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동과 친구들’전이 통인시장 맞은편 창성동(자하문로 10길 9-4) ‘갤러리 자인제노’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1일 '서울아트가이드'에 실린 팔월 전시안내를 보다

‘갤러리 자인제노’에서 박재동씨 전시가 8월2일부터 15일까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전시를 한다면 공개하지 않을 리가 없어, 동명이인인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갤러리의 요청에 의한 전시겠지만, 스스로를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짐작했다.

 

사람 많은 개막일을 피해 지난 4일 정오 무렵에야 정 동지와 함께 전시장을 찾았는데,

작가대신 그의 기타가 자리를 지켰다.

 

전시장에는 박화백 특유의 서정적인 유채화가 눈길을 끌었다.

따스하고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풍자적인 작품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머금게 했다.

‘손바닥 아트’ 디지털 판화 등 28점의 작품이 아담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박재동화백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시사 만화가이며 애니메이터로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근대 만화의 풍자정신을 우리 시대에 계승한 만화가를 꼽는다면 단연 박재동이다,

작가의 강인한 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은 전무후무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대한 재능이 남달라 서울대에서 회화를 전공했던 화가다.

30대 중반 한겨레신문 창간 멤버로 시사만화를 시작하며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를

넉살 좋은 풍자와 예리한 비판으로 그려내, 그만의 독보적 위치에 선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서정적이고 더러는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애잔함도 깔려 있다.

따뜻한 고향의 정서가 느껴지기도 하고, 어릴 적 소녀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마저 밀려온다.

작가의 기억에 의한 향수가 고스란히 감상자에게 전달된 것이다.

 

모든 작품의 핵심은 사람에 있다.

그 가운데서도 힘없고 평범한 이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심지어 길거리를 지나치다 마주친 노숙인 모습조차 같은 이웃으로 보았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작가의 손에는 항상 스케치북과 연필이 따라 다닌다는 점이다.

사람 만나는 곳이면 작업실은 물론, 찻집이나 술집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사람을 그린다.

그리고 여느 작가처럼 억지로 힘들여 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 자체를 즐긴다.

수십 년 동안 쌓아온 내공을 누가 따를 수 있겠는가?

아마 사람을 보면 그의 마음까지 읽는 경지에 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에 시를 더한 간결한 작품 ‘나’에서는 그 진정성이 머리에 내리박힌다.

 

“내가 누구냐고 묻지 마세요.

난 그저 그를 사랑하므로

그가 되었을 뿐 이예요.“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파안대소한 소녀의 모습을 강열하게 묘사한 ‘선생님 너무 웃겨요“는

마치 나를 보고 웃는 듯 유쾌해진다.

 

그림에 푹 빠져 있으니, 인사동 마당발 노광래씨가 들어왔다.

그는 인사동에서 갤러리를 운영한 화상이 아니던가.

작품이 좋아 한 점 구입했으나 미련이 남아 다시 왔단다.

 

정영신씨는 노란 유채 풍경 속에 조그맣게 자리 잡은 ‘소녀’에 마음이 꽂혔다.

나는 ‘강변에서’란 작품에서 느껴지는 여운이 영 지워지지 않았다.

 

전시작품들을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대가 작품치고는 가격에 부담이 없다는 것도 또 하나의 매력이다.

이 전시는 '자인제노' 이두선 대표가 부당한 미투 관련 소송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하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오는 15일까지 열리는 ‘박재동과 친구들’전시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Unfold

최수앙展 / CHOIXOOANG / 崔秀仰 / sculpture 

 

2021_0728 ▶ 2021_0829 / 월요일 휴관

 

최수앙_손_오일, 폴리우레탄페인트, 에폭시 레진, 우레탄 레진, PVC, 스테인레스 스틸, 황동 파이프, 호두나무, 왁스_53×80×22cm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 본관

Hakgojae Gallery, Space 1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Tel. +82.(0)2.720.1524~6

www.hakgojae.com@hakgojaegallerywww.facebook.com/hakgojaegallery

 

 

태도가 만드는 모양 ● 작가 최수앙은 조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심리 상태가 투영된 인체 조각을 해왔다. 사실적으로 인간의 신체를 보여주면서도 부분을 과장하거나 생략하기도 하고, 때로는 형태를 무너뜨리면서 추상적인 이미지가 한 작품에서 공존하도록 만들었다. 그가 만든 신체들은 때로는 대면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연약한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사회의 한 단면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타인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응축된 감정으로 점철된 최수앙의 조각은 관객들에게 여러 모습으로 이리저리 부딪히며 강렬하게 전달되었다. 실제 몸과 너무나 닮아 있으면서도 낯선 조합으로 쉽게 지워질 수 없는 인상을 가진 작업들은 꽤 오랜 시간 작가도, 그리고 작업을 바라보는 관객도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에게 각인된 몸은 작가의 의도대로 관객과 만났고 그것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어있음을 확인하곤 했다. 나 역시도 몸이 품고 있는 징후들을 통해 작가와 그리고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와 만나곤 했다.

 

그런데 너무도 분명했던 형태와 인상이, 집요하게 무언가를 꾹꾹 담아 만들어왔던 꽉 차 있던 몸들이 언제부터인가 그를 옭아매기 시작한 것일까? 어느 순간 몸의 형태는 부분에서부터 서서히 지워지기 시작했다. 2018년의 「무제」 연작에서 인물 두상의 하관 부분만 남기고 형태가 뭉개져 있거나, 「자화상」, 「무제_캐스팅의 흔적」, 「무제_링 아웃」에서는 마치 온전한 자신의 몸을 머리와 팔부터 뭉개며 지우는 것처럼 보였는데, 결국은 '온전한' 형태로부터 벗어나려는 작가의 몸부림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혹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하는 절박한 징후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제_스트레치 오버」(2018)에서의 몸은 다리의 일부만 남기고 전부 짓이겨져 언 듯 봐서는 신체임을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어쩌면 작가가 20여 년 조각가로서 보내온 시간 동안 집요한 손의 움직임으로 탄생한 몸들이 역설적이게도 눈에 보이지 않는 벗어날 수 없는 막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미처 인지하기도 전에 몇 걸음 앞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던 자신의 손을 향해 멈추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짓이겨 없애도 몸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그에게 남겨진 것은 지칠 대로 지쳐 탈진한 두 손이었다. 항상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물질을 만지고 힘을 가하던 그의 손은 그제서야 잠시 멈출 수 있었다. 가속도가 붙은 손의 열을 식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었다.

 

최수앙_언폴디드 1G_기름을 먹인 종이에 유채, 왁스, 스테인레스 스틸, 무반사 유리_109×88×30cm_2020

 

최수앙은 관성에 이끌려 움직이던 지친 손을 쉬게 하며 그 부지런했던 움직임을 가능케 했던 자신의 몸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외부에 대상을 향해 조율되어 거침없이 움직여왔던 팔과 손의 근육들은 작은 동작에도 큰 신호를 보냈고,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행위들에 대한 내부의 협조는 더디기만 했다. 이제 그에게 무엇을 전달하기 위한 대상은 사라졌다. 그는 습관처럼 해왔던 행위들을 하나씩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각가라면 진리처럼 여겨왔던 미술해부학을 다시 살펴보며 실제와는 다른 인체 근육들을 하나씩 찾아 나가면서 잘 맞춰진 듯 보이는 근육의 자리들을 조금씩 비틀어 틈을 만들기 시작했다. 무엇을 어긋나게 만들기 위해서는 원래의 위치를 분명하게 아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게 「조각가들」(2021)이 나오게 된다. 이 작품은 작업이 놓여있지 않고 여러 겹 그 과정의 흔적만 남은 빈 작업대를 둘러싸고 있는 인체해부학 모형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모형들은 구분을 위해 다양한 색으로 칠해진 근육들로 구성되어 있고 '조각가들'로서 무언가를 만드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대상은 보이지 않지만, 대상을 만들었던 축적된 시간만을 암시하는 작업대는 그의 반복적인 습관이 만들어내는 흔적이자 조각적 태도이기도 했다. 물질을 붙여나가 형상을 만들어 왔던 과거의 작업과정과는 달리 물질을 바르고 갈고 다시 바르며 쌓아가지만, 가시적인 형체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두께가 형성되었다. 그렇게 형상 없는 흔적을 만들거나 왜곡된 근육들을 차곡차곡 붙여 나가고 색을 칠하는 단순한 작업 과정을 통해 꽉 조여진 긴장과 빠져나가지 못할 것만 같던 과거 몸에서 서서히 벗어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작가는 몸에 남아 있는 조각적 습성을 통해 고집스럽게도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그 반복된 리듬이 그를 지탱해주면서 어디론가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 주었다. 「조각가들」은 어떻게 보면 과거의 최수앙을 붙들고 있던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만든 전환점인 것이다.

