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29

보름 동안의 전시를 언제 끝낼지 걱정했으나, 어느덧 중반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골목 담벼락에 내건 ‘노숙인, 길에서 살다’ 전시 현수막은

비와 ‘유목민’ 취객들이 흘린 막걸리로 노숙인 옷처럼 때가 묻고 얼룩져 버렸다.

 

'유목민' 골목 전시가 끝나면 당사자들도 볼 수 있는 서울역광장으로 옮겨 가야 할텐데,

세탁해도 탈색이 안 될지 모르겠다.

 

그대로 보관한다면 간접 고난의 잔재까지 남는 의미야 있겠지만,

그 현수막은 전시가 끝나면 당사자에게 돌려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찍힌 분들에게 사진을 뽑아 주긴 했으나 대개 구겨져 버렸거나 잊어버렸단다.

사진 한 장 보관할 곳 없는 그들의 처지를 감안하여 손수건처럼

주머니에 접어 넣을 수 있도록 현수막 사진을 잘라 주기로 한 것이다.

 

전시가 시작된 후 매일 같이 전시장 방문한 분들 모습을 기록했으나

술독에 빠져 사진을 정리해 올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페친 분들은 새로 만든 Naver의 ‘인사동 이야기‘ 블로그를 통해 그간의 소식을 알릴 수 있었으나,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가 Daum의 갑질로 정지된 걸 모르는 많은 분들은

오랫동안 글이 올라오지 않아 신상에 문제가 생긴 줄 알고 안부를 물어오는 분까지 있었다.

 

어쨌든 그간의 소식을 올리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 쓰린 속을 부여안고

26일과 27일 이틀간의 사진이나마 정리해 올림을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

 

지난 26일은 ‘만종’을 기록하는 사진가 노은향, 이석준, 지은숙, 민성진씨를 비롯하여

이완교, 이정환, 성유나, 심보겸, 김헌수, 권해진, 최치권, 한선영씨등 많은 사진가들이 다녀갔으나

인사동을 돌아다니느라 뵙지 못한 분도 여럿 있었다.

 

연출가 기국서씨와 배우 정재진, 이명희씨 등 연극인들은 일찍부터 ‘유목민’ 골목을 장악했고,

발렌티노김, 한상진, 이태호, 최석태, 정비파, 박상희, 김도수, 변성진, 김기수, 박찬종, 편근희,

장의균씨등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다. 그리고 가족으로는 조창호, 정주영, 김소현이 다녀갔다.

 

27일 문 닫기 직전에는 김태진씨와 아들 햇님이가 찾아왔다.

‘메밀란’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했는데,

그 날은 손녀 주려고 처음으로 인사동에서 풍선 피리와 반지 사탕도 샀다.

장난감을 받아들고 좋아하는 손녀 하랑이 재롱에 누적된 피로가 눈녹듯 녹아버리네.

 

자리를 만들어 준 '진인진출판사'대표 김태진씨에게 그 고마움을 전한다.

 

사진, 글 / 조문호

 

 

 

 

그날따라 장대비가 쏟아졌다.

혜화역 1번 출구로 나오라는 지령에 따랐는데,

먼저 온 사람들은 신발가게 앞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다들 우산을 받쳐 들고 기국서씨를 따라갔다.

학림다방 옆길을 돌아 ‘청춘포차’에 안착했다.

 

기국서, 최정철, 박준석, 김문생, 권영일, 목수김씨가 먼저 자리 잡았고,

뒤이어 박근형, 정재진씨가 왔다. 이차에 간 ‘틈’에서는 기주봉씨도 합류했다.

 

다들 연극판에서 한 가닥 하는 분이었다.

술자리에 둘러앉은 분위기가 마치 쿠테타 모의하는 것 같았다.

 

평소 예술의 전당 개혁을 부르짖는 박준석씨는

예술의 전당에 어찌 예술가가 없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곳만이 아니라 전국 공연장 문제점으로,

개선을 위한 대책과 예술가들의 연대도 절실했다.

 

최정철씨는 붕어빵식으로 열리는 축제들을 탓했다,

그 곳만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며 대안도 말했다.

 

무사안일주의인 예술담당 공무원들의 문제도 있지만,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접근을 달리 하라는 등,

예술계 전반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나왔다.

 

두 번째로 따라 간 곳은 ‘틈’이란 술집이었다.

LP판이 벽을 채운 음산한 구석에 기주봉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술기운이 올라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기국서씨의 표정에 비장감이 감돌았다.

 

술 취한 독특한 비장감은 그만의 캐릭터다.

당장이라도 판을 갈아엎을 그런 분위기다.

 

시간이 지나니 한 사람 두 사람 일어서기 시작했다.

술이 취해 나 역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그 이튿날 온종일 쥐약 먹은 듯 비실비실 방구석을 기었다.

 

뒤늦게 들었지만, 기국서씨도 무탈하지 않은 듯했다.

 

노장은 그냥 죽지 않는다. 다시 음모를 꾀한다.

 

그 날 기국서씨가 던 진 말이 기억난다.

“예술이기 전에 사람이 되어야한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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