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정영신의 장터순례⒀ 충북 단양장
좋은 땅에서 키운 ‘단양 육쪽마늘’ 맵고 달고…
마늘 축제 열리는 10월이면
전국에서 관광버스 타고 사러와
마늘종·완두콩 좌판 곳곳에
소백산서 캐온 각종 버섯·약초도

“그 값에는 안 돼유. 엥간히 깎아유.”
마늘종을 갖고 단양장에 나온 이동춘씨(79) 부부가 중간상인 박씨 아주머니(67)와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양반 고장 사람들이라 그런지 말과 행동이 느려 보는 사람이 더 답답하다. 세 사람 다 마늘종이 놓인 저울 눈금만 쳐다볼 뿐 흥정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는다.
장에 펼쳐놓고 직접 팔지 왜 싼값에 넘기냐고 묻자 이씨 할아버지는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최고지유. 자연에서 터를 얻어 사는디…” 한다. 오늘 갖고 나온 마늘종은 그렇지 않지만, 다른 때는 손수 농사지어 거둔 것인데도 손님들이 국산 맞느냐 물어보며 믿지 않는 때가 있다고. 그게 싫어서 싼값에라도 한꺼번에 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식 같은 농산물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파는 것보다 도매상에 넘기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하다는 것이다.
단양장(충북 단양군 단양읍 도전리)은 1일과 6일에 선다. 1985년에 도전리 일대에 상가가 조성되면서 단양전통시장이 개설됐지만, 장 분위기는 아무래도 장날이 돼야 산다. 이 장에서 가장 유명한 건 육쪽마늘이다. 난지형 마늘은 가을철 벼 수확이 끝난 뒤에 심어 이듬해 모내기하기 전에 거두어들이는데, 단양의 육쪽마늘은 한지형 마늘이라 하지가 지나야 수확을 한다. 단양 육쪽마늘의 명성은 토질 덕분이라고 한다. 단양은 우리나라 최대의 석회암 지역으로, 땅속의 석회 성분이 마늘 속으로 들어가 매우면서도 달고 향이 좋은 마늘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마늘축제가 열리는 10월이면 저장성이 좋은 단양 마늘을 사려고 전국 여인네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몰려와 장터가 인산인해를 이룬단다.
적성면에서 온 유재동씨(61)는 “간장에 담갔을 때 가라앉는 마늘이 진짜 단양 육쪽마늘이여유” 하고 일러준다. 유씨는 정성껏 마늘을 키우고도 저장창고가 없어 값이 쌀 때 팔아야 하니 속이 상한단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단양 사람들에게 마늘은 자식이나 다름없다. “마늘 수확하는 철에 장마라도 져봐유. 그게 빗물이 아니라 눈물이어유. 팔려고 난장에 가지고 와서는 빗으로 마늘 뿌리를 빗기는 사람까지 있어유. 단양 마늘은 수염이 많거든유.”
버스 정류장 양옆으로는 가로수가 늘어서 있다. 황옥희 할머니(92)가 가로수를 양산 삼아 앉아 마늘종 몇단으로 좌판을 열었다. 황씨 할머니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살림이며 농사일을 직접 해낸다고 한다. “응딩이 조금만 움직이면 곳곳에 먹을 것이 지천이여. 숭년만 안 들면 굶을 일은 없어유.” 야구 모자까지 쓰고 장사하는 황씨 할머니 얼굴이 고향에 있는 장승 같다.
단양 땅에는 마늘 말고도 자랑거리가 많다. 고수동굴은 오랜 세월 땅속으로 흘러내린 물이 석회암을 녹여 만들어졌다. 자연의 힘이 빚은 천연동굴로, 1976년 천연기념물 제256호로 지정되었다. 그 유명한 단양팔경은 조선 시대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부임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단양에 발을 디디면 도담삼봉을 비롯해 죽순 모양의 옥순봉, 거북처럼 버티고 있는 구담봉, 우탁의 휴양지로 알려진 사인암 등의 비경이 곳곳에서 반긴다.
산악 지대인 단양은 서리 내리는 기간이 길고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커 송이·표고 같은 버섯과 각종 약초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나온다. 또 소백산 깊은 산속에서 나온 온갖 산나물이 장날이면 소쿠리에 담긴 채 손님들을 기다린다. “동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수동굴이 있는 동네에 산다”고 자랑하는 엄씨(70)는 장에서 완두콩을 팔고 있다. 엄씨는 여자들 폐경기 장애 극복에 도움이 된다고 해 찾는 사람이 많다며 완두콩 예찬을 구수하게 늘어놓는다. “한 양쟁이 사봐유. 요즘 테레비에서는 비타민A랑 나이아신인가 뭔가도 많아 폐암 예방에도 좋다고 하드만….” 사람을 살리는 것은 자연이라는 것을 장터에서 다시 배운다.
단양에서는 단양장 외에도 3·8일에는 영춘장이, 4·9일에는 매포장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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