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씨는 백기완, 방동규씨와 함께 조선의 3대 구라로 불린다.
그의 저력을 잘 대변하는 구라가 “누구나 오늘을 사는 거야!”다.

지난 24일 ‘낭만’에서 있었던 ‘용태형과 문화운동시대’ 책거리서도
유홍준씨 표현처럼, 황석영씨의 구비문학이 술자리를 점령했다.

일사천리로 구라를 풀어가는데, 시끄럽게 초 치는 자가 나타났다.
목소리 큰 조성우씨였는데, 실수로 황선생의 염장을 지른 것이다. 

“이 새끼”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벌떡 일어나 술잔을 날린 것이다.
좀 과격하긴 했지만, 그 퍼포먼스로 조성우씨의 입을 막을 수 있었다.

인사동 술자리선 흔한 일이기도 하지만, 가끔 긴장감도 있어야 술이 덜 취한다.
상대를 제압하고 다시 시작한 황구라, 역시 조선 최고의 구라였다.

사진,글 / 조문호



 

인사동의 단골집이었던'산타페', 마치 술집 주인처럼 서 있다.

 

 

 

 

경기도미술관장으로 있는 최효준, 서양화가 전인경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파주 헤이리의 유미옥씨 전시 오프닝에서 노래방으로 진출했다. 왼쪽은 김명성씨

 

 

 파주 공원묘지에 여운의 시신을 옮겨 안장하고 있다.

 

 

 

'인사동 밤안개'가 그립다,

 

가슴 따뜻했던 서양화가 여 운의 유작전이 열린다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세월 참 빠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 되었던가 보다.
그를 추억하며 술이라도 한 잔 나누고 싶었으나, 모두들 미망인 보기싫어 참석하지 않겠단다.

전시회 오라는 연락도 없었지만 여 운 그리워 들린 전시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설마했는데, 모두 약속 한 것처럼 아무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아는 분이라고는 백낙청, 유홍준, 이해찬, 이도윤씨 정도였으나 그마저 빠져 나가기 시작했고,
단상에는 황석영씨가 나와 고인의 술버릇을 이야기하며 여운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여 운과는 인사동에서 만나 술은 마셨지만, 자택에 간 적이 없어 미망인을 잘 몰랐다.

주변의 이런 저런 좋지않은 얘기들이 들렸으나, 여 운이 악처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렇게 친구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친구가 집에서 잘 하기란 기대할 수 없었던 터다.
대개 남자가 착하면 여자는 독해지기 마련인데, 오죽하면 오여사가 “병상에서 비로소 지아비로 돌아왔다”고 말했을까?

그러나 일년 전 여운이 세상을 떠나던 날, 장례식장에 입고 나온 미망인의 옷을 보고 의아한 적은 있었다.

갈색 외투와 무늬 있는 목도리를 걸치고 나왔는데, 상주의 복장치고는 좀 낯설었다.

여운을 만난지는 10여년 밖에 되지않았다. 인사동에서 김용태씨 소개로 처음 알게되었는데,

동년배인데다 소탈한 그의 모습에 호감이 갔다. 서로 인사동을 떠돌아 다녔으나 인연이 늦게 맺어졌던 것이다. 

 뒤부터 만나기만 하면 술을 샀는데, ‘산타페’에서는 아예 양주병을 맡겨두고 술을 마셨다.

그는 정이 너무 많은 친구였다. 벌이도 없는 내 처지가 안스러운지 만나기만 하면 걱정했다.

“사돈 남말 하네”라며 웃고 넘겼지만, 때로는 그의 마음 씀씀이에 코끝이 찡할 때도 있었다.

몇 년 전 대학로에서 그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사람’이란 주제의 사진기획전 협의를 위해 '사진협회'에 들려 오다, 그를 만난 것이다.

복잡한 내부사정을 듣고는 '문예진흥원'으로 나를 데리고 간 것이다.

당시 김정헌씨가 이사장으로 있을 때라 기획안이 좋으니 한 번 부탁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은 절차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말을 꺼내지 못하게 했다.

나보다 더 안타까워하던 그 때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렇게 가슴 따뜻하고 마음여렸던 친구가 이제 세상을 떠나고 없는 것이다.
친구를 좋아했던 여운이었기에 넋이라도 전시장을 찾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인사동의 그 많은 친구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망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살아있는 자들의 이기주의적 처신들이 너무 안타깝고 슬펐다.
행사장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지만 마지못해 찍은 사진마저 촛점이 흐려 있었다.

전시장에 차려 놓은 술이라도 한 잔 권해야 하건만, 그마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세상을 원망하랴 내 아내를 원망하랴”라는 노랫말로 여운의 넋을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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