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삼일절에는 시청에서부터 광화문에 이르기까지 태극기로 뒤 덥혔지만.

보수단체들의 태극기에 대한 남용과 오용으로 참담한 하루였다.


선열들께서 피로 지켜낸 나라의 국기가 일제에 빌 붙었던 박정희 우상화와

그의 딸 박근혜를 지키려는 도구로 전락되고 있음에 얼마나 통탄 했겠는가?

이 날 내린 봄비가 선열들의 눈물인양 서글펐다.






난 여지 것 시청 앞에서 열리는 보수단체들의 관제데모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객관적인 눈으로 기록해야 하는 다큐멘터리사진을 해왔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사람을 찍어도 좋은 사람만 찍고, 싫은 사람은 카메라조차 들기 싫으니,

다큐사진가로서의 자격이 없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한 번쯤은 가 보아야 할 것 같아, 이 날은 지하철 시청역에서 내렸다.
지하철의 화장실 입구는 이른 시간부터 노인들로 붐볐고.

어떤 이는 박근혜 초상사진과 태극기를 들고 일인 시위하듯, 서 있었다.





시청광장으로 나가니 의자까지 준비된 삼일절 집회가 열리고 있었으나,

확성기에 울려 퍼지는 소리는 종북 타령과 박근혜를 옹호하는 선동적인 이야기 일색이었다.

연단에 나와 발언하는 사람들의 어투나 집회 분위기가 왠지 북한을 닮아가는 듯 했다.

빨갱이는 죽여야 한다며, 하는 짓은 그들과 똑 같았다.

그리고 삼일절에 태극기는 당연히 들고 나와야겠지만, 성조기는 왜 들고 나왔으며,

퇴역한지가 수십 년이 된 늙은이가 왠 군복을 입고 나왔는지, 이해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았다.

보기에는 하나같이 평범한 분들인데, 하는 짓은 완전 사이비 종교집단의 광신도 같았다.






시청에서 광화문 쪽으로 몰려가는 사람들을 따라 가보니,

세종문화회관 방향에 대형 스크린과 고성능 확성기를 세워놓고 혼란을 부추키고 있었다.

경찰이 광장과 도로 사이를 차벽으로 갈라놓아 광장 통과하기란 삼팔선 넘어가기보다 더 어려웠다.

화장실이나 식당에 가려면 엄청난 인내가 요구되었다.






정오 무렵의 '광화문광장'에는 촛불시민이 그리 많지 않다.
노인들이 주축인 보수단체의 집회는 일찍 시작하여 일찍 끝나지만,

촛불시민들의 집회는 늦게 시작되어 늦게 끝나는데, 오후 세 시가 되어서야 촛불시민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비가 내려 보수단체 참가자들은 대부분 흩어 졌지만, 그들의 확성기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촛불집회가 시작되자, 아예 스피커와 스크린을 촛불집회 방향으로 돌려 방해하기 시작했다.

확성기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촛불집회 발언자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행진 목적지인 청와대로 가지않고, 왜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었는지?

그리고 촛불집회가 열리는 지척에다 대형스크린과 확성기는 왜 세웠는지?

일련의 의혹들이 경찰과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촛불집회의 '퇴진행동' 최영준실장은  ‘박근혜 세력이 광화문에 집결하여

평화롭게 진행하는 촛불에 도발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가 오는 중에도 30만에 달하는 많은 촛불시민들이 몰려나와 박근혜 구속과 황교안 탄핵을 외쳤다.

이날 광장에서는 윤승길(3.1절민족공동행사준비위) 사무총장의 사회로 ‘3.1정신 이어받아 통일독립 이룩하자!’는

‘제98주년 3.1절 민족공동행사’와 3,1국민주권선언대회 등 삼일절과 관련된 행사도 줄줄이 열렸다.





‘광화문미술행동’의 열한 번째 프로젝트는 ‘민주주의 촛불공화국만세!!!’였으며

‘바람찬 전시장’의 기획전은 '태극기 역사'전으로 시의적절한 태극기 자료전이 열렸다.

행진에 사용할 대나무 깃발도 대량으로 만들어졌고, 임실필봉농악의 대학생 풍물패들이 흥을 돋우기도 했다,

강병인, 김성장씨의 서예퍼포먼스와 시민들의 바닥 글쓰기, 촛불시민 인증샷 사진 찍기,

류연복 유대수씨의 촛불 목판화 찍기 등 다양한 예술행동이 펼쳐졌다.






이날 비를 맞으면서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수많은 시민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정의로운 세상을 바라는 국민들의 결기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 날 벌어진 웃지 못할 사건은 태극기 집회에 나온 이모(51)씨가

자신의 집에서 왼손 새끼손가락을 잘라 붕대를 감고 나왔다는 것이다.

손가락이 아니라 목숨을 끊을 수도 있겠지만, 손가락 자른 이유가 너무 웃겼다.

“안중근 의사처럼 3·1절에 독립 운동 한 것처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패권력자 김기춘 구속에 따른 항의라고도 했다.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으니, 이보다 더한 코메디가 어디 있겠는가?


사진, 글 / 조문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떠난 '용태형' 운구행열은 서소문 배제학당을 한바퀴 돌아 인사동으로 들어왔다. 오래전 문화운동의 본거지였던 '그림마당 민' 앞에서, 그 시절을 회억하는 유홍준선생의 이야기를 들어며 고인의 넋을 기리기도 했다. 그리고는 망자의 가게였던 '낭만'으로 자리를 옮겨 노제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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