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각인 畵刻人

김준권展 / KIMJOONKWON / 金俊權 / printing

2013_0902 ▶ 2013_0915

 

 

김준권_산에서...1303_채묵목판_160×84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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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902_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9:00pm / 주말,공휴일_10:00am~07:00pm


갤러리 팔레 드 서울gallery palais de seoul

서울 종로구 통의동 6번지Tel. +82.2.730.7707

www.palaisdeseoul.net


김준권의 수묵목판화의 길 ● 한 때 거리와 광장을 부추기던 군중은 차차 세월의 풍경 속으로 잦아들고, 철새처럼 그도 참으로 먼 길을 휘돌았다. 우수와 고독과 적막과 부동은 민중시대 이후 그가 사랑한 미궁의 벗이었다. 나는 그의 수묵 위주의 근작 목판화를 보면서 이전의 유성의 '다색' 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움으로 설레기 시작했다. 귀티 나는 단색조의 중색효과에 공기원근법적 투과성이 이끈 여리고 감각적인 화면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수묵화가 붓털에 의탁한 유연한 선이나 선염의 맛이라 한다면 그의 수묵인은 절제된 형상과 맑은 색면으로 가다듬은 담미의 호흡이다. 숭덩숭덩한 이미지의 목판화와 산들산들한 느낌의 묵화가 각각 제 영역에서 더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있었다. 예의 이런 작품들에도 관통하고 있는 묵언의 태도는 그러나 말길을 잃었던 과거의 것과는 완연히 달라진 느낌이다. 이곳에는 사람이 서 있지 않아도 되었으며 새를 날리지 않아도 되는 무언가가 숨을 쉬고 있었다. 「島」연작에서 나는 사실주의적 가치관을 옹호한 마음자리를 보았고 그의 판화날개 30년의 휴식도 보았다. 떡칠한 유성 프린팅에서는 맛볼 수 없는 가뿐하고 상쾌한 먹빛의 감색! 선이 사라진 자리에 단아한 면이 들어서고 면이 포개지는 섬과 섬 사이를 안개처럼 고요히 여백이 다녀갔다.

 


김준권_신안에서..._채묵목판_50×80cm_2013

모든 인간적 배경을 거둔 선경이기도하거니와 안개 속에서 옷을 벗은 세속의 풍경이기도 하다. 이곳이 그가 다다르고자 했던 종래의 판화경이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목판이라는 물성의 한계이면서 목판만의 고유한 진화가 그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 그의 또 다른 연작 「산에서...」도 마찬가지다. 화면 구성으로 보자면 텅 빈 하늘에 매지구름 한 뗏장이라도 올려붙이고 싶은 충동이 이는데, 낮은 등성이마다 마치 어깨를 결은 사람들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물결처럼 포치하여 '땅의 근거'를 버리지 않았다. 만일 여기에서 조금 벗어나 구성주의적 데포르메로 커서를 옮겼더라면 힘들게 얻은 여백을 잃었거나 작품에 우려낸 피 같은 역사도 창백해졌을지 모른다. 모름지기 인간이 사는 이 평범한 공간과 원근이 주는 최소한의 긴장을 내려놓지 않는 바탕에서 비로소 그의 묵음과 여백은 뜻을 이루고 있었다. 작가는 산이면 산, 들이면 들, 나무면 나무가 인간군 위에 포개지고 있다는 내심을 들키고 싶지 않다. 이도 다분히 산의 기호와 힘이면 되었고, 대지 또는 자연이 제시하는 원시적 미감을 휘어잡는 것으로 충분해야 하는 것이다. 짐작 컨데 18년전 교단의 복직을 거부하고 떠났던 중국행과 그 연장에서 힘입은 수묵목판화의 방법론은 자신의 예술인생의 변화를 예감하는 결정저거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낮게 깔았던 그의 눈꺼풀은 작품 「歸路」에서 서서히 떠올라 마을을 지나 언덕을 오르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겹겹이 심원법으로 조감한다. 그의 다른 쪽 눈자위 하나는 또 바다 한 가운데로 풍덩 뛰어내려 수평선 멀리 작은 섬들로 시원스럽게 판을 갈아치웠다. 지난 다색판화류의 서양 회화적 정서로부터 돌아와 수묵의 본성으로 깨어난 듯 그가 새로 얻은 자기 공명적 도안은 이즈음에 단연 주목받을 만한 것이 되었다.

 


