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장사익선생의 붓으로 노래한 ‘낙락장서(落樂張書)’전이
지난 8일 어버이날에 맞추어 성황리에 개막되었다.






절절한 소리를 그침 없이 쏟아내는 그의 노래처럼,

물 흐르듯 자유롭게 쓰 내려가는 붓글씨 역시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글씨였다.






예술가의 끼를 타고났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그의 인간미다.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진솔한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겸손하고 상대를 배려하며 껴안아주는 따뜻한 마음은
각박한 세상에 한 줄기 빛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예술의 무기화로 잘난 채 않는다. 그냥 예술 자체를 즐긴다.
누구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노래 부르며 글을 쓰 왔다.






지인들의 행사마다 찾아 와 축가를 불러주기도 하지만,
오래전에는 어느 공원에 모인 아줌마들의 요청을 마다 않고,
질퍽하게 부르는 소박한 모습에서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가끔 부쳐오는 편지의 붓글씨도 그렇지만,
작년 이 맘 때 아들 결혼식에 보낸 휘호는 글씨의 아름다움을 넘어
그의 따뜻한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스스로의 미약함과 악필의 부끄러움에 답장조차 보내지 못한 처신은
돌이킬 수 없는 과오로 남아 큰 빚을 짊어지게 된 것이다.





장사익, 그는 참 아름다운 사람이다.
노래도, 시도, 글씨도, 그가 행하는 모든 예술세계가 그를 빼 닮았다.
아무런 규범도 없고 규칙도 없이 단지 마음에서 우러나는 힘이 넘실거릴 뿐이다.
예술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시대 마지막 음유시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난, 그를 가수라 부르지 않고 소리꾼이라 부른다.
토해내는 것은 대중적인 노래지만, 그 노래는 판소리에 바탕 둔 소리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만이 부를 수 있는 소리는 유행이나 세대의 구분 없이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소리로 자리 잡은 것이다.






전시장 벽에 걸린 글씨들은 평소 보아왔던 글씨체를 벗어 난 작품도 있었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가의 창의성을 엿볼 수 있었는데,
한마디로 소리 없는 악보를 보는 느낌이었다.






이번 전시작에는 그가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도 더러 있었지만,
작가의 소소한 일상이나 느낌이 솔직하게 담겨있었다.
노래처럼 진솔한 삶의 자욱이 글씨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의 글씨는 자유롭게 변주하는 가락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며 뻗쳐 나갔다.
각기 다른 모양의 글자들이 어우러진 가운데,
균형과 리듬의 조화가 만들어 내는 즐거운 글씨 놀이였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이영철총장은 서문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선생의 서예는 삶의 꽃이며 눈물이고, 낙지자(樂之者)의 필묵유희(筆墨游戱)입니다.
그리고 그의 서예는 그의 노래와 더불어 우리에게 흉금을 울리는 삶의 휠링이라 하겠습니다”






‘落樂張書’전이 열리는 개막식은 작품이 벽에 걸렸을 뿐이지, 다 같이 어울리는 놀이마당이었다.
벗들과 후배들이 나와 노래 부르며 연주하는 공연장이었다.






김종규(국민문화신탁재단이사장), 이근배(시인), 심문섭(조각가), 이영철(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총장), 진옥섭(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석태진(글씨21대표)씨의 축사가 이어진 후 가수 최백호씨를 비롯하여 기타리스트 김광석, ‘아카펠라 더 솔리스츠’, ‘장사익 소리판 친구들’,
대금연주자인 아들 장영수씨 등 주변의 가까운 음악인들이 몰려나와 흥겨운 자리를 만들어 갔다.






객석에는 서정춘, 허영만, 김형영, 한명희씨 등 시인도 많았지만, 김녕만, 강제훈, 곽명우씨 등 사진가들도 여럿 보였다.
그 외에도 문봉선, 이정희, 전유성, 정재숙, 최재천, 윤세영, 최열씨 등 많은 축하객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그 날의 공연은 기타리스트 김광석씨의 반주로 최백호씨가 부른 ‘봄날은 간다“도 절창이었지만,

‘장사익 소리판 친구들’의 연주로 시작된 장사익씨의 주옥같은 노래들은 전시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이토록 오감을 즐겁게 한 전시는 여지 것 경험하지 못했다.
인사차 들린 전시가 어버이 날 받은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오는 14일까지 ‘이화아트갤러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의 작품 판매 수익금 일부는 유니세프에 기부될 예정이라고 한다.

사진, 글 / 조문호











































































































-배일동 명창의 판소리 강의도 고수-





우리 것이 밀려나는 요즘의 인사동에 '통인 판소리 한마당'이 불씨 같은 역할을 해 준다.

인사동 통인가게에서 정기적으로 마련하는 판소리 감상회는 봄 가을 두 차례 열린다.

지난 30일 오후5시부터 통인가게 통인옥션갤러리에서 열렸는데, 자리가 좁아 누구나 들을 수 없어 아쉽다.

이 날도 120여명이 가득 메워, 우리 소리의 진맛에 흠뻑 빠지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봄에 이어 세 번째 소리판을 연 배일동 명창은 이 시대가 낳은 걸출한 소리꾼이다.

그의 판소리는 들을수록 심금을 울리는데, 소리꾼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득음의 경지야 말할 것도 없고, 청중의 감정을 끌어내는 흡인력에 혀를 두를 지경이다.

이 메마른 세상에 어디서 이처럼 울고 웃을 수 있겠는가?

 

단가 이산 저산을 비롯하여 춘향가 중의 사랑가’, 쑥대머리, ‘어사와 춘향모친 상봉대목’,

심청가 중의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차례대로 불렀는데, 춘향의 사랑가는 애간장을 다 녹였다.



