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털터리 술꾼들의 걱정거리 중 하나가 술자리가 끝난 뒤의 잠자리다.

술이야 얻어먹기도 하고 외상술도 마시지만 여관비는 외상이 안 된다.
대개 술자리가 파할 즈음엔 대중교통이 끊기고, 모범택시들만 기다렸다.
요즘은 사우나탕이라도 가지만, 예전엔 주로 술 먹고 뻗는 작전을 많이 썼다.
타켓은 그래도 녹녹한 ‘실비집’이었다.
술 마시며 잘 놀다가 자정만 가까워 오면 폭주로 나자빠진다.
술상 밑에 개 같이 끼어 자지만 운이 좋으면 아침 해장국까지 얻어먹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건 절대 비밀이다.
추운 겨울에는 곤란하지만 특급 호텔 파고다 공원이 지척에 있다.
문 잠긴 텅 빈 공원에 잠입하려면 일단 나즈막한 대리석담을 넘어야 하고,
모기가 좀 귀찮게 하지만 술 취한 사람에겐 별거 아니다.

잔디 카페트가 쫘악 깔린 데다 너무 시원해 신선이 부럽지 않은 웰빙 호텔이다.

조문호(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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