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가벼운 청춘들이 뜨겁게 열광하는 추로스·지팡이아이스크림 등이
허기진 마음을 달래주고 추억을 되살리고

 

 

청춘들의 길거리 음식은 끼니를 때워주거나 먹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서울 노량진에서 부타모야시덮밥을 만드는 모습(위쪽)과 인사동에서 지팡이아이스크림을 사먹는 사람들의 모습.
지난 8월5일, 평일 저녁인데도 족히 15명은 돼 보이는 청춘남녀가 한 줄로 서 있었다. 안경에 물방울이 맺힐 만큼 비가 흩뿌리는 날씨였다. 한 커플은 서로의 허리를 감싸안고 있었고, 청년들은 술에 취한 듯 얼굴빛이 불콰했다. 긴 줄의 맨 앞에 서 있다 방금 추로스를 받은 박정연(38)씨가 말했다. “경리단길에 올 때마다 꼭 추로스를 먹어요. 즉석에서 튀겨주니까 맛있잖아요.”

 

청춘의 취향과 지역색 결합한 거리의 명물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에 있는 ‘스트릿츄러스’ 가게 앞에는 평일에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경우가 많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낮이든 밤이든 가리지 않는다. 이날도 밤 10시가 넘도록 가게에서는 쉴 새 없이 추로스가 튀겨져 나왔다. 그래도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은 줄지 않았다. 소상우(33) 스트릿츄러스 대표는 “하루 평균 3천 명의 손님이 와요. 경리단길에는 주말에 사람이 가장 많으니까 줄이 더 길죠”라고 말했다.

 

청춘들의 길거리 음식에 다양함이 더해지고 있다. 떡볶이·어묵 등이 여전한 거리의 강자지만, 지역색에 맞춘 새로운 트렌드도 있다. 서울 인사동에서는 전통과 결합한 한국식 퓨전 간식이 유명세를 타고, 노량진의 상인들은 ‘컵밥’에 이어 새로운 거리 음식들을 발명했다. 바쁘거나 즐겁거나, 청춘의 변화무쌍한 취향이 지역색과 결합해 거리의 명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다음날인 8월6일 오전 10시, 스트릿츄러스를 다시 찾았다. 가게 문을 연 지 1시간밖에 안 됐지만 벌써 6명이 줄을 서 있었다. 추로스는 스페인 전통 간식이다. 원래는 막대 모양이지만, 스트릿츄러스에서는 스페인에서 ‘행운’을 뜻하는 말발굽 모양으로 튀긴다. 시나몬 가루를 뿌린 50cm 추로스 1개에 2천원을 받는다. 추로스를 찍어 먹는 초콜릿 등의 소스는 개당 1천원씩, 와인으로 만드는 음료 뱅쇼는 5천원가량이다. 경리단길 물가에 견주면 저렴한 편이라 주머니 가벼운 청춘들이 더욱 뜨겁게 열광하고 있다.

 

경리단길의 추로스 열풍에는 타국의 향수가 묻어 있다. “이태원에 사는 한 스페인 분이 ‘고향에서 먹던 것보다 맛있다’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 카운터 옆에서 추로스 반죽을 튀기던 김재민(25) 부매니저가 말했다. 외국인보다 많은 한국인 손님들은 추로스를 먹으며 여행의 추억을 음미한다. 인터넷 블로그 등에는 경리단 추로스를 먹고 스페인 여행을 떠올렸다는 평이 적잖다. “아, 정말 맛있다. 스페인에서 먹었던 추로스 맛이 생각났다”(Jade), “스페인에서 사 먹은 거보다 더 맛나는데?”(superbori)라는 식이다. 여기에 놀이공원의 추억도 더해진다. 권한준(33)씨는 “추로스는 원래 놀이공원에서만 팔던 음식이지 않나. 그래서 추로스를 먹으면 놀이공원이 생각나고 신이 난다”고 말했다.


“스페인에서 사 먹은 거보다 더 맛나는데?”

 

심지어 추로스를 먹고서 춤추는 사람도 있었다. 김재민 부매니저는 전했다. “자주 오는 외국인 손님이 가게 배경음악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Empire State of Mind)가 나오니까 ‘나 뉴욕에서 왔어!’라고 좋아하면서 춤을 추더라고요. 바로 맞은편에 미군기지가 있잖아요. 점심시간엔 군인도 많이 와요.”

