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이 한국 골동거리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천리포수목원을 일군 막 뮐러와 연관이 있다. 그는 인사동을 통하여 팔자를 고친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1945년 점령군 정보장교로 이 땅에 도착한 그는 골동 수집에 애를 썼으나 실패했다. 조상이 물려 준 옛 것을 돈으로 바꾸지 않는 한국인들의 문화 때문이었다. 그런데 1.4 후퇴 이후 서울이 수복되자 한국인들의 인식이 달라졌더라는 것이다. 오래된 물건들을 팔아 쌀을 사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든지 미군 장교 한 달 봉급으로 두 트럭의 골동을 실었는데 그 중에는 임금 옥쇄도 실려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한 번의 골동거래는 이후 성북동 저택과 천리포수목원을 장만하는 원천이 되었다. 물론 임금 옥쇄는 이화여대에 기증되었지만 막 뮐러의 인사동은 그런 곳이었다.
60년대 어느 날 20세기 최고의 투자가 존 템플턴 경으로부터 달러가 가득 찬 007가방 두 개를 건네받은 곳도 인사동 어디였다 한다. 이 돈은 자본시장에서 수 십 년간 성공적으로 운용되어 외국인 자본투자가 허용된 1991년 템플턴 경의 바하마군도 집으로 거대한 자본이 되어 주인을 찾아 가게 되었다. 이는 필자가 해외에서 그의 부탁으로 이 트랜잭션 일부에 관여하게 되어 알게 된 일이다.
1960년대 인사동은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불법거래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통시장의 자본유입을 왜 그렇게 정부에서 막았는지 궁금하다. 당시 템플턴 경은 미국인으로 국제 투자를 한 유일한 분으로 오늘날의 자유자본시대의 개척자다.
윤양섭(펀더매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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