 

최수앙_언폴디드 1W_기름을 먹인 종이에 유채, 스테인레스 스틸, 무반사 유리_79×59×15cm_2021

 

「조각가들」에서 최수앙은 완벽한 전환이나 그로 인한 해방감을 전적으로 누리지 못했지만, 그것을 시작으로 조각가의 태도와 조각의 본질에 대해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서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일련의 작업을 하게 된다. 종이에 오일을 먹여서 두께를 만들고 그 위에 마치 도형의 전개도처럼 그려진 「언폴디드」(2021) 연작은 평면이지만 앞뒤 구분이 없어 제3의 입체를 상상하게 만든다. 종이에 오일을 바르고 말리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생기는 투명도는 종이가 가진 질감과 구조를 보여주는 동시에 시간과 발린 정도에 따라 다른 두께를 형성하게 된다. 무의미해 보이는 작가의 반복적인 과정은 종이이기 이전에 물질임을 더 부각시킨다. 그리고 그 위에 그려진 선과 면, 면을 칠한 색들을 따라 상상의 종이접기를 하다 보면, 색이 발린 면 자체가 환영이 아닌 독립적인 사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작품이 벽면에 걸리는 것이 아닌 앞면과 뒷면을 모두 볼 수 있도록 계획한 작가의 의도에 맞닿아 있다. 또 다른 평면 작업인 「프래그먼츠」(2021) 연작은 「조각가들」에서 뼈대 위에 붙어 있던 여러 색으로 채색된 근육들과 달리 그 형태를 연상케는 하지만 파편처럼 개별 형태들이 중첩되기도 하고 떨어져 있음을 종이에 수채화로 표현한다. 이 드로잉은 제목이 암시하듯 개별 형태들이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단순히 물과 물감이 만난 흔적임을 스스럼없이 얘기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들은 하나의 특정한 형태로 보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양과 색이 이끄는 대로 개별적인 개체 자체로써 온전하게 볼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있다. 평면이지만 입체적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프래그먼츠」 연작과 더불어 「손」(2021)은 「조각가들」를 넘어 새로운 기류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조각가들」에서와 달리 과감하게 생략되어 단순화된 근육으로 만들어진 이 작업은 단지 반복적 행위의 과정으로서만이 아닌, 조각으로써 기존과는 다른 의미를 만들고 있었고 아직 진행 중인 최수앙의 미래 조각에 한층 가까이 다가섰다.

 

최수앙_조각가들_오일, 아크릴릭, 폴리 우레탄 페인트, 에폭시 레진, 폴리 우레탄 레진, PVC, 스테인레스 스틸, 강철, 합판_가변설치_2021

 

작가가 다루는 물질과 형태를 과거 감정의 서사를 위한 통로가 아닌 여전히 익숙한 조각의 방법론 안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수앙은 각 작업에서 물질과 그것이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형태와 색채,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행위 자체에 주목했다. 그는 어찌 보면 답답하리만큼 고집스럽게 단순하고 반복적 행위의 루틴을 고수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대상에 어떤 의미를 만들고 감정을 부여하기보다는 작업이기 위한 각각의 요소들이 그 자체로써 온전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 끊임없이 의미를 찾고 읽어내려고 하는 관성을 거스르고자 한 것이다. 사실 조각의 과정과 태도는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시선을 돌려 거리를 조절하면서 과거 작품들에서 집요하게 전달하고 투사하고자 했던 감정의 무게를 한층 덜어내었다. 작가는 작업의 긴 여정 안에서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모르는 불안한 현재를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지난한 과정의 흔적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 흔적들부터 최수앙이 만들어 낼 새로운 모양의 조각을 마음껏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 맹지영

 

최수앙_프래그먼츠 1_아르쉬지(紙)에 수채_55.5×38cm_2021

 

Shapes Made From an Attitude ● Artist Xooang Choi sees the world through sculpture. Choi has been making figurative sculptures that reflect the psychology of human beings living in society. Sometimes he would hyperbolize or omit body parts in an otherwise realistic figure, and other times he would completely disfigure the anatomy of the body so that realism and abstraction coexist in a sculpture. From time to time, his figures would ironically reveal an aspect of society by symbolically conveying human vulnerabilities that are hard to stomach. Choi's sculptures, saturated with the artist's emotions towards others and society, appeared and traveled in various forms, leaving deep marks in the audience's memories. The sculptures, hyper-realistic yet bizarre, therefore not easily forgettable, were difficult to let go of for a long time, neither for the audience nor for the artist. The bodies, engraved in the minds of the viewers and the artist, became messengers of the artist's intent and reminders of one's connection to the world. I, too, could relate to the artist and his world through different signs in the bodies. ● At what moment, then, did such well-defined form and outline, the body obsessively and densely packed with details and meaning, start to bog the artist down? At a certain point, Choi began to gradually erase the form of the body. For instance, in the Untitled series from 2018, the figures' heads were smushed and obscured from jaw up. In Self-Portrait, Untitled_trace of casting, and Untitled_wring out, it seemed as if the artist was dismantling and erasing his own body from the head and arms. Perhaps, this was his struggle to break away from "perfect" form. Otherwise, it could have been a desperate call for separation, a separation from himself. Then, in Untitled_stretch over (2018), he contorted the entire figure except for its legs that it was almost unrecognizable as a human. It was as if the bodies, birthed from the artist's tenacious practice over the two decades of his career, ironically built an invisible and ineluctable mold around him. The artist's hands were always ahead of him, busily sculpting even before he realized. Perhaps the artist was imploring his hands to stop. Yet, the bodies did not disappear even when dismantled, and what was left of the artist was his two exhausted hands. His hands, which would constantly be molding and pressing matter into art, were finally able to take a break then. This was a crucial time for Choi to cool the heat off of the revving engines in his hands. ● While resting his weary hands, Choi started to thoroughly examine his own body that made the diligent work possible. His arm and hand muscles became attuned to external factors as they operated restlessly. Finally, his body could no longer keep up with even the most mundane activities, and by this time, his forearms had begun to send acute signs of surrender. At this point, Choi no longer needed to convey anything through art. He began to reflect on each of his long-lasting habits. He reverted his attention to art school anatomy books, the canon of all sculptors, and started locating and recreating misrepresented muscles one by one. He slightly twisted and separated the seemingly accurate muscle structures in his recreation, adding gaps between each of them. Note that, to distort something, one must be fully aware of the original form. This is how Sculptors (2021) came into being. ● Sculptors (2021) consists of a few anatomical dummies surrounding an empty pedestal that displays nothing but traces of the making process. Composed of color-coded muscle structures, these dummies are posing as "sculptors at work." The empty pedestal, which lacks the object but embodies the cumulated time that went into creating the object, is a representation of the artist's habits and, simultaneously, his attitude towards sculpture. Unlike past works, in which materials were added together to form masses, this time materials were applied, polished, then re-applied to form layers instead of a palpable mass. Through the simple process of creating formless traces and coloring distorted muscle structures, the artist was slowly able to depart from his own suffocating anxiety and the seemingly inescapable figures from the past. He was finally able to breathe. Relying on the sculptural habits remaining in his muscle memory, Choi stubbornly and persistently repeated the actions that appeared to be meaningless. This repetitive rhythm, in the end, became a crutch and a driving force for him to keep moving. In a way, Sculptors was a turning point for Choi that allowed him to move away from his past attachments. ● The artist is yet to seek complete liberation or closure through Sculptors. However, the new work encouraged him to observe the nature of sculpture and his own attitude towards sculpture from a distance; and, it propelled him to begin a new series of work that traverses between 2D and 3D. Unfolded (2021) is a series in which the artist soaks the paper in oil to create depth and paints various shapes on it, which mimic planar graphs. Although each piece is a flat drawing, they do not have a front or back, thus opens the possibility of a new dimension. The paper becomes more and more translucent throughout the process of soaking and drying, in turn exposing the texture and composition of the paper. Also, the amount of time and oil used on the paper determine the level of translucence, hence the depth of each piece. In other words, the process of seemingly meaningless repetition accentuates the materiality of the paper. Then, there is the series of lines, shapes, and colors filling the paper. When one imagines folding these colored shapes into an origami piece, one can realize that a painted shape manifests itself as an independent object rather than an illusory image. This effect is also connected with the artist's intent to install the piece away from the wall so that both sides are visible to the viewers. ● The other series on paper, Fragments (2021), comprises watercolor drawings that portray an interplay of colored shapes. Unlike the colored muscles in Sculptors, the shapes in these drawings loosely trace the body and mirror how individual parts disconnect or connect with one another. As the title suggests, this series conspicuously displays that each shape is simply a trace of paint and water. Furthermore, each trace does not demand to be seen as a specific form. Rather, they allow the viewers to see them as what they are: individual entities delineated by their shapes and colors. Along with the Stain Drawing series, which evokes dynamic imaginations despite its two-dimensional form, The Hand (2021) marks the beginning of a new direction that stretches beyond Sculptors. A sculpture made from drastically simplified muscle forms, unlike in Sculptors, this piece sets forth a new meaning of sculpture that is not limited to the process of repetitive actions. Xooang Choi's "future sculpture" is still underway, but one could say that this piece is a step closer to it. ● Making a breakthrough in the familiar methodology of sculpture, while avoiding rendering the artwork a mere trajectory of past emotions and stories, is by no means easy to do. In each of the new pieces, Choi focuses on the materials, the colors and forms created from combining those materials, and the action of creating itself. In a way, he was able to reach this point by stubbornly sticking to the routine of simple and repetitive actions. Instead of trying to find meaning and instilling emotions into the artwork, Choi experimented with how each component of the work can exist autonomously as what they are. In other words, he was determined to challenge his habit of endlessly finding or imbuing meaning in his work. The truth is, Choi did not deviate much from his original sculptural process and attitude. However, by changing his perspective and adjusting his distance, he was able to let go of some of the emotional weight that he insisted on conveying and projecting in his past works. After a long journey as a sculptor, Choi might be facing a time of uncertainty, not knowing exactly how to proceed. Nevertheless, he is unwilling to shy away from showing his long, arduous process. From the traces that the artist leaves, I feel that I can imagine the shapes of his sculptures to come. ■ Maeng Jee Young

