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다. 대화란 서로 얼굴 보면서 눈빛을 읽어야 하는데 요즘은 같은 자리에 앉아 친구들끼리 술을 마시면서도 문자로 대화한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려온다. ‘말만 잘하면 빚도 갚는다.’고 하는데 휴대폰이 비서마냥 뭐든 척척 해낸다. 손가락을 움직여 마음을 전달하고, 약속을 잡고, 기계 속에 마음을 담아 전달한다. 사람마음을 송두리째 가져간 기계가 사람의 마음을 잘 전달해줄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주고받아야 할 이야기를 중간매개체인 휴태폰이 그 역할을 다한다. 차마 말로 할수 없었던 이야기를 문자에 남겨 뜻을 전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젠 손편지대신 휴대폰이 그 역할을 대신해 개인주의가 더욱 확산되어 가고 있다. 문자로 대화하는것이 침묵에 들어가는 것일까. 과연 침묵이 끼어들 자리가 있을까.

휴대폰 매장 앞에 좌판을 펼쳐놓은 두할매가 마주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겨울 내내 땅이 얼어붙은 이월의 추위가 따뜻한 이야기 속에 녹아들기 시작한다. 휴대폰할인매장의 화려한 유리창에는 파라솔이 반사되어 쇼윈도우의 유혹을 차단하고 있다. 문명의 이데올로기에 편입된 자본주의가 오일장까지 파고들어 백화점 같은 큰마트가 우후죽순 생겨 재래시장이 잠식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젊은 사람들은 휴대폰의 노예가 되어가지만 우리네 할매들은 얼굴 보면서 이야기하며 정을 나눈다. 할머니가 파는 나물 속으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가 들어가 맛을 오묘하게 만든다는 박씨할매다.

"이 맛으로 장날만 되면 나오지유, 이것도 다 팔릴것이구만유, 덤도주고, 정도주니께 사가는 사람이 많아유.” 아는 사람과 나란히 앉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팔기 때문에 장사는 일도 아니라는 할매들이다. “여름날 뙈앗볕에 앉아 밭을 매봐야 여자라고 할 수 있지유, 남정네들이 반나절만 밭을 매봐유, 정강이 아파서 걸음도 못 걸을 것이구만유.” 여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산다는 것이 만만치 않을지라도 장날이면 곱게 차려입고 미리미리 손질해 다듬어놓은 것들과 함께 모처럼 사람구경을 하는 것이다.

자식자랑하고 싶어 장날이면 호박 몇 덩이 따갖고 나오는 할매도 있으니, 휴대폰이 아닌 사람 얼굴 보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한없이 숭고해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글, 사진 / 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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