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들어온 자리돔, 물 좋수꽈? 얼마우꽈?

 

은빛 비늘 뽐내는 어물전 갈치
구덕 짊어지고 장 보러 나온 할머니
발음 세고 빠른 제주 방언
생활문화 꽃 피우는 장터

                                             맨 위부터 구덕을 짊어지고 장에 나온 할머니, 어물전의 갈치, 자리돔, 모슬포장 전경.
 

 

 

“모기 이놈 물렀거라, 구문초님 행차하신다. 어험!”

 이렇게 적힌 재미난 쪽지가 사람들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모슬포장(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에서 각종 모종과 화분을 팔고 있는 이씨(66) 부부가 장터 입구에 차려놓은 노점이다. 부부는 모기가 기승을 부리는 철이라 사람들이 구문초를 많이 찾기에 이렇게 써놓았다며 웃는다.

 전 펴고 걷는 데 두시간이나 걸린다는 이씨 부부는 37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 한번은 손님이 꽃 이름을 묻는데 생각이 나지 않아 퍼뜩 떠오른 차 이름인 <쏘나타>를 댄 게 두고두고 미안해, 지금은 식물 이름을 써놓고 판단다.

 모슬포장 입구에는 제주답게 귤이 종류별로 나와 있다. 자두며 복숭아, 참외, 수박 등 색색의 과일도 화려하고, 어물전에는 갈치가 은빛 비늘을 뽐내며 주인 앞에 앉아 있다. 건너편으로는 먹구름을 잔뜩 이고 있는 바다가 보인다. 장마철이라 그런지 햇빛이 났다가도 곧 구름이 덮이고 비가 내린다. 변덕스러운 날씨 덕분에 자연과 시장은 오히려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모슬포항에서 갓 잡혀 들어온 자리돔이 문성돈씨(63) 손에 의해 진·선·미로 구분되어 바구니에 담긴다. 문씨는 자리돔이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생선이라며 “5월에서 8월까지 잡히는 것들은 횟감으로 쓰거나 구워 먹고 젓갈로 담그기도 한다”고 이야기한다. 각종 채소와 산초잎을 넣은 자리돔물회는 제주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라고. 안덕면 덕수리에서 자리돔을 사러 장에 나온 고씨(62)는 “물이 좋수꽈?” “1㎏에 얼마우꽈?” 하고 묻는다. 고씨는 채소를 좋아해 쌈을 자주 먹는데 이때 된장 대신 얹어 먹는 쌈장으로 쓰려고 해마다 자리돔젓갈을 담근다고 한다.

 구덕(바구니를 뜻하는 제주 방언)을 짊어지고 장 보러 나온 대정읍 인성리의 김씨 할머니(83)에게 올해 농사가 잘되었냐고 묻자 “호박순이 오그라들어 농사가 다 잘되고 있다”면서 이제 태풍만 없으면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한다. 김씨 할머니는 “초파일날 등불이 고요하면 참깨 농사가 잘된다”는 이야기도 한다. 제주 여자들만의 농사 지혜인가 보다.

 제주 어느 장터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끈을 이용해 구덕을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모습이다. 구덕은 그릇이 귀한 제주에서 요긴한 물건이었다. 아이를 재울 때도 ‘애기구덕’이라는 제주식 요람에 눕혔고, 해녀들은 물질할 때도 구덕을 가지고 물에 들어갔다.

 제주는 삼무(三無)의 섬으로 알려져 있다. 도적과 거지와 대문이 없다는 것이다. 집을 비울 때 집주인은 ‘정낭’이라는 나무를 입구에 걸쳐놓는다. 집에 사람이 없다는 표시다. 삼다(三多)는 너무도 유명하다. 돌·바람·여자가 많다는 뜻이다.

 1960년대 이후 제주가 관광지로 거듭나면서 삼보(三寶)와 삼려(三麗)가 생겨났다. 바다·한라산·언어가 제주의 세가지 보물이라면 순박한 인심, 수려한 자연, 감귤을 비롯한 각종 열매는 제주의 세가지 아름다운 것이라고 한다. 그중 제주 방언은 타 지방 사람들에게 신기한 느낌마저 준다. “제주 방언이 강한 것은 바람 탓”이라는 게 장에서 만난 송성민씨(47)의 이야기다. 세찬 바람이 불 때도 상대방이 알아듣게 말을 하려다 보니 발음이 세고 빨라졌다는 것이다.

 모슬포장은 1일과 6일이면 선다. 공식 명칭은 ‘대정오일시장’이지만 이곳 사람들에겐 모슬포장으로 더 많이 불린다. 포목 장사를 하는 강씨 할머니(83)를 만난 것은 파장 무렵이었다. 40년째 모슬포장을 지키고 있어 단골이 많다고 한다. 강씨 할머니는 젊어서 양장점을 해본 경험으로 포목점을 하게 되었단다. 지금도 새로운 원단이 나오면 펼쳐놓고 디자인하는 재미가 “촘말로 좋수다” 하는 강씨 할머니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여인들의 삶이 꿈틀대는 제주의 장터는 생활문화를 꽃피우는 창이다.

 제주에는 이밖에도 장이 많다. 1·6일에는 모슬포장 외에도 오메기떡과 함덕해수욕장으로 유명한 함덕장, 양파가 많이 나오는 성산장이 선다. 2·7일에는 은갈치·옥돔·대장간이 이름난 제주민속장과 바나나·감귤·고사리가 나오는 표선장이, 3·8일에는 옥돔·갈치·고등어가 많은 중문장이 열린다. 4·9일에는 한림장(옥돔·양송이·해물)과 고성장(바나나·감귤·해물), 서귀포장(옥돔·갈치·고등어)이 손님을 맞는다. 당근·양파·해물·과일이 많은 세화장은 5·10일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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