 

 

Vol.20210728c | 최수앙展 / CHOIXOOANG / 崔秀仰 / sculpture

-이달에 볼만한 전시-

 

황재형展 / 4, 30-8, 22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카이토 이츠키展 'Hierarchy of Beasts"/ 6, 23- 8, 15 / 갤러리 빔

MMCA 이건희컬렉션"한국미술명작전" / 7, 21- 2022, 3, 13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김길후展 '혼돈의 밤' / 7, 21- 8, 22 / 학고재

황원해 ‘막의 막’ / 7, 22- 8, 14 / OCI 미술관

박대성展 'lnsight' / 7, 23- 8, 23 / 인사아트센터

이철규展 / 7, 28- 8, 29 / 통인화랑 B1, 5층

최수앙展 / 7, 28- 8, 29 / 학고재

이수경展 / 7, 29- 9, 26 / 아트선재센터

박재동展 / 8, 1- 8, 15 / 갤러리 자인제노

정희우展 '풍경이 된 기호' / 8, 4- 8, 27 /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노은님展 'Beginning of Life' / 8, 5- 8, 29 / 가나아트센터 1,2전시관

박철호展 / 8, 5- 8, 29 / 가나아트센터 3전시관

우창훈展 / 8, 6- 9, 1 / 갤러리 내일

임동식展' 박수근상 수상작가전' / 8, 7- 9, 5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김정선展 '열린풍경' / 8, 18- 9, 17 / 표갤러리

박준호展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8, 18- 8, 30 / 갤러리 담

정우범展 'Fantasia'/ 8, 25- 9, 18 / 선 갤러리

 

 [스크랩 : 서울아트가이드 2021년 8월호]

혼돈의 밤 The Night of Chaos

 

김길후展 / KIMGILHU / 金佶煦 / painting 

2021_0721 ▶ 2021_0822 / 월요일 휴관

 

김길후_무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130cm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 아트센터

Hakgojae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삼청로 48-4

Tel.+82(0)2.720.1524~6

학고재 오룸Hakgojae OROOM

 

 

치유로서의 그림  Ⅰ.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말이 있다. 뭔가에 미치지(狂) 않으면, 미치지(及) 못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인간 정신의 지고한 상태를 가리킨다. 무슨 일에 빠져 몰입된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상황이다. 예컨대 바둑에 미쳤거나 어떤 기예에 빠졌을 때 우리는 이 말을 쓴다. 그러나 좀 더 이 글의 논지에 가까운 예를 들면, 그림에 비유할 수 있다. 이 경우, 어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미친 듯이 빠져들지 않으면 경지에 오르지 못함을 뜻한다. ● 내가 보기에 김길후가 딱 그런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그림에 미친 사람이다. 약간 과장하면,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온통 그림 생각에 젖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다작(多作)의 작가라고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50호 정도 크기의 작품을 단 10분만에 그릴 정도다. 아주 빠르면 5분, 늦어봐야 30분이다. 그러니 그의 작업실은 넘쳐나는 그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화면이 온통 시커먼 검정색 일색(一色)으로. ● 미국의 서부영화를 보면 권총을 빼는 주인공의 솜씨가 놀랍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여러 명의 적을 쓰러트린다. 일본의 한 사무라이 영화에는 주인공인 맹인 검객이 휘두르는 칼에 적병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장면이 나온다. 어디 그뿐인가. 1950년대 자유당 시절 명동거리를 누빈 협객 시라소니(본명 이성순)의 싸움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치는 장면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맞아서 쓰러진 깡패들이 거리에 즐비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세상에 떠돈다. ● 작가의 작품을 논하는 글에 웬 싸움 이야기? 김길후에게 있어서 일획(一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길후는 오랜 기간 검정색과 흰색이 대비되는 단색조의 그림을 그려왔는데, 인물화가 주종을 이룬다. 그것도 거의 전부가 자화상이다. 김길후는 거울도 보지 않고 내면의 이미지를 이끌어낸다. 머리를 박박 깎은 모습이 누가 봐도 영락없는 김길후 자신이다. ● 일획에 검정과 흰색이 자아내는 콘트라스트가 강한 화면 효과는 김길후 그림의 특징이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서로 다른 미묘한 차이가 있다. 김길후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 차이를 변별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때 그때 작용하는 미묘한 마음의 변화에서 온다. 그럴 때, 그 서로 다른 마음을 포착해서 표현하는 구상력이 얼마나 특출한가 하는 것이 탁월한 예술가와 그렇지 못한 예술가를 구분하는 시금석이 된다. 그것은 오로지 작품으로만 판명되는데, 김길후의 경우는 물론 전자에 속한다.

 

