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은 늪이었다.

콘크리트가 아스팔트로 다져진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유일하게 원시성을 지닌 늪이었다. 산업사회의 일원으로 진화하기를 거부하는, 신술적인 삶의 셈법을 모르는, 아니 그마저도 거부하는 원형질의 건강한 생명체들이 공생하던 늪이었다.


1981년 겨울, 나는 내 생에서 신의 축복같은 환희의 순간을 그곳에서 맞았다. 관훈미술관 3층에 있던 월간 ‘한국문학’에서였다. 내가 글이라고는 처음 쓴 장편소설이 ‘한국문학 창간10주년기념 신인발굴작품’으로 선정되어 출판계약금으로 받은 10만원권 수표 석장, 그것은 동그라미 몇 개로 확인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것은 동굴 속같은 어두운 내 정신을 비추는 빛이었다. 사막을 걸어와 갈증에 허덕이던 내가 마신 샘물이었으며 희망을 보증하는 증표였다.

그날 이후, 한국문학과 맺은 인연으로 인사동을 찾는 발걸음이 자연스레 잦아졌다. 그 무렵 내가 만난 사람들은 창작을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삼은 진보적인 예술인들을 비롯해서 예술에 대한 열정을 꽃으로 피워내지 못해 속앓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또 그 외에도 세상을 조용히 관조하며 은자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 모두는 세속의 현실에서 비켜나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인사동은 늪의 건강한 원시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인사동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인사동이라는 늪의 원시성을 대변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천상병시인이다. 1982년 초봄, ‘한국문학’ 이근배 주간 방에서 내 소설 출판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어떤 사람이 침입자처럼 문을 거세게 밀고 들어왔다. ‘이주간, 이주간, 내 시 한편 써왔다. 시 한편 써왔다. 원고료 오천원만 도. 오천원만 도.’ 그가 바로 천상병 시인이었다. 내가 천상병 시인의 건강한 원시성을 확인한 것은 그 다음에 있었던 일이었다. 이근배 주간이 예를 갖추어 만원을 드리자 ‘아이다. 아이다. 원고료 오천원이다. 오천원이다.’하면서 한사코 오천원을 고집했다. 이근배주간이 할 수 없이 편집질에 가서 오천원을 바꿔와서 드리자 그제서야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갔다. 산업사회의 일원으로 진화하지 못한, 산술적인 삶의 셈법을 모르는, 아니 그마저도 거부하는 인간의 한 전형을 그때 나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지 몇 년 후에 천상병시인의 부인 문순옥여사가 차린 찻집 ‘귀천’은 인사동이란 늪에서 중심이 되었다. 열평도 채 안되는 찻집 ‘귀천’은 늪에서 유일하게 맑은 물이 고여 있는 그런 곳이었다.

87년 한여름, 지금은 고인이 된 한국일보 사회부 사진기자였던 김종구씨가 온몸에서 최류가스 냄새를 풀풀 풍기며 ‘귀천’으로 들어설 때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시위현장에 취재를 가서 목격한 폭압적인 공권력에 대한 울분을 가득안고 들어선 그에게 목순옥여사는 아무 말 없이 얼음이 담긴 진토닉 잔을 내밀었다. 최루가스와 울분으로 갈증이 극심했던 그에게 그것은 달디 단 샘물이었으리라. 목순옥여사가 알콜 섞인 음료를 준 것은 그가 유일했었다고 기억된다. 진토닉 한잔 마실 수 있는 업소가 어디엔들 없었으랴만 그가 갈증을 참고 ‘귀천’까지 온데는 남다르게 지향하는 데가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귀천’을 중심으로 실비대학이라 불렸던 ‘실비집’, 까페‘레테’,등에서 만났던 그 많은 사람들을 이제는 만나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더러는 고인이 되었고, 또 더러는 삶의 서식지를 바꾼 이들도 있다. 그러나 더 큰 요인은 인사동이라는 늪이 지니고 있던 그 건강한 원시성이 고갈된 탓일지도 모른다. 상업자본의 말발굽이 인사동 고유의 원시성을 가차 없이 유린해버렸기에.

늪에 가보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양한 생명체들이 공생하며 풍기는 독특한 체취가 있다. 인사동에도 그런 체취를 지닌 사람들이 공생했었다. 그러나 이제 인사동에서 그런 건강한 체취를 지닌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사람냄새 나는 사람들을.

이제 되돌아보면 내 인생의 황금기같은 40대를 인사동이라는 늪에서 보냈다. 산술적인 삶의 셈법으로 치자면 그건 분명 허비였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는 산술적인 셈법으로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 있다. 그걸 굳이 말하자면 사람과의 관계일터이다.

인사동이라는 늪에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 과밀한 도시 어디에선들 사람을 만날 수 없으랴만 인사동이 아닌 다른 어떤 곳에서도 만날 수 없는 그런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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