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은 이제 인사동이 아니게 되고 말았다.

인사동이 언제부터 이름이 나서 특히 외국 관광객들의 관광 코스에 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인사동이 한국 또는 서울의 얼굴 노릇을 해 주는 곳이라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한국의 냄새로 해서 한국인의 체취가 느껴지고, 서울의 분위기가 남아 있는 곳, 그래서 한국을 느끼고 서울을 보려면 이 동네를 걸어봐라, 하는 뜻일 것이다.

옛날에는 그랬다. 납작한 기와지붕을 쓴 자그마한 상점들이 가지런히 늘어선 모습은 서울의 전형적인 길거리 풍경이었다. 꼬불꼬불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들은 그대로 서울의 숨결이기도 했다.

그 인사동은 지금 너무나 바뀌어 버렸다. 그것도 좀 속되게 변해서 이제는 장삿속에 닳고 닳은, 민속의 탈을 쓴 싸구려 장터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거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납작한 기와지붕이 사라지고 시멘트 빌딩들이 한옥들을 내쫓고 들어앉으면서 인사동은 이제 이름만 남고 말았다. 인사동뿐일까. 건너편 교동이 그렇고 재동, 계동, 가회동이 다 사라지고 말았으니 인사동이 인사불성이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가지 신통한 것이 있다. 인사동 골목에 양식집이 보이는 것 같지가 않다, 아직은. 그러고 보면 일식집도 안 보인다. 인사동 북쪽 입구 근처에 무슨 솥밥 집이 간판부터가 일본 냄새를 풍기기는 해도 그것을 일식집이라기엔 좀 뭣하고, 대부분의 밥집이 대개는 ‘한정식’이다. 그것이 기특한 것은 내 이름을 내걸어서가 아니다. 그런 면이 그래도 인사동의 얄팍한 변명은 되어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이다.

그러나 그보다 인사동이 아직 인사동으로 남아 있는 것은 그 인사동 뒷골목 속에 들어박힌 ‘인사동 사람들’로 해서일 것이다. 납작한 인사동 지붕 밑에서 인사동의 기억을 소주잔에 부어 마시며 인사동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은 이 골목 저 골목에 콩깍지 속 콩알처럼 박혀 있어서 인사동이 아직은 인사동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옛 시인의 한탄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가 아닌 것이다. 인사동에 한한 한 “인걸은 의구하되 산천은 간 데 없네.”가 되고 말았다.

하나가 더 있다. 막힐 듯 뚫리고, 숨을 듯 다시 나타나는 골목길. 외틀어지고 비틀어진 우리 소나무처럼 구불구불 휘이고 꺾인 골목길. 엇갈릴 때엔 어쩔 수 없이 어깨를 부딪고 지나야 하고 마주 오는 사람의 입김을 얼굴로 받아야 하는 좁은 골목길. 이런 골목길은 그대로 서울의 얼굴이기도 했다. 그런 골목이 인사동 사람들과 함께 아직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역시 산천은 의구한 것인지.

그 인사동 사람들을 인사동 사진가 조 문호가 찍어 이번에 사진집으로 엮어 낸다. 이름만 대면 대개는 알 만한 문화계 인사가 중심이 된 사진집으로 알고 있다.

인사동은 그래도 아직은 우리의 문화이다. ‘인사동’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그런 것을 껴안고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인사동 사람들’이고 아직 남아 있는 인사동 문화인 것이다. 그 인사동 문화를 일단 정리해 본 것이 이 사진집이다.

사진가 조 문호의 이미지는 사실 인사동과는 거리가 조금 있어 보인다. 그의 풍모는 적막한 멕시코 뒷골목이나 담배 연기 자욱한 쿠바의 선술집에 더 잘 어울리는 그런 그림인데, 그런 그가 인사동을 떠나지 못한다. 인사동 골목 어느 구석에 그를 잡아 묶고 떠나지 못하게 하는 어떤 매력이 있어서일까.

조 문호, 그 이름과 달리 문호가 아니라 사진가이지만, 사람 좋은 조 문호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꼬인다. 그의 어떤 전시 첫날, 천정 낮은 밥집에 모인 면면들은 사진 쪽 사람들은 물론, 미술이나 문학 쪽 사람들도 퍽 많았다. 그의 흡인력이 보였다. 동시에 바로 그들이 조 문호를 인사동에 가두어 놓은 울타리였구나, 느껴졌다.

‘인사동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의 사진집이다. 조 문호를 좋아해 조 문호 곁을 떠나지 못하고, 조 문호 역시 그 따뜻한 품을 잊지 못해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인사동을 인사동이게 하는 인사동 인사들.

그 인사동이 언제까지 남아있을지 궁금하다.

인사동이 바뀌면 인사동 사람들도 떠나고, 박 인환이 명동을 떠나듯 조문호도 떠날 것이다. 이 사진집이 홀로 남아 펼칠 때마다 사람들의 마음을 가을비처럼 축축이 적실 것이고....


한 정 식(사진가,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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