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기를 잘 하는 박한웅씨, 인사동에서는 박대머리로 통한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칠십 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마산에서 음악주점 “감격시대”를 할 무렵 판돌이로 들어 왔다.
영업만 파하면 종업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군기 잡는다는 핑계로 박치기를 일삼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지났다. 사진협회에서 일할 무렵, 인사동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서로 기구한 팔자라 내 자리에 그를 밀어 넣었다. 그의 딱한 사정도 있었지만 나도 그만두어야할 사정이 있었다.
노태우정권 때 ‘민주항쟁’사진전을 준비하는데 당시 문모 이사장께서 지레 겁먹고 못하게 했다.
'사진협회'의 존재의미가 무색해 그만두고 전시는 했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박한웅씨를 편집장으로 추천했으니
거짓말을 지껄인 대가로 몇 달 동안을 도와주어야만 했다.
그때부터 악연은 다시 시작되었다. 들어간 지 며칠 만에 적음스님을 머리로 받아 앞니를 깨더니,
술만 취하면 차 유리를 머리로 들이박아 세 번이나 갈아 끼워야 했다.
인사동 술집의 벽이건, 사람 머리건 수없이 박아대더니 결국 뒤통수 치고 시골로 낙향했다.
조문호(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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