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와서 고장 난 피아노의 건반을 두들이지만 소리는 소리를 만들지 못한다.
내가 인사동에 작은 골방 하나를 얻어 쉼터를 마련한 때는 1998년 9월이다.
고등학교에서 국어선생을 30년간 하다가 진정으로 내 ‘인생 일’좀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과감하게 사퇴를 하였다.
그때 인사동 학고재 골목을 어정거리다가 무슨 카페 같은 곳에서 풍금소리가 들려와 그 안을 기웃하는데
요상한 사람들 몇이 맥주를 마시고 한 여인은 “빛나는 졸업장”이란 곡의 풍금을 치고 있었다.
그게 인연이 되어 나는 그곳 “시인과 화가”라는 카페 2층에 방을 얻어 나의 인사동 생활이 시작되었다.
인사동은 적어도 나에게는 이상한 기운을 타게 한 곳이다.
내가 시와 함께 음악을 한 탓으로 ‘음유시인’이란 명칭이 따른 탓인지
인사동에서는 풍류인들과 심심찮게 만나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한다.
노래 중에서도 특히 “부용산”이란 노래를 즐겨 부른다.
부용산 노래는 인사동을 드나드는 많은 지인들과 예인들이 좋아한다.
이 노래의 사연이 애상적인데다 곡이 가곡 이상의 신선함을 자아내 좋다.
송상욱(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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