김준권_독도에서_채묵목판_30×40cm_2013

이번 전시회에 또 그가 내인 판화들은 「靑竹」 연작이다. 대나무 외투를 입은 청회색빛 '겨울'을 벗고 야들야들한 연초록빛 '봄'으로 새 단장을 하였다. 종종 그의 주제는 소재 속에 녹아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대상이 가진 상징의 언어는 결을 따르되 결코 과장하지 않는다. 그저 그것이 거기에 있어 날마다 그것을 따라 읽고 만지고 그리고 즐기며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대나무도 그렇다. 머리오리는 소쇄하니 바람을 쓸고 가슴은 텅 비어 무심한데 사계절 곧은 그림자는 밤마다 달빛을 희롱한다. 나무도 아니요 풀도 아닌 비목지초의 한 가운데를 살아 백년에 한번 꽃을 피운다면 어찌 새 세상의 봉황을 못 부를까! '봉황새'는 중국 최초의 황제인 황제 때 나타났다고 하여 전설이 되었다. 봉황은 출현할 성군을 위해 나타나고 대나무는 그 봉황을 맞이하기 위해 열매(봉황새가 유일하게 먹는다는 '죽실')를 예비한다는 '각본'. 대나무의 초고속 생장력(하루에 60~100cm를 자라 약 3개월 만에 성목이 된다.)이나, 마치 달이나 갈대 같은 것이 긴 세월을 치르는 동안 해뜩 변해버린 듯 기묘한 식물이라는 점도 관심거리지만 대나무다움은 역시 마디 속이 텅 비어 있는 '공동현상'과 백년 만에 한번 꽃을 피우고 모두 죽는 미스터리의 '개화현상'에 있다. 단 한번 지핀 불길에 목숨을 건다? 사랑 말인가 깨달음 말인가...

 


김준권_두주마을_채묵목판_63×341cm_2013

김준권의 대나무 연작은 말하자면 이런 대나무의 유래와 성상과 빛깔을 무심히 껴안고 돈다. 그는 목판 위에 칼춤을 추면서도 무난하고 냉정하며 고독하다. 그가 그리고 파고 찍는 노동의 형태가 그러하고 묵언의 대화법을 감추고 있는 저 대나무 속 같은 '공동의 마음'이 그러하다. 소나무와 버드나무의 중간에 놓인 다리쯤 될까, 조금 낭창낭창하다 싶지만 그렇다고 어떤 '바람'을 기대한 것은 아니니 이번에도 그는 과묵한 편이다. 가늘고 긴 대나무의 줄기든 가벼운 잎사귀든 그 그늘이든 그 볕이든 한 데 묶어 매 순간의 움직임을 차단한다. 대나무를 소재로 한 여느 수묵화들이 마치 대여섯 자의 거리를 두고 부분적으로 죽간의 크기와 길이를 정한 다음 잔가지와 이파리의 필력을 다듬는 짜임으로 흔했거나, 더러 뒤란이나 마을을 에워싼 대숲을 먹 번짐과 함께 넓게 담아내는 것들이었으되 아직까지 칼로 무수히 색점을 뜬 사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가 몇 걸음 중경으로 물러나 전체 대숲을 잡아내고자 한 이유를 알만하다. 작품 「대나무 숲」에서 보듯 화면 하나를 댓잎의 파노라마로 즐기는 그의 한가로움이 멋지지만 숲 전체를 압도하며 정말 판각으로 도전하고자 한 담력과 그의 장인적 포부에서는 차라리 질린다. 나는 그의 최근작 소나무가 있는 「숲에서...」 연작에 매우 만족한다. 그의 지난 언어의 파동이 수묵적 담미에 와서 더욱 높아지고 넓어지고 자유로워진 기분이다.

 


김준권_靑竹-1312_채묵목판_59×98.5cm_2013

대나무가 비목비초의 안을 굽어보는 맛이라면 소나무는 비산비야의 밖을 내다보는 맛이다. 늙어갈수록 아취를 더하는 뒤틀림이 아름답고, 한 잎집에서 나서 아랫부분이 서로 맞닿아 잎이 떨어질 때도 하나 되어 떨어지는 '백년해로의 부부애'도 행복하다. 소나무는 몸을 쪼개어 이승의 살 집을 지어주고, 청아한 자태로 인간에게 지조 있는 삶과 의연하게 늙는 법을 가르쳐준다. 사계절 푸른 수염을 웃으며 지나는 허튼 바람 따위 시비하지 않는 군자 위의 초목이라 하면...! 내가 이 연작들의 겹쳐 찍기에서 드러나는 중색효과에 관해 묻자 그는 일반의 중색효과와는 다른 무엇을 설명하기 위해 기형적으로 굵어진 그의 엄지손가라고가 집게손가락으로 미간을 찌른다. 즉 두 색 또는 그 이상의 겹쳐진 부분에 얹히는 유성색상의 감산혼합적 중첩이 아니라 이를테면 첫 판의 소나무와 둘째 판의 솔가지가 화선지에서 만나 서로 '살갑게 스치는' 인연이다. 수성에서만 연출할 수 있는 마치 모시저고리에 비치는 여인의 속살, 속살을 감추는 모시적삼의 보드라운 감촉 같은 것이었다. 일본에는 수성판화 '우키요에'가 있다면 중국에는 '수인목판화'가 있다. 우리에게도 동등한 지위의 판화는 없을까... 그는 의당 '수묵목판화'라 답한다. 뱃속의 아기 이름을 이미 지어놓은 것이다. 그가 불러줌으로써 비로소 기꺼워지는바 뱃속의 태동이 좋다. 그가 의욕적으로 전취하고자 하는 것은 적어도 그 모국어적 독자성에 서있을 목표이니 우선 일본과 중국에는 없는 저 티 없이 맑은 기법에 흐뭇이 박수를 보낸다. ■ 김진수

Vol.20130902e | 김준권展 / KIMJOONKWON / 金俊權 / pr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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