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죽어 간 홈리스 추모제가 지난 22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렸다.



거리에서 쪽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두지 않았다.

뒤늦게 열린 추모제에 300여명의 추모객들이 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2019 홈리스 추모제’는 '홈리스행동'을 비롯한 40개 사회단체가 주축이 된 ‘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에서 마련했다.

매년 동짓 날, 서울역광장에서 열리는 이 추모제는 올해로 열 아홉번째다.



현수막에는 “거리와 시설, 쪽방, 고시원 등의 열악한 거처에서 삶을 마감한 홈리스를 기억 한다”는 글이 적혔고,

사진도 없이 이름만 적힌 166명의 홈리스 영정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거처도 없이 떠도는 홈리스가 영정사진을 어떻게 가질 수 있으며, 있어도 어디다 보관하겠는가?



추모제가 열리는 중에도 서울역 주변 곳곳에 홈리스들이 떨고 있었다.

말로만 민생복지, 민생복지 나발 불지, 다들 마음은 콩 밭에 가 있다.



올해 숨을 거둔 홈리스 사망자 숫자도 사회 활동가들이 확인한 것으로, 정부는 사망자 전수조사에 손을 놓았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2005년 서울에서만 300명, 2009년엔 350명이 사망했단다.

아마 연고자 없는 홈리스가 매년 300명 이상 운명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추모제가 열리기 전에는 서울역 주변 홈리스들에게 동지팥죽을 나누어 주었다.

다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죽으로 허기를 달래며, 오랜 추억에 젖었다.

동짓날만 되면 팥죽 먹으러 서울역으로 온다는 노숙자도 있었다.



추모제는 춤꾼 이삼헌씨의 위령무 공연으로 시작되었다.

떨어지는 꽃잎이 흩뿌려진 그들의 넋인 냥 처연했다.



위령무 공연이 끝난 후, 동료 홈리스를 떠나보낸 친구들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홍난이씨는 고 정금안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정씨는 남편 폭력에 견디지 못해 서울에 도망쳐 와 노숙생활을 했단다.

장애가 있으나 빈 병이나 폐지를 주워 모아 어렵게 살면서도

홍씨에게 라면이나 담배를 사주는 등 인정 많은 언니라고 추억했다.




이름대신 ‘행복’이라 밝힌 한 남자는 고시원에서 숨진 고 나승욱씨를 추억했다.

2년 전 나씨와 홈리스 야학에서 만나 같이 컴퓨터도 배우고 도배학원도 다니며 동거 동락한 추억을 떠 올렸다.

숨진 후 오랫동안 고시원 방에 방치됐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고 했다.




고 연영철씨의 상주를 맡았던 동자동 쪽방촌 송범석씨는 ‘빈민들이 사람답게 살 권리’를 호소했다.

대부분의 쪽방 계단이 좁고 가파른 데다 조명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에 사고를 당했는데,

돈도 없어 제 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게 되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노래 교실 수강생들이 나와 ‘떠나가는 배’를 불렀고,

가수 정태춘씨는 홈리스 사망자를 위해 ‘서울역 이씨’를 불렀다.

이 노래는 정태춘씨가 2005년 홈리스 추모제 참석을 위해 급히 지은 자작시인데,

그 뒤 곡을 붙여 ‘서울역 이씨’로 앨범에 담았다고 한다.



정태춘의 ‘서울역 이씨’


서울역 신관

유리 건물 아래 바람 메마른데

그 계단 아래 차가운 돌 벤취 위

종일 뒤척이다

저 고속전철을 타고

천국으로 떠나간다.

이름도 없는 몸뚱이를 거기에다 두고

예약도 티켓도 한 장 없이

떠날 수 있구나

마지막 객차 빈자리에 깊이 파묻혀

어느 봄날 누군가의 빗자루에 쓸려

소문도 없이 사라져 주듯이



모던한 투명 빌딩

현관 앞의 바람, 살을 에이는데

지하철 어둔 돌계단 구석에서

종일 뒤척이다

저 고속 전철을 타고

천국으로 떠나간다.

바코드도 없는 몸뚱이를

거기에다 두고

햇살 빛나는 철로

미끄러져 빠져 나간다.

통곡 같은 기적소리도 없이

다만 조용히

어느 봄날 따사로운 햇살에 눈처럼

그 눈물처럼 사라져 주듯이

소문도 없이 사라져 주듯이





정태춘씨는 노래에 앞서 “이 비만과 빈곤의 어이없는 공존. 저 모든 거짓과 환상과 그 역겨운 문명과 시스템,

사회로부터 버려져 쓸쓸히 죽어간 모든 이를 추모 한다”고 말했다.



이어 추도사를 올린 홍난이, 행복, 송범석씨가 함께 나와 권리선언을 낭독했다.