김길후_무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112cm_2021

Ⅱ. 김길후는 허공에 긴 칼을 휘두르는 검객일 수도 있고, 흐드러지게 한 판의 춤을 추는 춤꾼일 수도 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흔적이 있느냐, 없느냐'일 뿐이다. 검객이나 춤꾼은 행위를 드러내지만 흔적은 남지 않는다. 그러나 김길후는 화가이기 때문에 붓을 들어 행위를 하고 흔적을 남긴다. 그런 의미에서 김길후는 붓을 들고 흐드러지게 진한 춤을 추는 무당(shaman)이다. 신명에 빠져 붓춤을 추면서 잃어버린 먼 태곳적의 '영기(靈氣)'를 불러내고자 한다. 예술이 지닌 치유의 기능을 초혼(招魂)을 통해 오늘 이 자리에 임재하게 하는 샤먼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 앞에서 잠시 살펴본 것처럼 숱한 덧칠로 이루어지는 서양의 그림과는 달리 김길후의 그림은 일획으로 이루어진다. 머리 속에 떠오른 영감과 이미지를 순식간에 화면에 옮긴다. 그것은 찰나에 이루어진다. 머뭇머뭇하다가는 이미지가 사라지기 때문에 순식간에 포착하여 일획으로 단번에 그려내야 한다.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지는 그 동작은 서부영화에 나오는 총잡이의 속사(速射)를 닮았다.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한국의 사극에 등장하는 검객의 칼솜씨에 더욱 가깝다. 그것이 곧 일획이다. 한 번의 결정적인 내리그음이 곧 일획인 것이다. 그것은 고도의 신체적, 정신적 수련에서 나온다. ● 왜 오늘의 상황에서 일획론이 그처럼 중시돼야 하는가? 다름을 위해서이다. 수많은 같음의 범람 속에서 다름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필법이 필수적이다. 1999년 김길후는 제2의 질적 도약을 위해 수많은 작품을 불태운 바 있다. 그리고 거듭 태어났다. 이제까지 그려 온 방식이 아닌, 전혀 새로운 방식의 그림을 위해 그 이전에 그린 드로잉, 수채화, 유화, 파스텔화 등등, 내용상으로는 구상화를 비롯하여 추상화, 그리고 80년대 당시 한창 유행하던 민중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그림을 폐기한 것이다. ● 그렇다면 새로운 화풍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의 말에 의하면 "간단명료한 것으로 승부를 걸자"는 취지로 검정과 흰색을 주조로 한 종이 그림에 빠져들었다. 그 기간이 한 오 년쯤 되었다. 그러다가 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주최한 [삶의 풍경]전(2004.8.19 - 9.17)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이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그동안 한국 미술계가 지나치게 추상화 일변도로 전개돼 왔으며, 미디어, 영상, 개념, 설치미술 등등에 편중돼 왔다고 판단, 소외된 장르인 구상회화에 주목한 기획전이었다. 김길후 는 황영자, 이흥덕, 임만혁, 공성훈, 남기호 등등 다른 구상화가들과 함께 이 전시회에 참가, 2백호에 달하는 대작 5점을 출품했다. 김길후는 이 전시회를 계기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기 시작한다.

 

김길후_무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21

Ⅲ. 김길후에게 있어서 새로운 출발이란 과연 무엇이었던가? 일획에 의한 검정색 일변도의 화풍이었다. 2000년 무렵부터 태동된 이 화풍은 김길후의 작업에서 이제까지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전환기적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가령, 2000년대 초반에 나타난 「검은 눈물(Black Tear)」을 보자. 이 연작은 김길후의 전체적인 검정색 그림의 태동을 의미한다. 그것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 이른바 '금욕'의 상징으로서의 검정색은 한편으로는 그 반대급부로서 모든 것에 열려 있다. 색채학적으로 이야기하면 모든 파장의 색을 흡수하는 포용의 색인 까닭이다. 그 검정색을 어떤 연유로 자기 작업의 주조색으로 정했는지는 딱히 알 수 없으나, 다음과 같은 진술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 "중학교 때 '고전읽기' 시간은 흥미로웠다. 그때 만난 '명심보감'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마음을 밝혀주는 보배로운 거울'을 자주 읽어서일까, 나는 금욕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마흔이 넘으면서 인생에는 정해진 법칙이 없다는 걸, 도덕적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혹여 그 억압이 그림으로 분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김동기(김길후), 「작가노트」 중에서 ● 김길후가 검정색을 주조로 삼은 이유의 이면에는 이처럼 금욕주의적인 사고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것은 김길후가 그림을 일종의 수행으로 생각하는 것과 일치하는 지점이다. 김길후는 그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로지 검정과 흰색 등 무채색으로 일관해 오고 있다. 거기에 추가되는 색을 꼽는다면 노란 기미를 띤 동색(bronze)과 붉은 기미를 띤 구리색(copper), 그리고 가끔씩 첨가되는 청색 정도다. ● 김길후는 이처럼 스스로 단순한 색들로 제한한 정해진 범주 안에서 붓과 물감 등등 그림 도구들을 가지고 논다. 그에게 있어서 그림은 진지하고도 즐거운 놀이에 다름 아니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유년시절에 꽃밭에서 놀던 즐거운 추억을 지니고 있다. 꽃 중에서도 특히 백합꽃을 좋아했다. 그의 그림에 백합꽃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다. 아버지는 서예와 독서, 꽃 가꾸기가 취미였다. 김길후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웃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한 습관은 어느덧 환갑에 도달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외견상 그는 타인의 눈에 매우 낙천적인 사람으로 비추어진다. ● 그러나 김길후의 성격이 그렇다고 해서 그림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그가 검정색 그림을 그린 2000년 이후 약 20년에 걸쳐 제작한 그림들에 나타난 인물상의 분위기는 물론 밝고 낙천적인 것들도 더러 있지만, 어둡고 묵시적이며, 절망에 몸부림치는 인물들이 주를 이룬다. 나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자기 자신이라고 술회했다. 그러고 보니 둥근 대머리의 등장인물들 거의 대부분이 김길후를 닮았다. 그렇다면 그것들은 작가의 분신이요, 내면의 풍경이 아니겠는가. 그 풍경들은 잔혹할 정도로 고독하고 외로우며, 고통에 찬 기록들이다. 특히 「검은 눈물」 연작이 그렇다. 이 점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은 진술로 당시 내면의 풍경을 고백하고 있어 주목된다. ●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림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그린 '검은 눈물(Black Tears)' 연작이다. 'Black'은 내 마음이 마치 무너져버린 폐허와도 같고, 상실감이 납덩이처럼 누르고 있을 때 탄생했다. 전시장에서 내 그림을 보고 누군가 그랬다. "죽으려고 했는데 당신 작품을 보니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그림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 그림이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주다니……. 슬픔은 더 큰 슬픔으로 치유되는가 보다. 나는 평화로운 고도문명 속에서 참담함을 느끼는 인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김길후, 「검은 상처가 눈물로 빛날 때/작가노트」 중에서 ● 위의 진술을 참고할 때 '치유의 기능'으로서 김길후의 그림과 이를 매개하는 사제 혹은 샤먼으로서 작가의 역할을 상기할 수 있다. ● 그렇다면 그러한 기능과 역할의 진원지는 과연 어디인가? 나는 작품의 전편에 흐르는 강력한 정념(pathos)과 검정색에 방출되는 묵시적 분위기, 그리고 때로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등장인물의 표정과 몸짓을 들고 싶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화면을 뒤덮고 있는 끈끈하고도 일면 섬뜩한 분위기이다. 샤머니스틱한 느낌에 가까운 그것이 아마도 필경은 치유의 원인이리라.

 

김길후_무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59×194cm_2021

Ⅳ. 2016년도에 접어들자 김길후는 이제까지 전념해 온 회화의 영역을 벗어나 관심을 입체와 설치로까지 확장시켜 나갔다.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자투리 합판이나 각목을 이용하여 삼발이형 인물상을 만든 것이다. 지금까지 5년간 대략 1백여 개에 이르는 작품을 제작했으니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 나무를 이용한 입체, 설치작업은 김길후의 분방한 상상력이 더욱 증폭돼 나타난 경우일 것이다. 이 삼발이형 작품은 정(鼎) 자를 연상시키는 중국의 제기(祭器)에서 형태적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가깝게는 시골에서 흔히 보는 작대기로 받혀 놓은 지게의 모습, 그리고 의미론적으로는 고구려 벽화에서 보이는 삼족오(三足烏)에서 그 선례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개발한 이 형식에 기울이는 관심과 노력이다. ● 김길후는 이 일련의 삼발이형 작품을 제작하면서 형식의 전개에 집중했다. 그것은 의미론적으로는 회화와 조각의 영역을 융합하는 형식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붓과 물감통을 들고 있는 이 추상적 형태의 인물상들은 자화상이다. 어떤 것은 완전히 추상적 형태를 이루고 있으나 또 어떤 것은 위 부분에 얼굴이 그려져 있어 인물상임을 암시한다. ● 평면이 됐든, 입체물이 됐든 김길후의 예리한 일필휘지가 스치고 지나가면 순식간에 기운생동에 충만한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은 거의 신비에 가깝다. 길이가 무려 15센티에 달하는 평붓에 검정색 물감을 듬뿍 묻혀 캔버스 위를 한번 휘저으면, 예리한 칼날에 뎅겅 목이 달아남과 동시에 검붉은 피가 솟구치는 것처럼 순식간에 죽음의 묵시록적인 이미지가 탄생한다. 고도로 긴장된 순간이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는 머리 속에 피가 솟구치는 전율이 온몸을 파고들면서 초긴장 상태에 도달한다. 여기서 다시 획(劃) 자가 칼 도(刀) 변임을 상기하자. 작가가 든 것은 붓이 아니라 은유로서의 칼이다. 그 칼로 단번에 내리치는(一劃)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김길후의 그림은 말하자면 죽임의 과정이자 죽음의 결과물이다. 죽음으로써 살아나는 이 역설의 미학! 그 피가름의 현장 한복판에 실행자 겸 목격자인 작가 김길후가 서 있다. ● 묘사가 잔인하다고? 그러나 여기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죽음은 곧 새로운 탄생이 아니던가. 고대인들은 저녁에 해가 죽으면 아침에 새로운 해가 태어난다고 믿었다. 낙엽이 땅에 떨어지면 그 이듬해 봄에 새싹이 돋아나지 않던가. 그런 맥락에서 볼 때 김길후의 묵시록적인 분위기의 작품들은 죽음을 딛고 일어선 새로운 탄생, 즉 창조의 기쁨을 구가한다.

