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감독 안애경씨를 만난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5월경 통인가게 김완규대표가 마련한 오찬모임에서 처음 보았다.

마침 옆자리에 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수 있었는데,

필란드를 오가며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맡는 아트 디렉터였다.

현장에서 일하며 느낀 모순적인 폐단들을 이야기했는데,

일단은 생각이 깨어 있었다. 여러 가지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도 신선했다.



   



한 달 쯤 지나 정동의 신부님이 운영하는 국밥집에서 밥 한 끼 먹자는 연락을 받았다.

올 여름 '서서울호수공원'에서 어린이아트캠프 ‘TO BE FREE'를 진행하는데,

와서 사진 좀 찍어줄 수 없냐는 것이다.

돈만 주면 젊고 잘하는 사진가들이 많은데, 굳이 늙은이더러 부탁하는 게 좀 그랬다.

그러나 그녀는 사진보다 진심으로 어린이들과 놀아 줄 사람을 찾는 것 같았다.

하기야! 이 빠진 늙은이의 웃음에 깔깔댈 얘들을 생각하니, 나도 하고 싶어졌다.



 


덕분에 올 여름 진행된 아트캠프에서 이틀 간 어린이들과 놀게 되었는데,

작업 전반에 대해 유심히 지켜 볼 기회가 되었다.



 


어린이 아트 캠프는 서울시청 공원녹지정책과에서 주관하는 행사로,

어린이들에게 창의적인 예술교육을 접목시키는 프로젝트였다.

함께 어울려 경험하며 주변 환경과 연관된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는 것으로,

어린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여 그들의 체험이 공공디자인의

기본 아이디어로 활용되는 프로젝트였다.



 


핀란드의 젊은 작가 여러 명이 함께 참여한 예술캠프였는데,

참여한 어린이들이 상상의 나래를 펴도록 이끌어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열린 교육의 실체를 보았다.

아마 어린이들에게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뒤 워크샵을 통해 나온 아이디어의 형상을 공원에 설치하기로 되어있었다.

어린이들의 아이디어는 날아가는 물고기였다.

그래서 '서서울호수공원' 모래밭에 날아가는 악어가 디자인 된 것이다.

그 위에 그린 어린이들의 그림은 각기 다른 색의 타일조각으로

디자인 되었는데, 결국은 안애경씨가 해야 될 일이었다.



 


이 추운 겨울 현장에서 텐트치고 일하는 것 보니 기가 막혔다.

도와준 안반장이란 분이 있었지만,

날카로운 타일 조각을 갈아내는 작업도 만만치 않을 텐데 말이다.

올여름 시작되어 추운 겨울에 마무리되는 이 작업의 전체 예산을 알고 깜짝 놀랐다.

얼핏 듣기로, 천삼백에서 사백사이 인 것 같았다.





몇 명의 핀란드작가 비행기 삯만도 만만찮을 텐데,

체재비와 그동안의 작업경비를 더하면 보나마나 밑지는 장사일 것 같았다.

다들 돈만큼만 하고 대충 마무리하는 관행을 보았던 터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동안 서서울호수공원관리소와의 마찰도 많았는데, 협조는커녕 사사건건 물고 늘어졌다.

잘 못된 관행과 잘 못된 상식과의 싸움도 만만찮았다.



 


지난 1, 작품이 마무리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른 일이 있었지만, 어린이들의 꿈이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해 달려갔다.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김포역에 내렸으나, 그만 버스를 잘 못 갈아타 시간이 지나버렸다.

도착하니, 작업현장은 천막으로 덮어 모래로 묻어 놓았다.

전화 했더니, 서서울호수공원을 설계한 조형건축가 최신현씨가 찾아와

공원을 돌아 본 다는 것이다.



 


작품이 궁금해 덮인 모래를 걷어내고 있는데, 안애경씨가 달려왔다.

못 오는 줄 알았다며 함께 걷어 냈는데, 드디어 나는 악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장관이었다. 고생한 보람을 느낄 만 했다.

 

악어가 임신을 했다며, 여기 저기 새끼를 많이 칠 것 같다는 말도 했다.

내년 봄에 참여했던  많은 어린이들을 초대해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다시 덮어 고정시켜두고 나오니, 그때 사 최신현씨가 나타났다.

    


 



일전의 워크샵에서 보았으나, 그가 설계한 공원을 보며 존경심을 가진 터라 반가웠다.

함께 어울려 떡뽁기도 먹고 떡라면도 먹었다.

조그만 찻집 다락에 올라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관리소 직원들 생각하면 두 번 다시 오기도 싫을 텐데,

내년에 또 다른 일거리가 있다며, 그 구상을 이야기했다.

다목적홀 뒤편에 있는 빈 공간을 청소원이나 인부들이 쉴 수 있는 둥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만이 아니라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휴식처도 만들어주고,

지나치는 시민들의 눈요기 거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녀를 지켜보며, 낮은 사람들을 대하는 한결같은 그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쪽방에서 생활하다 허리가 상했다는 이야기를 폐북에서 보고는

캠프에 참여한 필란드 목공예가를 데려와 침대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옆에 사는 쪽방사람들의 편의까지 생각해 같이 둘러앉을 수 있는 탁자까지 마련하려했으나,

쪽방 관리자가 단호히 거절했다. 함께 어울려 입 맞추는 것이 싫은 듯했다.