“홈리스로 살게 하는 조건에 눈 감는 세상, 홈리스의 존재를 부정하는 세상,

자립과 자활만을 강요하는 세상, 부실하고 불충분한 지원만을 내세우는 세상이야말로

홈리스를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원인임을 우리는 안다”며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권리와 추모와 애도를 누릴 권리, 집다운 집에 살 권리,

제 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권리,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몇 년 전 홈리스 당사자가 한 말을 한 번 들어보라.


“우리에게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느냐고 묻지 마십시오.

그 질문은 네가 잘못 살아 거리 잠을 자게 된 거 아니냐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 질문에는 개인의 불행에 대한 사회의 책임이 빠져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서 요구하는 것은 최소한의 잠자리와 일자리, 치료받을 권리입니다.

그것은 모든 국민에게 동등하게 주어져야 하는 당연한 권리입니다“



추모제가 끝난 후, 166명의 사진없는 영정이 새겨진 플랜카드를 든 추모객들이

서울역 주변과 지하철 2번 출구부터 13번 출구까지 행진했다.

행진하는 중에도 서울역 주변은 노숙자들이 여기 저기 웅크려 떨고 있었다.



죽음을 방관하는 이 야만의 세상에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국민들이 뽑은 국회의원들은 밥그릇 싸움에 눈이 뒤집혔고.

복지부동의 공무원들은 돈 생기지 않는 일은 알아도 모른 채한다.

가진 자들은 더 많이 가지려고 약자를 짓밟는데, 가난한 빈민들에게 세계 경제 11위가 무슨 소용이냐?



돈이 남아 돌아 쓸데없는 곳에 낭비되는 돈이 얼마나 많은데,

그 만분의 일이라도 빈민 복지에 사용하면 어디가 덧나냐?

토목공사를 벌이거나 비싼 무기나 수입해야 떨어지는 게 있지,

남는 게 없는 빈민들 복지에 왜 신경 쓰겠나? 


 

“에이~ 천벌 받을 놈들, 하늘이 무섭지 않나”

제발, 사람답게 살고 사람답게 죽을 수 있도록 하라.


사진, 글 / 조문호














































































































‘한국민예총’ 드디어 서광이 비친다.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한국민예총)의 창립이 어언 30주년을 맞았다.

한국민예총은 예술인들의 공동실천으로 사회 민주화와 민족통일에 기여하고,

민족문화 창달에 헌신할 목적으로 19881223일 창립한 예술단체다.

현재는 지역별로 분권화한 형태지만, 가닥을 잡아 갈 본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민예총30년 동안 민주화와 문예부흥을 위해 크게 기여해 왔으나,

열악한 재정에 허덕이다, 지금은 빚더미에 앉은 어려운 처지에 있다.

오랜 부채를 해결하여 다시 일어서기 위해 역대 이사장단을 비롯하여

신학철, 이철수, 유순웅씨 등 많은 예술가들이 사재를 털어  재기하려 노력해왔으나,

밑 빠진 독에 물 붙는 격이었다.



   



창립 때부터 인간적인 관계를 더 중요시 했는지 모르지만,

많은 회원을 대표하는 단체 운영에 그런 사심이 통용되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사무총장 뜻에 따라 이사장이 추대되는 모순이 오래전부터 암암리에 이루어져 왔다는데 있다,

그러니 자신을 내 세워 준 실세더러 누가 감히 메스를 들이댈 수 있겠는가?





더 이상 사무총장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올 2월부터 화가 박불똥씨가 이사장을 맡으며, 일대 개혁을 단행했다.

사무총장을 해임하여 새 집행부를 구성했으나 당사자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일부 장부까지 움켜 지고 배 째라 식으로 버티는데,

더 웃기는 것은 일부 지역 민예총을 조종하여 내분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이제 제발 그만하라.

회원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힘을 뭉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법적 조치도 불사해야 한다.

단체를 끌어 가는대는 절대 인간적인 사심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한 선례를 들어 보겠다.

오래전 민예총산하단체인 민족사진가회’(민사협) 창립에 사진가 김영수씨를 도운 적이 있다.

그 단체가 주저앉게 된 원인이, 바로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독재에 의한 것이라는데 있다.

초대 이사장으로 작고하신 홍순태선생을 로봇 이사장으로 앉혔으나,

이사회나 회계절차도 형식일 뿐, 모든 게 한 개인의 뜻대로 움직여졌다.



 


창립시 내가 사무국장 직책을 맡았으나 그것도 이름 뿐이었다.

인사동에 사무실을 내려는데, 보증금이 없어 잘 아는 지인에게 부탁해

홍순태 이사장 명의의 차용서를 써 주고 빌려와 입주한 적도 있다.

그러나 결국 나만 바보가 되었다.

뒤늦게 민예총본부 사무실로 이전했으면 보증금은 돌려줘야 할 것 아닌가?