 

김길후_노자의 지팡이_나무, 합판_205×54×57cm_2019

Ⅴ. 무엇에 미친다는 것은 대상과 일체가 돼 가는 과정을 이름이다. 그것은 바람, 즉 원망(願望)의 마음이 너무나도 극진하여 두 개의 원이 점차 가까워져 하나의 원으로 합체되는 '투 문 정션(Two Moon Junction)'에 비견된다. 따라서 화가가 그림에 미치면 그림과 일체가 되는데 그 과정에서 강렬한 정신적 에너지(氣)가 터져나와 물감과 같은 물질로 전도된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예술가의 정신은 무아(無我)의 상태에 빠지게 되며, 강렬한 엑스터시를 경험한다. 드리핑 작업 후에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이 "나는 내가 무엇을 그렸는지 모른다"고 한 발언은 바로 이 몰입의 상태를 두고 한 것은 아닌가 짐작해 본다. ● 나는 김길후 역시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가 한자리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그림을 그려나갈 때, 캔버스를 향해 휘두르는 붓이 예리한 소리를 내면서 허공을 가르는 검처럼 느껴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죽음이 곧 새로운 탄생임을 확신하면서 말이다. ■ 윤진섭

 

김길후_무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30×160cm_2014

Art as a Medium of Healing  I. There is a four-character Korean idiom that goes, "bul-gwang-bul-geup (不狂不及)." It means you will not reach your intended goal unless you go crazy to achieve it. This refers to the sublime state of human consciousness — the continuing state of being deeply immersed in a task. We often use this idiom when a person is deeply focused on playing Go or creating something. An example that resonates more closely with the point of this critique is painting. Applied to the idiom, this means an artist will fail to reach the state of excellence unless he or she is utterly obsessed with painting. ● To me, Kim Gil-hu is an artist who perfectly embodies the idiom in practice. He is crazy about painting. With only slight exaggeration, we can say he is completely possessed by the thought of painting all the time, except for when he sits down to eat. That is why he is known as a prolific artist. He can finish a 116.8x91cm painting in just 10 minutes. His works are completed in as little as 5 minutes and up to 30 minutes at most. It is only natural that his studio is packed with paintings. These works that crowd his studio are painted in a single color: black, as dark as coal. ● The movements of the protagonist drawing his revolver in an American cowboy movie are breathtaking. He guns down several foes in the blink of an eye. In a Japanese samurai movie, enemies fall like leaves with the slash of a blind swordsman's blade. There is also Sirasoni (Yi Sung-sun), a chivalrous fighter who took over the streets of Myeongdong during the 1950s when the Liberty Party ruled, who had unrivaled fighting skill. There are legend-like accounts of gangs he put down filling the streets, while Sirasoni himself had not even taken a single punch. ● Why do these stories about fighting have any place in an art critique? I bring them up because "single stroke" is that important to Kim Gil-hu. For a long time, the artist has been producing monochrome paintings with stark contrast between black and white, and figure paintings constitute the majority of his works. Not only that, almost all of these figure paintings are the artist's self-portraits. Kim Gil-hu reveals his inner side without even looking into the mirror. The figures in his paintings have short-cropped hair, certainly identifying with the artist himself. ● The strong visual effect of the black and white contrast created by a single brushstroke is a unique feature of Kim's paintings. The paintings may seem identical at a glance, but there are subtle differences that make each of them unique. The ability to discern such differences is necessary to truly appreciate Kim's works. Where do those differences stem from? They are rooted in the nuances of his mind at play the moment he stands before the canvas. How brilliant an artist is at capturing these subtle differences in the state of mind and expressing them in the artwork becomes the touchstone of the artist's excellence. That excellence can be ascertained only through the artist's work, and of course, Kim Gil-hu falls into the group of artists equipped with that ability.

 

II. Kim Gil-hu could be a swordsman who wields a long sword in the air or a dancer who unfolds a breathtaking performance. If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a swordsman, a dancer, and Kim, it is only whether one leaves a trace or not. A swordsman or dancer shows action but leaves no mark. As an artist, Kim leaves traces of his action with the paintbrush. As such, Kim can be likened to a shaman who performs a powerful and magnificent dance ritual with a paintbrush. He dances ecstatically with the brush, attempting to summon the spiritual energy of ancient times that has long been lost. He serves as a shaman who brings art's function of healing to life today through his artistic invocation. ● Unlike western paintings created from layering coats of paint, Kim's paintings are born from a single brushstroke, as already mentioned. He quickly transfers the inspirations and images that cross his mind to the canvas. These artistic transfers take place in mere seconds. He must capture the image instantly and reproduce it immediately in a single stroke as the image will vanish if he hesitates. His paintbrush strikes the canvas like a flash of lightning, resembling the quick fire of the gunman in Western films. Actually, it is more like the swordsmanship of the swordsmen in Korean historical dramas. It is a single stroke. One decisive move becomes the single stroke. And that single stroke comes from intense physical and spiritual training. ● Why must we emphasize this one-stroke theory today? It is for differentiation. To stand out from others amid the inundation of the same things, it is critical that an artist uses the brush in a unique way, learned from a great deal of training and effort. In 1999, Kim burned all of his paintings to take his second big step in improving the quality of his art. Through it, he was born anew as an artist. He burned everything — from his early drawings and pastel drawings to watercolor paintings and oil paintings, in terms of media, and from abstract paintings to even Minjung art ("people's" art; a socio-political art movement in South Korea that emerged in the 1980s) paintings that were popular in the '80s, in terms of genre — all to produce art in a completely different way than he had until then. ● Then what was his new painting style? Kim said he started to paint mostly in black and white on paper, for the purpose of "betting on simplicity." He spent about five years immersed in black and white paintings. Then came an opportunity: he was invited to participate in Life Landscape, an exhibition organized by Seoul Museum of Art (August 19 - September 17, 2004). Seoul Museum of Art organized this special exhibition on figurative art, which had been marginalized, under the realization that the evolution of the Korean art scene had been heavily focused on abstract art and that art in Korea was skewed toward media, video, conceptual, and installation art. Kim Gil-hu participated in this group exhibition with other figurative artists, including Hwang Young-ja, Lee Heung-duk, Lim Man-hyeok, Kong Sunghun, and Nam Kiho, and exhibited five large paintings measuring 259.1x193.9cm in size. This exhibition became a turning point for Kim, who then opened up a new world in his career.

