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삼척 도계장-

 

                                    할머니 배낭에서 옥수수 와르르~얼마에 팔거래요?

                                                                              해발 300m 고산지대 위치
                                                                              다른 지역에 비해 장 늦게 서
                                                                              읍사무소 앞 난장엔 싱싱한 해산물
                                                                              잔뜩 물 오른 문어 유달리 많아
                                                                              보석·가방 파는외국인도 ‘눈길’



 


“탄광이 많을 적엔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장이 컸어. 강아지가 지폐를 물고 다닐 만큼 호황이었지. 오죽하면 탄가루가 날려도 좋으니 탄광 문을 닫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있었겠어? 그땐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 남은 탄광이래야 서너곳뿐이니 장날 아니면 사람 얼굴 보기도 힘들어. 밭에 있는 호박 몇덩이 갖고 나와 앉아 있다 그냥 가는구먼.”

 호박 다섯개와 칡가루 한되를 갖고 장에 나온 이순자 할머니(81)가 열변을 토한다. 장터에 나온 할머니들의 삶을 훔쳐보는 일은 시간을 조각조각 쪼갠 다음 다시 맞추는 것과 비슷하다.

 이곳은 강원 삼척시 도계읍 도계리의 도계장. 강원도 오일장은 대부분 다른 지역에 비해 늦게 선다. 여기도 오전 9시가 넘었는데도 짐 실은 트럭들이 아직 다리 위 광장에 모여 있다. 이불을 싣고 나온 장꾼 박씨(57)는 산골이라 장이 늦게 선다며 차에서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먹구름이 몰려오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꾼들 틈으로 무거운 배낭을 둘러멘 할머니가 걸어오고 있다. 도계읍 차구리에서 온 강씨 할머니(76)다. “뭐예요? 팔 거면 내려놔 봐요.” 마늘과 깻잎, 가지를 파는 최씨(71)가 할머니 등짝에 붙어 있는 배낭을 내려 풀어헤치자 초록색 잎으로 감싸인 옥수수 80여개가 흘러내린다. 장꾼 최씨와 강씨 할머니의 흥정이 시작된다.

 “여물지도 않았는데…. 얼마에 팔 거래요?” “만삼천원만 주드래요.” “만원에 줄 거면 놓고 가세요.” “그렇게는 안 돼요.”

 강씨 할머니는 옥수수를 배낭에 주섬주섬 넣었다 도로 풀었다 하기를 몇번이나 반복하더니 천원을 포기한 1만2000원에 팔아넘긴다. 빈 배낭을 메고 나오는 할머니의 발걸음이 하늘의 먹구름보다 무겁고, 얼굴에는 제값을 다 받아내지 못한 서운함이 가득하다.

 “할머니, 금방 비가 올 것 같으니 맛있는 것 사서 얼른 집에 가세요.”

 애써 말을 붙였지만 할머니는 듣는 척도 않는다. 잘못 참견했다간 욕먹을 것 같아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는데, 할머니 입장에선 흥정할 때 도와주지 않은 게 서운했던 모양이다.

 여름철 장터를 찾아다니다 보면 종종 소낙비를 만난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하려 비닐봉투로 모자를 만들어 쓰는 사람을 비롯해 갖가지 풍경을 만나는 것도 이때다. 비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일사불란하게 비닐을 치는 할머니들의 손놀림에선 삶의 숭고함이 느껴진다.

 장터 한쪽에서는 샤니(52)와 알리(36)가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가져온 보석과 가방을 팔고 있다. 샤니가 한국 사람들의 인정에 빠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장터를 찾아다닌 지도 2년이다. 너와집으로 유명한 도계읍 신리에서 온 김씨(63)가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보며 구경하다가 신기면 대이리에 있는 동굴에 가봤냐고 말을 건넨다. 샤니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고개를 젓는다.

 도계읍은 해발 300m가 넘는 고산지대로 평지가 거의 없다. 그래서 탄광이 들어서기 전에는 손바닥만 한 밭뙈기에 옥수수나 감자를 심어 간신히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도계장(4·9일)은 탄광 개발로 인구가 증가하면서 1965년 3월에 개설됐다. 도계읍사무소 앞 길가에 서는 난장에는 싱싱한 해산물이 많이 나오는데, 이날은 잔뜩 물오른 문어가 유달리 많았다.

 제사상에 올릴 문어를 사러 원덕읍 갈남리 신남마을에서 온 유씨 할머니는 “해신당에 가면 재미난 것 많어. 가봤어?” 하며 눈웃음을 짓는다. 신남마을에 있는 해신당공원은 풍랑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처녀를 위로하기 위해 지은 사당을 중심으로 꾸민 민속공원이다. 눈길 닿는 곳마다 남근 조각이 서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신남마을에서는 지금도 정월대보름이면 나무로 남근을 깎아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사람이 중심인 장터에 사람들이 없으니 서글퍼진다. 옛날에 보았던 풍각쟁이와 곡마단, 원숭이와 함께 나온 약장수의 익살스러운 농담에 환하게 웃는 모습들이 그립다.

 도계장 외에 삼척에서 열리는 장은 골목 사이사이 노점이 들어서는 삼척장(2·7일), 임원항에서 잡은 어물이 나오는 호산장(5·10일), 1100년 된 느티나무 주변으로 열리는 근덕장(1·6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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