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마을] ‘데이트 파파라치’ 천대필씨

 


‘파파라치’는 이탈리아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에 등장한 신문사의 사진가에서 나온 말로 주로 연예인 같은 유명인사들의 사생활을 찍어서 돈을 받고 파는 직업군을 가리킨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 유명인사를 열린 공간에서 망원렌즈로 몰래 찍어 개인 블로그에 올리거나 언론에 제공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물론 공인이라 하더라도 사생활은 노출되지 않고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므로 연예인 사생활 촬영은 불법이다.

 

하지만 보통사람의 경우는 광장에서 몰래 찍으면 당연히 법에 저촉된다. 그런데 보통사람들의 데이트 장면을 청계천, 인사동, 삼청동 등 야외에서 몰래 찍어왔는데도 신고를 당하거나 경찰에 끌려가지도 않고 오히려 (찍힌 당사자로부터) 고맙다는 인사와 사례비를 받는 ‘착한’ 파파라치가 있다면 어떻게 된 것일까? 포털에서 ‘데이트 파파라치’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천대필(39·공무원)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천씨는 2012년부터 주말을 이용해 연인 중 한 명의 의뢰를 받아 당사자들의 데이트를 들키지 않고 찍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의뢰를 하는 사람은 뜻밖에도 여자가 8 대 2 정도의 비율로 더 많다. 천씨를 지난 18일에 만났다.

─‘데이트 파파라치’라는 용어가 생소하다. 설명을 좀 해달라. 혹시 불법은 아닌가?

 

“연인들 중에 한 명이 자신들의 데이트를 ‘몰래 자연스럽게’ 찍어달라고 에스엔에스(SNS)로 의뢰하면 2시간가량 찍어주고 원본 파일을 400장 정도 이메일로 넘겨주는 일이다. 2년가량 30~40건 정도 했다. 당사자들이 부탁하는 일이고 야외에서만 촬영하니 불법은 아니다.”

 

─(의뢰하는 사람이) 연인관계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조심스러웠다. 의뢰가 들어오면 두 사람의 관계부터 확인한다. 의뢰인 아닌 나머지 상대방이 찍힌 것을 알고도 법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확인하기 위해, 둘이 같이 찍은 사진을 보내라고 확인한다. 그리고 두명의 사진을 따로 보내라고 하여 둘의 얼굴을 익힌 다음 데이트 당일에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셀카’를 보내오라고 해서 또 확인한다.”

 

─아… 최소한 그날까진 연인이란 것을 확인하는 장치가 되겠다.

 

“그런 뜻도 있지만 내가 그 커플을 찍기 위해선 그날 무슨 옷을 입었는지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두시간가량 찍게 되면 결국 (의뢰인의 파트너가) 눈치채지 않겠는가?

 

“한번도 들킨 적이 없다. 자연스런 데이트 장면을 찍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신청을 에스엔에스로 하기 때문에 의뢰인조차도 끝까지 내가 어디서 찍고 있는지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데이트 장소가 워낙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의뢰인의 파트너는 기분 나쁠 수도 있겠다.

 

“그런 적도 없다. 자신의 연인이 기념일 등을 이유로 깜짝쇼로 준비한 것인데 다들 마음에 들어하더라고 했다.”

 

─주변에 물어보니 여자들의 경우 화장을 안하고 나왔거나 예쁘지 않게 나온 것에 불편해할 수 있겠다던데?

 

“의뢰인이 여자라면 화장을 하지 않을 리가 없고 남자가 의뢰했다고 하더라도 데이트할 때 예쁘게 꾸미지 않는 여성들이 있겠는가?”

 

─만약 사진을 찍어준 연인이 나중에 헤어지게 되면 어떻게 하나?

 

“세 커플 정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카페에 걸린 사진 내려달라고 연락이 와서 알게 되었다. 다 내렸다.”
사진을 의뢰한 사람의 반응이 궁금했다. 2년 정도 전에 천대필씨에게 의뢰해 데이트 장면을 ‘찍힌’ 강아무개(여성)씨에게 이메일로 질문지를 보냈다. 강씨는 포털에서 파파라치 데이트를 찾았고 색다른 데이트 겸 남자친구에게 생일선물로 주려고 의뢰했다고 한다. “몰래카메라는 유명인만 하는 거잖아요?”라며 강씨는 만족을 표현했다. 혹시 사진 원본이 유출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더니 “원본은 작가님의 포트폴리오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내가 모르게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면 불쾌할 것 같아요”라고 했다.
이에 대해 천대필씨는 “의뢰인에게 넘겨주고 나면 바로 삭제했다. 그런데 언제쯤인가 의뢰인이 사진 파일을 날려먹었다고 나에게 원본이 남아 있는지 묻더라. 그래서 요즘은 의뢰인과 상의해서 1년만 보관하고 있기로 했다. 그 후엔 지운다”고 밝혔다.