 

III. For Kim Gil-hu, what was this new beginning? It was the painting style of working only in black, single strokes. This style began to emerge in Kim's paintings around 2000 and signified a major style change to one completely different from his previous works. Take for example, Black Tears from the early 2000s. This series stands as the beginning of the artist's black paintings. How did the series come into being? ● Black represents abstinence — yet the trade-off for symbolizing abstinence is that black is open to everything. Speaking in terms of chromatics, the color black is open to all because it is a receptive color that absorbs colors of all wavelengths. It is unknown exactly why the artist chose black as his main color to work with, but we can at least infer his reasons from the statement below: ● "Classics Reading class in middle school was interesting. Myeongsim bogam (Precious Mirror for Illuminating the Mind-Heart), which I read for the first time then, became a part of my everyday life (...) I had become an ascetic, perhaps because I read Precious Mirror too often at an age when I was sensitive about my feelings. After turning 40, I came to understand that there are no set rules in life, that I must free myself from moral conventions. I wonder if that suppression is bursting out in the form of my paintings." - Excerpt from Kim Dong-ki's (Kim Gil-hu) Artist Statement ● Ascetic thinking was thus behind Kim's motivation to choose black as his main color. This aligns with the artist's conception of painting as a type of ascetic practice. For more than 20 years, Kim has been working almost only in black and white. Yellowish bronze, copper with a hue of red, and blue, which he rarely uses, are the only other colors found in his works. ● Kim plays with his art tools such as paint and paintbrushes within the boundaries he has voluntarily fixed, using only a simple set of colors. Although he takes painting seriously, it is also no different from a fun game to him. Kim was born into and grew up in a wealthy family and has pleasant childhood memories of playing in the flower garden. Among all the flowers, he had a special fondness for lilies, which explains why they appear frequently in his paintings. Calligraphy, reading, and gardening were his father's hobbies. In his youth, Kim had a habit of smiling often, and that has not changed even to this day, at the age of 60. Because of the smile, people get the impression that he is a very optimistic person. ● Yet his optimist character is not necessarily reflected in his painting. Of course, there are figures who look bright and optimistic among the works he has produced over the course of two decades since he first started making black paintings in 2000. However, dark and silent figures agonizing in despair constitute the majority. In an interview with me, the artist revealed that they were the artist himself. Now that I come to think of it, most figures in his paintings have round and bald heads, resembling Kim. Then they must be the artist's other selves and reflections of his 'inner landscape.' Those landscapes reproduced on canvas are records of the brutal loneliness, solitude, and anguish he experienced. Black Tears is particularly so, and the following confession by the artist on the state of his 'inner landscape' is noteworthy: ● "My favorite work is the Black Tears series that I worked on from 2001 to 2004. Black Tears was born when my mind was in ruins and laden with a sense of loss. Someone saw the painting in the gallery and said, "I was going to die, then I found someone in a direr situation than mine. So I turned hopeful again." My painting was a streak of light in someone's darkness... the cure for sorrow must be greater sorrow. I came to realize that there are many people in distress in the peaceful and advanced civilization we live in." - Excerpt from Kim Gil-hu's When Black Wound Shines with Tears, Artist Statement ● Referencing the statement above, we can remind ourselves of Kim's paintings serving as a "medium of healing" and the role of the artist as a priest or shaman channeling that effect. ● Then where do these functions and roles originate from? I want to direct the answer to the strong pathos found in all of his works, the silent ambience released on the color black, and the facial expressions and gestures of the figures in his paintings that arouse a sense of pity. However, the most important of all is the aura of heaviness and eeriness, in one aspect, that swamps the canvas. This feeling — one close to that of shamanism — is perhaps the source of healing, after all.

 

IV. Beginning in 2016, Kim Gil-hu started to step outside the boundaries of painting that he had been focused on and expanded the scope of his work to three-dimensional sculptures and installations. He used leftover plywood or wooden square blocks commonly found around us and created tripod-like figurative sculptures. He has made more than 100 such pieces over the past five years, so it is certainly more than just a few. Wooden sculptures and installations are probably Kim's wild imaginings in intensified forms. The origin of the shape of Kim's tripod-like sculptures may be found in the Chinese ritual vessels that resemble the character '鼎,' and we can also say they resemble jige (Korean A-shaped tool used to transport large materials), often found in rural areas, standing against a stick. In terms of meaning, the three-legged crow in Goguryeo murals is their precedent. But what is most important is the interest and effort the artist invested in this sculptural form he developed. ● In constructing the series of his tripod-like sculptures, Kim focused on form development. In terms of meaning, its significance lies in the fact that the forms of his sculptures integrate the characteristics of painting and sculpture. The abstract sculptures carrying paintbrushes and paint bottles are the artist's self-portraits. Some sculptures are completely abstract, but others have faces painted in at the top, which imply that they are sculptures of figures. ● Kim's works are instantly animated once his keen single stroke touches them, whether they are flat paintings or three-dimensional installations. The process of them coming to life is truly a marvel. Once Kim's flat 15cm brush heavily soaked in black paint brushes over the surface of the canvas, an apocalyptic image of death emerges immediately, like dark red blood spouting from a decapitated neck at the slash of a sharp sword. It is a moment of high tension. The moment he paints, his shudders from the thought of blood surging from the head takes over his entire body and brings him to a state of hypertension. Recall here that the radical (indexing component of Chinese characters) of the Chinese character for stroke (劃, huà) is knife (刀, dāo). Then what Kim holds in his hand is not a brush, but a metaphorical knife. He uses this "knife" to make a single slash (or single stroke) on the canvas. For this reason, Kim's painting is, in a sense, the process of killing and the result of death. The aesthetic of coming to life through death! Kim Gil-hu stands right there, at the center of the slaughter scene, as the executor and witness. ● One might think such descriptions are overly bloody. But take a moment to think carefully. Death leads to birth. Our ancestors believed that the sun dies every night and a new sun rises each following morning. After leaves fall to the ground, new buds sprout the next spring. In this context, Kim's paintings of apocalyptic ambience rejoice at the birth of new life rising from death, or the joy of creation.

 

V. To go crazy about something entails the process of becoming one with the subject of that passion. It can be compared to the "two moon junction," where two moons draw nearer to each other and ultimately become one, because the wish or desire for the other is so strong. So, if an artist is completely absorbed in his painting, he becomes one with it. During that artist-painting unification, a powerful spiritual energy bursts out and is transferred to the medium such as paint. In the process, the artist's spirit enters a state of annihilation and the artist experiences overwhelming ecstasy. In speaking of drip paintings, Jackson Pollock said, "When I'm painting, I'm not aware of what I'm doing" — perhaps he was referring to the state of immersion here. ● I think Kim Gil-hu may have had a similar experience to that of Pollock. This is why I believe the stroke he makes against the canvas with the paintbrush must feel like a sword cutting through the void with a whoosh of air when he paints at an extremely fast speed in one sitting. He could do so, feeling confident that death gives way to the birth of something new. ■ Yoon Jin Sup

 

 

Vol.20210722g | 김길후展 / KIMGILHU / 金佶煦 / painting

막의 막 Facade In Facade

 

황원해展 / HWANGWONHAE / 黃原海 / painting 

2021_0722 ▶ 2021_0814 / 일,월요일 휴관

 

황원해_Cross Processi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5×110cm_2021

 

작가와의 대화 / 2021_0731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수송동 46-15번지)

Tel. +82.(0)2.734.0440

www.ocimuseum.org

 

 

열심히 올라가고 있는 건축현장을 떠올려본다. 건물의 골조, 겉면을 덮어가는 여러 자재들, 천막 사이로 간간이 비치는 어릿한 형상 등 별개로 확립된 소재들이 새로운 창조를 위해 밀접히 연관된다. 각각의 역량을 올바르게 적용한, 융합의 물리적 모습이다. ● 황원해는 도심 속 건축물에서 관찰한 장면을 캔버스로 옮긴다. 거대한 조합체 안에서 각각의 요소를 발견해 중첩하고, 비틀어 보고, 녹여내고, 파편화 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수많은 이미지들을 횡단하며 가려진 부피를 가늠해보고, 얕은 단면 속에서 분명한 입체감을 포착한다. ● 평면과 입체의 경계에서 발견한 '막'은 그물망같이 얽히고설키며 조우하는 통섭의 기능을 가진다. 단면의 패턴이 모여 덩어리를 이루는 스크린톤으로 나타나 유영하고, 파사드를 닮은 캔버스 안에서 낯선 세계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렇게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허물며 회화로서의 새로운 융합을 시도한다. ■ 이영지

 

황원해_Cross Processi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5×110cm_2021

