시회가 바뀌어 여기를 찾는 인파가 1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또한 매주 수요일의 전람회 오픈 때에는 한국의 예술가들은 물론 대표적인
원로 작가들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도 인사동만이 맛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리고
전시 뒤풀이에서 사람들이 인사불성이 되는 곳도 인사동이라고 도예가 한봉림이 말한바 있으나
본인 역시 인사불성이 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혼탁한 도시에 맑은 산소를 공급하는 그린벨트 처럼, 인사동은 우리의 마음과 정서를 풍요롭게하
는 문화벨트이다.그러나 인사동의 문화공간들이 점차 소격동이나 사간동 쪽으로 떠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스타벅스 커피집이나 스파게티, 화장품을 비롯한 대형 매장들이 미술관들을 밀어내고
있어 인사동을 아끼는 많은 예술인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최대식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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