경리단길 주변은 다국적 동네다. 용산구청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경리단길이 있는 이태원2동에 사는 등록외국인 수는 984명이다. 이러니 경리단길의 식당을 넘어 거리 음식에까지 세계 음식이 손을 뻗치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경리단길 거리 음식으로 프랑스 국민 간식인 크레페도 합류했다. 녹사평 대로변에 새로 생긴 ‘롤링크레페’에서 맛볼 수 있다.

 

1920년대 인사동 거리는 지금의 경리단길과 비슷했다. 이태원 상권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예술가들이 경리단길로 옮겨갔듯, 명동과 충무로에서 이사온 예술가들이 인사동을 만들었다.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김지혜씨의 석사 논문 ‘인사동 내 업종분포 및 이용행태 변화를 통한 장소성 변화에 관한 연구’(2012)에는 “일제강점 이후 1920년대 일본인이 머무르던 명동과 충무로의 상권이 번성하면서 인사동으로 이전하는 세력이 등장”했고, “이들을 중심으로 고미술을 고민하는 계층이 형성”되면서 “인사동은 1970년대 우리나라 고미술 네트워크의 거점 지역으로 성장”했다고 적혀 있다.

 

이런 전통을 바탕으로 인사동 거리에는 퓨전 간식이 유행이다. 한국의 전통 간식인 꿀타래가 인사동의 어제였다면, 뻥튀기 과자에 아이스크림을 섞은 ‘지팡이아이스크림’이 인사동의 오늘을 대표한다. 지팡이아이스크림은 지팡이 모양 뻥튀기 속에 아이스크림을 넣은 것이다. 이런 퓨전 시도에 경기도 양평의 밀랍떡을 와플기계로 구워 파는 ‘와플떡’도 더해졌다.

 

종각역에서 들어가는 인사동 초입에 위치한 ‘지팡이아이스크림 가게’는 꼬불꼬불 꼬인 지팡이 과자와 동그란 추억의 딱지 세트로 내부를 장식하고 있다. 지팡이아이스크림을 개발한 조춘호 준팩토리 대표는 “어릴 때 먹었던 개나리콘 맛이 나는 지팡이 과자가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는데 여기에 아이스크림을 넣으면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간식이 되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인사동 방문객들이 지팡이아이스크림을 줄지어 사는 데에는 미디어도 한몫했다. 지난해 9월 MBC every1 <손담비의 뷰티풀 데이즈 시즌2>는 인사동 가게에서 촬영했고, 11월에는 MBC <컬투의 베란다쇼>에 나오기도 했다. 네이버 블로그에 ‘인사동 지팡이아이스크림’이라고 치면 4400여 건의 포스팅이 검색되기도 한다. 전북 군산에서 휴가차 놀러온 장지혜(28)씨는 “인사동에 오면 꼭 먹고 가야 하는 음식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김지선(24)씨는 이것을 재미로 먹기도 한다. 그는 “뻥튀기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한번에 갈비 뜯듯이 먹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지팡이아이스크림이 야시장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게 지선씨의 생각이다. 지팡이아이스크림은 손잡이를 눕혀 제이(J)자 형태로 잡고 먹는다. 뻥튀기 과자 덕분에 아이스크림이 흐르지 않고, 반으로 갈라 먹기도 쉽다. 안에 들어가는 아이스크림은 바닐라, 바닐라초코, 스트로베리, 블루베리, 다크초코 5가지 맛이 있다. 바닐라가 3천원으로 가장 저렴하다. 남녀 커플은 대개 하나를 나눠 먹는 경향이 있다. 8월5~6일 이틀간 4시간가량 인사동을 지켰지만 한 커플이 아이스크림 2개를 사는 경우는 결코 없었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 탓이거나 뜨거운 사랑 덕분일 것이다.

 

단돈 3천원 한 끼의 식사

 

노량진의 영혼이 깃든 음식은 ‘밥’에서 출발한다. 삼겹살과 제육볶음을 넣으면 ‘컵밥’, 스팸·달걀프라이·김가루가 들어가면 ‘폭탄밥’이다. 일본식 볶음요리 부타모야시덮밥, 베트남식 볶음밥은 최근 들어 주목받고 있는 발명품들이다. 단돈 3천원이면 먹을 수 있다.