지구(인공) 물질의 그림 ; 황원해. 막의 막(Facade In Facade) ● 매끈한 유리 파사드의 반사와 투과, 이와 대비되는 불완전한 건축적 구조 그리고 그 위에 스민 조각난 스크린 톤(screen tone) 1) 은 최근 황원해의 그림에 중요한 재료들이다. 이것은 캔버스 위에서 분해, 재조합되며 새로운 물질적 풍경을 제시한다. 이런 반복적 결과물은 푸르게 일렁이는 화면의 복잡성을 만든다. 하지만 실제 작가가 취하는 장면적 실험은 꽤 명료하다. 화면 안에서 재료 간의 조합을 발견하고 이를 그려나가는 것 그리고 다시 그 상징과 물리적 연결성을 해체하는 것이 현재 그가 회화라는 형식 안에서 몰두하며 일궈 나가는 일이다. 작가는 이 방법을 일종의 크로스 프로세싱(Cross Processing) 2) 에 비유하기도 한다. 3차원의 실제 환경이 지닌 굴곡을 무시한 채 건물의 표피에서 얻은 패턴과 스크린 톤을 결합해 만든 이미지들은 본래의 역할과는 전혀 다른 풍경의 구조를 덧입고 있다. ● 작품의 초기 구성은 이렇듯 추적 가능한 투명성을 지니지만, 이에 비해 그 최종적 상태를 결정 짓는 기준과 절차들은 결코 단순하지 못하다. 그것은 기존에 작가가 주목해온 풍경들이 어떤 변화를 겪어 냈는지를 살펴볼 때 여실히 드러난다. 역사적 층위에서의 시공간을 포착한 「Phantasmagoria(판타스마고리아)」(통의동 보안여관, 2018)는 작품 제목에 등장하는 'Crack-ing / Reconstruction / Flake' 등의 단어처럼 줄곧 작가의 시선을 빼앗아온 건축적 구조물의 생성과 소멸의 언어가 이미지를 결정짓는 주요한 기준점이 되었다. 작가가 여기서 주목한 것은 물리적인 공간과 더불어 서울이라는 도시가 지닌 흔적, 기억, 축적, 상충 등에 관한 시각적 기록물이다. 이렇게 발견된 이미지들은 프레임을 비껴가며 중첩되거나 심지어는 부스러지는 벽 틈 사이를 파고들지만 여전히 평평한 세계 위의 회화적 수사법을 놓지 않는다. 캔버스라는 프레임을 통해 현실과 가상적 공간에서의 경계를 흐리고자 하는 시도는 「제 4의 벽(The Forth Wall)」(공간 형, 2020)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황원해_Emuls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5×190cm_2021
황원해_Emuls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5×190cm_2021

이전 작품들이 건축물이 지닌 역사적 특성과 독특한 시각적 요소를 함께 보여줬다면 최근에는 그 표면을 이루는 물리적 작용 그 자체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번 작품을 'Suspension / Slurry / Emulsion' 이라는 물질의 상태적 특성으로 지칭하고자한 작가의 태도에서 엿볼 수 있다. 이런 표현의 변화는 이미지 수집과 선별의 기준점이 화자의 의도를 지닌 동사형에서 사물 간의 수동적 작용을 그대로 포착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자연을 포함한 인공적 사물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덧붙이기보다는 그것의 작용과 반작용을 지켜보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작은 유리 플라스크 안의 물질들이 서로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순간, 혹은 도심 속 거대한 파사드와 광고용 전광판이 모니터 위로 반사되며 뒤엉키는 광경을 바라보는 일 따위를 연상시킨다. 현재 황원해의 시선 역시 이런 관찰과 관망의 사이를 맴돌고 있는 듯하다. 인간 바깥의 세계를 바라보고 재현하는 일은 사실 회화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습관과 같다. 지극히 사소하고 자연스러운, 그러므로 절대 거대한 사건과 결말을 예언해 줄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황원해_Shee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0×30cm_2021
황원해_Slurr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0×30cm_2021

풍경이라는 통속적인 명칭  "지금 이 시점부터 우리에게 풍경이라는 통속적인 명칭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이 단어는 어쩐지 손 기술에 불과한 것을 의미하는 듯해서 나의 온몸이 거부감을 느낀다. ...이제 나는 다음과 같은 단어를 제안한다. 지구생명, 지구생명의 그림." 3) ● 과거 풍경화는 성인이나 영웅이 등장하는 역사화에 비해 단순히 시각적 유희를 만족시키는 낮은 수준의 그림으로 여겨졌다. 그나마 종교나 신화의 인물과 사건의 등장을 암시하는 풍경화 정도가 겨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렇게 미술 아카데미즘의 변방으로 밀려난 이 장르는 한편으론 기존의 규칙과 관념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 받게된다. 이는 고전 미술 이후 모더니즘의 출발점이 풍경이란 대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 도심의 환영은 이제 생물의 자연보다 더 가까이 접하는 또 다른 자연의 개념이 된 상황에서, 황원해의 그림은 다시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풍경이라는 통속적인 명칭'이 아닌 지구생명이라는 유기체적 관점으로 일상을 바라본 고전 예술가 4) 의 시도는 어쩌면 오늘날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새로운 세대로 뭉뚱그려 설명되는 일련의 이미지들에 각자의 열린 결말을 제공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예술가가 포착한 일상의 장면을 묘사하는 일에 역사적 사건을 투과하지 않는 것, 그리고 지구 환경의 새로운 유기적 성질을 관찰하며 개인의 미적 실험을 지속해나가는 것은 과거 주류적인 역사화를 넘어 풍경화를 기반으로 취했던 예술가들의 독립적 태도와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황원해_Suspens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60cm_2021

콜라주와 매시업, 간과되는 테크닉 ● 회화의 장르적 분류라는 넓은 개념으로 작품을 살펴보았다면 화면을 이루고 있는 구체적 표현 기술은 어떤 양식을 띄고 있을까?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입체적인 건축물과 가상적 음영 효과인 스크린 톤 사이의 2차원적 결합일 것이다. 이 결합은 실제와 디지털을 오가는 콜라주 형식으로 구현된다. 최초의 콜라주가 재현의 반대인 부재를 겨냥했다면 이것을 이제 하나의 스킬처럼 회화의 구상과 제작, 배치의 과정 전반에 녹아 있다. 이는 현대미술의 이미지 생산에 큰 축을 담당하는 매시업(mash-up) 5) 과 같은 범주에 속해 있으면서 서로 혼용되어 이미지 생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이런 기술의 흔적은(특히 회화에서) 다시 '손기술'을 통해 삭제되기도 한다. 공공연히 하대 받던 '손기술'은 재현의 도구로 간과되는 테크닉이라기보다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의도적인 '모호성'을 확보해 주는 요소가 된다. 황원해의 작품 역시 기술과 개념의 적절한 연결 고리를 찾는 이런 디지털 융합의 논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가상의 환경에서 계획된 이미지들 사이에 작가가 만들어낸 붓질과 여백은 화면에 적절한 추상성을 부여해주는 동시에 작품이 표현하고자 한 물리적 상호작용과 표현성을 강조 시킨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절충적인 시선과 프레임의 모호한 경계를 가로지르며 캔버스라는 인공적 사물을 직면하는 관람자의 지각을 통해 회화의 평면성을 자신의 방식으로 온전히 확보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작가는 오늘도 우리가 지나쳐온 풍경의 실체적 질료를 파헤치며 또 다른 성질의 새로운 공간을 찾아 나가고 있다. ■ 송고은

 

* 각주1) 영상 만화 제작 등에서 회색조 명암이나 무늬, 패턴을 그리는 데 사용하는 도구. 여기서는 과거 종이 원고용으로 사용된 톤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같은 목적을 가진 컴퓨터 원고용 톤이 있다. 국립국어원 참조.2) 사진 현상에 사용되는 필름의 제조사와 유형, 빛의 양, 화학 물질 등과 같이 여러 요인을 통해 이미 결정된 표준값 외에 사용자가 의도적으로 그 표준값을 조작하여 결과물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뜻한다.3) 카를 구스타프 카루스,『풍경화에 대한 아홉 개의 편지 Neun Briefe über Landschaftsmalerei』(1831) 참조. 이화진, 2018, 미술사학연구회, C. G. 카루스의 『풍경화에 대한 아홉 개의 편지』와 지질학적 풍경.4) 앞의 자료. 카루스는 지구생명의 그림(Erdlebenbildkunst)이라는 신조어를 통해 풍경화의 전통과 자연에 대한 근대적 시각을 비판하고, 셸링 철학을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 정신의 동일성을 주장했다.5) 데이비드 건켈,『Of Remixology: Ethics and Aesthetics after remix)』, MIT PRESS, 2016.

