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진을 친 ‘작은 뜨락’은 ‘시인통신’이 있는 건물의 서측 외벽을 이용한 겨우 비를 피하는
가건물로 비가 오면 좌석을 옮겨야 했다.
슬레트가 부족하여 바이닐류로 막음한 일부 천정에서 쏟아지는 자연광선으로 낮에도 그리 어둡지
는 않았다.
소원당(素園堂)은 고행의 방편으로 이곳에 국수집을 열었을 뿐인데 예술가들이 부추겨 주막으로
전환했던 것이다.
경험이 없어 내 놓는 술이나 안주도 모두 과객들이 지정해 주었으니 사실 주인이 없는 집이었다.
이곳은 애술가들의 천국이었고 풍류해방구였다.
어제 고함이 오늘 또 고함을 쳤다. 어제 울분이 오늘 울분을 토한다. 어제 비평이 오늘 같은 내용
의 비평을 쏟는다. 어제 딴지가 오늘 딴지를 걸어도 어느 누가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었다.
새해를 새 마음으로 맞이하려는 소원당이 하루 종일 도배한 흰 벽지 위에 김진두화백이 두 시간에
걸쳐 여인과 정자그림을 완성하였다.
고추장낙관을 자정에 맞추어 누르고 내가 新年元旦素苑堂이라 적어 夢遊亭子圖를 완성시킨 적도
있다.
이 해괴한 주막은 그 철학의 우위성으로 신문에 대서특필 되었고 방송에도 나왔다.
술값을 내지 않고 그냥 나갈 수 있는 것도 공개된 자유였다.
화장실 가다 갈 수 있게 건물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었다.
소원당은 애술인들이 시키는 여러 안주들을 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술값을 내는 것도 한번 씩 수금을 돕는 대바구니가 돌때 의지가 있는 사람에 한하여 얼마건
넣으면 되는 것이다.
주막이 걱정스러워 채현국선생님께서 분위기를 다잡아 주고 바구니에 돈을 슬그머니 놓고 가시곤
했다.
풍류해방구가 되기는 했으나 그 해방구는 결국 망하고 말았다.
윤양섭 (펀드매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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