노량진의 끼니 음식은 인사동의 아이스크림보다 싸다. 3천원은 경리단길에서 추로스 1개와 초콜릿 소스 1통을 사먹을 돈이다. 4년간 노량진에서 노점을 운영 중인 신정민(37)씨는 “더 비싸게 팔면 학생들이 안 오니까 대체로 3천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가격을 정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경리단과 인사동의 길거리 음식이 휴일의 달콤함을 위한 것이라면, 노량진의 길거리 음식은 평일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지하철 1호선 노량진 역사 앞에 있는 육교에 서서 보면 노량진에는 온통 학원과 노점뿐이다. 재수학원, 경찰학원, 공무원학원, 임용고시학원이 모두 포진해 있다. 집 떠난 입시생과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 몰리는 이유다. 닭꼬치를 파는 노점의 박아무개씨는 “수능이 끝나면 손님이 확 줄어. 맛이 없으면 학원에 소문이 싹 도니까 파리만 날리지, 뭐”라고 말했다. 입시생과 공시생이 분초를 다투며 공부하듯, 노량진 노점상들도 맛과 양, 가격 혁신에 골몰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8월6일 오후 3시,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노점들은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특히 ‘베트남 현지인이 직접 조리하는’ 베트남 음식 노점 ‘미스 사이공’(Miss Saigon)에 사람이 몰렸다. 국수를 뜨거운 육수에 익히고, 국물을 붓거나 볶기만 하면 2분도 안 돼 따뜻한 별미를 내놓는 가장 빠른 집이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함께 온 신상엽(19)씨는 볶음국수 4인분을 주문해 2분 뒤에 음식을 받아 5분 만에 먹고 자리를 떠났다. 신씨는 “양이 많아서 좋다. 싸니까 더 좋다. 맛도 좋다”라고 칭찬했다.

 

돈만큼 시간을 아끼는 입시·공시생도 줄서서 먹는 길거리 음식이 있다. 핫케이크와 핫도그를 절묘하게 응용한 ‘소시지 팬케이크’다. 살짝 익힌 핫케이크 반죽에 콘샐러드, 햄 등을 올린 뒤 말아내면 끝이다. 이것은 ‘미스 사이공’ 건너편 블록에 있는 ‘오가네 팬케이크’에서 판다. 공시생인 박소진(24)씨는 “오가네 팬케이크 앞에는 영업 시작 전부터 줄이 길게 늘어선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평일인데도 인도를 가로막을 만큼 줄을 길게 서서 불편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가장 저렴한 햄치즈 팬케이크는 1500원이다. 고구마나 치즈 한 장을 더 넣으면 가격은 2천원으로 오른다. 고등학생인 조수민(18)씨는 가장 잘 팔리는 햄치즈만 먹는다.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가격이고, 가장 효율적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나마 후식 종류인 팬케이크마저 가격이 우선이고 양도 중요하다. 싸고 효율적인 음식은 늘 서서 먹는다. 노량진 노점들에는 그 흔한 플라스틱 의자 하나 없다. 비가 오면 등이 흠뻑 젖은 채 먹고, 더우면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다. 꼭꼭 씹어 먹을 틈도 없어 비비고 볶아서 위에 담는 음식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노량진 길거리 음식은 따뜻해야 사랑받는다. 한여름에도 허기진 마음을 따뜻한 음식으로라도 잠시 달래려는 청춘들이기 때문이다.

 

한여름에도 따뜻해야 사랑받는 음식

 

노량진, 인사동, 경리단. 서울의 대표적 거리인 3곳에는 모두 청춘들의 길거리 음식이 있다. 요즘 젊은이들의 어떤 필요를 드러내는 음식이지만, 결코 그 의미가 같지는 않다. 노량진 음식에서는 경쟁사회 속에 고립된 청춘들의 고단함이 묻어나고, 인사동과 경리단의 후식에서는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만끽하려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변화무쌍한 청춘들은 내일 또다시 새로운 거리 음식을 만들어낼 것이다.

 

글한겨레21·사진 박선희 인턴기자 starking0726@naver.com


삼일절을 맞은 인사동은 흥청댔다.
덩달아 거리의 상점들도 부산했다.
태극기가 잘 팔리고, 지팡이 아이스크림이 잘 팔렸다.
지팡이 아이스크림은 전염병처럼 번져 나갔다.
인사동거리는 태극기 반, 지팡이 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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