사진 천대필씨 제공


연인 중 한명 의뢰받아 촬영
동선 갑자기 바뀔 땐 애먹어
들킨 적은 여태 한번도 없어
뒤늦게 알게 된 파트너도
정성스런 마음에 기뻐해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돈을 벌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합법적으로 사람을 찍을 수 있는 길을 찾은 것이다. 쉬는 날 아들을 찍어봤는데 우연히도 (아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찍은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아 이게 사진의 매력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다. ”

─일이 재미있는가?

 

“의뢰인을 놓친 경우도 있었는데 에스엔에스로 위치를 물어봐서 찾기도 했다. 왜 놓치냐면 여성이 의뢰한 경우였는데 ‘데이트남’이 갑자기 동선을 바꾼 경우다.”

─여자들이 의뢰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데 왜 그럴까?

 

“기념일 사진을 찍자고 하면 남성들은 굳어진다. 그래서 여성이 의뢰하고 나서 나중에 사진을 주면 놀라면서도 좋아하는 것이다. 심지어 셀카를 찍을 때도 남성은 카메라 앞에서 어색해진다. 나로서도 여성들이 의뢰하는 쪽이 편하다. 결과물이 훨씬 자연스럽게 나온다. 데이트는 주로 여자들이 리드하는 편이라서 의뢰한 여성은 사진에 찍힐 것을 고려해 팔짱도 끼고 스킨쉽도 하는데 남성이 의뢰하면 이게 도무지 그림이 안 된다. 그냥 두 시간 내내 걷기만 한다.(웃음)”

 

강아무개씨의 남자친구도 역시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남자친구는 촬영하고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고 한 달 뒤 생일선물로 사진첩을 받을 때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파트너가 숨기고 촬영을 의뢰했으니 불쾌하게 생각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지 물었더니 “처음에는 놀라움이 가득했지만 불쾌하다는 느낌보다 정성스러운 마음에 대한 기쁨이 더욱 크다”며 “매우 아름답게 찍어주었기 때문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고 원본 사진이 유출되어 잘못된 용도로 사용된다면 그에 맞는 대응을 해야겠지만 카페에 걸리는 것은 문제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변에 소개하고 싶은지를 물었더니 여친 강아무개씨는 소개했다고 말했고 남친은 “소개하고 싶지는 않다. 좋은 것은 혼자만 누리고 싶기에 너무 많은 이가 한다면 그 희소성이 떨어질 것 같다”고 답했다.

 

천씨가 그동안 찍은 커플 중엔 결혼으로 연결된 사례도 너덧 차례 있다고 했다. 데이트 파파라치를 의뢰했던 어떤 커플은 결혼사진까지 부탁했다고. 천씨는 “찍어준 커플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야 당연한 것 아니냐. 외모와 상관없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된 연인들은 꼭 결혼 소식이 들려와서 흐뭇했다”고 말했다.

 

매그넘 사진가 마틴 파는 <스몰 월드>라는 사진집에서 전세계 유명 관광지에서 기념물을 등진 채 카메라를 향해 부동자세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풍토를 보여준 바 있다. 배경만 다를 뿐 언제나 카메라를 의식해서 취한 포즈는 모두 똑같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데이트 파파라치를 경험한 사람들은 한결같은 이야길 한다. 항상 예쁘게만 찍히려고 해왔는데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표정을 보고 감동을 받는다는 것이다. 연인의 진정한 매력을 사진 속에서 찾아내기도 하고 (카메라를 의식한 사진과 달리) 오래 두고 볼수록 당시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 같은 경험도 있다고 한다.

 

한겨레 / 글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파파라치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유명인들을 몰래 찍은 파파라치의 사진들 가운데는 예술성을 인정받는 사진들도 있다.
영국 다이애나 비의 수영복 사진, 미국 퍼스트 레이디였던 재클린 케네디의 사진,
모두 유명한 사진으로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이다.

파파라치는 유명인사나 연예인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사생활을 몰래 찍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찍은 사진들 가운데는 작품성을 인정받은 유명한 작품들도 있다.
이런 사진 400점을 모아 퐁피두 센터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다고 한다.

브리지트 바르도,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리고 조지 클루니, 롤링 스톤스의 믹 제거 등 스타라면 파파라치의

카메라를 피할 수 없었다.

전시중인 한 파파라치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우리가 찍은 사진들은 신문, 잡지에는 크게 실렸지만, 전혀 우리를 아티스트로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파파라치들은 사생활 노출로 곤욕을 치른 스타들로부터 때때로 공격을 당하기도 한다.
이들 사진은 나름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냈고, 패션계에 남긴 걸작들도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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