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사진 읽기-

 

 3代에 걸쳐 완성된 장인적 예술성

 


사진이 발명된 후 적어도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사진술은 만만한 기술이 아니었다. 그 시기에 사진이라는 신기술을 예술적 도구로 활용하고자 했던 이들은 우선 기술을 장인의 수준으로 온전히 습득해야만 했다. 그러고 나서야 특출한 기술적 완성도를 바탕으로 사진에 자신만의 표현방식과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단계, 즉 예술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한 사람이 당대에 그 과정을 모두 이루진 못하였지만, 세대를 이어 축적한 기술을 종국에는 예술로 승화시킨 경우도 있다.

이탈리아 미래주의에 동참했던 완다 율츠(Wanda Wulz·1903~1984)는 가업으로 사진 스튜디오를 이어받았다. 그의 할아버지 주세페 율츠는 1868년에 슬로베니아와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항구도시인 트리에스테에서 영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솜씨는 고객들을 만족시켰고 자연히 그의 스튜디오는 잘 자리 잡았다. 그는 아들에게 기술을 전수하였고, 그의 아들은 다시 어린 딸들을 일찌감치 모델과 조수로 훈련시켰다. 자매가 성장하여 스튜디오 운영을 물려받은 후, 특히 완다는 아버지의 장인적 기술을 바탕으로 그 집안에서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전통적인 인물사진에 만족하지 않고 한 장의 사진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해석과 상상을 보여주기 위해 암실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합성해내는 실험에 몰두한다. 고양이와 자신의 얼굴을 절묘하게 합성한 이 작품은 당시 아방가르드를 꿈꾸던 동료 예술가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눈의 위치와 얼굴의 크기를 딱 맞추어서 두 장의 사진을 중첩시킴으로써 그녀는 잠재의식으로부터 끌어올려진 초현실적인 조합을 만들어냈다. 완벽한 기술에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해져서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울 만큼 강렬한 예술 작품이 탄생하였음은 물론이고, 세대를 거듭한 기술의 축적이 역사에 남을 예술 작품으로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 신수진 사진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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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수진의 사진 읽기]

     

    급변하는 時代에 대응한 '知的 실험'



    역사적 인물들의 업적을 들여다보면서 그들이 이 시대에 산다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때가 있다. 인재가 타고나는 것만이 아니라면 다른 시대적 환경 속에선 그들도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다가도, 그들의 시대에 대한 대처 방식이 오늘날에도 유효하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보는 것이다. 어쨌거나 인재는 시대와 함께 만들어진다.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던 백 년 전의 유럽에서 활동했던 작가 중엔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 예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사람이 많다. 라슬로 모호이너지(Laszlo Moholy-Nagy·1895~1946)도 그중 하나다.


                                                              라슬로 모호이너지, 포토그램, 1939

    빛으로 그린 그림 - 기계로 만든 규격화된 생산품들을 암실에 갖고 들어가 빛을 비추자 이름과 기능은 사라지고 추상화된 그림만 빛의‘흔적’으로 남았다. 라슬로 모호이너지, 포토그램, 1939
    헝가리 태생으로 독일 바우하우스를 거쳐서 후에 시카고 뉴 바우하우스를 이끌었던 그의 활약은 눈부시다. 화가이자 사진가, 교수이자 이론가로서 그의 활동 분야는 조각·영화·디자인·광고·무대 및 전시 설계 등을 넘나들었다. 그야말로 유토피아 정신으로 무장한 전 방위적 예술가였다. 이 모든 활동을 관통하는 그의 관심사는 기술과 산업이 이끄는 환경의 변화를 예술에 통합하는 것이었다. 포토그램(photogram)은 카메라를 이용하지 않고 암실에서 인화지 위에 직접 빛을 주어서 그림자만으로 형태와 명암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다. 말 그대로 빛으로만 그리는 그림이다.

    모호이너지에게 사진은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빛'을 다루기에 가장 적합한 도구였다. 안료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이전 시대의 유산이라면 전기를 활용하는 인공 조명을 가지게 된 20세기 인간에게 '빛으로 그리는 그림'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사진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예술적 표현 도구로 활용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 중에서도 모호이너지가 유독 포토그램에 매료되었던 이유는 그것이 물질성과 비물질성, 구상과 추상, 사고와 감정을 넘나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당시의 인류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의 본질을 꿰뚫어 인류가 변화하는 시대에 더 잘 적응하도록 돕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믿었던 그가 우리 시대에 다시 살아난다면 무엇을 했을까 하는 공상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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