 

 

Vol.20210722b | 황원해展 / HWANGWONHAE / 黃原海 / painting

백두대간의 四季 2

白頭大幹 :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우리나라 땅의 근골을 이루는 거대한 산줄기

 

백범영展 / BAEKBEOMYOUNG / 重山 白凡瑛 / painting 

2021_0714 ▶ 2021_0719

 

백범영_악휘봉망희양산_한지에 수묵_73×144cm_201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동덕아트갤러리

DONGDUK ART GALLERY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68 동덕빌딩 B1

Tel. +82.(0)2.732.6458

www.gallerydongduk.com

 

 

산속의 맑은소리를 화폭에 담다  1. 전통적인 남종문인화에 대해 논하다 보면 꼭 나오는 말 중의 하나가 자연합일(自然合一)이니 물아일체(物我一體)니 하는 말이다. 화가가 자연과 한데 어우러져 한 몸처럼 되어야만 제대로 자연을 재현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매우 추상적이어서 그 의미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한 말이 중국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 1037-1101)가 왕유(王維, 699?-759)의 그림을 보고 평했다는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라는 말이다. 문인화 풍의 그림을 보고 그 속에서 한 편의 서정시를 떠올리고, 또 아름다운 시를 읽으며 그림 같은 풍경을 떠올리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일이다. 이러한 두 가지 예술 갈래 사이의 관계는 음악으로 확장해도 비슷한 상황이 된다. 좋은 그림을 보면 자연 속의 울림이 들리는 듯하고, 자연 속에 조용히 침잠하여 소리를 들으면 아름다운 장면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느낌을 잘 표현한 말로 산수청음(山水淸音)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중국의 시인 좌사(左思)가 「초은시(招隱詩)」에서 "꼭 거문고와 피리 소리 아니라도, 자연에 맑은소리 가득하네.(非必絲與竹, 山水有淸音)"라고 한 데서 나온 것이다. 자연의 모습을 시각과 청각을 혼성하여 표현한 것이 절묘하다. 이 유명한 구절은 후대에 영향을 끼쳐 많은 문인과 화가들이 사용한다. ● 청나라의 석도(石濤, 1630-1724)에서부터 근대의 이가염(李可染, 1907-1989)에 이르기까지 여러 화가가 「산수청음도(山水淸音圖)」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렸다. 모두 기운생동(氣運生動)하는 자연의 속성을 잘 표현하려고 노력한 작품들이다. 이렇듯 자연을 담은 예술은 그것이 그림이든, 시든, 음악이든 모두 시각과 청각 등 여러 감각이 한데 어우러져야만 최상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특히 산수화는 화가의 시각을 통하여 자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데 온 힘을 쏟는다. 그래서 예전 화가들이 자연에 들어가 자연과 호흡하며 그림을 그리고자 한 것이다. 조선 후기에 실경을 그린 화가들의 그림이 많은 감동을 주는 것도 바로 이런 자연과의 교감이 극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백범영_이화령 비단길_한지에 수묵담채_74×48cm_2019
백범영_928봉 직벽_한지에 수묵담채_112×73cm_2019
백범영_국망봉망소백산_한지에 수묵담채_70×72cm_2019

 

2. 백범영은 오래 전부터 한국의 중심 산줄기를 따라 실경을 사생하며 작업하는 화가다. 그가 산사람처럼 산주름을 잡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의 발길은 쉬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백범영은 참 부지런한 화가다. 그의 미술세계는 그동안 제법 먼 길을 걸어왔지만 시작한 지점에서 그리 먼 곳에 있진 않다. 다른 양식을 못 해서도 아니고, 새로운 것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보다는 그동안 견지해온 미술을 갈고 다듬어 자신만의 색채를 더욱 견고하게 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어서다. 올해는 화가 백범영에게 특별한 해다. 어느새 인생의 한 바퀴를 돌아 지난 생을 정리하고 새로운 생을 시작해야 할 때다. 예전 같으면 잔치라도 했겠지만, 화가답게 그동안 그려온 그림들을 세상에 보이며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자 한다. ● 이번 전시는 오랜 시간 작업을 하며 이제는 그를 대표하는 상징적 경향이 된 백두대간의 굽이굽이를 속속들이 담아낸 작품들이다. 2019년에 같은 장소에서 있었던 전시를 잇는 종합편이다. 70여 점의 산수화와 또 그만큼의 야생화 꽃그림을 준비하였다. 정성을 담아 그린 산이나 계곡, 소나무와 꽃 한 점 한 점에 모두 그의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 오랜 시간 자연을 그리다 보니 이제 그의 손도 자연에 익숙해진 듯 자연스럽다. 또한 잘 알려진 장소보다는 언제나 늘 마주하는 친숙한 풍경을 그리려는 경향도 나타난다. 구태여 화려한 것을 찾지 않으려는 원숙한 사고의 표현으로 보인다. ● 참 신기하게도 그림은 작가를 닮는다. 화가가 인물을 그리면 본능적으로 자신과 닮은 얼굴을 그린다고 한다. 그래서 그림 속 인물은 대부분 자화상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인물화뿐만 아니라 산수화나 화조화도 작가를 닮는다. 백범영의 그림도 참 사람을 닮았다. 그의 성격은 겉으로 보기에는 살짝 직선적이면서 투박한 면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와 일을 해보면 매우 치밀하고 섬세한 면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예민한 미술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는 질박함과 섬세함의 양극적인 성향이 있다. 그의 그림 속에 나오는 산이나 나무, 꽃 등 사생 대상들이 그런 그의 성격을 많이 닮았다. ● 산을 그릴 때는 산줄기를 대범하게 그리면서도 산면을 다룰 때는 보통 섬세하게 다루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산은 굳건한 듯하지만 크게 위압적이지 않고 친근하다. 또한 그의 특장인 소나무를 그릴 때도 굳이 오래된 큰 소나무를 찾아 그리지만, 세부적인 묘사는 부드럽고 경쾌한 붓질을 보인다. 근래에는 야생화를 중심으로 꽃을 많이 그리는데, 식물의 작은 특징까지 고려하는 모습은 큰 산을 그리던 모습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서로 다른 듯하나 사실 모두 그의 본성에 충실한 그림들이다. ● 사실 예전에 그를 처음 만났을 때 필자는 그의 그림이 좀 더 대범하고 강한 필선을 갖길 바랐다. 산세도 훨씬 더 강렬하게 포치하고, 붓도 자유롭게 휘갈기고, 먹도 두텁게 막 뿌리는 위압적인 그림을 그리기를 원했다. 모름지기 화가는 붓을 소심하게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게다가 당시 눈에 보이는 그의 외양은 산을 들쳐 업고 다녀도 될 것 같은 기세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의 품성이 그런 성향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광기 어린 화사보다는 선비 화가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자 그의 그림이 편하게 다가왔다.

백범영_옥돌봉망선달산_한지에 수묵담채_70×70cm_2019
백범영_자병산_한지에 수묵담채_70×72cm_2019
백범영_큰새봉과 나한봉_한지에 수묵_70×72cm_2020

 

3. 한때 가깝게 지내 자주 보던 때도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그를 만나기 어렵게 되었다. 혹 어느 날 말동무가 그리워 그를 찾으면 어느새 백두대간 어느 산중에서 산과 씨름하거나 소나무와 마주 대하고 있곤 하였다. 이럴 때면 속세의 친구를 잃은 듯한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산속에서 얻어 온 산야의 풍경과 자연물을 그린 것들이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자연과 소통하며 얻은 자연 속에 숨어 있는 맑은소리들이라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는 나의 아쉬움이 부끄러워졌다. 산길을 걷는 백범영의 모습을 생각하면 근대기에 금강산을 너무 좋아한 한 화가가 떠오른다. 그는 금강산에 매료돼 사계절을 모두 화폭에 담을 요량으로 산속에 움막을 짓고, 밥을 지어 먹으며 3년간을 살며 오로지 그림만 그렸다고 한다. 그만치 백두대간의 자연은 금강산 못지않게 놓칠 수 없는 미술의 자양분이 가득한 보고이다. 부디 산길을 걷는 그의 진득한 발길이 지치지 않길 바란다. 더 나아가 그림을 그리는 그의 숨소리와 자연의 맑은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백범영의 「산수청음도」가 완성되기를 바란다. ■ 황정수

 

 

Vol.20210714g | 백범영展 / BAEKBEOMYOUNG / 重山 白凡瑛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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