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을 사랑하는 모임’으로 자칭하거나 따로 이름을 하지 않더라도 ‘인사모’라 할 수 있는 흔
히 만나고 모이는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지금도 많다.
사대문 안의 서울 중심 표지석을 인사동194번지에 (1986년-하나로빌딩 로비에 현재 비치) 세웠었
고, 종로의 옛 이름인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데서 이름한 ‘운정가’의 옆길 인사동 길은 사
람의 발길이 닿기 쉬운 서울의 중심거리였다. 젊은이들과 상업지구로 번성한 대학가 앞 동네, 사
대문 밖 도처의 고층아파트를 따라 사람 왕래가 많은 거리들이 각각 생겨서 이제 서울중심 인사동이
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오랫동안 여러 사람들의 인상과 추억이 쌓여져 있기에 인사동을 특별히 떠
올리게 된다.

거리의 가게와 풍경이 바뀌고 사람들도 바뀌지만, 이 중심지역은 여전히 한국의 전통문화와 문화
예술계의 분위기와 자주 왕래하는 유명 무명의 사람들로 인사동의 내력과 인상을 갖는다. 일제시
대에는 여러 개의 병원이 집중해 있었고, 이율곡의 절골(인사동의 옛 이름)집터와 지금도 있는 민
익두가, 세도가 김좌근의 집터, 민영환, 박영효가가 있었고, 큰 책방과 가구점들이 자리하고 있었
다. 집필묵 가게와 표구.액자 골동가게, 화랑들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인사동 거리의 모습이다. 또
차와 술과 음식의 먹거리들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곳과 함께 인사동의 맛과 분위기를 따로 하고
있다.

자기류의 특이한 서예글씨를 인사동가게 여기저기에 남긴 민병산 선생, 귀천의 시인 천상병, 작가
박이엽선생 등 세분을 기리는 책자가 나오기도 했지만, 통문관의 이겸로 주인, 민화를 한국의 주
요 전통문화로 처음 드러내신 조자용 선생, 백자와 전통문화를 품위 있게 누리신 ‘아자방’의 시인
김상옥선생이 인사동 사람들이었기에 요즘 사람들은 이를 잘 알지 못하더라도 인사동의 아이덴티
티로 배어나오게 된다.

민주당, 공화당 당사가 여기에 있던 때도 있었고, MBC방송국이 인사동 네거리에 처음 자리를 했
고, 관훈(기자)클럽이 이곳의 모임에서 비롯한 그리 오래지 않은 일반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유서도 있다. 그러나 박영효가가 이사 가서 없어지고 안국동 쪽 인사동 입구에 있던 돌장승도 왔
다 갔다 하는 요즘에는 옷가게와 먹거리 가게가 늘어나고 있다.

인사동을 이야기하는 몇 책이 있지만 잘 언급되지 않는 인사동에서 가장 오래된 볼거리 하나, ‘이
율곡 집터‘(관훈동197번지)표지석이 있는 곳의 하회나무 고목은 인사동의 살아있는 역사의 증인
격이 된다.


김호근(문화기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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