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 쟁이들이 몰려드는 인사동은 한 편의 무협지였다.
술이 서너 순배 오가면 젓가락이 춤을 추고 술 주전자가 날아다녔다. 먼저 맛이 간 사람이 대장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활극은 오래 가지 않고 으르렁거리던 서로는 이내 킬킬거리며 어깨동무하곤 했다.
억압과 제한의 시대에도 인사동은 해방구였다.
금기의 언어들이 술판에 난무했고, 절대 권력자도 술상 위에서 난도질당했었다.
인사동은 인정의 터였다.
추운 겨울, 입었던 옷을 떨고 있는 후배에게 입혀주던 선배들,
가족 몫으로 챙겨 가던 풀빵을 거리의 사내들에게 기꺼이 내놓던 인정 많은 지인들, 그네들이 그립다.
요즘 들어 인사동이 조금은 삭막해졌다고들 하지만, 인사동 탓도 세월 탓도 아닐 것이다.
단지 우리 가슴이 메말라가는 것이리라. 나는 인사동이 사막화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인사동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인사동에는 각지의 정겨운 사투리가 살아 숨 쉬고, 옛 모습 잃지 않고 계신 선생님들,
내가 닮고 싶어 하던 형들과 사랑하는 후배들이 있어 행복하다.
그것이 내 발을 인사동에 잡아 묶는 이유인 것 같다.
귀소본능이라 하는가?
변순우(시인)
'인사동 정보 > 인사동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사동 풍류' / 임춘원(시인) (0) | 2013.03.12 |
---|---|
‘인사동 풍경’ / 기국서(연출가) (0) | 2013.03.12 |
'하늘로 돌아간 천상시인’ / 조문호(사진가) (0) | 2013.03.12 |
'인사동사람들은 기인들인가?’ / 최울가(서양화가) (0) | 2013.03.12 |
"인사모여 영원하라" / 황명걸(시인) (0) | 2013.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