그 뿐 아니라 공원 입구 고목 밑에 노인들이 세워 둔 탁자에 편히 쉬라며

통나무 의자를 만들어 주었으나, '서울문화재단' 직원들이 치워버렸다.



 


다들 관리상의 편의만 생각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예술이란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다 같이 누려야 한다는 생활 속의 예술을 말하고 있었다.

그 뿐 아니라 모든 생각이 열려 있었다.

각 지자체 문화담당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녀의 사생활은 잘 모르지만, 추측컨대 환갑을 가까이 둔 독신으로 알고 있다.

여지 것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 왔지만, 이만한 사람을 만나기가 싶지 않았다.


 


내일 필란드로 떠난다며, 크리스마스카드를 미리 전해주었다.

엊저녁 손수 짰다는 목도리까지 가져왔는데, 감아주는 손길이 너무 따뜻했다.

안애경씨는 끝까지 사람을 감동시켰다.

 

사람을 중하게 여기지 않는 예술은 사기다.

 

 

사진, / 조문호












서서울호수공원 모래밭에 날아가는 물고기가 만들어진다.
어린이들의 아이디어로 미술감독 안애경씨가 진행하는 “예술로 놀이터” 작업이 이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여름 이틀 동안 열린 어린이아트캠프 ‘TO BE FREE'에서 도출해 낸 어린이들의 생각을 형상화하는 작업으로,

그동안 4차에 걸친 작업 끝에 전체적인 윤곽이 들어나고 있다. 이젠 섬세한 공정만 남아 안애경씨 혼자 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10일 오전 무렵 '서서울호수공원'에 갔더니, 진행을 맡은 안애경씨와 일을 도와주는 안반장이란 분만 나와 있었다.

탁자 위에는 많은 쟁반과 그릇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갖가지 부서진 타일조각들이 종류별로 담겨 있었다.

작업을 편하게 하기 위해 자재들을 정리했으나, 마치 식탁처럼 만들어 놓았다. 한쪽에는 프라스틱 통에 꽃도 꽂혀 있었다.





그런데, 웃음이 절로 나는 기막힌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 '서서울호수공원' 관리사무소에서 안애경씨가 진행하는 작업을 아주 못 마땅하게 여겨왔다.
'서울시청'공원녹지과에서 주관하는 일이라 어쩔 수는 없지만, 협조는커녕 사사건건 물고 늘어진다는 것이다.

이 날도 공원관리사무실에서 이들을 감시하느라 CCTV 화면을 아예 작업현장에 고정시켜두었다고 한다.

작업을 돕던 안반장이 사무실에 갔더니, 공원에 왜 음식상을 차리냐며 당장 치우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웃기는 코미디인가?






또 한 가지 어처구니 없는 일은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교육센터 부지에서 일어 난 이야기다.
'서서울호수공원' 초입의 한적한 고목 밑에 동네 어르신들이 쉬기 위해 나무원탁을 땅에 묻어 고정시켜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안애경씨가 통나무를 짤라 의자를 만들어 드려 어르신들의 좋은 쉼터가 되었는데,

어느 날 교육센터에서 갑자기 철거해 버렸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일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 넓은 공간에서 별 일도 없는 한 두 사람 직원을 위해 난방비만 팡팡 써야하는가?

난, 문제점이 많은 문화재단 자체의 무용론을 늘 말하는데, 이제 일하는 직원마저 전형적인 복지부동 공무원을 닮아간다.






마지막 비명을 토하는 서서울호수공원의 단풍에 끌려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여지 것 이토록 아름다운 단풍에 취해 본 적이 제대로 있었던가.

우아한 색깔로 변하는 마지막 낙엽은 짙은 색에 비할 바가 아닌지라, 그 아름다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내 주제에 이런 호강을 해도 되나 싶었다.

여지 것 아마추어 사진인들이 너도 나도 아름다운 풍경만 쫒아 다녀 나무라기도 했으나, 이해는 되었다.





작업장으로 돌아와 차 한 잔 얻어 마시고, 안애경씨 따라가서 떡라면도 얻어먹었다.


지난 작업에서는 어린이들에게 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날아가는 상상을 하랬더니, 물고기에 풍선을 다는 어린이도 있었고,

날개달린 물고기도 있었다고 한다. 이젠 물고기 조형물에 그린 어린이 그림에다 타일조각으로 멋지게 단장하는 일만 남았다.


작업 도중 공원에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이 몰려오기도 했지만, 안애경씨는 일손을 멈추고 그들을 맞아주었다.

어린이들과 놀아주며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등, 작업을 서둘지 않았다.






그런데, 타일조각으로 디자인하는 본 작업보다, 주워 모은 타일을 잘게 부수거나 색깔별로 구분하는 일에 시간을 너무 뺏기는 것 같았다.

단순한 일인지라 도와주려 했으나, 느닷없이 내리는 비로 그마저 일손을 멈추게 했다.

서둘러 작업장 자재들을 모아 덮어 두고 돌아왔지만,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날아가는 물고기 위에 올라 타 즐거워 할 어린이들의 모습이 빨리 보고싶어진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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