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따뜻했던 서양화가 여 운의 유작전이 열린다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세월 참 빠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 되었던가 보다. 그를 추억하며 술이라도 한 잔 나누고 싶었으나, 모두들 미망인 보기싫어 참석하지 않겠단다.
전시회 오라는 연락도 없었지만 여 운 그리워 들린 전시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설마했는데, 모두 약속 한 것처럼 아무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아는 분이라고는 백낙청, 유홍준, 이해찬, 이도윤씨 정도였으나 그마저 빠져 나가기 시작했고, 단상에는 황석영씨가 나와 고인의 술버릇을 이야기하며 여운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여 운과는 인사동에서 만나 술은 마셨지만, 자택에 간 적이 없어 미망인을 잘 몰랐다.
주변의 이런 저런 좋지않은 얘기들이 들렸으나, 여 운이 악처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렇게 친구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친구가 집에서 잘 하기란 기대할 수 없었던 터다. 대개 남자가 착하면 여자는 독해지기 마련인데, 오죽하면 오여사가 “병상에서 비로소 지아비로 돌아왔다”고 말했을까?
그러나 일년 전 여운이 세상을 떠나던 날, 장례식장에 입고 나온 미망인의 옷을 보고 의아한 적은 있었다.
갈색 외투와 무늬 있는 목도리를 걸치고 나왔는데, 상주의 복장치고는 좀 낯설었다.
여운을 만난지는 10여년 밖에 되지않았다. 인사동에서 김용태씨 소개로 처음 알게되었는데,
동년배인데다 소탈한 그의 모습에 호감이 갔다. 서로 인사동을 떠돌아 다녔으나 인연이 늦게 맺어졌던 것이다.
그 뒤부터 만나기만 하면 술을 샀는데, ‘산타페’에서는 아예 양주병을 맡겨두고 술을 마셨다.
그는 정이 너무 많은 친구였다. 벌이도 없는 내 처지가 안스러운지 만나기만 하면 걱정했다.
“사돈 남말 하네”라며 웃고 넘겼지만, 때로는 그의 마음 씀씀이에 코끝이 찡할 때도 있었다.
몇 년 전 대학로에서 그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사람’이란 주제의 사진기획전 협의를 위해 '사진협회'에 들려 오다, 그를 만난 것이다.
복잡한 내부사정을 듣고는 '문예진흥원'으로 나를 데리고 간 것이다.
당시 김정헌씨가 이사장으로 있을 때라 기획안이 좋으니 한 번 부탁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은 절차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말을 꺼내지 못하게 했다.
나보다 더 안타까워하던 그 때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렇게 가슴 따뜻하고 마음여렸던 친구가 이제 세상을 떠나고 없는 것이다. 친구를 좋아했던 여운이었기에 넋이라도 전시장을 찾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인사동의 그 많은 친구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망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살아있는 자들의 이기주의적 처신들이 너무 안타깝고 슬펐다. 행사장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지만 마지못해 찍은 사진마저 촛점이 흐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