 


 


가까운 친구라고 덮어주고 변명해 주다보니, 결국 단체 자체가 문을 닫도록 만든 것이다.

박정희보다 더 지독한 독재로 좌지우지 했으니, 어느 회원이 남아 있으려 하겠는가?

유령 회원을 이끌고 가내수공업 식으로 끌어가다, 본인이 죽고 나니 결국 문을 닫더라.



 


문제는 박불똥이사장이 정영신씨를 조직국장으로 내 세워 조직을 다시 복원시키려 했으나,

그 불신의 골이 깊어 대개의 사진가들이 머리를 흔든다는데 있다.

이제 민족이란 자도 단체명으로 사용해서는 안 될 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더 이상 조직에 사심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모두 화합하여 잘 못된 것을 과감히 개혁하여 우리나라 문화의 주체가 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 개혁에 나선 박불똥 이사장을 믿는다.

원칙주의자인 그만이 해 낼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민사협에 진저리를 내어 오래 동안 방관하고 살았기에, 민예총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차 몰랐다,

마침 사무국장을 맡은 서인형씨와 정영신씨가 쥐꼬리만큼의 보수로 일한다기에 유심히 살펴보게 된 것이다.




 

유순웅 부이사장 도움으로 사무실을 얻어 어렵사리 꾸려가지만 살얼음 판 같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이 어렵기야 하지만, 그러나 희망이 보이더라.

이제 단합하여 협력하는 일만 남았다.



 


일반인들에게 받는 CMS도 계속 들어오고 있고, 기금 마련전에도 많은 작가들이 발 벗고 나섰다.

기금마련전도 여지 것 해 왔던 것처럼 무조건 작품을 내 놓는 것이 아니었다.

사무국과 작가와의 계약서에 의해 이루어진다.

출품작가의 뜻에 따라 판매대금 분배와, 끝난 후의 작품반환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출품 작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도 몰랐던, 그 전의 주먹구구식 기금마련전이 아니라

작가와 단체가 상생할 수 있는 좋은 기획전이었다.



 


미술평론가 최석태씨가 기획한 민족예술, 다시 날아오르다기금마련전에는

신학철, 황재형, 임옥상, 김정헌, 민정기, 김진열씨 등 내 노라 하는 작가 40여명이 참가하였는데,

이미 작품이 팔려 나간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지난 19일 오후5시 인사동 관훈갤러리전관에서 개막된 민족예술, 다시 날아오르다

기금 마련전에는 200여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대 성황을 이루었다.



    


개막 행사는 유순웅 부이사장의 사회로 이성호 경기민예총이사장의 비나리 공연에서

장순향 한국민족춤협회이사장의 북춤으로 신명을 일으켰다.

박불똥 이사장의 인사와 백기완선생의 축사, 그리고 유홍준씨의 격려사로 이어졌다.



 


이어 마임이스트 유진규씨의 무언극은 마치 민예총의 아픔을 대변하듯 절절했다.

손병휘 서울민예총이사장의 노래에 이어

임진택 명창의 김구선생 탈출기를 담은 창작 판소리가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가수 정태춘씨가 나왔는데, 흐르는 세월은 어쩔 수 없었다.

늙어가는 모습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목소리는 더 깊어진 것 같았다.



 


그런데, ‘관훈갤러리가 생겨난 이후 최고의 관객이 몰렸다.

3층 공연장에 다 들어 올 수 없어, 입구에서 지켜보는 분들도 많았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2층에 마련된 조촐한 다과로 환담을 나누었고,

낭만에 마련된 뒤풀이에서 밤늦도록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판화가 김준권씨 100만원, 박종관 한국문예진흥위원장 100만원, 화가 김정헌씨 50만원 등,

독지가들이 줄을 이어 민예총이 다시 기지개를 켜는 모습에 마음이 흐뭇했다.



 


다음해 16일까지 열리는 민예총기금마련전은 꼭 볼만한 전시다.

유명작가들이 대거 참여한 이번 전시에서 민중미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신학철씨가 88년에 제작한 목판화 한국현대사-유월항쟁도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시대를 증언하는 작품으로 민중미술을 이끌어가는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작품은 구입하지 못하더라도 작은 금액의 CMS 한 구좌라도 적어주길 바란다.

작은 물방울이 내를 이루듯, 작은 힘이 모여 민예총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



 

참여 작가는 다음과 같다.

 

작고작가) 박생광 김영수 문영태 김구한

 

강연균 강요배 김영진 김재홍 김정헌 김진열 김천일 김현철 나규환 노원희 두시영 민정기

모노리 박불똥 박재동 박흥순 변승훈 손장섭 송 창 성낙중 신학철 심정수 안경진 안창홍

양형규 여태명 이영선 이명복 이원석 이종구 이종희 이철수 이태호 임옥상 장경호 정비파

조문호 주재환 최병수 황재형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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