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보다 20-30년 전(前)의 인사동에 향수를 느낍니다. 사람들은 인사동을 전통의 거리라고 하는데 지난날의 인사동은 순수한 전통의 분위기가 짙게 감도는 거리였습니다.
전통은 문화이지 문명은 아닙니다. 문화는 오랜 역사에 씻기워저서 남은 공동체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거리를 오가던 당시의 사람들은 이 풍토(風土)에 물들어 현실감에서 조금은 빗겨선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소한 것에 인색할 줄 모르는 정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밥집이나 찻집에서 아는 얼굴을 만나면 그 사람의 몫까지 말없이 치르고 나오는 일이 허다한 일이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니 이제는 유명(幽明)을 달리한 유연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유서 깊은 가문에 태어나 평생을 홀로 청빈한 지식인으로 구도자(求道者)와도 같은 삶을 살다간 민병산(閔丙山)선생, 어느 날 선생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해 약속된 인사동의 찻집으로 가니, 선생이 전(前 )날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놀라운 말에 할 말을 잃고 삼성병원 영안실로 조문을 가기위해 얼마 되지 않은 회갑 축의금 봉투를 부의금(賻儀金)으로 다시 쓰면서 마치 먼 객지에서 대낮의 달을 보듯 서글프고 쓸쓸한 마음이었던 것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천상병(千祥炳)시인(詩人). 그토록 아름다워 해 마지않던 이 세상에서 천진한 심성(心性)으로 해맑은 시(詩)를 엮어 내던 시인(詩人)은 지금도 어느 천계(天界)에서 막걸리 한 잔에 행복하시겠지요.

또 밖으로는 내비치지 않으면서도 완만한 자부심(自負心)으로 자신의 내면을 비춰보며 자못 여유스럽던 문화인 박이엽(朴以燁)선생.

그리고 또 생각나는 얼굴 어느 날 갑자기 두 자식들과 정숙한 아내와 이별하고 새 사랑을 찾아가 멀지 않아 요절한 사진기자 김종구군(金 鍾九君), 지금쯤은 성적(性的)매력이 없어 싫다던 아내와 자식들을 그리워하고 있겠지.

또 한 사람 술 한잔 얼큰해지면 주위 사람의 짜증스러움은 아랑곳 하지 않고 깐죽깐죽 이유 없는 주정을 부리던 서양화가(西洋畵家) 강용대군(姜容大君) 지금은 어느 별자리 가까운 곳에서 좋은 짝 만나 총각신세 면하고 아름다운 은하수(銀河水)를 열심히 그리고 있겠지요.

골목안 “실비집”에 누군가 먼저와 앉은 자리에 청하지도 않은 불청객들이 너도 나도 모여와 제자리인양 끼어 앉아 주머니 사정은 염두에도 없이 그 곳이 마치 자신들의 향연장이라도 된 듯 호기를 부리는 취객을 향해 “이 화상들아 제발 술값 좀 갚으라”며 독기(毒氣)없는 소리를 지르던 “실비집” 주인아주머니는 어디서 부자 될 꿈을 꾸고 있을까요.

이제 지난날의 그리운 몇 얼굴들은 세월(歲月)속으로 사라지고, 인사동에는 관광객이라는 이름의 이방인들의 발길이 밀려왔다 밀려가며 전통의 그림자를 점차 희석 시켜가고 있습니다.

나는 가끔 이 거리를 걸어 면서 지난날의 인사동을 그리워합니다.







김형숙(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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