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명배우 헌정공연으로 선정된 유진규의 '내가 가면 그게 길이지'가

지난 22일에 이어 오늘 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올랐으나 전 좌석이 매진되었다.

 

 

 

이 공연은 한국 마임의 살아있는 역사 유진규 마임인생 50년을 결산하는 공연이다.

반세기 동안 독보적인 몸짓으로 울림을 준 유진규에게 바치는 경애인 동시에 한국 마임의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자리다.

 

 

 

유진규씨는 공연에 앞서 한국마임의 새로운 역사를 쓴다고 했다.

 

 

 

여지 것 국립극장이나 문예회관이 마임 공연을 거부해 왔는데, 이제야 대한민국 최고의 극장 ‘예술의 전당’에서 마임을 초청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마임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며 공연사에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날의 공연은 한국적 마임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빈손’이었다.

신칼, 한지, 향, 빈손 등 4부작으로 이루어진 ‘빈손’은 인간의 본질과 영혼을 노래한 걸작이었다.

 

 

 

숨 막힐 듯 펼쳐 진 격정의 몸짓에 본능적으로 카메라에 손이 갔으나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다.

공연 중 어떻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겠는가? 부득이 공연이 끝난 후 휴게실에서 방영된 영상을 촬영하여 소개한다.

 

 

 

지난 토요일 정영신, 서정란, 최명철씨와 함께 공연을 보기로 약속했다.

서정란씨는 일찍 도착해 점심식사까지 같이 했지만, 딸 보라와 함께 늦게 온 최명철씨는 휴게실에서 공연 영상을 보았다고 한다.

 

 

 

공연이 끝난 후 기국서씨와 박준석씨도 만났고, 서정란, 최명철씨와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일요일은 오후 2시와 6시 두 차례에 걸쳐 공연이 있다.

이미 전 좌석이 예매되어 입장할 수는 없으나 오후1시와 4시30분 '예술의 전당' 야외에서 공연되는 찬조공연은 볼 수 있다.

 

 

 

유진규 마임 인생을 결산한 성공적인 공연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사진, 글 / 조문호

 

 

[빈 손] 공연시간 60분

 

<신칼> 신칼과 몸이 하나되면서 드러나는 신칼도 아니고 몸도 아닌 혼령의 이미지.

<한지> 한지의 색감과 질감, 빛과 그림자와 어우러지는 몸,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이미지.

<향> 사물의 무속 음악속에 사람과 귀신을 대비시키면서 어둠속에 보여주는 혼불.

<빈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빈손일 때 비로서 자유로울 수 있다

 

• 출연 : 유진규, 변유정, 빈손프로젝트풍물패 빈손굿 (윤매고동, 이필천, 오선주, 최미선)

 




지난 4일 강민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에 정영신씨와 '분당 서울대학교병원'으로 문병 갔다.

병원 휴게실에는 달마선생 내외 분과 정승재교수, 서정란씨 등 여러 명의 문인들이 먼저 와 계셨다.

소설가 김승환선생은 먼저 다녀가셨고, 맹문제교수도 오실 것이라고 했다.






어디가 편찮은지 궁금해 “선생님 병명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상사병이라고 대답하셨다.

다들 웃기에 먼저가신 사모님이 그리워 생긴 우울증 쯤으로 가볍게 여겼는데,

선생님 몰래 전해준 서정란씨의 이야기로는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암이 곳곳에 전이되어 병원에서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의사선생으로부터 처음 검사결과를 들었을 때는 선생님께서도 당황하셨으나, 모든 걸 내려놓았는지 여유롭게 웃으셨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오래 전 입원하셨을 때, 병의 위중함을 아셨으나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해 둔 것이다.

그 끔찍한 고통을 혼자 감수하며 틈틈이 인사동에 나와 주변사람들을 걱정하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다.

무슨 말로 위안 드려야 할지 막막했으나, 내일이면 호스피스병원으로 옮긴다니 눈앞이 더 캄캄했다.






늦게 오실 분을 맞으려면 피곤하실 것 같아 병실 침대에 눕는 것을 보고 돌아왔는데, 이제 인사동도 끝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한 번은 떠나야 할 길이지만, 불 꺼진 인사동을 생각하니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으나, 선생처럼 온 몸으로 사랑하신 분은 없었다.

터줏대감이며 친구였던 심우성선생도 떠나시고, 이제 선생님까지 떠나신다면 누가 인사동을 지킬 것이란 말인가?






강민 선생의 시 ‘인사동 아리랑2’ 황혼 편을 다시 읽어보자.

“붐비는 인파 속에도
내가 찾는 이는 없다
오늘도 인사동 걷기는 허전하다
추억처럼 불빛이 켜지고 있다
열이 오르며 목이 마르다
잃어버린 불모의 사랑이 허공을 맴 돈다
어딘가 전화라도 걸까
눈시울만 시큰할 뿐
휴대전화를 만지는 손가락은 뻣뻣이 움직이지 않는다
종로 쪽 멀리 남산이 다가오고
차츰 어둠의 장막도 깔린다.
나 이제 또 어디론가 돌아가야 하리
그이의 아지트였던 찻집<보리수>도 없어졌다
진공의 거리
어디선가 그리운 이들 목소리 들리는 것 같다
돌아가리
돌아가리
그런데 이 끝없는 외로움은 무엇인가
풀리지 않는 눈물의 의미와 그리움은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을 밤의 공동(空洞)이 두렵다“





외로움과 그리움이 절절한 선생님의 시에 눈물이 절로 난다.





인사동으로 돌아와 약속한 공윤희씨를 만났다.
시간이 맞지 않아 함께 병문안드리지 못함을 애석해 하며,‘메밀란’으로 갔다.
그 자리는 ‘산타페’가 있던 자리인데, 돌아가신 여운 화백의 아지트가 아니던가?






그리고 맞은 편 잡초만 무성한 ‘목인박물관’은 흑백현상소 ‘꽃나라’가 있던 자리다.
‘꽃나라’를 운영하던 신작가도 여운화백도 다 떠나버린 인사동이 더욱 낯설기만하다.






다행스럽게 찻집 ‘초당’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초당보살 또한 건강이 좋지 않아 늦게 나오고 일찍 들어간다고 했다.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 떠나가고, 나 또한 떠나가리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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