 


사랑사랑 내 사랑아 어허둥둥 내 사랑아~

저리가거라 가는 태를 보자. 이만큼 오느라 오는 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얼마나 좋았으면 저리 간 들어지게 놀았겠는가?

수청 들기를 거부하고 옥중에서 신세 한탄하는 쑥대머리에서는 눈물이 절로 났다.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애끓는 절절함에 가슴이 아렸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여지 것 판소리 듣고 웃은 적은 많지만, 눈물 흘린 적은 처음이었다.

그게 바로 소리 속으로 끌어당겨 일심동체가 되도록 만드는 배일동 명창의 매력이다.

입으로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부르는 소리라 이심전심이 되는 것이다.



 


어사와 춘향모친 상봉대목에서는 춘향 모친의 해학이 절정이다.

거지행색을 보고 모른다고 푸대접하던 장모가 사위 다그침에 급변하여

하늘에서 뚝 떨어졌나 땅에서 불끈 솟았나. 하운이 다기봉터니 구름 속에 쌓여왔나, 풍설이 쇄란터니 바람결에 날려왔나.

이 사람아 뉘 집이라고 아니 들어오고 문밖에서 주저 하는가"



 


또 한 가지 귀가 번쩍 뜨이는 대목은 심봉사 눈뜨는 대목이다. 바로 기쁨의 눈물을 맛보게 한 것이다.

죽고 없는 내 딸 심청, 여기가 어디라고 살아오다니 웬말이냐? 내 딸이면 어디보자. 어디 내 딸 좀 보자.

아이고 답답하여라 이놈의 눈이 있어야 내 딸을 보지, 심봉사 감은 눈을 끔적끔적 하더니 두 눈을 번쩍 떴구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장님이 딸을 한번도 보지 못했으니, 딸을 알아볼까 걱정되었다.


이렇듯 천지조화로 심봉사가 눈을 뜨고 나니, 만좌 맹인이 모다 개평으로 눈을 뜨는디

 

심봉사의 절절한 회한에 눈물 흘리게 하더니, 두 눈을 번쩍 뜨는 대목에서 기쁨으로 몰아치다

마지막 대목에서 그만 웃음이 터지게 만든 것이다.


    

 



바로 이것이 판소리 맛이다.

구절구절마다 온갖 내용이 다 들어있지만, 소리꾼이 그 감정에 흠뻑 빠지지 못한다면 어찌 청중에게 전해지겠는가?

 

이 날 고수로는 배일동 명창의 삼십년 친구인 김동원 교수가 북채를 잡았는데, 너무 조가 잘 맞았다,

옛날부터 ‘1고수, 2명창, 3청중이란 말이 있듯이, 고수가 소리꾼의 온갖 감정을 다 끌어내는 지휘자고 바람잡이가 아니던가?



 


그리고 배일동 명창이 들려 준 판소리의 이해에 다들 귀가 솔깃했다.

한 박자나 두박자로 되는 일본이나 중국과는 달리 삼박자로 진행되는 우리소리의 독창성을 이야기하며

직접 소리로 이해도를 높였다. 뭐든지 알아야 귀에 듣기고 눈에 보인다.

우리가 배일동 명창의 소리에 빠져 웃고 울었던 비결로, 소리뿐 아니라 교수법도 탁월했다.



 


여지 것 선호도에서 국악이 서양음악에 밀리는 것은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판소리의 독창성이나 음악성을 높이 사지만, 아직 대중성은 한 참 멀었다.

그래서 대중을 상대로 판소리의 제 맛을 깨우치게 해 주는 배일동씨 같은 분이 필요한 것이다.



 


악보가 필요 없는 판소리가 외국의 오페라 보다 한 수 위지만, 교육이 따르지 못해 밀린 것이다.

나 역시 어릴 때, 잔칫날 소리꾼 불러 벌이는 소라판에 별 흥미 없었다.

판소리 가사야 조금 알았지만, 시조는 뭐가 뭔지도 몰랐다. '영감들 무슨 귀신 싸나락 까먹는 소리 할까?' 생각했다.

가사를 모른다면 잘 모르는 외국노래 듣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러다 뒤늦게 음악을 좋아하며 LP판을 사 모아 음악실을 차린 것이 판소리 가치를 알아 본 계기다.

락이던 재즈든 가리지 않을 때였으나, 점차 우리 음악의 매력에 빠져든 것이다.

결국 부산 남포동에 한마당이란 국악전문 주막까지 차렸는데, 생각 외로 손님이 밀려들었다.

동아대 학생들이 주 고객이었지만, 사실 자글거리는 레코드에서 나오는 임방울선생 쑥대머리맛을

제대로 아는 손님이 얼마나 되었겠는가.

단지 우리 소리고 우리의 정서라는 매력이 손님에 손님을 끌어 들인 것일 게다.



 


그런데, 뽕짝 가수를 모시는 밤무대는 지천에 늘렸는데, 명창들 모시는 밤무대는 왜 없을까?

다 우리 것을 우습 게 보고 외국 문명에 놀아난 결과다.



 


통인 판소리 한마당이 끝난 후, 통인 관우선생 계신 상광루에서 막걸리 파티가 열렸다.

그 많은 술이 바닥나 낙원동 아구찜 식당에서 포장마차로 전전했는데,

그 날 관우선생께서 술이 취해 이산 저산을 쉼 없이 불렀다.

그 단가에 나오는 내용이 마음에 박혔을까?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데가 있느냐?“

 

사진, / 조문호
























































명창의 딸로 태어난게 죄이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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