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정영신의 장터순례(16)보성 벌교장

 “여그 뻘에서 난 꼬막은 쫀득쫀득 차지지라”

대하소설 ‘태백산맥’ 주무대
짱뚱어·꼬막·녹차 등으로 유명
읍내 중심가에 매일서는 상설시장
4·9일 장날엔 주변이 모두 장터로
여름철엔 ‘서대’가 횟감으로 인기

 

 “내 태 자리가 여그 여자만 갯벌이여. 고향 땅이 좋은께 여때꺼정 대처에 나가본 적이 없당께. 허벅지까지 빠지는 뻘 속에서 고상을 해봐야 꼬막 장사든 바지락 장사든 할 자격이 있제.”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의 벌교장. 여름철이라 바지락을 팔고 있는 송씨 할머니(77)의 시원시원한 말투가 갯벌에서 산 아낙네답다. 꼬막 자랑 좀 해달라는 말에 할머니는 신이 났다.

 “입성 좋은 사람은 맛을 다 알제. 잘 삶아야 제맛이 나는디 삶기가 영판 까다로와. 제맛을 내려면 한쪽으로만 저어야지, 이리저리 저으면 맛이 안 나. 까먹기도 사납고. 여그 뻘은 모래가 없어 꼬막이 쫀득쫀득 차지다 보니께 다른 데 꼬막이 못 따라오제. 내 얼굴도 땡글땡글허니 꼬막 같지라.”

 벌교는 변두리 갯벌에 불과했으나 일제강점기에 시가지로 변하면서 역사의 빛깔이 빨리 흡수된 지역이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보성과 인근 고흥 땅에서 나는 농수산물을 공출하는 데 있어 벌교가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벌교에 가서 돈 자랑 주먹 자랑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말이 생겼다.

 벌교장은 읍내 중심가에 선다. 1956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긴 후 매일 서는 상설시장이 되었지만, 지금도 4일과 9일이 든 장날이면 주민들이 농산물을 갖고 나와 농협 옆길과 담벼락에 난장을 펼친다. 꼬막의 고장이자 소설 <태백산맥>의 주 무대인 벌교장은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이다.

 옥수수를 삶아와 농협 담벼락에 앉아 팔고 있는 유끝순 할머니(76) 머리로 뜨거운 땡볕이 내리쬔다. 옥수수를 맛보라며 낱알을 건네주는 할머니께 덥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날이 더워야 나락이 잘 크제” 하더니 “여그 앉아 있어도 그놈들이 무럭무럭 커가는 재미에 더위도 모른당께” 한다. 할머니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일러주더니 이야기를 이어간다.

 “우리 집은 딸부자였어. 딸을 하도 낳아싼께 내 이름을 끝순이라고 했는디, 내 밑으로 여동상이 또 있당께. 어렸을 때는 먹을 것이 귀해 풀대죽 먹고 컸는디, 서럼 중에 배곯는 서럼이 질로 큽디다. 근디 시상이 좋아져 농사지어 갖고 나오면 잘 팔려. 무공해라고. 어째, 자네도 옥수수 좀 살랑가?”

 마을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는데 옥수수를 떠안기는 할머니의 장사 수완이 대단하다. 할머니가 사는 벌교읍 고읍리는 가을이면 온 마을 지붕이 노란색으로 덮인단다. 전라남도기념물로 지정된 500년 된 신령스러운 은행나무 덕분이란다.

 보성에는 이 말고도 유명한 나무가 있다. 차나무다. ‘술을 즐기는 백성은 망하고 차를 즐기는 백성은 흥한다.’ 차 마시기를 즐겨 자신의 호조차 다산(茶山)으로 지은 정약용이 남긴 말인데, 요즘도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쓴다. 백성을 흥하게 하는 차의 본고장이 보성으로, 해마다 5월이면 녹차대축제를 연다. 보성에 있는 200여곳의 차밭은 지역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으며, 특히 보성읍 봉산리는 국내 최대의 차 재배단지다.

 벌교역전 수산물 파는 곳에서는 요즘 한창 나오는 서대가 횟감으로 인기다. 벌교가 고향인 박씨(53)는 주문받은 서대회를 썰기에 바쁘다. “짱뚱어탕과 같이 먹으면 둘이 먹다가 셋이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이 좋다”며 벌교 갯벌 자랑까지 덧붙인다. 짱뚱어는 오염이 안 된 갯벌에서 햇볕을 쬐어야 살 수 있는데, 플랑크톤을 먹이로 하기 때문에 양식이 되지 않는단다. 이렇듯 갯벌은 대지의 청소부다. 자연을 정화하고 수많은 생명을 키운다. “갯벌이 숨을 쉬어야 살아가기가 덜 팍팍허제.” 갯벌에서 살아온 박씨의 말에서 고향의 냄새를 느낀다.

 보성에서 벌교장 외에 열리는 장은 차와 꼬막으로 유명한 보성장(2·7일), 쌀과 잡곡이 많이 나오는 복내장(4·9일), 특산품인 용문석으로 유명한 조성장(3·8일), 느타리·토마토·참다래가 풍성한 예당장(5·10일), 녹차된장이 인기 높은 희령장(4·9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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