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은 친정집 같은 포근함이 있다.
숱한 세월 드나들며 많은 예술가들을 만났지만,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사람은 화가 박광호씨와 사진작가 조문호씨를 꼽을 수 있다.
애잔하고 즐거운 두 사람의 상반된 기억이 너무나 뚜렷하기 때문이다.
박광호씨의 그림과 그의 삶은 너무 애잔하다.
어느 날 그의 전람회장에서 만난 그의 삶도 기구하지만 벽에 걸린 그림들이 마음을 적셨다.
생선뼈만 그려진 그의 그림을 구입했는데, 볼 때마다 애잔한 감상에 빠져 내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조문호씨는 인사동 ‘풍류사랑’에서 소설가 배평모씨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첫 인사가 몸 바쳐 최선을 다하겠다는 충성서약 같은 말로 어리둥절하게 하더니,
갑자기 술상 밑을 기어 내 앞으로 나와 놀라게도 하고 시종일관 개구쟁이처럼 좌중을 웃기는 그의 모습이 너무 신비스러웠다.
그의 절창 ‘봄날은 간다’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사람의 감정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몇 년 전에는 ‘천포문학회’ 모임을 영월에서 가진 적이 있다. 시 낭송회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결정판은 아침의 기념촬영이었다.
참석한 삼십 여명이 사진을 찍기 위해 뜰 앞으로 모였는데, 대뜸 조문호씨가 “무슨 졸업사진 찍냐?”며 바지 지프를 내리고 거시기를 꺼냈다.
눈 깜짝할 순간에 모든 상황은 끝났다.
그 많은 사람들의 표정이 천태만상인데, 내 생애 찍은 기념사진으로는 최고의 걸작이었다.
강선화(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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